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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뇌파로 만드는 인공 목소리
임창환 한양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는 이제 인류의 삶을 바꿀 차세대 핵심 기술로 우뚝 섰다.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를 필두로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지금,
BCI는 단순한 공학적 성취를 넘어 인간의 일상을 확장하는 새로운 도구로 탈바꿈 중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증명해온 지난 20년의 여정을 되짚으며,
기술의 실현을 넘어 그 ‘의미’와 ‘사회적 선택’에 대해 질문을 던져본다.

키워드 사전
BCI(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의 핵심 개념
개념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 외부 기기와 연결하는 차세대 핵심 기술.
원리 및 활용
사용자가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조종해 글씨를 쓰거나, 가상현실VR 디바이스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르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이제는 일상을 확장하는 도구로 탈바꿈 중이다.
스무 해 전, 설명부터 해야 했던 기술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의 뇌 이식용 칩. 동전 크기의 이 장치는
뇌 신호를 실시간으로 읽어 외부 기기와 연결한다. 최근 인간 대상 임상
시험 결과를 잇달아 공개하며 BCI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촉발했다.
생각만으로 로봇 팔을 조종해 글씨를 쓰고(왼쪽, 뉴럴링크 시연), 가상현실 디바이스를 통해 가전을 자유자재로 제어하는 모습(오른쪽, 싱크론 시연).
요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 이야기를 꺼내면, 이 기술에 대한 설명부터 요구받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 어디까지 왔나요?”라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이런 변화의 속도를 체감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스무 해 전을 떠올리게 된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Neuralink가 인간 대상 BCI 임상시험 결과를 지속적으로 공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BCI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졌다. 투자시장도 즉각 반응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이르다’거나 ‘시장성이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던 BCI 기술은 이제 차세대 핵심 기술로 언급되고 있다. 실제로 뉴럴링크의 경쟁사인 싱크론Synchron은 제프 베이조스와 빌 게이츠가 이끄는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유치했고, 최근에는 오픈AI가 BCI 스타트업인 머지랩스Mergelabs에 거액을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필자에게 새롭기보다는 오래 미뤄졌던 시간이 마침내 다가온 느낌에 가깝다. 필자는 약 20년 전 국내에서 BCI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 당시 BCI는 관련 학회 내에서도 낯선 단어였다. 연구 발표를 하면 가장 먼저 받는 질문이 “그게 정말 가능한가?”였다. 논문 내용보다 개념 설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심지어 발표가 끝난 뒤에도 “영화 같은 이야기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말을 종종 들어야 했다.

그 시절의 BCI는 ‘연구 주제’라기보다 ‘설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 BCI는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되는 기술이 되었고, 사회는 이 기술이 만들어낼 변화의 크기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가장 느렸지만, 가장 확실했던 출발점
BCI 연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기술의 중심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을 세상과 소통시키는 것’. 필자는 그 단순하지만 무거운 목표 때문에 이 연구를 계속해왔다.

근육을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초기 BCI 시스템은 매우 느렸고, 불편했으며, 오류도 많았다. 뇌파 신호는 잡음에 취약했고, 사용자는 오랜 훈련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생각만으로 한 글자를 선택하는 데 10초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글자’의 의미는 컸다. 그 글자는 기계가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처음으로 BCI를 통해 문장을 완성해나가는 사용자를 보았을 때, 나는 이 기술이 절대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과정이 느릴 수는 있어도 틀린 방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신호 해석 정확도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고, 훈련 시간도 크게 줄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린 말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문장이나 음성으로 바꾸는 연구도 현실적인 단계에 들어섰다. 실제로 2026년 우리 연구실에서는, 성우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발생하는 피질뇌파를 이용해서 들은 목소리를 복원해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이 분야에서 BCI의 가치는 언제나 ‘속도’보다 ‘의미’에 있다.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에 힘입어 머지않은 미래에 소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우리 연구실에서 뇌파로부터 합성한 음성신호의 스펙트로그램. 가장 왼쪽(Ori)이 원본 음성, 가장 오른쪽(Enhanced)이 제안한 방법의 결과(Lee 등, Machine Learning with Applications, 2026).
집중이 안 돼
Can’t concentrate
특정 문장(“집중이 안 돼”)을 들었을 때
발생하는 사용자의 실제 피질뇌파 신호 데이터.
측정된 뇌파 데이터만을 분석해
AI 모델이 1차적으로 재구성한 음성신호.
1차 합성된 신호의 잡음을 제거하고 파형을 정교화하여,
실제 음성과 가장 유사하게 복원한 최종 결과물.
가장 흥미로운 변화, 일상으로의 확장
BCI가 의료와 재활을 넘어 ‘일상생활로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연구자로서 매우 인상적인 변화다. 특히 교육 분야는 필자가 최근 가장 흥미롭게 바라보는 영역이다.

오랜 시간 교육은 결과 중심이었다. 시험 점수, 과제 결과, 정답 여부가 학습의 척도였다. 그러나 BCI는 학습 과정, 그 자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집중이 무너지는 순간, 인지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는 지점, 이해와 혼란이 교차하는 구간을 뇌 신호를 통해 포착할 수 있다면 교육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2023년 BCI 기술을 바탕으로, 온라인 학습 중 집중력이 저하되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순간 추가적인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 기술을 사용한 결과 50점대의 평균 시험 점수가 80점대로 향상되는 놀라운 변화가 관찰됐다.

이 기술이 교실에 즉각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분명히 느끼는 점은 ‘교육이 처음으로 학습자의 뇌를 고려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라, 교육 철학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BCI가 대중과 만나는 또 하나의 통로는 엔터테인먼트다. 연구 측면에서 보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는 기술의 대중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게임이나 가상현실 환경에서 BCI는 ‘조작’이 아니라 ‘반응’을 다룬다. 버튼을 누르는 대신 사용자의 긴장·몰입·감정 상태가 콘텐츠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아직은 실험적 단계지만, 필자는 이 방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기술이 사람에게 무엇을 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발전은 매우 빠르다. 이미 뉴로게이밍Neurogaming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만들어졌고, 매년 국제 학회도 개최되고 있다. 가상현실과 BCI를 결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물론 일반 유저가 좀 더 손쉽게 BCI를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개발되고 있다.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AR 글라스와 연동 가능한 웨어러블 BCI 디바이스(Kim et al., IEEE T-SMC, 2026).
스무 해를 돌아보며, 이제는 질문이 달라졌다
BCI 연구를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BCI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 대신 “이 기술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뇌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생각은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기술은 인간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선택의 문제다. 연구자로서 필자는 기술을 개발해왔지만, 이제는 이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쓰이기를 바라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BC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적어도 필자가 이 연구를 시작한 이유는 거기에 있지 않다. BCI는 인간이 잃어버린 것을 되돌려주고, 닿을 수 없었던 것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오는 기술이다.

스무 해 전에는 BCI를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야기해야 할 시간이다.
임창환 한양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뇌공학연구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뇌공학자로 공학 문화 확산에도 관심이 많아
<뉴럴링크>,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등 다수의 공학 교양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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