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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지하에서 우주를 꿈꾸다
박강순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 정선 예미랩 센터장

우리가 사는 지구는 매 순간 우주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입자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뮤온Muon이라는 입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대기권에서 생겨나 지표에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이 뮤온은 과학자들이 희미한 신호를 포착하려고 할 때 방해가 되는 입자다. 마치 조용한 곳에서 속삭임을 듣고 싶은데 주변에서 계속 큰 소음이 들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깊은 땅속으로 내려간다. 땅이 두꺼운 방패막이가 되어 우주에서 날아오는 뮤온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예미랩Yemilab은 정선군 신동읍의 예미산 지하 1000m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뮤온의 투과율이 수십만 분의 일로 줄어든다. 덕분에 밝혀지지 않은 우주 입자의 희미한 흔적을 포착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다. 세계적으로도 같은 목적의 깊은 지하 실험시설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이탈리아의 그랑사소LNGS, 캐나다의 스노우랩SNOLAB, 미국의 샌포드 지하실험시설SURF 그리고 일본의 가미오칸데Kamiokande 등이 규모 면에서 대표적이다. 이들 연구시설은 땅속 깊이 자리해 우주 입자의 미세한 흔적을 찾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노벨상 수상자도 4명이나 배출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예미랩 시설과 그 안에서 어떤 모험적인 실험이 진행되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암흑물질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우주의 퍼즐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 즉, 별, 행성, 은하 등은 원자가 모여 이루어진 물체다. 이들 원자가 질량의 기준으로, 우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약 5%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95%가 넘는 물질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메워져 있다고 추측된다. 암흑물질은 물질의 형태라고 예상되지만 직접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어서 그 존재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암흑에너지 역시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예상하나 구체적인 증명이 어렵다. 이와같이 존재의 증거를 찾기가 극히 어려워 각각의 이름을 암흑Dark이라고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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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0m에 조성된 예미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실험공간인 LSC홀.
직경과 높이가 각각 20미터, 28미터의 원통 형태로, 6,000톤의 액체섬광물질 수용이 가능하다.
액자그림은 LSC홀에 구축될 차세대 검출기의 개념도. 검게 표현된 것이 사람의 크기로 검출기의 규모를 알 수 있다.
예미랩에서는 물질의 형태라 예상되는 암흑물질 탐색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암흑물질은 질량 기준으로 우주의 약 23%를 차지하는 주요 구성 물질이다. 암흑물질은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오직 중력에 의해서만 물질들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직접 검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은하의 공전운동, 중력렌즈 현상 등에서 나타나는 이상 징후들은 우주에 대량의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강력한 암시를 주고 있기에, 과학자들은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윔프WIMP는 1980년대부터 암흑물질의 후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윔프라는 이름은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라는 뜻에서 지어졌다. 그 이름대로 물질 간 상호작용이 아주 약하기 때문에 그 존재를 선뜻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약하게라도 중력에 의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희박하게나마 보통 물질과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희박한 충돌 확률이 있더라도 통계적으로 가능성을 검토하며, 현재 전 세계의 많은 실험그룹들이 각국의 지하에서 정밀한고도 독창적인 검출기를 제작해 실험을 진행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굳이 지하에서의 실험을 고집하는 이유는 희박한 신호가 뮤온 등의 우주선 신호에 묻히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미국의 LUX-ZEPLIN, 중국의 PandaX, 이탈리아의 XENONnT 등 여러 실험실이 깊은 지하에서 윔프 검출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부터 서울대 김선기 교수의 연구그룹이 양양지하실험실에서 독자적인 기술과 노하우로 KIMS라는 이름으로 실험을 진행해 왔다. 2013년부터는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단장 김영덕)에서 이어받아 실험명을 COSINE-100이라 하고 암흑물질 관측을 이어갔다. 암흑물질이 검출기 핵과 충돌하여 되튀는 에너지가 포착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 NaI(Tl)(탈륨이 도핑된 소듐아이오다이드) 결정은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전달받으면 빛을 방출하는 섬광체 검출기다. 특히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도 비교적 강한 신호를 내기 때문에 약한 신호를 포착해야 하는 암흑물질 탐색 실험에 적합하다. 실험을 위해서는 고순도의 NaI(Tl)결정을 제작하는 것이 관건이다. S/N(신호 대비 배경신호(노이즈)) 값을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실험그룹의 무수한 노력으로 COSINE-100 실험의 검출기는 수 keV의 에너지를 검출하는 수준까지 가능하다. 암흑물질의 질량을 몰라서 극히 낮은 수준의 에너지 영역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조건이 필수이기 때문에 얼마나 낮은 에너지까지 검출할 수 있느냐가 세계적인 실험들의 경쟁 사안이다. 이 방면에서 COSINE실험은 세계 최고의 클래스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양의 COSINE-100 실험은 지난 2023년 말에 정선 예미랩으로 이전하면서 개선을 거듭하였고, COSINE-100U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암흑물질을 타깃으로 후속 실험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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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COSINE-100 차폐체 내부의 NaI(Tl) 검출기 사진.
현재는 정선 예미랩으로 이전하여 추가된 검출기와 함께 암흑물질을 기다리고 있다.
중성미자와 마요라나 입자란 무엇일까?
→유령 입자의 비밀
빅뱅 초기에는 물질과 반물질이 반씩 생성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물질과 반물질이 반반이면 오늘날의 우주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인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물질관 반물질이 충돌하면 각 물질들은 소멸하고 대신 빛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주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아마도 빛으로 가득찬 우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주는 그렇지 않다.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행성, 태양계 그리고 지구, 지구에 살고있는 인류와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의 진화 과정 중 반물질은 사라지고 물질이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궁금증의 답을 얻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은 중성미자가 마요라나Majorana 입자인지 디락Dirac 입자인지 가려내어 힌트를 구하려고 한다.

우주에는 빛 다음으로 많은 입자가 바로 중성미자다. 하지만 중성미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인데다 매우 작고 가벼운 특징 때문에 거의 모든 물질을 그냥 통과해 버린다. 그래서 ‘유령 입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과학자들은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마요라나 입자는 스스로 물질이면서 반물질인 입자다. 현재까지 우리가 아는 모든 물질은 디락 입자다. 디락 입자는 물질과 반물질로 엄격히 나뉘어 존재한다. 반면에 마요라나 입자는 디락 입자와 대립하는 입자라 볼 수 있다. 1937년 이탈리아 물리학자 에토레 마요라나Ettore Majorana가 처음 제시하였다. 그리곤 사라졌다. 마요라나 입자도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독일 GERDA, 이탈리아 CUORE, 미국 EXO-200 같은 실험들이 이 현상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 예미랩의 AMoRE-II 실험도 같은 목적으로 검출기 설치가 한창이다. AMoRE-II 실험을 간략히 살펴보자면, 10mK(영하 272.99℃)의 극저온 진공 탱크 안에 몰리브덴 동위원소100Mo기반의 CaMoO4 결정을 주요 검출물질로 하는 검출기를 위치시키고 몰리브덴 동위원소에서 중성미자 없이 이중베타붕괴 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한 번의 베타붕괴에는 필수적으로 중성미자 한 개가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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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n은 중성자, p+는 양성자, e-는 전자, bar(νe)는 반중성미자를 각각 가리킨다.
그럼 두 베타붕괴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도 있지 않을까? 이런 현상을 이중베타붕괴라고 한다. 이중베타붕괴 과정에서는 당연히 두 개의 중성미자가 발생 되어야 하지만 중성미자가 없는 경우도 가정 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 붕괴’라고 한다. 즉, 중성미자가 소멸되고 두 개의 전자만 나올 것이다. 이 때 그 전자들의 에너지 스펙트럼을 분석해 보면 중성미자가 마요라나 입자인지 판별할 수 있다. AMoRE-II 실험에서 사용하는 100Mo 동위원소는 Q-value(붕괴과정에서 방출되거나 흡수되는 에너지)가 다른원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두 전자의 에너지 합이 Q-value가 되는데 100Mo의 Q값은 약 3MeV로 세계 다른 실험들의 동위원소보다 크다) 극저온(10~20mK)에서 에너지 분해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실험데이터의 분석에 유리하다. AMoRE-II 실험은 매우 까다로운 실험환경과 장치가 필요한 모험적인 실험이지만 잘 정형화된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이다. 세계적인 실험들 중 가장 선명한 결과를 얻으리라 기대한다.
예미랩 - 지하실험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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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000m 예미랩에 갖춰진 대피소. 40인이 3일 동안 외부의 지원없이 생존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평상시에는 휴게실로 사용된다.
정선 예미랩은 단순한 지하공간이 아니라, 첨단 과학시설로 봐야 한다. 총 3,000m2에 달하는 실험공간을 인위적으로 방사능 청정구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연방사능을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지를 선택할 당시부터, 방사능이 많은 특정 암반을 피하기 위해 전국의 지질을 조사하여 현재의 위치를 선택했다. 터널 조성에서도 방사능을 유발하는 동위원소가 적은 골재와 페인트를 선별하여 사용했다.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행 광산의 악조건에서도 필터를 최적화하여 100클래스(1평방피트 당 10마이크로 크기의 먼지가 100개 이하)의 청정한 특별공간도 갖추고 있다. 실험공간의 모든 곳은 지상의 신축 빌딩 사무실의 먼지 농도인 50만 클래스보다 낮은 20만 클래스로 유지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1,000m 지하의 공기는 지상보다 방사성 동위원소인 라돈Rn 농도가 약 100배 더 높다. 라돈은 WHO에서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작업자들의 안전을 위해 이 수치를 낮추어야 했고, 결국 지상의 신선한 공기를 끌어와 지하에 공급한다. 실험에서도 라돈은 골칫거리다. 라돈이 붕괴하면서 감마선을 내기 때문이다. 감마선은 검출기에 흔적을 남겨 데이터를 오염시킨다. 실험을 위해 특수 제작된 라돈제거장치를 운영하여, 필요로 하는 실험실에 라돈농도가 제로에 가까운 공기를 공급한다. 열을 발생시키는 실험장비를 위해 수냉시설도 지원한다. 전반적으로 지상보다 깨끗한 환경을 1,000m 지하에서 구현하였다.
연구자들의 안전 보장은 필수적이다. 밀폐된 지하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하여 40병이 동시에 대피할 수 있으며 외부 지원 없이도 최대 3일간 생존할 수 있는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다. 산소와, 비상식량, 화장실, 독자적인 비상전력 그리고 내부 공기오염을 방지하는 필터가 내장되어 있다.
왜 이런 연구가 중요한가 ?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연구는 우주의 감춰진 본질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도전이다. 이 연구들이 성공하면 우리는 우주의 시작, 별과 은하의 탄생, 물질과 반물질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 실패하더라도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와 경험은 미래 연구의 밑거름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지만, 정선 예미랩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발견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 깊은 땅속에서 우주를 꿈꾸는 과학자들의 집념이 언젠가 인류의 새로운 지식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더 나아가 이런 기초과학 연구는 언젠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기술 발전과 인류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믿는다. 과학의 작은 발견이 미래의 의료, 에너지, 우주탐사 등 우리의 생활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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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순 기초과학연구원 지하실험연구단 정선 예미랩 센터장
성균관대 물리학과에서 입자물리학실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후 2006년부터 현재까지 RENO 검출기 구축, SBL 검출기 제작, 양양지하실험시설 구축,
암흑물질(COSINE-100) 차폐체 제작, AMoRE-I 차폐체 제작, 예미랩 구축·운영 등을 수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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