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의료용 AI, MYCIN
MYCIN은 의료용 AI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AI다. 1970년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개발한 MYCIN은 특정 감염병에 대한 치료 방식을 의사에게 추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 기반 후방 추론 전문가 시스템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균혈증, 뇌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식별해내고, 그에 맞는 항생제와 환자의 체중에 따른 투여량 등을
정확히 처방하기 위한 제품이었다. 여담이지만 MYCIN은 어떤 대단한 뜻을 지닌 이름은 아니었고, 항생제 이름 뒤에 붙는 접미사 mycin(마이신)에서 따온 것이다. 브루스 G.
뷰캐넌, 스탠리 N. 코헨 등의 지도를 받은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 학생 에드워드 쇼트리프가 리스프 언어❶를 사용해 제작했다.
MYCIN이 속한 전문가 시스템은 AI의 새로운 진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AI가 논리적 추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해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전문가 시스템은 문자 그대로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 특히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응용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 시스템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올바른 관행, 판단 규정, 타당한 논리적 추론 등에 의거한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결론의 타당성 역시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MYCIN은 이 부분에서 매우 양호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제작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스탠퍼드 대학 외부의 의학 전문가들이 판정한 결과, MYCIN이 제시한 처방의 타당성은 스탠퍼드
감염병 교수들의 처방만큼이나 높았다. MYCIN은 또한 처방 과정을 인간에게 알리고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자들의 바람과 달리, MYCIN은 의료 현장에서 임상실험을
거치거나, 의료 실무에 투입된 적은 없었다.
그것은 MYCIN의 높은 성능과 별개로, 의료 실무자들이 그 처방을 좀체 수용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다. 잘못될 경우 누군가는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MYCIN의 처방에 대해 최종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리고 MYCIN의 처방이 과연 인간 의사의 처방에 대해 가격대성능비가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AI가 내린 결론의 책임 소재와 가성비, 이 두 가지 문제는 MYCIN이 세상에 나온 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AI 업계의 가장 큰 미해결 과제다.
그 외에도 문제는 또 있었다. ‘작업 흐름 통합’, 즉 AI를 실무자들의 일상 활동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당시 기술로는 컴퓨팅 능력과 알고리즘의 정밀성이
모자랐고, MYCIN의 데이터베이스를 의료 현장과 학계의 지식 발전에 맞춰 최신화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렇게 MYCIN은 의료 실무에 투입되지 못한 채 실험 단계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 그리고 후대의 AI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의의는 분명하다.
- ❶ 리스프 언어LISP: 프로그래밍 언어의 한 계열로 오랜 역사와 괄호를 사용하는 문법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