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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로 증명한 스타트업 국가의 저력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이스라엘은 결코 유리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방화벽을 혁신한 ‘체크포인트’를 비롯해 수많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성공은 이 나라가 어떻게 ‘위협을 기회로’ 바꾸었는지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이슬람을 믿는 주변 중동 아랍 국가들 사이에 섬처럼 둘러싸인 유일한 유대인 나라다. 적대적인 주변국에 맞서 독립을 유지해야 했기에 이스라엘은 국방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국방 기술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은 방화벽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보안기술이다. 방화벽은 네트워크를 보호하기 위한 보안 시스템으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악성 트래픽을 차단하고 중요한 정보가 네트워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의 체크포인트Check Point Software Technologies는 세계적인 방화벽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방화벽의 판도를 바꿔놓은 기업
체크포인트 파이어월-1의 상용화는 강력한 기술혁신을 스타트업의 비전에서
전 세계적 제품으로 전환한 획기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1993년 이스라엘에서 설립된 사이버 보안 기업 체크포인트는 단 1년 만에 ‘파이어월-1FireWall-1’을 출시하며 세계 네트워크 보안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이 제품은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 사이버 보안 상용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체크포인트는 뛰어난 기술력에 시장 중심의 전략과 실행력을 결합해, 스타트업이 어떻게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체크포인트의 핵심 기술은 공동 창립자인 길 슈웨드Gil Shwed가 개발한 ‘상태 저장 검사Stateful Inspection’였다. 이전까지의 방화벽은 각 데이터 패킷을 개별적으로 검사하는 방식으로, 연결의 흐름을 인식하지 못해 정교한 공격에 취약했다. 반면 슈웨드는 네트워크의 맥락과 흐름을 추적하는 테이블 기반의 접근을 도입해 한 차원 높은 보안성을 확보했다. 이는 당시 보안 위협의 진화 속도에 맞춘 적절한 기술적 응답이자, 시장이 필요로 하던 ‘실질적 해결책’이었다.
성공포인트① 빠른 상용화와 사용자 중심 설계
체크포인트는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세 공동 창업자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자체 하드웨어 개발 대신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그 결과 탄생한 파이어월-1은 뛰어난 보안 기능은 물론, 직관적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탑재해 사용성과 편의성까지 갖춘 제품으로 완성됐다. 1994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넷월드 인터롭NetWorld+Interop 박람회에서 체크포인트는 이 제품을 최초로 선보였고, ‘Best of Show’ 수상을 통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빠르게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구현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반응을 끌어낸 이들의 행보는 스타트업 특유의 민첩성과 실행력을 잘 보여준다.
성공포인트② 유통 파트너 전략
초기 주목도를 확보한 체크포인트는 이후 빠르게 글로벌 시장 진출을 준비했다. 그 핵심에는 강력한 유통 파트너십 전략이 있었다. 1994년 당시 서버 시장의 강자였던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OEM 계약을 체결했고, 1995년에는 휴렛패커드HP와 유통 계약을 맺었다. 스타트업이 자체적으로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하기보다, 기존 대기업의 탄탄한 유통 채널을 활용하는 전략은 체크포인트의 시장 확장을 가속화시켰다. 결과적으로 제품 출시 2년 만인 1996년에는 방화벽 시장점유율 40%를 기록하고 나스닥 상장IPO에도 성공했다.
성공포인트③ 사람, 조직, 생태계
이 회사를 창립한 세 사람 모두 이스라엘군의 엘리트 정보기술 부대인 ‘8200부대’ 출신으로, 고도화된 사이버 보안기술과 실전 경험, 그리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이스라엘 정부의 적극적인 기술 창업 지원도 중요한 배경이다. 정부 기구인 혁신청은 R&D 펀딩과 인큐베이터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개발 초기 단계의 위험을 분산하고, 산학연계를 촉진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특히 히브리대학교의 ‘이숨’, 와이즈만연구소의 ‘예다’와 같은 대학 내 기술이전회사TTO는 상용화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풍부한 벤처캐피털VC과 창업 초기부터 글로벌을 지향하는 ‘본 글로벌 전략’,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스라엘 특유의 ‘후츠파Chutzpah’ 문화까지 맞물리며, 기술사업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이 형성됐다.

체크포인트는 기술과 시장의 필요를 정확히 연결하고, 전략적 실행을 통해 그 가치를 현실화했다. 기술 중심 스타트업이 빠르게 MVP를 개발하고, 명확한 수요에 맞춘 제품을 적시에 출시하며, 기존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는 일련의 과정은 기술 상용화의 핵심이다. 이스라엘과 유사한 안보·경제적 조건에 놓인 우리에게도 체크포인트의 전략은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시장에 연결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전략과 실행력이다.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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