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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포터블 에너지,
“전력의 자유 시대를 열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이제 전기는 고정된 공간에 묶인 자원이 아닙니다. 배터리가 발전하면서 전기에너지를 쓰는 기기들이 플러그를 뽑고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캠핑장에서 작동하는 가전기기, 정전 상태의 재난 현장에서도 이어지는 통신, 태양과 바람을 통해 개인이 전기를 만드는 발전…, 일명 ‘포터블 에너지’ 시대입니다.
지금부터 기존의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고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에너지 개인화 시대를 조명해볼까요?

전기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장치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벽면에 붙은 콘센트를 찾아 플러그를 꽂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선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고,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전기차를 타고 도심을 가로지릅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포터블 에너지Portable Energy가 있습니다. 포터블 에너지는 말 그대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에너지’를 의미합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자기기나 장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에너지 저장·발생 장치입니다. 에너지를 고정된 장소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담아서 이동하며 사용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 이동식 배터리나 휴대용 발전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근 들어 포터블 에너지 시장이 급성장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점점 더 확장되는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Outdoor Lifestyle’입니다. 캠핑, 낚시, 차박 등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야외에서도 전기를 쓰고자 하는 수요가 폭증했습니다.

둘째는 ‘모빌리티Mobility의 진화’입니다. 기존의 자동차, 버스, 기차 같은 전통적 교통수단을 넘어 전기자전거, 전동 킥보드, 드론, 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형태의 이동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항공 모빌리티의 발전은 하늘길조차 포터블 에너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재난 대비’입니다. 지진이나 태풍, 다른 원인 등으로 전기가 끊겼을 때 집이나 사무실에서 갑자기 컴퓨터가 꺼지고 와이파이가 끊어져 난감했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포터블 에너지입니다. 포터블 에너지는 거대한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중앙집중형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 에너지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사용하는 분산형 구조로의 전환을 가속화합니다.
포터블 에너지의 주요 형태와 종류
삼성SDI ESS용 배터리. 대규모 전력을 저장하여 필요할 때 공급하는
ESS(에너지 저장 장치)용 배터리 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 제품.
전력망에 직접 연결되어 에너지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돕는 컨테이너형 제품이다.
포터블 에너지는 크게 ‘휴대용 에너지 저장 장치PESS’와 ‘휴대용 에너지 생성·변환 장치’로 나뉩니다. 가장 흔한 형태는 배터리 기반의 저장 장치이며,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성하고 변환하여 사용합니다.

휴대용 에너지 저장 장치는 이동식 전력의 핵심입니다. 미리 전기를 화학에너지 형태로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전기에너지로 변환하여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보조배터리’, ‘포터블 파워스테이션’이 여기에 속합니다. 가정용 교류AC 전기를 리튬이온 등의 배터리(직류·DC)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습니다. 마치 물통에 물을 담아뒀다가 목마를 때 마시는 것과 비슷합니다.

휴대용 에너지 생성 장치, 즉 발전 장치는 외부 전력망(콘센트)에 연결하지 않고도 직접 전기를 만들어 쓰는 소형·이동식 전원 장치를 말합니다.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와 ‘휴대용 수력발전기’, ‘휴대용 풍력발전기’, ‘휴대용 연료식 발전기’ 등이 있습니다. 휴대용 에너지 생성 장치는 에너지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휴대용 에너지 저장 장치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 장치의 하나인 보조배터리Power Bank는 스마트폰·태블릿 등 소형 전자기기 충전에 최적화된 소형 배터리 팩입니다. 주로 ‘리튬이온 배터리Li-ion Battery’나 ‘리튬 인산철 배터리LiFePO4’를 사용합니다.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는 가장 대중적인 형태입니다.

차박과 캠핑의 열풍 뒤에는 포터블 파워스테이션Portable Power Station이 있습니다. 포터블 파워스테이션은 기존의 단순 배터리 팩을 넘어 캠핑이나 차박, 재난 같은 비상 상황일 때 사용하는 대용량 배터리 시스템입니다. 노트북, 소형 가전, 의료기기 등 더 많은 전력을 요구하는 장치에 전원을 공급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일상 필수품이 된 보조배터리. 필요한 만큼 에너지를 담아
이동하며 사용하는 ‘에너지 개인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포터블 파워스테이션. 캠핑이나 차박 등 야외 활동 중에도
전자제품과 의료기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험준한 산속이나 바닷가에서도 커피머신을 돌리고, 프로젝터로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포터블 대용량 배터리 시스템 덕분입니다. 교류AC 콘센트가 있어 헤어드라이어·전자레인지 등 고출력 가전제품 연결이 가능합니다. 이는 공간의 제약을 허무는 라이프스타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또 재난 상황에서 전력망이 끊겼을 때, 통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포터블 파워스테이션은 생명줄 역할을 합니다.

휴대용 에너지 생성 장치인 휴대용 태양광 충전기Portable Solar Charger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여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기기에 직접 전원을 공급합니다. 태양광 패널이 빛을 받으면 전자를 이동시켜 직류 전기를 생성합니다.

휴대용 수력발전기는 강이나 계곡, 하천처럼 흐르는 물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텀블러 크기의 소형 장치입니다. 방수 처리돼 물속에 설치가 가능합니다. 2~4시간 정도 물속에 담가두면 흐르는 물이 프로펠러(터빈)를 회전시키고, 이 회전운동이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생산합니다. 휴대용 에너지 생성 장치는 전력망 없이도 전기의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합니다. 연료가 필요 없어 친환경적입니다.
리튬이온에서 전고체까지, 배터리의 기술적 진화
배터리 기술 비교
구분 리튬 인산철 배터리 삼원계 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에너지 밀도 낮음 높음 매우 높음
안전성 우수 보통 우수
장점 긴 수명, 저렴한 비용 긴 주행거리, 고출력 높은 안전성 및 밀도
원료 철 등 흔한 원료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고체 전해질
주 용도 포터블 파워스테이션 고성능 전기차, IT 기기 미래 모빌리티
포터블 에너지 시대의 개막은 배터리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중심의 하나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등장입니다. 1990년대에 상용화된 리튬이온 배터리는 높은 에너지 밀도와 가벼운 무게로 모바일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배터리는 화학반응으로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장치입니다. 구성 요소는 크게 음극과 양극, 분리막, 전해질(배터리액) 등 4개로 나뉩니다. 전해질 속에 금속판 두 종류가 들어 있는데, 그 두 금속판이 전해질과 화학반응을 하면서 전기를 만듭니다.

금속판 한쪽은 전자를 받아들이는 양극(+)이고, 다른 한쪽은 전자를 내보내는 음극(-)입니다. 전해질은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는 이온의 통로 역할을 하고,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면 불이 나기 때문에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배터리는 이렇게 두 금속판이 전해질을 통해 반응하면서 전자를 얻거나 잃는 ‘산화·환원 반응’으로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보통 배터리는 한 번 쓰고 버리는 ‘1차전지’와 충전해서 계속 쓸 수 있는 ‘2차전지’로 나뉩니다. 납 축전지, 니켈 카드뮴 배터리, 리튬이온 배터리 등이 2차전지에 속합니다. 과거에는 주로 니켈이나 납으로 2차전지를 만들었지만 너무 무거운 게 흠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충전으로 운행하는 전기차나 손에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무게가 니켈 배터리의 반밖에 되지 않아 가볍고, 같은 무게라면 배터리 용량도 세 배나 큽니다. 성능이 오래 유지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전자를 쉽게 내놓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화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에너지 변환 효율도 좋습니다.

다만 발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민거리입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강한 충격을 받거나 고온에 노출되면 액체인 전해질과의 화학반응으로 불이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행기에서 리튬이온 보조배터리를 위탁수하물로 부칠 수 없는 것도 이런 점을 우려해서입니다.
포터블 에너지의 핵심 기술, 에너지 밀도
포터블 에너지의 핵심 기술은 ‘에너지 밀도’입니다. 에너지 밀도는 배터리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지표로, 얼마나 가벼우면서 작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에너지 밀도가 높을수록 동일한 무게나 부피로 더 많은 전기를 저장할 수 있어 전기차 주행거리, 스마트폰 사용 시간 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최근에는 더 멀리, 더 오래가기 위한 산업계의 기술 경쟁이 치열합니다. 리튬이온의 단점인 화재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전고체 배터리Solid-state Battery부터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까지 포터블 에너지를 담는 ‘그릇’의 혁신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이 오가는 통로인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로 만든 2차전지입니다. 이 때문에 발화 가능성이 낮아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고, 에너지 밀도 또한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이미 일부 기업에서 시험 생산 단계에 돌입했습니다.

리튬이온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 또한 에너지 밀도가 높습니다. 삼원계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재로 총 세 가지 원소, 즉 니켈·망간·코발트NMC 또는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을 사용하는 배터리를 말합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양극 소재로 사용되는 리튬은 단독으로 사용하기엔 불안정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금속원소들과 결합한 형태인 ‘리튬 금속 산화물’로 존재합니다. 양극재로 주로 쓰이는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기본으로 니켈과 다른 원소가 더해지는 방식입니다. 니켈은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에, 코발트와 망간은 안전성에, 알루미늄은 에너지 출력에 관여합니다. 양극재를 어떤 원소로 조합하느냐에 따라 배터리의 성능이 달라집니다.

한편 포터블 파워스테이션이나 보급형 전기차에 많이 쓰이는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왜 휴대용 에너지 저장 장치인 대용량 포터블 파워스테이션에 많이 쓰이는 걸까요. 리튬 인산철 배터리는 리튬이온보다 구조가 매우 안정적이라, 강한 충격에도 화재나 폭발 위험이 현저히 적고 수명이 깁니다. 또 코발트·니켈 등 비싼 원료 대신 흔한 철을 사용해 제조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너지가 자유 되는 세상
이제 우리는 에너지를 소유하는 시대를 넘어, 에너지를 휴대하고 향유하는 진정한 모바일 문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포터블 에너지 시대는 인류에게 장소로부터의 자유를 선사했습니다. 과거 불Fire의 발견이 인류를 추위로부터 구원했다면, 휴대 가능한 전기에너지의 완성은 인류를 고정된 인프라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물론 안전성 확보와 폐기물 처리, 에너지 효율 증대라는 과제가 남아 있지만, 기술은 늘 그래왔듯 곧 정답을 찾아낼 것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에너지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하며, 우리가 어디로 가든 항상 우리 곁에서 빛을 발할 것입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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