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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Tomorrow>Tech solution
기술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할 때
재활공학자 김종배 교수가 말하는 미래의 돌봄·이동·재활
김선녀 사진 김기남

고령화와 장애, 만성질환이 빠르게 증가하는 한국에서 재활공학은 더 이상 복지 영역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기본 기능을 회복시키고, 장애·노화로 인한 사회적 단절을 줄이며, ‘누구나 자기 삶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기술 인프라’의 핵심 분야다.
김종배 교수는 이 분야에서 선도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의 연구는 개인의 삶에서 출발해 사회 인프라로 확장되는 기술의 역할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Q1. 재활공학의 핵심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가요?
재활공학은 신체 기능을 상실하거나 제한된 사람이 다시 일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응용과학 분야입니다. 기존의 전자·기계·컴퓨터·소프트웨어 기술을 융합해 걷기, 이동, 환경제어, 식사 등 인간의 기본 기능을 기술적으로 복원하는 역할을 하죠. 새로운 원천기술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축적된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해 ‘장애가 삶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재활공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가 있어도 한 사람의 역할과 사회적 기능이 사라지지 않도록 돕는 기술, 그것이 재활공학의 사회적 가치입니다.
재활공학은 걷기, 이동, 식사 등 신체 기능이 제한된 사람이 다시 일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응용과학 분야로, 장애가 삶을 결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재활공학의 사회적 가치다.
Q2. 지금까지 교수님이 수행해오신 주요 연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저는 장애인의 실제 생활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데 집중하며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왔습니다. 최근 3년간은 장애 유형별로 스마트홈 설치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지자체와 복지관이 좀 더 안전하고 일관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ETRI와 함께한 XR 스포츠 연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능력치 차이를 보정한 상태에서 테니스·볼링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사례입니다.

교통안전연구원·현대차와 협력해 광역 저상버스 장애인 탑승 장치와 고정장치를 개발하고 1차 시제품을 평가 중이며, 고속버스 휠체어 리프트 기술에도 참여했습니다. 최근에는 초고령사회에서 심화되는 돌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휴머노이드 기반 돌봄 로봇 연구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휠체어, 장애인 의복, 욕창 방지 방석 등 개인 맞춤형 보조기기 설계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실제 사용자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김종배 교수는 장애인 스마트홈 가이드라인, 광역 저상버스 탑승 장치, 휴머노이드 기반 돌봄 로봇 연구 등 실제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에 집중해왔다.
Q3. 재활공학이 한국의 산업·기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분야라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장애인 및 만성질환 인구 증가도 매우 가파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활공학은 복지를 넘어 사회 인프라 역할을 해야 할 분야입니다. 미국 NIH의 ARPA-H는 이미 노인·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보틱스 및 디지털 기술 중심의 연구를 확대하고 있지만, 한국형 ARPA-H는 아직 신약·바이오 중심이라 보조기기 분야의 비중이 매우 작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개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누구에게나 효과가 동일하지 않은 반면, 보조기기나 재활 기술은 당장 삶을 변화시키는 현실적인 솔루션입니다. 고령화 시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Q4. VR 기반 원격 재활치료 연구를 오래 수행해오셨습니다. VR 재활 기술의 장점과 실제 현장에서 기대되는 효과는 무엇인가요?
VR은 재활에서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와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예를 들어 뉴욕 지하철역이나 공원 산책 환경을 VR로 구현하면 사용자는 실제로 걷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어 운동 지속 효과가 크게 향상됩니다. 무엇보다 VR 재활은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노인이 집에서도 병원급 재활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원격 재활 환경에 최적화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5. 원격 재활 및 디지털 재활치료가 앞으로 의료산업에서 어떤 인프라 및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에서는 원격 재활 시스템이 의료 인프라의 핵심축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병원 중심 재활은 이동의 어려움, 시간적 한계 때문에 접근성이 낮지만, 센서 기반 모니터링, 원격 운동처방, VR·AR 기반 재활훈련을 결합하면 집에서도 충분히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Q6. 보조 공학기기를 개발할 때 사용자 관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보조기기는 장애 정도와 체형, 생활환경이 모두 다른 사용자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맞춤성’과 ‘유연성’입니다. 기능을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사용자의 생활 패턴과 환경을 세심하게 반영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 분야는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이 주요 사용자이기 때문에 구매력의 한계를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은 전동 휠체어 보험 상한액이 약 200만 원이라 고급 기기를 구매하기 어렵고, 기업도 개발에 투자하기가 어렵습니다. 즉 사용자 경험과 사회적 지원체계가 모두 갖춰져야 기술 개발이 실제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Q7. 보조기기 분야는 공공성과 산업성이 함께 요구됩니다. 한국이 보조기기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제도적·산업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공적 급여와 보험 체계를 전면 보완하는 것입니다. 기술을 개발해도 실제 사용자가 구매할 수 없다면 산업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나 스웨덴은 정부가 고가의 보조기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기업이 기술 고도화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지만, 한국은 보험·지원 구조가 미비해 시장 규모가 매우 작습니다. 또한 보조기기 산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고, 인증 절차도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보조기기 산업을 전략 분야로 규정하고, 정부가 구매자 역할을 수행하는 지원체계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산업 생태계가 선순환 구조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Q8. 사고 이후에도 연구자의 길을 선택한 가장 큰 동기나 전환점은 무엇이었나요?
카이스트 석사 시절 사고를 당한 후 5년 동안은 전동 휠체어도 없고 이동 인프라도 부족해 사실상 집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전동 휠체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접하면서 비로소 다시 사회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 제 삶을 다시 가능하게 만든 경험이 재활공학을 선택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장애 그 자체가 삶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환경이 장애를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Q9. 장애를 가진 연구자로서 재활 기술을 연구할 때 어떤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용자로서 직접 겪는 불편과 위험을 바탕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침대 이동 중 낙상 위험 때문에 제안했던 슬라이딩 보드 개념이나, 욕창 방지 방석의 필요성을 느껴 시작한 연구는 실제 경험에서 출발했기에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연구자이자 사용자라는 이중적 관점은 기술을 ‘잘 만든 제품’이 아니라 ‘실제로 쓰이는 제품’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Q10. 앞으로 한국 재활공학 및 보조기기 산업에서 가장 큰 성장 기회는 어디에 있다고 전망하시나요?
가장 큰 기회는 초고령사회의 ‘살던 곳에서 오래 머물고자 하는 노인 수요’에 대응하는 기술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586세대가 고령층으로 진입하면 이들은 요양원보다 자신의 집과 지역에서 역할을 유지하며 살기를 원할 텐데, 이를 위해서는 원격 재활, 스마트홈, 돌봄 로봇, 지역 기반 재활 서비스가 필수적입니다. 이 분야는 향후 5~10년 안에 대규모 시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략적으로 투자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김종배 재활공학자
김종배 교수는 누구
KAIST 재학 중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뒤 기술이 다시 그의 삶을 열어주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재활공학의 길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VR 및 원격 재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책임자로 일했고,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장애인·노인을 위한 보조기기와 재활 기술을 연구하며 한국 재활공학 분야의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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