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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선박의 360도 눈
‘어라운드 뷰’가 여는 안전한 항해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자동차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어라운드 뷰Around View’ 시스템이 이제 거대 선박의 조타실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거대한 선체 안에서 사각지대와의 고독한 사투를 벌이던 항해사들에게 이 시스템은 바다의 흐름을 읽고 위협을 감지하는 ‘제3의 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시야 확보 차원을 넘어 선박 안전의 핵심기술로 진화한 선박용 어라운드 뷰. 그 놀라운 시각적 확장을 깊이 있게 조명해봅니다.

항해사의 눈을 넓힌 360도 안심 시야
복잡한 도심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거나 까다로운 평행 주차를 할 때, 마치 하늘 위에서 내 차를 내려다보는 듯한 화면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입니다. 이 화면을 제공하는 기술이 바로 ‘어라운드 뷰Around View’입니다.

자동차 어라운드 뷰는 차량 주변 환경을 360도로 표시하여 주행 중 주차나 장애물 회피 등을 돕는 시스템입니다. 차량 전후좌우에 장착된 4개의 카메라 영상을 하나의 평면 화면으로 통합해 운전자가 볼 수 없는 사각지대를 완전히 제거해줍니다. 과거 선택적 옵션이었던 어라운드 뷰는 이제 안전을 위한 필수 사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시선을 광활한 바다로 돌려보면 상황의 무게감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일반 승용차의 길이는 고작 5m 내외지만, 현대 해운업을 이끄는 거대 상선들은 그 길이가 축구장 두 개를 합친 것보다 긴 200m에서 400m에 달합니다. 한 척당 수천억 원을 호가하는 이 ‘바다의 거인’들을 좁은 항구 부두에 대는 작업은, 그야말로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함과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예술의 영역’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도선사라 할지라도, 아파트 수십 층 높이의 선교 위에서 거대 선박의 끝부분인 ‘선미’가 정확히 어디쯤 위치하는지 육안으로만 가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조타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탁 트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배 바로 밑이나 뒤쪽 상황은 선체 구조물에 가려진 ‘시각적 암흑 지대’입니다. 변화무쌍한 파도와 강한 조류, 갑작스러운 돌풍이라는 변수가 도사리는 바다에서 이러한 사각지대는 곧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최근 조선·해양 ICT(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 난제를 해결했습니다. 과거에는 수십 명의 선원이 갑판 곳곳에 배치되어 무전기로 “앞으로 몇 미터”, “뒤로 더”를 외치며 수동적으로 거리 감각을 공유했다면, 이제는 단 한 명의 항해사가 모니터를 통해 선체 주변 상황을 센티미터 단위로 정확히 파악합니다. 자동차처럼 선박 주변에 설치된 여러 대의 카메라 영상을 합성하여, 마치 하늘에서 배를 내려다보는 듯한 360도 전방위 조감도 시야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어라운드 뷰 기술 덕분입니다. 이는 단순한 카메라 설치의 조합만이 아닌, 물리적 한계를 데이터로 극복해낸 해양공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0.1%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정밀 제어
선박에 어라운드 뷰를 도입한 궁극적인 목적은 명확합니다. 바로 ‘사고 제로Zero화’입니다. 바다에는 레이더에 잘 잡히지 않는 작은 목선, 양식장 부표, 해상 부유물 등 수많은 위협 요소가 존재하며, 이는 정박 시의 충돌사고나 항로 이탈의 원인이 됩니다. 이 때문에 수만 톤의 선박이 부두 안벽에 평행하게 붙기 위해서는 극도로 정밀한 작업이 요구됩니다.

이때 어라운드 뷰가 ‘충돌 방지’와 ‘정밀 이접안離接岸’ 보조 시스템으로서 압도적인 성능을 발휘합니다. 이접안은 선박이 부두 안벽에 정박하는 ‘접안’과 부두에서 떨어져 나오는 ‘이안’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어라운드 뷰는 선체와 부두 사이의 이격거리를 실시간 영상으로 보여주며 사고를 원천 봉쇄합니다. 선박이 초당 몇 센티미터의 속도로 접안하고 있는지, 해류로 인해 선미가 몇 도나 틀어지고 있는지를 시각화해 정밀한 제어를 돕는 것입니다.
씨드로닉스의 AI 기반 실시간 접안 보조 시스템 구동 화면. 선박이 부두에 접안할 때 선박과 부두 사이의 거리, 접근 속도, 주변 장애물 정보 등 중요 데이터를 어라운드 뷰를 통해 얻고,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해 제공한다.
또한 짙은 안개나 칠흑 같은 야간에도 주변의 작은 장애물을 식별해주며, 육안으로는 절대 확인할 수 없는 선체 하부의 위험 요소까지 잡아냅니다. 항해사가 이러한 객관적 영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은, 기존의 ‘경험에 의존하던 감각’을 ‘정밀한 과학’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는 경제성과도 직결됩니다. 수천억 원의 선박과 수조 원 가치의 화물을 실은 배가 정박 과정에서 부주의로 접안 사고를 일으킬 경우, 수리비는 물론 운항 중단에 따른 기회비용 손실이 막대합니다. 어라운드 뷰는 이러한 사고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춤으로써 경제적 이익과 해운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합니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망망대해에서 밤낮없이 근무하는 항해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제공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는 확신은 긴박한 정박 순간의 압박감을 해소해줍니다. 결국 어라운드 뷰는 항만 이접안이나 협수로를 항해할 때 사각지대를 제거하여 충돌사고를 예방하는 최첨단 안전 솔루션인 셈입니다.
‘이미지 스티칭’과 ‘스태빌라이징’의 조화로 화면 구현
그렇다면 드론을 띄우지 않고도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서 배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화면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이미지 스티칭Image Stitching’ 기술에 있습니다. 이미지 스티칭은 겹치는 부분이 있는 여러 장의 사진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드는 영상합성 기술입니다. 여러 방향에서 촬영한 이미지들의 특징을 추출해 연결하는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모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구현 방식은 이렇습니다. 먼저 선체의 전후좌우 핵심 거점에 광각 카메라를 설치합니다. 이 렌즈들은 넓은 범위를 담아내지만 특성상 가장자리가 동그랗게 휘어지는 왜곡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때 알고리즘이 왜곡된 영상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정교하게 펼친 다음, 4개 이상의 영상이 겹치는 경계선을 이질감 없이 매끄럽게 이어 붙입니다.

즉 각각의 이미지에서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고유한 특징점(모서리, 점 등)을 찾아내고, 사진이 찍힌 각도나 원근감을 계산해 두 영상을 어떻게 비틀고 회전시켜야 완벽하게 겹칠지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선박의 상부 형상을 담은 3D 모델링 데이터를 중앙에 배치하면, 마치 가상의 카메라가 하늘에서 배를 수직 촬영하는 듯한 ‘버드 아이 뷰Bird's Eye View’가 완성됩니다.

하지만 바다 현장은 자동차 도로만큼 만만치 않습니다. 카메라가 설치되는 돛대나 선교 꼭대기는 지상에서 수십 미터 높이에 위치하며, 강풍이나 파도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이 진동은 영상의 축을 뒤흔들어 항해사에게 어지러움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물리적인 흔들림을 상쇄하는 ‘자이로 센서Gyro Sensor’와 디지털 알고리즘인 ‘스태빌라이징Stabilizing’ 기술이 투입됩니다. 스태빌라이징은 움직이거나 흔들리는 대상의 진동을 흡수하고 제어해 안정화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우리말로는 ‘안정화 기술’ 또는 ‘흔들림 보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거친 풍랑을 만나도 모니터 속 영상만큼은 잔잔한 호수 위를 보듯 평온하게 유지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임 화면처럼 펼쳐내는 ‘증강현실’ 기술
최근의 선박 어라운드 뷰는 단순히 주변을 보여주는 모니터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현실의 영상 위에 디지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덧입히는 증강현실AR 기술을 결합해,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나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직관적인 항해 환경을 제공합니다.

항해사가 모니터를 응시하면 주변 선박의 이름, 속도, 현재 방위, 목적지 정보 등이 그래픽 아이콘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선박 자동식별 장치AIS’에서 수신된 데이터와 실시간 영상이 결합돼, 내 배가 현재 방향으로 진행할 때 예상되는 궤적을 바다 위에 가이드라인으로 그려주기도 합니다. 이에 더해 보이지 않는 수중 암초나 복잡한 항로 정보를 입체적으로 띄워주고, 부두와의 거리를 실시간 숫자로 표시해줌으로써 마치 게임을 하듯 정밀하고 안전한 조타가 가능합니다.

특히 야간이나 안개, 폭우로 인해 시계視界가 극도로 불량한 상황에서 증강현실 기술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한 열상 이미지 위에 실제 항로 데이터ENC를 겹쳐 표시해주기 때문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항해사는 대낮처럼 선명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박을 운항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카메라 영상에 레이더RADAR와 라이다LiDAR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결합하는 ‘센서 퓨전Sensor Fusion’ 기술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수 킬로미터 밖을 감시하는 레이더와 근거리 사물을 레이저로 스캔해 3D로 시각화하는 라이다의 초정밀 데이터가 어라운드 뷰와 만나면서, 해상 위의 그 어떤 작은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무결점 감시체계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씨드로닉스(1)와 하이나스(2, 3)의 시스템 구동 화면. 어라운드 뷰 기술과 센서 퓨전 기반의 3D 모니터링으로 주변 선박 정보와 예상 경로를 영상 위에 그래픽으로 띄워 시계가 불량한 상황에서도 직관적인 운항을 돕는다.
자율운항 시대를 향한 가장 확실한 징검다리
어라운드 뷰가 항해사의 훌륭한 ‘눈’이 되어주었다면, 이제 현대 해양산업은 그 눈으로 본 방대한 정보를 스스로 판단하고 명령을 내리는 ‘두뇌’를 장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운전대에서 손을 떼는 자율주행 자동차처럼, 선원 없이도 오대양을 건너는 자율운항선박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자율운항선박은 단순히 경로를 따라가는 기존의 오토파일럿Autopilot과는 차원이 다른 지능을 요구합니다. 어라운드 뷰를 통해 확보된 영상 데이터는 딥러닝Deep Learning AI에 의해 분석됩니다. AI는 영상 속 물체가 단순한 파도의 포말인지, 작은 어선인지, 혹은 위험한 부유물인지 99% 이상의 정확도로 식별해냅니다.

여기에 충돌회피 알고리즘이 더해집니다. 바다에는 자동차 도로 같은 차선이 없지만 국제적으로 약속된 ‘국제해상충돌예방규칙COLREGs’이라는 복잡한 법규가 존재합니다. AI는 이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연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회피 경로를 스스로 계산하고, 주변 선박들의 궤적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충돌 가능성을 예측하며 목적지로 운항합니다. 육상 관제센터는 위성을 통해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비상시 원격조종을 통해 즉각적으로 배를 직접 움직여 대처합니다.

이러한 자율운항 기술의 완성이 가져올 변화는 선박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것입니다. 해상 사고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인적 과실Human Error’이 사라질 것이며, 24시간 지치지 않는 AI 파수꾼이 바다를 지킬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상주할 공간이 줄어듦에 따라 화물 적재 효율이 높아지고, AI가 계산한 최적의 항로를 택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해운 시대의 정점을 찍게 될 것입니다.

어라운드 뷰로 시작된 선박의 시각 기술은 이제 스스로 판단하고 길을 찾는 영리한 ‘지능형 항해시스템’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주차 보조 시스템 수준을 벗어나 자율주행으로 진화하는 자동차처럼,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선박 또한 360도 전방위 감지 기술과 자율 회피 능력을 바탕으로 인류를 더욱 안전하게 인도하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길 기대해봅니다.
3D 인식 기술로 사각지대를 제거하고 자동 도킹 기능을 통해 초보자도 전문가 수준의 접안이 가능하게 돕는
아비커스의 ‘뉴보트 독 2’ 구동 화면. 해양 AI 기술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임영섭 서울대 해양시스템공학연구소장이 연구소에 마련된
대형 해양 시뮬레이션 장비에서 선박 자율운항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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