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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자동차의 역사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석유를 대신하기 위해 여러 대체에너지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수소에너지는 부존량이 사실상 무한이고, 환경오염이 없으며,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한 지극히 이상적인 대체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한 수소에너지로 달리는 인간의 제3의 발, 수소자동차의 발전사를 알아보자.

Keyword 1.
수소 내연기관과 수소연료전지
수소는 환경과 재활용 측면에서 실로 이상적인 에너지원이다. 지구의 70%를 덮고 있는 물. 그 물을 전기분해하면 수소가 나온다. 그리고 수소를 연소시키면 다시 물이 된다. 이 과정에서는 어떤 오염물질도 나오지 않는다. 에너지밀도(142kJ/g)마저도 휘발유(42.7kJ/g)보다 우수하다. 그만큼 효율이 뛰어나다. 이러한 수소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바로 수소 내연기관과 수소연료전지다.

수소 내연기관은 문자 그대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이다. 인류 최초의 내연기관도 다름 아닌 수소 내연기관이었다. 수소와 공기를 섞은 혼합기를 점화시켜 수소를 연소시킬 때 나오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배터리다. 이렇게 생산한 전기를 모터에 바로 보내거나, 별도의 전지를 거쳐 모터로 보내 동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수소자동차로 한정해서 말하자면, 전기모터를 돌려 움직이는 이른바 수소전기자동차들이 에너지원으로 수소연료전지를 싣고 있다.
Keyword 2.
세계 최초 수소자동차 ‘드 리바즈’
인간이 수소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 이상으로 오래됐다. 다소의 논란은 있으나 수소의 에너지화를 논할 때 그 시조 격인 존재로 꼭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은 프랑수아 이자크 드 리바즈로, 스위스의 과학자였다.

1807년 그가 세계 최초로 수소 내연기관을 발명해 특허까지 취득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00여 년 전이다. 이는 세계 최초의 내연기관이기도 했다. 최초의 내연기관 연료가 수소였던 것이다. 드 리바즈의 내연기관은 수소와 산소 혼합기를 실린더 내에서 전기 충격으로 점화시켜, 그 폭발력으로 피스톤을 밀어내 동력을 발생시키는 구조였다. 즉 오늘날의 내연기관과 작동 원리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 이듬해인 1807년 그는 이 내연기관을 자신이 만든 자동차 ‘드 리바즈’에 탑재했고, 차량의 시험 운행에도 성공했다. 다만 당대의 마차나 증기기관차의 성능에도 미치지 못했다. 스위스의 피에르 지아나다 자동차 박물관에서 1985년 이 차량을 리메이크해 실시한 실험에서는 한 번의 수소 충전으로 100m 정도를 주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당대인들은 그의 발명에 냉담했다. 당시 프랑스 과학 한림원은 “드 리바즈의 내연기관은 증기기관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라고 발표했을 정도다.
Keyword 3.
에티엔 르누아르의 ‘히포모빌’
제대로 된 수소자동차가 또 나온 것은 드 리바즈의 발명으로부터 무려 50여 년이 지난 1860년이었다. 이번에는 프랑스의 과학자 에티엔 르누아르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다년간의 연구 끝에 드 리바즈의 내연기관보다 더욱 작고 효율이 우수한 내연기관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내연기관을 차량 ‘히포모빌’에 탑재했고, 이 내연기관의 연료로 수소를 사용해 주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주행 성능도 드 리바즈의 자동차보다 훨씬 좋아서 18km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사람이 걷는 속도(시속 4km)보다는 빨라졌다.

르누아르는 나중에 자신의 내연기관을 석탄가스 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 400대 정도를 판매해 상업적 성공도 거뒀다. 또한 전기분해로 얻은 수소를 이용해 동력을 만들어낸 최초의 사람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20세기 중반까지 수소자동차의 연구개발은 지지부진했다. 강력한 경쟁자인 석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소는 물을 전기분해해야 얻을 수 있는 데 반해, 석유는 (산유국 한정이지만) 땅만 파면 거의 공짜로 콸콸 나왔다. 어느 에너지가 더 저렴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당연히 사람들은 석유로 몰려갔다.
Keyword 4.
전시 상황이 낳은 수소차
석유 전성시대에도 석유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소련 도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시도 그런 곳이었다. 독일군은 1941년 9월부터 1944년 1월까지 무려 872일 동안 레닌그라드를 포위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물자 공급을 끊어 이곳의 민간인과 군인들을 아사시키려 했다.

사람 먹을 식량도 없는 판에 자동차에 넣을 석유가 풍부할 리 없었다. 당연히 연료 부족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차량이 속출했다. 이에 소련군 기술자였던 보리스 셸리슈크가 시내에 있던 소련군 트럭 ‘GAZ-AA’ 200대를 수소 연료를 쓸 수 있게 개조해 운용했다. 이 차량은 석유 연료를 사용할 때와 비교해 더욱 높은 연비와 낮은 공해도로 이목을 끌었다. 기존의 석유 연료 사용 차량을 손쉽게 수소차로 개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소련군이 사용했던 ‘GAZ-AA’ 트럭.
원래는 석유 연료를 쓰는 내연기관 차량이었지만,
레닌그라드에서 이를 수소 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Keyword 5.
세계 최초 수소연료전지 차량 ‘일렉트로밴’
1966년 미국의 자동차 명가 제네럴모터스GM사는 ‘일렉트로밴’이라는 신제품을 선보였다. 이 차량이 중요한 이유는 최초의 수소연료전지 차량이기 때문이다.

크레이그 마크스 박사 연구팀이 2년간 연구개발한 이 차량은 제네럴모터스의 기존 제품인 ‘핸디밴’ 차량을 수소연료전지로 달리는 전기자동차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처음으로 만든 이 차량용 수소연료전지는 너무 크고(연료전지 때문에 화물칸에 다른 물건을 싣기 어려울 정도였다) 무거웠다. 그래도 거대한 수소연료전지 덕택에 힘은 셌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엄청나게 투입한 자금에 비해 상업적 가능성이 낮았고, 당시에는 이 차량을 유지할 수소 인프라도 시원찮았다. 그래서 결국 제네럴모터스는 이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만다.
Keyword 6.
석유파동으로 재기하다
1970년대 들어 중동전쟁의 여파로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무기화를 시도한다. 석유 감산과 유가 인상을 실시한 것이다. 석유파동Oil Shock의 시작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각국은 석유를 쓰지 않는 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의 과학자 로저 빌링스는 학창 시절이던 1972년 독일제 폭스바겐을 개조한 수소자동차 ‘브리검 영 슈퍼비틀’을 제작했다. ‘엔진이 흡기하는 공기보다 배기하는 공기가 더욱 깨끗한 차’라는 것이 특장점이었다. 그는 여기서 갈고닦은 기술로 캐딜락 ‘세빌’ 차량을 수소자동차로 개조하는 데 성공한다.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1977년 취임 기념 퍼레이드에서 이 차량을 탑승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일본 등 자동차 강국들도 지지 않았다. 독일 BMW는 1979년 수소·가솔린 다연료 차량을 선보였고, 메르세데스-벤츠는 수소자동차를 출시했다. 일본 무사시 공업대학(현 도쿄 도시대학)에서 1974년부터 1997년까지 일본 최초로 10대의 수소자동차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학교의 연구에 고무된 토요타, 마츠다, 오펠, 르노 등의 기존 자동차 제작사들 역시 199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수소자동차를 선보이게 된다.
Keyword 7.
21세기 대세로 부상
처음부터 수소연료전지 전용으로 설계된
대량 생산형 차량 토요타 ‘미라이’.
21세기 들어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기로 탈석유 바람이 더욱 강해지면서 수소자동차 연구개발에도 그만큼 더 가속이 붙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수소자동차의 추진체계에는 수소 내연기관과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한 모터 구동식 두 가지가 있다.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수소연료전지 모터 구동식에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공해물질 생성과 낮은 출력 효율 등 수소 내연기관의 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기자동차 연구개발이 활발해지면서 수소연료전지 자동차에도 사용할 수 있는 관련 기술들이 크게 발전했다.

그 결과 2002년에는 미국과 일본에서 토요타 ‘FCHV’, 혼다 ‘FCX’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상용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각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사례다. 이후 10여 년간 다양한 수소 연료 자동차가 상용화됐다. 2008년에는 사상 최초의 양산형 수소 연료 자동차인 혼다의 ‘FCX 클래리티’가 출시됐다. 2013년에는 현대자동차의 ‘투싼’ 수소연료전지형이 출시됐다. 2014년에는 토요타의 ‘미라이’가 출시됐는데, 처음부터 수소연료전지 전용으로 설계된 대량 생산형 차량이라는 것이 특징이었다.
현대자동차 ‘투싼’ 수소연료전지 차량.
Keyword 8.
충분한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
수소자동차의 미래는 밝다. 현재 많은 자동차 제작사들이 수소자동차를 출시했거나 출시 예정이다. 또한 수소연료전지에 비하면 소수파지만, 수소 내연기관의 연구개발도 아직 활발하다. 내연기관 특유의 소음과 진동으로 대표되는 감성은 수소자동차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는 달리 세간의 인식은 아직도 느리게 변하는 것 같다. 수소자동차가 수소 핵융합으로 움직이는 줄 아는 사람도 꽤 된다. ‘일렉트로밴’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충분한 정책적 지원과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도 시장과 사회에 안착할 수 없다. 무한한 청정에너지인 수소에너지가 우리 삶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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