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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자율운항선박이 고장 난다면?
영화 <스피드 2>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자율운항선박의 보급을 결정적으로 막는 난제가 있다. 바로 해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문제다.
배는 인간이 만든 이동체 중 가장 큰 만큼 사고의 여파도 엄청나다. 약 30년 전의 고전 액션 영화를 통해 그 사실을 깨우쳐보자.

영화 포스터.
이번에 다룰 작품은 <스피드 2>(1997년작)다. 1994년 개봉된 <스피드>의 후속편이다. 하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게 대중문화계의 불문율이다. <스피드 2>도 전작의 엄청난 명성에 가려, 아니 그 명성 때문에 오히려 욕을 먹은 작품에 속한다. 사실 편견을 최대한 내려놓고 봐도 좀 재미없는 영화긴 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도 주목할 점은 있다. 바로 자율운항선박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전작의 히로인 애니 포터(샌드라 불럭 분)는 새로운 애인 알렉스 쇼(제이슨 패트릭 분)와 함께 크루즈 ‘시본 레전드’에 탑승해 바다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시본 레전드의 자율운항시스템 설계자 출신인 악당 존 가이거(윌렘 데포 분)는 자율운항시스템 개발 회사에서 해고당한 데 앙심을 품고, 배의 자율운항시스템을 해킹해 배가 유조선 ‘아인트호벤 라이언’호와 충돌하도록 하는데…. 과연 주인공들은 이 엄청난 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손해배상을 책임져야 할지도
물론 주인공들은 갖은 노력 끝에 배의 속도를 줄이고 항로를 변경, 아인트호벤 라이언과 충돌해 화재로 막대한 인명이 죽는 최악의 사태는 면한다. 하지만 시본 레전드는 대신 세인트 마틴 섬의 해안 마을을 덮친다. 수많은 건물과 선박, 차량이 1만3000톤급 시본 레전드에 치여 산산조각 났다.

현실에서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시본 레전드 소속 해운회사에는 그야말로 최악의 악몽이 될 것이다. 물론 가상의 사고이긴 하지만, 시본 레전드가 때려 부순 영화 속 재물의 피해액만 해도 족히 1억 달러(약 1500억 원)는 넘어 보인다. 누군가는 이 재산 피해를 책임져야 한다.
물론 배의 배수량을 기준으로 해난 사고의 배상책임 상한을 두는 ‘1976년 해사채권에 대한 책임제한협약’에 따라, 소속 해운회사 측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해운회사의 배상책임은 한화로 40억 원 정도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속 해운회사의 고의나 과실로 이러한 해킹이 발생했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 소속 해운회사는 무한 책임을 지고, 최악의 경우 파산할 수도 있다.
마을을 들이받은 ‘시본 레전드’. 실제라면 해당 해운회사에는 그야말로 대재난이다.
물론 이에 맞서 소속 해운회사가 범인 존 가이거를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이거는 이미 죽었다. 살아남았어도 가이거나 그의 가족이 그 막대한 배상책임을 감당할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낮다. 그렇다면 구상권의 행사 대상은 가이거를 고용한 자율운항시스템 제조사로 넘어갈 수 있다. 가이거가 시스템 설계 과정에서 백도어를 심어두었거나 해킹에 취약한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면, 이를 막지 못한 자율운항시스템 제조사가 가장 큰 민사적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마을을 들이받은 ‘시본 레전드’. 실제라면 해당 해운회사에는 그야말로 대재난이다.
제도적 준비 우선되어야
골치 아픈 법률 이야기를 다룬 이유는 이러한 제도적 문제가 자율운항선박 보급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배는 인간이 발명한 교통수단 중에 제일 크고 비싸고 무겁다. 또한 한 번에 가장 많은 인원과 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 때문에 운항 중 발생한 사고의 여파도 육해공 모든 교통수단 중 가장 크다.

문제는 인간이 통제하지 않는 자율운항선박의 경우, 이러한 사고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지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자율운항선박을 움직이는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 인간과 같은 법적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앞서도 말했듯이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인공지능 개발사가 책임을 질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 개발사는 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고액의 제조물 책임보험에 가입할 수밖에 없고, 이 비용은 인공지능 가격에 그대로 전가될 것이다.

법적인 부분 외에도 사람에 의한 정기적 유지보수가 필요한 복잡한 선박 시스템의 관리, 영화에서도 나타난 자율운항선박의 사이버 보안도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특히 자율운항선박은 모니터링 및 제어를 위해 지속적인 네트워크 연결이 필요하므로, 선박 제어 및 데이터가 사이버 공격에 그만큼 취약해질 수 있다. 다양한 공급업체의 다양한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복잡한 선박 설계로 인해 사이버 공격을 탐지하고 차단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승조원이 타지 않는 자율운항선박의 경우 사이버 공격을 받아도 이에 맞서 제어권을 되찾기조차 힘들 수 있다. 승조원을 태운다 해도, 승조원이 사이버 공격에 얼마나 잘 예방 및 대응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현행 국제 규정상 선박 승조원에 대한 사이버 보안 교육은 의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제도적 준비 없는 자율운항선박 도입은 <스피드 2> 속 재난을 현실로 만들지도 모른다!
인간이 통제하지 않는 자율운항선박에서 대형 해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법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모호한 책임 소재는 자율운항 상용화의 가장 큰 제도적 장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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