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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제조를 향한
AI 기술의 세 축
이종석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자율 제조’의 시대가 왔다. 그 중심에는 공간의 맥락을 이해하는 ‘피지컬 AI’, 현장의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파운데이션 모델’,
그리고 안전을 책임지는 ‘고신뢰성’ 기술이 자리한다. 대한민국 제조업이 진정한 지능형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기술적 과제와 미래 전략을 짚어본다.

2026년 3월 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스마트공장· 자동화산업전AW 2026’ 로보티즈 부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시연을 하고 있다.
피지컬 AI,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그리고 제조 AI의 필수 조건인 고신뢰성
인공지능은 이제 실제 공장을 움직이는 기술로도 진화하고 있다. 제조 현장에는 로봇, 설비, 센서, 물류 장비, 작업자, 공정 데이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자율 제조란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분리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능형 시스템처럼 연결되어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며 실행하는 제조 방식을 의미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기술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현실 세계에서 직접 움직이고 작동하는 자율 제조를 위한 피지컬 AI, 둘째는 제조 현장의 데이터를 폭넓게 학습해 다양한 공정 문제에 활용되는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셋째는 제조 현장의 불완전한 데이터와 복잡한 물리 조건 속에서도 안전하고 믿을 수 있게 작동하는 제조 AI의 필수 조건, 고신뢰성이다.
1 자율 제조를 위한 피지컬 AI
피지컬 AI는 인공지능이 공간과 시간의 맥락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로봇이나 공장 자동화 장비 같은 물리적 장치가 사람의 지시 없이도 작업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기존의 제조 AI가 품질검사, 설비 모니터링, 이상 탐지처럼 특정 기능을 보조하는 데 머물렀다면, 피지컬 AI는 공장 전체를 하나의 지능형 시스템으로 바라본다. 즉 개별 로봇을 똑똑하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여러 로봇과 설비가 서로 협력하면서 전체 생산 목표를 달성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일각에서는 피지컬 AI를 “시공간 개념을 이해하고 물리적 장치들이 사람의 지시 없이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최신 인공지능 기술”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방향은 최근 카이스트가 구축한 피지컬 AI 테스트베드 카이로스 KAIROS, KAIST AI Robot Orchestration Systems 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었다. 카이로스는 이기종 로봇, 센서, 설비, 디지털 트윈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제어하는 피지컬 AI 기반 무인공장 플랫폼이다. 물류 로봇 AMR, OHT, 3D 셔틀, 휴머노이드 로봇, 협동 로봇, 산업용 센서, PC 제어기, 무선 충전 시스템, 디지털트윈, 시뮬레이션, AI 기반 통합 관제와 안전관리 시스템이 하나의 운영체계 안에서 연결되었다. 공장 안의 장비들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AI 에이전트 기반 단일 운영체계 위에서 하나의 공장처럼 움직이도록 만든 것이다.

피지컬 AI가 중요한 이유는 제조 현장이 단순한 반복 작업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공장에서는 주문 변화, 장비 고장, 로봇 간 충돌 위험, 물류 지연, 작업 순서 변경 등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사람은 이런 상황을 보고 즉시 판단하지만, 기존 자동화 시스템은 미리 정해진 규칙 밖의 상황에 취약했다. 피지컬 AI는 디지털트윈 기반 가상공장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먼저 실험하고, 강화 학습을 통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행동전략을 학습한 뒤, 이를 실제 공장에 전이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한계를 줄인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SDF, Software Defined Factory이다. 기존 공장은 설비가 바뀌면 제어시스템과 운영시스템을 다시 맞춰야 했다. 반면 SDF는 공장을 거대한 앱처럼 바라본다. 하드웨어가 중심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공장의 구조와 운영 방식을 정의한다. 다양한 로봇과 설비가 공통 플랫폼 위에서 움직이면, 새로운 장비를 추가하거나 공정 흐름을 바꾸는 일도 훨씬 유연해진다.
카이스트가 구축한 피지컬 AI 테스트베드 카이로스KAIROS. 로봇들의 정밀한 협동은
화면 속 데이터를 물리적 현실 세계에서 실행하는 ‘피지컬 AI’의 기술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앞으로 피지컬 AI는 단순한 무인화 기술을 넘어, 공장 운영체계 자체를 바꾸는 기술로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로봇 간 협업, 실시간 안전 제어, 디지털트윈의 정확도 향상, 사람과 AI의 협업 방식, 그리고 서로 다른 제조기업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표준 플랫폼 기술이 지속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2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자율 제조가 공장을 움직이는 피지컬 AI를 필요로 한다면, 그 공장이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제조 현장의 지식을 폭넓게 이해하는 AI가 필요하다. 이것이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MFM, Manufacturing Foundation Model 이다. 일반적으로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량의 데이터로 사전 학습되어 다양한 작업에 적용할 수 있는 AI 모델을 의미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 일반적인 텍스트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학습했다면,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은 특히 설비 데이터, 센서 시계열 데이터, 공정 조건, 품질검사 이미지, 작업 이력, 장비 상태 정보 등 제조 현장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한다.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의 핵심은 특정 공정 하나만을 위한 맞춤형 AI가 아니라, 다양한 공정과 설비에 적용 가능한 공통 지식 기반을 만드는 데 있다. 지금까지 제조 AI는 공장마다, 설비마다, 제품마다 따로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방식은 초기 정확도는 높일 수 있지만, 현장이 바뀌면 다시 데이터를 모으고 모델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은 대규모 제조 데이터를 사전 학습해 제조 도메인 지식을 내재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지보전, 품질검사, 공정 최적화, 생산계획, 이상 탐지 등 다양한 문제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목적으로 국내에서도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의 목적은 제조 AI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있다. 어떤 기업은 자체 데이터와 인력을 바탕으로 AI 모델을 만들 수 있지만, 다른 기업은 데이터 수집, 모델 개발, 검증, 운영까지 모두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이 구축된다면, 기업은 처음부터 모델을 개발하지 않고도 이미 학습된 제조 지식을 활용해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이 향후 실제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제조 데이터의 표준화, 보안과 지식재산권 보호, 업종별 벤치마크 구축, 현장 적응형 미세조정 기술, 그리고 모델이 내린 판단을 작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기술 등이 함께 발전할 필요가 있다.
공정 지능화를 위한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특정 작업에 국한된 기존 AI의 한계를 넘어, 방대한 제조 데이터를 사전 학습한 모델이 자율 제조를 위한 범용적 해결책이 될 수 있다.
3 제조 AI의 필수 조건, 고신뢰성
제조 AI는 오작동 시 중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물리법칙과 공정 상식을 학습해 안전성과 일관성을 확보하는 ‘고신뢰성’ 기술이 필수다.
피지컬 AI와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이 자율 제조의 큰 기술 축이라면, 그 아래에는 이들을 실제 현장에서 믿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고신뢰성이다. 제조 AI는 일반적인 인공지능 서비스와 달리 현실 세계의 설비·로봇·공정과 직접 연결된다. 따라서 단 한 번의 오작동도 단순한 오류에 그치지 않고 장비 손상, 생산 중단, 공장 재해, 나아가 작업자의 안전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제조 현장에서 사용되는 AI는 좋은 성능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위험한 판단이나 예기치 못한 행동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제조 현장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완전할 수 없다. 데이터는 고온·고압·진동·먼지·화학물질 등 다양한 극한 환경에서 수집되며, 수작업 기록에 의존하기도 한다. 센서의 정밀도와 정확도에는 한계가 있고, 데이터에 노이즈가 섞이거나 일부 중요한 값이 측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조건에서 수집된 데이터로 학습한 AI가 항상 올바른 판단을 내린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제조 AI는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것만으로는 만들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방향은 제조공정에 이미 존재하는 물리 지식, 운전 상식, 그리고 오랜 기간 축적해온 공학적·과학적 원리를 AI 학습에 함께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넓은 의미에서는 귀납적 편향Inductive Bias 학습이라고 할 수 있으며, 물리법칙이 학습 과정에 포함되는 물리 정보 신경망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 같은 기술도 이러한 흐름에 속한다. 예를 들어 어떤 제어변수를 높이면 온도가 증가해야 한다거나, 장비 사용량이 늘수록 유지보수 비용이 더 빠르게 증가해야 한다는 관계가 있다.
이러한 기본 관계가 지켜지지 않으면, 온도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AI가 오히려 해당 제어변수를 낮추는 식의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제조 AI에 물리 지식과 공정 상식을 반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치 실제 현장에 투입될 정예 인력을 엄격하게 훈련하듯, 제조 AI 역시 안전성·일관성·해석 가능성·현장 적응성을 갖춘 형태로 학습되어야 한다.

앞으로 고신뢰 제조 AI는 더 빠른 현장 적응, 불확실성 정량화, 결측 데이터 추정, 노이즈에 강한 학습, 온라인 업데이트, 안전성 검증, 설명 가능성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피지컬 AI와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도 실제 제조 현장에 안정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 피지컬 AI가 공장을 움직이고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이 공장의 지식을 학습한다면, 고신뢰성은 이 모든 기술이 현실의 공장 안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마지막 관문이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율 제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깊은 기반 기술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종석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의 자율 제조 시스템 분야를 이끄는 전문가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피지컬 AI’ 및 ‘제조 파운데이션 모델’ 연구에 주력하며,
대한민국 제조업의 지능화와 고신뢰성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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