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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용 인공지능의 역사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옛말에 한 생명이 천하보다 중하다고 했다. 의료는 소중한 생명을 다루기에 그만큼 신속 정확한 판단을 요구한다. 인공지능AI의 주된 개발 목적 중 하나가 인간의 중요한 의사 결정에 도움을 주는 것이므로, 의료 분야 역시 AI의 쓰임새가 매우 크다. 의료에 쓰이는 AI,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왔을까?

왜 의료용 AI인가?
무엇보다 의료용 AI의 장점과 필요성부터 따지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이다. 우선 의료용 AI는 인간보다 질병을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조기 진단할 수 있다.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미묘한 초기 증세를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다. 의료 자동화와 업무 흐름 합리화를 통해 진료의 효율과 생산성도 증대시킬 수 있으며 원격의료와 가상 도우미, 높은 진료 접근성으로 환자의 편의와 복지를 증대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조기 발견과 신약 개발을 활성화해 의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데이터 분석과 임상실험, 맞춤형 의료의 효율 증대는 의학 연구를 가속화할 것이다. 의료 격차 해소에도 일조할 수 있다.

AI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이때부터 AI 의료 분야에 대한 활용 역시 모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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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의료용 AI, MYCIN
MYCIN은 의료용 AI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AI다. 1970년대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개발한 MYCIN은 특정 감염병에 대한 치료 방식을 의사에게 추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칙 기반 후방 추론 전문가 시스템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균혈증, 뇌수막염 등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식별해내고, 그에 맞는 항생제와 환자의 체중에 따른 투여량 등을 정확히 처방하기 위한 제품이었다. 여담이지만 MYCIN은 어떤 대단한 뜻을 지닌 이름은 아니었고, 항생제 이름 뒤에 붙는 접미사 mycin(마이신)에서 따온 것이다. 브루스 G. 뷰캐넌, 스탠리 N. 코헨 등의 지도를 받은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 학생 에드워드 쇼트리프가 리스프 언어를 사용해 제작했다.

MYCIN이 속한 전문가 시스템은 AI의 새로운 진화 과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과거의 AI가 논리적 추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해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전문가 시스템은 문자 그대로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 특히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응용해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 시스템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규칙과 올바른 관행, 판단 규정, 타당한 논리적 추론 등에 의거한 과정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결론의 타당성 역시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문가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MYCIN은 이 부분에서 매우 양호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제작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스탠퍼드 대학 외부의 의학 전문가들이 판정한 결과, MYCIN이 제시한 처방의 타당성은 스탠퍼드 감염병 교수들의 처방만큼이나 높았다. MYCIN은 또한 처방 과정을 인간에게 알리고 납득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작자들의 바람과 달리, MYCIN은 의료 현장에서 임상실험을 거치거나, 의료 실무에 투입된 적은 없었다.

그것은 MYCIN의 높은 성능과 별개로, 의료 실무자들이 그 처방을 좀체 수용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료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다. 잘못될 경우 누군가는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면 MYCIN의 처방에 대해 최종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리고 MYCIN의 처방이 과연 인간 의사의 처방에 대해 가격대성능비가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논쟁거리였다. AI가 내린 결론의 책임 소재와 가성비, 이 두 가지 문제는 MYCIN이 세상에 나온 지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AI 업계의 가장 큰 미해결 과제다.

그 외에도 문제는 또 있었다. ‘작업 흐름 통합’, 즉 AI를 실무자들의 일상 활동에 자연스럽게 통합시키는 것이 큰 문제였다. 당시 기술로는 컴퓨팅 능력과 알고리즘의 정밀성이 모자랐고, MYCIN의 데이터베이스를 의료 현장과 학계의 지식 발전에 맞춰 최신화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렇게 MYCIN은 의료 실무에 투입되지 못한 채 실험 단계에서 사라졌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 그리고 후대의 AI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을 명확히 제시했다는 의의는 분명하다.
  • ❶ 리스프 언어LISP: 프로그래밍 언어의 한 계열로 오랜 역사와 괄호를 사용하는 문법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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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최초의 의료용 AI MYCIN이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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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뷰캐넌과 쇼트리프가 저술한 MYCIN 실험에 관한 책 <규칙 기반 전문가 시스템>
인공신경망과 딥러닝: 인간을 모델 삼아 더욱 똑똑해진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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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신경망 층을 연속적으로 쌓아 자율학습시키는 딥러닝을 통해 AI 연구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앞서도 말했듯이 초기의 AI는 임상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기술의 가장 훌륭한 모델은 자연이라고 했던가? AI 연구자들 역시 자연 지능, 즉 인간의 지능을 모델 삼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력한 것은, AI에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 즉 기계학습 능력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일일이 인간이 데이터를 입력하다 보면 도저히 최신화할 수 없다. 인공신경망과 그에서 파생된 딥러닝은 이러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인공신경망이란 그 이름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인간 두뇌의 뉴런(신경세포) 연결 상태를 전자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인간 두뇌에는 1000억 개의 뉴런이 있다. 이 뉴런들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주위의 다른 뉴런들과 신호를 주고받는다. 하나의 뉴런이 다른 뉴런들로부터 전달받은 신호에 반응, 세포막이 역치전위에 도달하면 다른 뉴런들에도 일정한 크기의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뉴런 간의 연결이 활성화되어 있는 두뇌일수록 머리가 좋고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 인공신경망은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재현, 이미지 인식 등 그동안 AI가 하기 어려웠던 임무를 더욱 잘 수행하고자 했다. 뉴런 대신 노드를 사용하고, 이 노드는 입력층, 은닉층, 출력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드가 다른 노드로부터 입력층에서 신호를 받으면, 미리 부여된 가중치와 계산 후 주어진 활성화 함수를 거쳐 은닉층으로 전파되고, 같은 방식으로 그다음 층으로 전해질 신호를 계산, 출력층에서 해당하는 결과를 다른 노드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인공신경망 층을 연속적으로 아주 많이 쌓아 기계를 ‘자율학습’시키는 것이 딥러닝이다. 딥러닝은 분류에 사용할 데이터를 가져다주기만 하면 스스로 학습할 수 있으므로 학습 효율과 정확도가 매우 우수하다. 두 차례의 AI 빙하기 이후 찾아온 AI 연구 르네상스기에 개발된 오늘날의 여러 AI가 기존과 격을 달리하는 성능을 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덕분에 AI는 의료뿐 아니라 영상, 사진, LLM, 자율주행자동차 등 다양한 분야에 더욱 널리, 그것도 실용적으로 쓰일 수 있게 되었다.
  • ❷ 노드node: 컴퓨터 과학에 쓰이는 기초적인 단위로 대형 네트워크에서는 장치나 데이터 지점을 의미한다.
의료용 로봇: AI에 물리력 부여
오늘날의 AI는 회로와 디스플레이 안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물리력을 가지고 외부 세계로 나와 움직이기도 한다. 이렇게 물리력을 지닌 AI를 우리는 로봇이라고 부른다.

의료용 로봇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수술 로봇이다. 로봇은 인간과 달리 피로를 모르고, 정밀한 동작도 편차 없이 무한 반복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매우 높은 정밀도를 요하는 수술에 적합하다. 원격조종 할 수도 있어 원격의료에도 쓸모가 높다. 사상 최초로 로봇을 사용한 수술이 실시된 것은 무려 40여 년 전인 지난 1983년 이었다. 같은해 3월 12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수술용 로봇 아스로봇Arthrobot이 조종자의 음성 명령에 따라 환자의 다리를 정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한 1985년에는 유니메이션 퓨마 560 로봇이 환자의 두뇌 조직 검사에 투입되었다. 1992년에 첫 등장한 수술용 로봇 로보닥Robodoc은 2008년, 로봇으로서는 최초로 미 FDA 승인을 얻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솝, 제우스, 다빈치 등의 유명한 수술용 로봇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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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메이션 퓨마 560
의료용 AI의 그림자
의료용 AI에는 장점만큼 사실 많은 문제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개인정보 보안이다. 건강 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엄중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료용 인공지능은 그 건강 정보를,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다. 누군가 악용한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알고리즘의 편향도 큰 문제다. AI의 학습은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데이터 자체, 또는 그 데이터를 취급하는 사람의 편향에 따라 AI의 학습 내용도 편향성을 띨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특정 환자에 대한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진료와 치료라는 위험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아직은 높은 설치 및 운용 비용, 알고리즘 자체가 갖는 난해함과 불투명성, 너무 빠른 기술적 발전에 비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관련 제도, 환자와 신뢰에 기반한 인간관계를 쌓기 어려운 점 역시 문제점으로 꼽힌다. 생명이라는 가장 고귀한 가치를 맡기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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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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