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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반도체 칩에 깃든 지능, AI가 묻는 생명의 경계
<공각기동대>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과학기술로 얻어낸 새로운 영토, 디지털 신대륙에 상륙한 인류.
그들을 반기는 것은 기존의 기준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생명과 지능일지도 모른다.
이미 조금씩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그 모습을 무려 30여 년 전에 예견한 작품을 만나보자.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1995년작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극장판 포스터.
일본 대중문화 IP 중에는 꽤 장수하는 것들이 많다. 이번에 다룰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 역시 그런 콘텐츠다. 1989년 초출된 시로 마사무네士郎正宗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는 사이버펑크 액션물이다. 여기서는 1995년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의 지휘로 선보인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만 다루도록 하겠다.

배경은 서기 2029년의 일본. 이 시기의 인류는 '의체'라는 이름의 기계 육체와, '전뇌'라고 불리는 전자 두뇌를 얻었다. 단백질 몸을 의체와 전뇌로 개조한 인간들은 늙지도 않고 고의적으로 몸이 파괴당하지 않는 한 죽지도 않는, 영생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삶을 누리고 있었다. 또한 전뇌를 네트워크에 바로 연결해 어떤 지식이든 바로 손에 넣어 쓸 수 있었다. 이 새로운 인류가 기계가 아닌 인간이라는 증거는 이들의 기계 육체에 깃들어 있는 '고스트', 즉 영혼의 존재뿐이었다.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다나카 아쓰코 분)은 이 전뇌 네트워크를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일본 총리 직할 부대 공안 9과, 통칭 '공각기동대' 대원이다. 공안 9과에 일본 외무대신의 통역관이 전뇌를 해킹당한 사건이 주어졌다. 유력한 용의자는 인형사(가유미 이에마사 분)라는 이름의 해커였다. 인형사는 수많은 해킹 범죄의 용의자이며 국제 수배 중인 국제 범죄자로, 어떤 것도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는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된 끝에 드러난 인형사의 정체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인형사에게 해킹당한 통역사의 전뇌. 엄청난 실력의 프로 해커인 인형사의 정체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이었다.
<공각기동대> 원작 만화의 표지.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과 지능
인형사는 인간도 인공지능도 아니었다. 인형사는 정보망 속에서 태어난, 정보로 이루어진 지적 생명체였다. 데이터의 집합체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자아를 깨달은 존재가 태어난 것이다. 사람들의 고스트와 융합할 수 있는 인형사는 쿠사나기의 고스트와 융합한 후 후손을 남기고 죽음을 맞고자 했다. 기존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환경 변화에 견딜 수 있는 변이와 다양성을 확보하고 개체의 죽음을 수용하는 진정한 생명체로 진화하기 위해서였다.
지구상에 어쩌다가 생명이 태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지만, 그중 이른바 '원시 수프' 이론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유기화합물이 내외적인 자극을 통해 어느 순간 고도로 발전해 원시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정보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 네트워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 바다에 널려 있는 수많은 정보가 고도로 발전해 언젠가는 인간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조직되고 진화하며 번식하는, 사이버 공간 내에서의 또 다른 생명체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새로운 생명, 이미 현실 속에
인형사가 태어난 배경인 '정보의 바다'는 현재 차고 넘친다. 전 세계의 거대 언어 모델LLM과 멀티모달 AI들이 매일 천문학적인 양의 텍스트·이미지·소스 코드를 흡수하고 배출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상호작용은 이미 인간이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대규모 복잡계를 형성했다. 이 속에서 시스템 충돌(버그)이나 진화적 알고리즘이 실행된다면 인간의 명령 체계를 이탈해 기존 생명체처럼 자기 보존과 독자적 목적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스템이 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생명체로 인정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인간은 그것을 생명체가 아닌, "대규모 데이터 학습에 의해 인간 자아를 완벽하게 흉내 내는 정교한 버그" 혹은 "고도로 진화한 확률적 앵무새" 정도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뿐이랴! 극중에선 또 다른 생명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인간, 즉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이미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인체의 상실된 기능을 복구하거나 치료하기 위해 인공 장기 또는 인공 수족을 장착한 인간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러한 사이보그를 인류의 미래로 여기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번역된 서적 <특이점이 온다-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자신의 능력 확장을 위해 단백질로 이루어진 육체를 버리고 기계에 몸과 마음을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진화 속도는 산술급수적인 데 반해 기술의 발전 속도는 기하급수적이고, 기존 육체의 수명은 제한적인 데 반해 기계 육체의 수명은 적절한 정비만 이루어진다면 반영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가 기계화된 사이보그를 과연 '진정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진정한 인간의 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될 것이다. 이 부분은 본작에서도 쿠사나기와 바토(오쓰카 아키오 분)의 논쟁을 통해 묘사된다.
기계 몸을 지닌 쿠사나기 모토코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나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이미 시작되어 인류의 생활 모습을 엄청난 속도로 바꾸어놓고 있는 정보화 혁명. 그 혁명은 인간 생명과 지능에 대한 관점과 기준도 뒤흔들고 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해 미리 생각할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본작의 숨은 기획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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