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의 진화를 넘어 시스템 재탄생으로
CES 2024에서는 인공지능이 ‘저렴한 예측 기계’로서 모든 산업에 스며드는 도입 단계를 목격했다. 이후 CES 2025에서는 과거 전기가 공장 설계를 바꿨듯, AI가 로봇과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하드웨어 구조를 요구하는 응용 단계를 확인했다. 올해 CES 2026은 그 구조적 변화가 마침내 실물경제의 가치로 연결되는 AI 전환 단계로 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피지컬 AI의 가치 창출 방향이 디지털 전환 초기에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비트’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아톰(물리적 실체)’의 세계인 제조업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는 가치 창출의 근원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제조업은 이제 단순한 전통 산업이 아니라, 무형의 AI 지능이 물리적 부가가치로 변환되는 가장 정밀한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술과 암묵지가 결합되는 플랫폼 산업으로 재정의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 측면에서도 급격한 상승 구간의 초입에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기술 도입 초기 생산성이 정체되는
‘역설’의 구간을 지나 기계가 스스로 학습하고 공장을 최적화함으로써, 과거의 수동적 자동화를 넘어선 ‘자율적 가치 창출’이 가능해졌다. 이는 AI가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니라,
산업의 게임 법칙을 바꾸는 범용 기술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CES 2026이 남긴 질문은 ‘대한민국이 이 거대한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설계자’ 역할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다. 핵심은 우리의 강점인 제조업과 오랜 기간 쌓아온
노하우인 암묵지Tacit Knowledge에 있다. 산업 측면에서는 대기업의 AI 전환 성과가 중소 제조 생태계로 전이될 수 있는 ‘지능형 공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피지컬
AI 도입에는 막대한 초기 자본과 고도화된 컴퓨팅 인프라가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이를 방치할 경우 기술 자본을 소유한 소수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 ‘지능적 양극화’가
발생하며, 이는 전체 산업의 공급망 효율성을 저해해 한국 제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은 암묵지를 디지털 자산화해야 한다. 기술의 목적은 인간의 대체가 아닌 ‘증강Augmentation’에 있다. 현장에서 축적된 암묵지가 AI와 결합될 때
독보적인 경쟁력이 완성된다. 아무리 훌륭한 AI 기술이 존재하더라도 오랜 기간 현장 근로자 한명 한명에게 체화된 암묵지 없이는 현장에서 피지컬 AI의 구현이 불가능하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기반의 ‘예측’에는 능하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물리적 현장의 ‘직관’과 ‘윤리적 판단’에서는 한계를 갖는다. 단순히 인간을 기계로 대체하는 방향은 단기적인 비용
절감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산업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고갈시켜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숙련공의 노하우(암묵지)를 AI의 정밀함과 결합하는 ‘인간 증강’ 모델은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한국 제조업만의 초격차를 만든다. 이는 노동을 비용이 아닌 ‘혁신의 파트너’로 재정의해 기술 전환기 속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이다.
CES는 우리에게 ‘AI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를 넘어 ‘AI를 중심으로 세상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를 물어왔다. 이 질문의 답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는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다. 제조업이라는 강력한 엔진에 피지컬 AI라는 지능을 결합할 수 있는 국가는 지구상에 얼마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전 지구적 ‘AI 모멘트AI Moment’를 주도하며 새로운
산업문명의 표준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