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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는 미래의 석유가 아니다
박재용 작가

사실 수소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자원이라기보다 전기를 효율적으로 담아두는 ‘에너지 저장고’에 가깝다.
탄소와 미세먼지 대신 맑은 물만 내뿜는 이 청정 저장고는 배터리가 감당하기 힘든 대형 트럭이나 선박, 철강산업의 탄소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열쇠로 꼽힌다.
미래 에너지 지형을 바꿀 수소의 진짜 정체와 우리 일상에 가져올 변화를 함께 살펴본다.

“수소는 전기를 가장 깨끗하게 담아두는 ‘거대한 저장고’다.”
수소는 ‘새로운 에너지원’이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수소는 저장 및 운반하는 수단이다. 배터리가 전기를 담듯, 보관했다가 꺼내 쓰는 ‘에너지 저장고’ 역할이다. 그렇다면 왜 수소에 주목할까? 수소는 사용할 때 물만 내놓는다. 탄소도, 미세먼지도, 유해가스도 나오지 않는다. 친환경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딱이다. 수소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생산방식에 따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에, 색깔로 구분한다.
수소 종류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수소의 95% 이상은 그레이 수소다. 천연가스나 석탄에서 추출하는 방식으로, 가장 싸지만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수소 자체는 사용할 때 깨끗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더러운 셈이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를 만들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땅속에 저장한다. 완전히 깨끗하진 않지만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과도기적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최근 흥미로운 발견이 있었다. 프랑스·말리·미국 등에서 지하에 매장된 천연 수소가 발견됐다. 이를 경제적으로 채굴할 수 있다면, 수소는 석유처럼 ‘진짜 에너지 자원’이 될 수도 있다. ‘화이트 수소’라고 부른다. 아직은 탐사 초기 단계지만, 수소산업의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있어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생산 방식에 따른 수소 분류
구분 생산 방식 특징 환경 영향
그레이 수소 천연가스나 석탄에서 수소를 추출 가장 저렴하며, 현재 전 세계 생산량의 95% 이상 차지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블루 수소 그레이 수소 제조 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저장CCS 탄소 배출을 줄인 과도기적 대안으로 주목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저장해 배출량 감소
그린 수소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수전해)해 얻음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무공해 수소 친환경성 최우수, 단 생산 비용이 아직 높음
화이트 수소 지하에 매장된 상태로 발견되는 천연 수소 석유처럼 직접 채굴 가능하며, 수소 산업의 판도를 바꿀 변수 별도의 제조 과정이 없어 매우 깨끗함
수소 경제의 걸림돌
기존 수전해 방식의 효율은 60~70% 수준이다. 나머지는 열로 빠져나간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방식은 효율이 더 높다. 70~90% 수준이다. ‘고분자 전해질막’과 ‘고체산화물 수전해’ 두 가지 방식이 그중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특히 고체산화물 수전해는 높은 온도에서 작용하는데, 공장 폐열을 활용하면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혁신은 촉매 개선이다. 기존에는 백금 같은 비싼 촉매를 썼는데 최근 니켈, 코발트, 철 같은 저렴한 소재로 효율적인 촉매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촉매 비용이 줄면 가격도 대폭 낮아진다.

이런 기술들이 상용화되면 2030년대에는 가격이 현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생산 가격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러면 그린 수소가 그레이 수소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해질 수 있다.

수소의 다른 문제는 저장과 운송이 어렵다는 점이다. 수소는 기체 상태로는 부피가 너무 크다. 그래서 두 가지 방법을 쓴다. 먼저 압축이다. 700배 압축해서 고압 탱크에 담는다. 탱크는 무겁고 비싸며, 안전기준이 까다롭다. 다른 대안은 액화다. 수소를 -253°C까지 냉각하면 액체가 된다. 부피가 800분의 1로 줄어들어 효율적이다. 하지만 냉각 과정에서 원래 수소가 가진 에너지의 30%가 소모된다. 극저온 탱크도 비싸고 무겁다. 그래서 수소 충전소 건설 비용이 매우 높다. 전기차 충전소는 수억 원이면 되지만, 수소 충전소는 30억~50억 원이 든다.

그래서 새로운 저장 방식이 개발되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액상유기수소운반체LOHC다. 특수한 액체에 수소를 결합해 상온·상압에서 저장하고 운반한다. 휘발유처럼 다루기 쉬워 기존 주유소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 또 암모니아NH3 형태로 저장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생산·운송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필요할 때 암모니아에서 수소를 다시 분리해 쓴다.

인프라 구축 단계 처음부터 전국에 충전소를 짓는 대신, 화물차 주요 노선이나 산업단지 주변에 거점 충전소를 우선 구축하는 방식을 계획 중이다. 기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수소를 일정 비율 섞어 보내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배터리가 못 하는 것을 수소가 한다
수소는 배터리보다 가벼우면서도 더 많은 에너지를 담을 수 있어, 무거운 짐을 싣고 먼 거리를 달려야 하는 대형 화물차에 최적의 솔루션으로 꼽힌다.
전기차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문제는 배터리의 한계다. 배터리는 무겁다. 40톤 화물 트럭에 충분한 배터리를 실으려면 그 무게만 수 톤이 된다. 충전 시간도 문제다. 급속 충전도 30분 이상 걸린다. 오래 달려야 하는 화물차나 버스에 치명적이다. 추운 날씨에는 성능도 떨어진다. 수소는 이런 약점이 없다. 같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필요한 무게가 훨씬 가볍다. 5분이면 충전이 끝난다. 추위에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장거리를 달리는 대형 차량일수록 수소가 유리하다.

그래서 도심 내 단거리 이동, 소형 배송, 승용차는 배터리 전기차가 효율적이다. 반면 장거리 화물 운송, 대형 버스, 기차, 선박, 비행기처럼 무겁고 오래 달려야 하는 것들은 수소가 적합하다. 수소는 배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채운다.
탄소나 미세먼지 대신 깨끗한 물과 공기만 내뿜는 수소 트램은 도심 속 대중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표적인 모습이다.
수소의 또 다른 가치는 자동차를 넘어선 곳에 있다. 배터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산업 분야, 그곳이 수소의 무대다. 먼저 철강산업. 철강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7%를 차지한다. 석탄을 써서 철광석의 산소를 제거하면서 엄청난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석탄 대신 수소를 쓰면 깨끗이 해결된다. ‘수소환원제철’은 탄소 배출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

다음으로 에너지 저장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깨끗하지만 불안정하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하다. 전기가 남을 때는 수소로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전기로 바꿔 쓴다. 수소는 배터리보다 대용량을 오래 저장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불안정성을 해결하는 열쇠가 된다.

또한 발전소가 있다. 기존 발전소에서 도시가스 대신 수소를 태워서 터빈을 돌리면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가 많아질수록 백업으로서 수소 발전의 중요성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건물 난방이다. 도시가스에 수소를 섞어 공급하거나, 건물에 연료전지를 설치해 전기와 열을 동시에 만들 수 있다. 건물마다 자체 발전하는 ‘분산발전' 방식이다. 송전 손실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다.
2030년, 수소 경제의 시작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하지만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30년대 중반이면 그린 수소가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본격적인 수소 경제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 그때가 되면 우리 일상은 조용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수소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수소로 만든 철강으로 지은 건물에서 일하고, 수소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쓴다. 마트에서 산 물건은 수소 트럭이 배송했을 것이고, 겨울철 난방은 수소가 섞인 도시가스로 할지도 모른다.

수소는 모든 에너지를 대체하진 않는다. 하지만 배터리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을 채운다. 화석연료 없이도 돌아가는 세상,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이 수소다.
박재용 작가
과학과 일상의 연결, 과학과 사회, 과학과 미래 환경에 관해 책을 쓰고 말하는 과학 저술가이자 커뮤니케이터다.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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