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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관세 전쟁에 대응하는 일본과 EU
김양팽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일본과 EU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불확실한 정책에 대응하는 수단과 방법에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에 이견을 표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관세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한편,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 지급까지 검토하고 있다.
반면, EU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보복관세로 대응하며, 미국이 관세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지난 트럼프 1기를 경험한 이후 철저하게 준비한 대응 방안인데 방향성이 크게 다르다.

일본은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
일본의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
일본은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후 곧바로 당선인과의 조기 정상회담을 희망했다. 이는 트럼프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대선에서 승리한 트럼프 당선인을 외국 정상 중 처음으로 만났고 이를 계기로 개인적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 회담은 거절했지만, 취임 이후 미국에서 요청하는 형식으로 아시아 정상 중에서 처음으로 일본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미·일 정상회담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보다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했던 관세 폭탄을 피하는 것이었다. 회담 결과 외교·안보 분야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한·미·일 협력 등이 재확인되었고 경제 분야에서는 일본이 선제적으로 대미 투자 확대를 발표했다. 회담은 양 정상이 서로를 칭찬하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되었고 일본이 우려한 관세, 방위비 등 경제적 부담을 가져올 만한 발언은 제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정부와 언론 등은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전 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일본도 24%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시바 총리는 4월 4일 중의원 내각회의에 출석해 이를 ‘국난’이라고 표현했으며, “정부로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관세 협상을 하기 위해 미국 방문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일본의 움직임을 보면,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이란 미국에 고강도의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난을 당한 일본의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전부터 이미 포착되었다. 지난 2월 2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와 함께 ‘미국 관세 조치 등에 따른 일본 기업 상담창구’를 JETRO에 개설했다. 또한 4월 2일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자 곧바로 4월 4일 JETRO에 ‘미국 관세 대책본부’를 설치한 후 일본 기업의 피해 등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상담 등을 통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4월 10일 일본 언론은 “정부·여당이 최근 물가 상승과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조치에 따른 경제 대책의 하나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을 지급하기 위한 조정에 들어갔다”라고 보도했다. 당정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소득 제한 없이 모든 국민에게 1인당 5만 엔을 지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원금을 1인당 10만 엔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신속한 대응이 바로 이시바 총리가 언급한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대응’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첨단 과학기술 공동개발 적극 추진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 속에서 반도체산업의 부활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해 미국과 첨단 과학기술 개발 협력을 추진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관민 공동 투자로 설립한 라피더스Rapidus가 회로 선폭 2nm 상당의 최첨단 시스템반도체 양산을 위해 IBM과 ‘2nm 설계 기술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IBM은 2023년 5월, 도쿄대학, 시카고대학과 함께 양자를 중심으로 한 슈퍼컴퓨터 개발에 향후 10년간 1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구글 또한 비슷한 시기에 이 두 대학과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투자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AI 인프라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일본의 소프트뱅크가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 미·일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산업기반을 강화하고, AI·양자컴퓨팅·최첨단 반도체와 같은 중요한 기술개발에 있어 세계를 선도하기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따라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첨단 과학기술 공동개발은 계속되겠지만, 관세 문제에 대응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를 보면 일본이 주도권을 가져오거나 자립화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U
보복과 협상 사이 고민하는 EU
지난 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중국에 이어 유럽연합EU에도 ‘관세 전쟁’을 선포했다. 이는 캐나다와 멕시코에 관세 25%를 부과하고 중국에 추가 관세 10%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다음 날이었다. EU 집행위원회는 곧바로 대변인 성명을 통해 “EU 상품에 부당하거나 자의적인 관세를 부과하는 모든 무역 파트너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EU와 미국의 무역 및 투자 규모는 세계 최대로, (관세 조치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라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유사시 대응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했으며, “EU는 강력한 경제권으로 자체적인 대응 옵션이 있다”라고도 했다. 프랑스의 페라치 산업부 장관도 EU 집행위원회에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는 등 EU는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지만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2024년 2월, EU 집행위원회는 11월에 있을 미 대선의 영향에 대한 평가 작업을 시작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EU를 겨냥한 보복관세 등의 조치가 있을 것으로 이미 예상했다. 트럼프 1기 재임 기간인 2018년 EU의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에 EU가 보복 조치를 단행함에 따라 발생한 관세 전쟁 갈등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EU의 예상보다 더 큰 규모의 관세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난 4월 2일 트럼프 대통령은 EU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기본(보편)관세 10%를 부과하고 한국과 EU를 비롯한 57개 국가에 10%보다 높은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EU에 부과된 상호관세는 20%로 다른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보다 낮았지만, EU는 즉각 미국산 제품에 최대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지난달부터 유럽산 철강(25%), 알루미늄(10%), 자동차(25%)에 고율 관세를 적용한 데 대한 대응이다. 한국과 일본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대부분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보복보다는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율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EU는 캐나다, 중국 등과 마찬가지로 보복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4월 9일,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의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하자 EU도 같은 기간 동안 이 조치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 기간에 “미국에 협상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협상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보복 조치가 발효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아시아 정상 중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왼쪽)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미국 관세 부과에 대해 EU가 하나로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단단해진 EU 결속과 중국과의 관계 전환
지난 2월 초 트럼프 대통령의 EU에 대한 상호관세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자, 독일 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인 힐데가르트 뮐러는 “EU는 단결된 대응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EU와 중국은 오는 7월 정상회담을 열고 미국 ‘관세 폭탄’ 대응을 논의할 예정이다. EU와 중국은 지난해까지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과 공급 과잉 문제로 무역 갈등을 빚고 있었으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부과 여파로 EU와 중국 시장이 모두 위협받게 되자 협력 관계로 서둘러 전환한 것이다. 반도체 공급망을 보호하고 AI, 양자컴퓨팅 등 첨단산업 협력을 위해 2021년 설립된 EU와 미국의 무역기술위원회EU-US Trade and Technology Council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주 일본 한국대사관 경제과 전문조사역을 역임했으며, 현재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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