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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엔진에 AI 지능을 더하다 :
CES 2026, 전 지구적 ‘AI 모멘트’를
주도하는 한국의 설계도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중앙대학교 겸임교수

AI가 화면 속을 벗어나 현실의 몸을 입기 시작했다. CES 2026의 핵심 화두인 ‘피지컬 AI’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대한민국은 단순 제조 강국을 넘어 글로벌 기술 표준을 주도하는 ‘규범 설계자Rule Setter’로 부상했다.
제조업이라는 탄탄한 엔진에 AI라는 지능을 탑재해 전 지구적 ‘AI 모멘트’를 이끌고 있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 전략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AI의 무대는 화면 속이 아닌 진짜 현실이었다. 2026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CES의 화두는 ‘지능의 물질화Matreialization of Intelligence’로 표현 가능하다. 지난 수년간 인공지능AI이 거대 언어 모델LLM을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 혁명에 집중했다면, CES 2026은 그 지능이 가전·자동차·로봇이라는 물리적 실체에 완벽히 이식된 ‘피지컬 AIPhysical AI’의 원년이 될 것임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역대 최대 규모인 1000여 개 기업이 참여한 대한민국은 혁신상의 40% 이상을 석권했다. 한국이 단순한 하드웨어 제조 강국을 넘어 글로벌 디지털 생태계의 가치사슬을 관장하는 ‘규범 설계자Rule Setter’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생산성 역설’의 종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솔로는 1993년 그의 논문 ‘IT의 생산성 역설’에서 ‘컴퓨터 시대라는 점은 생산성 통계를 빼고 모든 분야에서 알 수 있다’는 표현으로, IT 분야의 급속한 발전에도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는 현상을 재치 있게 꼬집었다. IT 자본에 대한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노동 생산성 향상은 미미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번 CES에서 한국 기업들이 보여준 피지컬 AI 솔루션은 솔로의 역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 가전기업인 삼성과 LG전자가 보여준 차세대 제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가사 에이전트’의 실체를 보여주었다. 거주자들의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수면 환경을 최적화하거나, 식재료 유통기한에 맞춰 건강 레시피를 제안하고 직접 조리 기기를 제어한다. 이는 가계 내 가사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가계 소비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주거 서비스의 질까지 높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피지컬 AI의 주무대는 제조 현장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장에서 문제없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온디바이스 연산 능력은 필수다. SK하이닉스가 공개한 6세대 HBM4E와 차세대 CXL 솔루션은 전 세계 AI 인프라의 한계비용을 낮추는 핵심 동인이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이제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글로벌 AI 기업들이 자사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기술적 전제 조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수출구조를 범용 제품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전략적 자본재 중심으로 고도화해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CES 2026 삼성전자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식재료를 자동으로 인식하는
인공지능AI 비스포크 냉장고를 살펴보고 있다.
모빌리티 전환과 공간의 재편
피지컬 AI가 가장 파괴적으로 적용된 분야는 단연 모빌리티였다. 모빌리티는 이제 단순한 이동의 도구가 아니라 경제활동이 일어나는 ‘제3의 공간’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비전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보틱스 기술을 결합해 물류와 이동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했다. 특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자율주행 트럭에서 내려 물품을 최종 목적지까지 배송하는 라스트 마일Last Mile 솔루션은 물류비용의 획기적 절감을 예고한다. 그 수준은 현대차 노조가 ‘단 한 대도 공장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을 만큼 완성도 높은 것이었다. 정책적 관점에서는 생산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에 의미 있는 보완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장 부문도 모빌리티 전환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현대모비스의 ‘홀로그래픽 윈드실드’와 투명 디스플레이 기술은 차량 내부를 사무실, 영화관, 휴식 공간으로 변화시킨다. 이동시간이 생산적 활동 시간으로 전환됨에 따라 도시 외곽의 거주 가치가 상승하고, 이는 도심 집중 현상을 완화하는 변화를 동반한다. 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모빌리티 전환을 중심으로 한 기술적 진보로 국토 균형발전과 교통혼잡 비용 감소라는 사회적 편익이 극대화되는 현실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CES 2026 현장에서 한 관람객이 LG의 ‘모빌리티 디스플레이 솔루션’을 촬영하고 있다. 이 기술은 자율주행 중 차량의 윈드실드를 실시간 주행 정보와 혼합, 현실M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창으로 변환시켜준다.
생태계의 역동성과 K-스타트업의 글로벌 스케일업
이번 CES의 진정한 주인공은 K-스타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의 후광을 넘어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과거 스타트업이 기존 오프라인 서비스를 모바일로 옮기는 ‘중개 플랫폼’ 중심이었다면, 현재의 K-스타트업은 인공지능이 물리적 세계와 결합하는 핵심 접점을 장악하는 ‘딥테크Deep Tech’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그 배경은 스타트업도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해진 인공지능 가격에 있다. 과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던 고난도 물리적 문제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딥퓨전에이아이’는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사물을 100% 식별 가능한 레이더 전용 AI 솔루션을 선보였다. 이는 자율주행이라는 피지컬 AI의 가장 큰 약점을 공략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네이션에이’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3D 캐릭터의 움직임을 단 몇 초 만에 구현했다. 이는 가상 세계의 논리가 실제 물리적 로봇의 움직임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비약적으로 단축한 성과로, 서비스 혁신을 넘어 전 세계 제조 및 모빌리티 기업들이 한국 스타트업의 솔루션 없이는 피지컬 AI 시스템을 완성할 수 없게 만드는 ‘기술적 독점력’을 창출하고 있다.
CES 2026에서 공개된 네이션에이의 차세대 AI 플랫폼 ‘뉴로이드 플레이메이커Neuroid Playmaker’.
자체 개발한 거대 액션 모델LAM을 통해 텍스트나 음성 프롬프트만으로
제작 가능한 수준의 3D 모션을 실시간으로 생성한다.
CES 2026 최고 혁신상을 수상한 딥퓨전에이아이의 4D 이미징 레이더 솔루션 ‘RAPA’.
기상 악화 상황에서도 사물을 100% 식별 가능한 레이더 전용 AI를 통해
자율주행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물리적 인식 한계를 극복했다.
AI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비즈니스 전략 자체가 달라진다. 특히 K-스타트업들은 창업 초기 단계부터 협소한 한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을 조준하는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AI 반도체 팹리스 스타트업들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직접 공급망 협상을 진행했다. 제조업 기반의 AI 전환이 글로벌 표준 전쟁으로 확산되면서, 독보적인 원천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 시장 전체의 아키텍처를 설계할 기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의 AI 모델을 글로벌 클라우드 환경에 최적화하면서도, 제조 현장에서 발생하는 특화된 데이터Vertical Data를 자산화하여 거대 플랫폼 기업들과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K-스타트업 약진의 이면에 국가의 혁신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성장은 우연이 아니라 AI 중심 전환을 준비한 시스템적 변화의 산물이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선순환을 이뤄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C-Lab이나 현대차그룹의 제로원 등 대기업의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은 대기업의 제조 인프라와 스타트업의 민첩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멘털 케어부터 양자컴퓨팅, 차세대 배터리 소재, 온디바이스 AI까지 딥테크 분야에서 대기업과 전략적 분업을 실증하며 글로벌 스케일업의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도구의 진화를 넘어 시스템 재탄생으로
CES 2024에서는 인공지능이 ‘저렴한 예측 기계’로서 모든 산업에 스며드는 도입 단계를 목격했다. 이후 CES 2025에서는 과거 전기가 공장 설계를 바꿨듯, AI가 로봇과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하드웨어 구조를 요구하는 응용 단계를 확인했다. 올해 CES 2026은 그 구조적 변화가 마침내 실물경제의 가치로 연결되는 AI 전환 단계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피지컬 AI의 가치 창출 방향이 디지털 전환 초기에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비트’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아톰(물리적 실체)’의 세계인 제조업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는 가치 창출의 근원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제조업은 이제 단순한 전통 산업이 아니라, 무형의 AI 지능이 물리적 부가가치로 변환되는 가장 정밀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과 암묵지가 결합되는 플랫폼 산업으로 재정의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 측면에서도 급격한 상승 구간의 초입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기술 도입 초기 생산성이 정체되는 ‘역설’의 구간을 지나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고 공장을 최적화함으로써, 과거의 수동적 자동화를 넘어선 ‘자율적 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 이는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산업의 게임 법칙을 바꾸는 범용 기술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CES 2026이 남긴 질문은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설계자’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다. 핵심은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과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인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있다. 산업 측면에서는 대기업의 AI 전환 성과가 중소 제조 생태계로 전이될 수 있는 ‘지능형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피지컬 AI 도입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과 고도화된 컴퓨팅 인프라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를 방치할 경우 기술 자본을 소유한 소수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 ‘지능적 양극화’가 발생하며, 이는 전체 산업의 공급망 효율성을 저해해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은 암묵지를 디지털 자산화해야 한다. 기술의 목적은 인간의 대체가 아닌 ‘증강Augmentation’에 있다. 현장에서 축적된 암묵지가 AI와 결합될 때 독보적인 경쟁력이 완성된다. 아무리 훌륭한 AI 기술이 존재하더라도 오랜 기간 현장 근로자 한명 한명에게 체화된 암묵지 없이는 현장에서 피지컬 AI의 구현이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기반의 ‘예측’에는 능하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물리적 현장의 ‘직관’과 ‘윤리적 판단’에서는 한계를 갖는다. 단순히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는 방향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산업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고갈시켜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숙련공의 노하우(암묵지)를 AI의 정밀함과 결합하는 ‘인간 증강’ 모델은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한국 제조업만의 초격차를 만든다. 이는 노동을 비용이 아닌 ‘혁신의 파트너’로 재정의해 기술 전환기 속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이다.

CES는 우리에게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넘어 ‘AI를 중심으로 세상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를 물어왔다. 이 질문의 답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다. 제조업이라는 강력한 엔진에 피지컬 AI라는 지능을 결합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전 지구적 ‘AI 모멘트AI Moment’를 주도하며 새로운 산업문명의 표준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및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국토부 모빌리티 혁신위원과 국토교통규제혁신위원으로 규제 합리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KBS 1R <성기영의 경제쇼> ‘디지털 이코노미’ 고정 패널로 활동 중이다.
피지컬 AI 전환을 위한 산업 데이터 교환 및 거래 생태계, 로보택시 서비스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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