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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History
자율운항선박의 역사
사람 대신 컴퓨터가 배를 제어한다!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인간이 만든 이동체 중 가장 크고 비싸고 무거운 존재인 배. 이제 배도 자율주행차처럼 혼자 알아서 움직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배에 승조원이 없다면 어떤 점이 좋을까? 그리고 배가 승조원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하며, 관련 기술은 얼마나 발전되어 있을까?

자율운항선박의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한 유럽의 MUNIN 프로젝트 개념도. 시뮬레이션 위주로 진행한 결과 양호한 성과를 얻었다.
배는 인간이 만든 이동체 중 제일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그 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이설이 있지만, 최초의 배는 무려 기원전 7000년경에 발명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바퀴의 등장보다 3500년이나 더 빠르다. 바퀴는 정원正圓으로 제도하고 깎아내는 기술이 필요하지만, 배는 부력과 항력만 있으면 물 위에 떠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배에 쓰이는 기술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이 아니다. 동물 중에서도 수상동물인 고래가 육상동물인 코끼리보다 크듯이, 부력으로 물 위에 뜨기 때문에 그만큼 이동체의 부피를 크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덜 정제돼 소형화가 덜 된 당대의 최신 기술들이 배에 가장 먼저 탑재되는 경우를 과학 기술사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일례로 원자력 추진 기관은 1950년대에 배에 탑재되었지만, 자동차에는 아직 달릴 기약도 없다.

또한 배는 인간이 만든 이동체 중 항공기와 더불어 지구상에서 가장 멀리까지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육상까지 통신할 수 있는 기술, 즉 수준 높은 정보통신 기술의 필요성 역시 진작부터 요구되었다. 그리고 21세기 들어 고도로 발전된 정보통신 기술은 드디어 승조원 없이도 움직일 수 있는 배, 자율운항선박의 출현을 눈앞에 가져왔다.
왜 자율운항선박인가?
승조원이 타지 않는 자율운항선박은 재래식 선박에 비해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닌다.

첫 번째로 인적 과실에 의한 사고 예방이 가능하다. 해상 사고의 약 70~80%는 졸음 운항, 판단 착오, 의사소통 오류 등 인적 과실에 의해 발생한다. 반면 레이더·라이다·인공지능 카메라 등의 첨단 센서는 악천후나 야간에도 주변 장애물을 인간보다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다. 또한 24시간 지치지 않고 기능을 유지하므로 장기 항해 시 승조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집중력 저하 문제가 없다.

두 번째로 선박 설계의 혁신을 들 수 있다. 재래식 선박에는 침실·주방·화장실·공조설비·구명정 등 승조원의 생활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율운항선박에는 이런 공간이 필요 없다. 따라서 그만큼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고, 더욱 연비가 뛰어난 설계가 가능해진다.

세 번째로 운용 비용이 절감된다. 무엇보다 사람을 태우지 않으므로 인건비(운용 비용의 20~30% 수준)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는 승조원이라는 3D 직종의 인기가 점점 떨어져 지원자가 줄어드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또한 인공지능이 기상 상태와 조류 등 자연환경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가장 연료가 적게 드는 경로와 속도로 항해해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다.

네 번째로 사고가 발생해도 인명 피해 우려가 적다. 적의 공격을 받거나, 자연재해가 심한 항로를 운항하거나, 배에 실린 위험한 화물이 누출되는 경우에도 승조원이 살상당할 우려는 없다.

이러한 장점이 있어 해사 업계 일각에서는 자율운항선박 도입을 소리 높여 주장해왔다. 무려 1964년 국제해사기구IMO의 제8차 해사안전위원회MSC 회의에서 선박의 완전 자동화 시스템, 부분 자동화 시스템, 원격조종 시스템 등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지금에 비해 훨씬 기술 성숙도가 낮았고 승조원의 인건비가 저렴하던 그 시절에도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70~1980년대에는 전자장치, 속도 제어장치, 자동식별장치AIS 등을 하나로 묶은 통합형 항해 체계가 개발되기 시작한다. 이에 당시 독일 학자 롤프 쇤크네히트는 저서 <미래의 선박과 해운Ships and Shipping of Tomorrow>에서 자율운항선박의 등장을 예견하기도 했다.
자율운항선박의 가능성을 검증한 MUNIN 프로젝트
하지만 이러한 자율운항선박은 과연 타당한 개념인가?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해양 물류 서비스 연구팀이 주도한 컨소시엄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MUNINMaritime Unmanned Navigation through Intelligence in Networks(정보망 이용 무인 항해) 프로젝트를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선박과 구간 모델 선정 → 핵심 기능별 모듈 개발 → 정밀 디지털 시뮬레이션 → 타당성 분석’이라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선박과 구간 모델로는 가장 난도 낮은, 공해상을 항해하는 7만5000톤급 벌크선이 선정되었다. 핵심 기능별 모듈은 항해 자동화, 기관 자동화, 선체와 육지 간 통신, 육상 선박제어센터의 4가지 핵심 기능을 구현했다. 이를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하고 분석한 결과 경제적으로는 재래식 선박보다 분명 우위에 있었다. 동급 재래식 선박 대비 25년간 운용 기준 700만 달러의 비용이 절감되었다. 또한 인적 과실이 없으며, 위험 요소 발견 및 대응 능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승조원이 없으므로 항해 중 고장이 나도 현장 수리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자율운항선박에는 중복 설계와 저정비 기관 도입이 필수라는 기술적 지침이 나왔다.

게다가 법적 타당성에 큰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국제 해양법은 승조원이 탑승하는 재래식 선박에 맞춰 만들어졌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책임 소재를 기존 법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에 자율운항선박에 맞는 국제법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이 프로젝트에서 도출된 결론에 따라 자율운항선박이 국제 해운시장의 실질적인 흐름으로 부각되기 시작했으므로, IMO는 2017년 6월에 열린 제98차 해사안전위원회 회의MSC 98 에서부터, 자율운항 기술의 발전에 따른 기존 국제협약의 적용 방식을 검토하기 위해 ‘자율운항선박MASS, 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정의하고 사용하기 시작했다. IMO는 자율운항선박을 “인간과의 상호작용 없이 다양한 자동화 단계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선박”으로 정의했다. 이듬해 열린 MSC 100에서는 자율운항선박의 범위를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자율화 수준을 다음의 4단계로 구분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는 자동화된 의사결정 지원을 받는 운항부터 완전 자율운항까지 모두 자율운항선박의 범주에 포함시킨 중요한 결정이었다.
자율운항선박 자율화 단계
단계 IMO 정의
제1단계 자동화된 프로세스 및 결정 지원 시스템을 갖춘 선박
제2단계 원격제어가 가능하며 승조원이 승선하는 선박
제3단계 원격제어가 가능하며 승조원이 승선하지 않는 선박
제4단계 선내 운용시스템으로 자체 결정 및 조치를 통해 완전 자율운항이 가능한 선박
신속한 기술 개발로 자율운항선박 고지 선점하려는 각국
그러면 이러한 자율운항선박은 과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근본적으로 자율주행차, 무인 항공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선 적외선 및 가시광선 스펙트럼 카메라·레이더·소나·라이다 ·GPS·AIS 등의 자체 탑재 센서를 통해 항해에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받는다. 그 외에도 육상 선박 원격제어소에서 기상 데이터, 공해 항해 데이터 등을 획득한다. 인공지능이 이러한 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경로와 운항 패턴을 산출, 이에 따라 선박에 명령을 내리면 자율 항법 시스템, 광학 감시 및 분석 시스템, 통합 동작 제어 시스템, 엔진 제어 시스템, 기술 모니터링 시스템, 대인 인터페이스 등 선박 자체 및 육상 선박 원격제어소의 여러 시스템이 이 명령에 따라 배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자율운항선박 기술 표준을 선점하고 관련 국제 법규에 영향을 주고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야라비르켈란호는 재화중량톤수 3200톤, 120TEU 규모의 세계 최초의 전기 추진식 자율운항 화물선으로, 처음부터 승조원 탑승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졌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유인 운항(임시 승조원 거주 구역 설치)을 거친 후, 2024년부터 현재까지 무인 상태로 자율도를 점진적으로 높여가며 상업 운항 중이다.
세계 최초로 본격 자율운항 화물선으로 건조된 노르웨이의 야라비르켈란호.
2019년에는 일본 해운회사 NYK사가 자사의 자동차 운반선 아이리스리더호를 자율운항선박으로 개조해 자율운항을 실시했다. 여기서 충돌회피, 자동 항법 등에 양호한 결과를 거둔 일본은 MEGURI 2040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2040년까지 자율운항선박 생태계를 확립하는 것이 목표다. 이에 2025년 6월에는 자율운항선박 안전기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에는 세계 최초 자율운항 여객선 상업 운항에 성공했다. MEGURI 2040에서 얻은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IMO에서 논의 중인 MASS 코드(자율운항선박 국제 규칙) 제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고 일본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전략도 추진 중이다.
자율운항선박으로 개조돼 성공리에 운항된 일본의 아이리스리더호.
자율운항선박으로 개조된 러시아 화물선 카밀라호.
러시아도 2020년대 들어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 및 제도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위험성은 높지만 미주 대륙과의 접근성이 높은 북극 항로 개척에 기대가 큰 러시아 역시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러시아 국가 기술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2015년 출범한 산업협회 마리넷은 2019년 자율 원격 항해 시험 프로젝트를 시작, 기존의 선박 3척을 자율 및 원격제어형으로 개조해 실제 화물운송에 투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총 28회의 상업 화물운송에 성공했다. 이 프로젝트 결과를 바탕으로 러시아 정부는 ‘자율운항선박 시범 운영에 관한 법령’을 승인, 자국 자율운항선박 운항에 필요한 법적 기반을 닦았다. 러시아는 이 프로젝트의 중간 결과를 IMO에 지속적으로 보고, 전 세계 자율운항선박 규정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데이터를 제공했다.

우리나라 역시 자율운항선박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KASS(한국 자율운항선박) 사업을 진행 중이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된 KASS 제1단계에서는 1600억 원을 투입해 지능형 항해 및 기관 자동화 기술IMO 제2~3단계을 확보했다. 2025년에는 ‘자율운항선박법’을 시행했다.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진행될 KASS 제2단계 AI 완전 자율운항선박 사업은 IMO 제4단계 완전 무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조선사들도 이미 대규모 수주를 통해 기술력을 증명하고 있다. 2026년 1월, HD현대 아비커스는 HMM의 대형 선박 40척에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 컨트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2025년 말, 정부와 해운 및 조선 업계가 모두 참여하는 자율운항선박 M.AX 얼라이언스를 출범하여 국제표준 선점에 나서고 있다.

자율운항선박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업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일각에서는 업무 자동화 증가와 승조원 구인난 등을 거론하며 “2030년대가 오기 전에 본격적인 자율운항선박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 제도적 문제와 안전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배에서 승조원을 모두 없애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자율운항선박 관련 기술 개발은 한 나라 단독으로도 할 수 있지만, 해사 관련 제도의 정비는 모든 나라가 뜻을 모아야 한다. 배는 국제적인 운송수단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추이를 지켜볼 일이다.
우리 기업 HD현대 아비커스의 대형 선박용 자율운항 솔루션 ‘하이나스 컨트롤’이 적용된 에이치라인 해운 선박.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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