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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답게 사는 도시를 만드는 일
정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연구본부 스마트도시센터 센터장
김선녀 사진 김기남

한국형 스마트시티 연구를 이끄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도시센터 정승현 박사는 도시를 ‘살아 있는 유기체’로 이해하는 인문학적 접근과 첨단기술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왕의 학문’ 도시공학에 호기심을 느낀 고등학생에서 출발해 지금은 스마트시티를 설계하는 정승현 센터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도시에 대해 물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스마트시티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현재 맡고 있는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고등학교 때 학과 탐방을 갔는데 ‘도시공학은 제왕의 학문’이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내 계획에 따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바뀐다는 사실이 놀라웠죠. 학사 때부터 도시공학을 공부했고, 도시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스마트시티에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기술과 서비스를 적용할 때 도시계획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시티 연구를 맡게 되었고, 현재는 건설기술연구원에서 스마트시티 분야를 총괄하는 스마트도시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데이터 기반 도시설계라는 분야가 생소합니다. ‘도시를 데이터로 설계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도시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일은 사람의 활동을 제어하고 조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몇 명 정도 살게 할 것인지, 그만큼의 인구를 위해 어떤 시설이 필요한지, 직장과 주거지의 이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다양한 도시 활동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물론 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하죠.
도시계획 초기 단계에서 빅데이터는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나요?
도시 활동에 대한 자료는 빅데이터로 많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신사에서는 통신기지국을 기반으로 주변의 스마트폰 단말기 접속 대수를 활용해 유동 인구를 예측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는 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파악하고 또 예측할 수 있다면 적정한 토지 이용 규모와 시설 계획이 가능합니다. 실례로 최근 상업시설의 미분양 사례를 들 수 있어요. 정확한 예측을 통해 적정 규모의 상업시설이 공급될 수 있다면 이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죠.
최근 도시 데이터를 확보하는 주요 경로와 활용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과거보다 도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훨씬 다양해졌습니다. 정부는 데이터 포털을 통해 공공데이터를 개방하고 있으며, 서울시를 비롯한 주요 지자체는 방대한 도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고 새로운 데이터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통신사나 카드사 등 민간기업들도 각자의 업무 특성에 맞는 데이터를 생산해 판매하거나 영업활동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디지털트윈이나 AI 모델링 같은 기술이 도시설계 과정에서 어떻게 쓰이고, 실제로 문제해결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알려주세요.
디지털트윈은 실제와 같은 환경을 모사하고 이를 연동하는 쌍둥이 현실을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 도시가 디지털트윈으로 구축된다면 도시 관리와 운영을 위한 의사결정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실험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는 개개인의 복잡한 활동 알고리즘에 기반한 행태를 모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AI 모델링은 출퇴근 패턴,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 집중, 대기질과 도시 열섬 같은 환경 이슈 분석 등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기술적·조직적 도전 과제는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I 자체가 도전입니다. 스마트시티는 도시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해결 방안으로 이전과는 차별화되는 AI 같은 첨단기술이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문제는 기술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입니다. 도시에 모이는 데이터에 집중하는 사이에 AI 기술 발전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학습 중심에서 거대 언어 모델의 활용으로 전환되었고, 에이전틱 AI를 거쳐 이제는 피지컬 AI로까지 확대되고 있죠. 그럴 때마다 연구 중인 과제의 내용을 새롭게 구성하고 바꾸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도시계획의 변화는 크지 않았거든요. 그 긴 시간보다 근래 몇 년의 변화가 훨씬 더 드라마틱합니다.
기술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스마트시티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추구해온 도시의 이상향과 같습니다. 인류가 도시를 만든 이유는 생산성을 높이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등,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을 더 나은 형태로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스마트시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최종 목표는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사람 중심의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기술이 목적이 되고 도시가 그에 종속되는 순간, 본래의 의미가 전도되는 것입니다.
“기술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최종 목표는 도시문제를 해결하고 사람 중심의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가는 데 있습니다.”
한국형 스마트시티, 즉 ‘K-스마트시티’의 한국성(K)은 어떤 철학이나 기술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속도가 아닐까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보듯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것처럼, K-스마트시티도 한국의 빠른 도시성장 스토리에 우리가 겪은 문제와 해결 방안이 집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현재 인도네시아, 베트남같이 우리와 비슷한 문화를 배경으로 성장과정을 겪고 있는 국가 및 도시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형 스마트시티를 설계할 때, 기술과 속도 중심의 접근과 함께 도시를 유기체처럼 이해하는 인문학적 사고를 병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인문학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도시는 기계가 아닌 유기체와 같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도시가 작동하죠. 이러한 생명체를 다룰 때 단순한 기계적인 사고는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라마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가치와 철학도 조금씩 다릅니다. 미국은 교통망을 중시하고, 유럽은 탄소중립을 최우선으로 하죠. 도시문제 해결은 어떤 것을 보는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마트시티 분야를 꿈꾸는 청년이나 연구 지망생들에게 필요한 역량이나 추천하고 싶은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도시를 이해하려면 역사와 인문학적 사고가 매우 중요합니다. 도시의 역사는 성공과 실패의 기록으로 가득하며, 여기서 배울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처럼, 과거의 도시설계와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면 현재의 도시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결국 스마트시티를 설계하는 일은 철학적 사고와 연결되기 때문에, 역사와 인문학 공부 경험이 큰 자산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센터장님이 그리는 10년 후 한국의 스마트시티는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꿈꾸는 스마트시티는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도시입니다. 걸어서 출근하고, 자전거 타고 이동할 수 있으며, 일과 생활이 가까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도시죠. 사람들 간의 잦은 만남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거리 곳곳에서 관찰과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인 제이콥스라는 도시 운동가가 말한 것처럼 창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이웃이 지켜보고, 사람들이 서로를 살피며 참여하는 공동체적 분위기가 살아 있는 도시가 되는 거죠. 상업과 여가,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인 공간이 만들어지고, 지방분권이 실현되어 다양한 지역에서 이런 도시 모델이 가능해지길 바랍니다.
정승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연구본부 스마트도시센터 센터장
정승현 센터장은 누구
정승현 박사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스마트도시센터에서 도시와 환경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탄소중립도시, 인공지능을 활용한 도시계획, 그리고 이를 담는 그릇인 스마트도시의 정책과 기술이다. 탄소중립도시계획연구단장을 맡아 국내 최초로 전국 단위 탄소공간지도를 구축하여 지자체의 탄소중립 전략 수립을 지원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서 도시융합공학 전공 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연구와 정책을 연결하는 실용적 도시계획을 지향하며, 미국·독일의 연구기관과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탄소중립 도시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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