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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술사업화 전략은 민관학民官學 모델
정유신 서강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원장

중국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는 데 집중하던 ‘기술 수입국’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I부터 드론, 이커머스에 이르기까지 자국 기술과 기업으로 세계 시장을 이끄는 기술 강국으로 거듭났다.
그 중심에는 기업, 정부, 대학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민관학(民官學)’ 모델이 있다. 중국의 기술사업화는 어떻게 가능했고, 우리는 그 전략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중국은 2010년 이후 기술 성장과 함께 독자적인 사업 모델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인터넷 서비스 업체 텐센트 사옥의 모습.
중국은 2010년대 중반만 해도 해외 기술을 배우고 도입하기 위해 시장의 일부를 주고 기술을 얻는 정책以市场换技术을 활용했다. 특히 외국 기업과의 합작사JV 설립으로 외국 기업은 시장에서 이익을 얻는 대신, 중국은 합작사에서 근무하는 중국인들을 통해 빠르게 기술을 습득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중국 기술도 급성장해서 중국의 독자적인 사업 모델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소위 민관학民官學 모델이 그것. 민관학 모델이란 민간(기업), 관(정부), 학계(대학·연구 기관)가 협력해 혁신과 기술개발, 산업 발전을 촉진하는 협력 방식의 모델을 말한다. 기술사업화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혁신 클러스터와 첨단 산업단지 등 집적지를 활용하고, 또 각 주체가 자원을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해서 기술혁신과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특징을 갖는다.
중국 기술사업화의 3대 집적지
기술사업화의 집적지로는 어떤 곳들이 있나. 전문가들은 베이징의 중관촌, 선전, 항저우를 3대 집적지라고 한다. 우선 중관촌은 연구 중심의 혁신 허브다. ‘3과학성 1첨단구역’ 전략을 통해 기초과학부터 상용화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며, 2035년까지 ICT와 바이오 등 6대 분야의 거점을 구축한다. 베이징 경제개발구는 집적회로, 바이오 기술, 차세대 ICT와 스마트 제조에, 먼터우거우구는 인공지능 혁신에 집중할 계획이다. 선전은 하드웨어의 메카로 불릴 만큼 제조혁신의 생태계 구축에 성공했다. 드론, 반도체, 자동차산업이 대표적이다. 반면 항저우는 선전과는 차별적으로 디지털과 소프트웨어의 메카를 지향한다. AI와 로봇 중심의 2세대 기술을 주도하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 중관촌 국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중관촌 포럼에서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의 모습.
대규모 투자와 비용 혁신의 결합, 중국의 AI
이제 민관학 모델의 성공적인 산업과 기업의 예를 살펴보자. 누가 뭐래도 대표 사례는 AI다. 중국의 AI 모델은 대규모 투자와 비용 혁신의 결합으로 요약된다. 민간 부문에선 중국의 양대 빅테크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앞장서고 있다. 알리바바는 2024~2027년간 530억 달러를 AI와 클라우드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과거 모든 AI 투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텐센트 또한 2024년 AI 이니셔티브에 107억 달러를 투자하며 AI 클라우드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했다.

정부의 지원도 체계적이다. 신기술 기업HNTE에 대한 법인세 감면(25%에서 15%로 인하), 500만 위안 이하의 기술이전 수입 면세 등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연간 160억 달러 규모의 가이던스 펀드를 통해 공공과 민간 자본을 결합하고, 2024년 4월까지 117개의 생성형 AI 모델을 승인했다. 이는 성장을 지지하는 ‘선 허용 후 보안’ 규제 완화 정책의 결과다. 특히 AI의 핵심인 데이터 정책은 전 산업의 데이터를 끌어모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관심 대상이다. 예컨대 저장성浙江省의 경우 AI 산업의 ‘데이터 훈련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종 공장에 설치된 센서와 IoT 장비를 통해 온도·습도·진동·압력 등 수십억 건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는 알리바바 등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해 실시간 전송되어 딥러닝 기반의 모델 훈련에 활용된다. 이러한 지원 정책의 배경에는 AI를 소프트웨어 개발뿐 아니라 제조 하드웨어까지 확대, 고도화하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대학 및 연구 기관으로는 칭화대, 푸단대, 우한대와 즈위안智源연구원, 중커위엔中科院자동화연구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AI 논문 수는 2024년 기준 22만 건으로 미국(8만8000건)의 2.5배다. AI 연구자 수도 중국이 41만 명으로 미국 12만 명의 3배 이상이다. AI 특허도 전 세계 AI 특허의 70%로 압도적 1위다.

특히 AI 중에서도 최첨단인 생성형 AI의 민관학 모델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에코 시스템(생태계) 구축형이다. 자사 서비스와의 융합 관점에서 자사가 우위에 있는 분야에 우선적으로 에코 시스템을 형성하고 타 업계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범용 AI 플랫폼을 구축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검색엔진 대형사인 바이두가 다른 산업 및 기업과 에코 시스템을 공동개발한다든지, 알리바바가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참여하는 기업들과 에코 시스템을 공동 설립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 사례다. 둘째는 인프라 건설형으로, 베이징 즈위안인공지능연구원이 대표 사례다. 개발한 생성 AI 모델인 우다오悟道를 오픈소스화해 중소기업 개발을 지원할 방침이다. 미국의 對중국 고성능 칩 수출규제가 나오고 있어, 중국의 독자적 개발과 중국산 칩의 채용 비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

셋째, 특정 업계를 위한 AI 모델로 업계 특화형이며, 대형 플랫폼 AI 모델과의 차별화가 특징이다. 음성인식 AI의 첨단기업인 iFLYTEK, 중국 최초의 의료 AI 모델을 발표한 청두이윈커지成都醫雲科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환경과 인프라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챗GPT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딥시크DeepSeek의 R1 모델이나 후데샤오잉의 ‘마누스Manus’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딥시크와 후데샤오잉은 둘 다 창업한 지 3~5년밖에 되지 않은 벤처기업이다. 딥시크는 성능은 챗GPT 수준인데 비용은 60억 달러로 챗GPT의 15분의 1이고, 마누스는 세계 최초의 100% 자율적인 AI 에이전트여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딥시크의 경우 창업 3~4년 만에 기업가치가 300억 달러(약 43조 원)라고 한다.
중국의 최첨단 AI 민관학 협력 속에서 챗GPT와 어깨를 견줄 만한 모델들이 나올 수 있었다. 사진은 후데샤오잉의 마누스.
민관학 성공 모델, 이커머스 플랫폼과 드론
베이징 중관촌에서 시작된 바이트댄스는 딥시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민관학 성공 모델이다.
AI 외에 이커머스 플랫폼과 드론의 사례도 기술사업화의 성공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중국의 대표적 데카콘 기업(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인 바이트댄스를 살펴보자. 바이트댄스는 글로벌 소셜미디어 시장을 장악한 이커머스 분야의 대표 주자 틱톡의 모회사기도 하다. 베이징 중관촌에서 시작된 바이트댄스는 딥시크와 함께 중국의 대표적인 민관학 성공 모델이라는 게 업계 의견이다. 창립자 장이밍이 베이징대 인근에서 창업한 후 칭화대 및 베이징대와의 산학협력을 통해 AI 알고리즘 핵심 인재를 확보했고, 베이징시로부터 ‘중관촌 하이테크 기업’으로 지정되어 법인세 혜택(15%)을 받았다.

DJI(다장)은 기술사업화 모델의 성공 사례다. 홍콩과기대 기숙사에서 창업해 선전에서 본격 성장한 DJI는 중국의 지역별 특화 전략이 만든 성공 스토리다. 창립자 왕타오는 선전대학교 및 하얼빈공업대 선전캠퍼스와의 산학협력으로 핵심 인재를 확보했고, 선전시 정부로부터 ‘전략적 신흥산업 기업’으로 지정돼 R&D 비용 200%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다. 특히 선전의 화창베이 전자상가 생태계를 활용한 빠른 부품 조달과 시제품 제작 능력이 단숨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는 평가다. 전 세계 민간 드론 시장점유율이 무려 70%로 압도적이다.
이러한 중국의 기술사업화 모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첫째, 중국의 민관학 모델 같은 통합적 혁신 모델의 구축이 필요하다. 중국의 접근법을 벤치마킹해 민간-정부-학계를 연결하고, 산업 간 융합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부처 간 칸막이 폐지 등 혁신 조정 기구 설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혁신청’ 신설 등도 고려할 만하다.

둘째, 기술이전의 실질적 확산을 위해서는 성과 중심 지원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한 생존 지원에서 벗어나 생산성과 성과에 연동된 동기부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기술이전 성공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전략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셋째, 본격화되는 기술혁명과 환경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 규제 프레임워크의 전환이 시급하다. 현재의 사실상 ‘포지티브 규제’ 시스템을 ‘선 허용 후 보완’의 실질적 네거티브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넷째, 지역별 특화 전략 수립도 중요하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별 혁신 클러스터를 육성해야 한다. 여기에는 중국의 3대 권역(징진지, 장강삼각주,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 모델을 참고할 수 있다.

다섯째, 국제 협력 네트워크 강화가 필요하다. 중국과 달리 한국은 민주주의 기술 동맹을 활용해 미국·일본 등과 반도체 및 AI 협력을 심화하고, 글로벌 기술 표준 설정을 주도해야 한다. 특히 중국의 미래산업 발전 상황과 표준 제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첨단산업 국가표준화 전략 수립에서 우리가 선점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별해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유신 서강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원장
전 금융위 산하 핀테크지원센터 이사장, 전 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전 중국자본시장연구회 회장, 전 SC증권 대표이사, 전 신한금융투자 부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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