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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뇌공학이 바꿀
인류의 미래
임창환 한양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실험실에서 뇌를 만든다고?
‘뇌공학’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에서만 즐겨 쓰는 용어다. 2010년대 중반 우리 정부에서 뇌과학 분야를 분류할 때 뇌의학, 뇌신경생물, 뇌인지, 뇌공학의 네 분야로 나누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지금은 대학에 ‘뇌공학과’가 여럿 생겼을 정도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됐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뇌공학은 우리가 보통 ‘공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다른 분야들과는 성격이 달라 보인다. ‘공학工學’은 ‘무언가를 만드는 학문’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기계공학은 ‘기계를 만드는 학문’, 전기공학은 ‘전기를 만드는 학문’이다. 생명공학만 하더라도 실험실에서 유사 기관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공학’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뇌공학’에 포함된 ‘뇌’는 모든 고등 생명체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완성된 신체 기관이다. 더구나 그 복잡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아직 인류는 뇌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뇌를 만들어내는 학문이라니? 하지만 놀랍게도 뇌공학자들의 궁극의 목표는 ‘실험실에서 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뇌공학은 크게 뇌를 읽어내는 기술, 뇌를 조절하는 기술, 뇌를 모방하는 기술로 분류할 수 있다. 각 주제별로 현재 어떤 뇌공학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 사례 위주로 살펴본다.
뇌를 읽어내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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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수술로봇.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에 이르렀고, ‘백세시대’라는 표현은 이미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노화로 인한 뇌질환의 유병률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치매는 가장 큰 도전 과제로 꼽힌다. 알츠하이머치매가 발병하면 뇌에서는 아밀로이드베타단백질이 축적되고, 뇌가 점차 위축되는 변화가 관찰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뇌 영상에서 명확히 드러날 정도라면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뇌공학자들은 최신 영상 분석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초기 치매 환자의 뇌 영상에서 미세한 변화를 찾아내거나, 뇌파 및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신호로부터 치매의 단서를 탐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 뇌공학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치매치료제 시장의 확대로 글로벌 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치매 진단이 뇌공학의 주요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최근 뇌공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제는 단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다. 2017년 3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다섯 번째 회사인 ‘뉴럴링크Neuralink’의 설립을 발표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뉴럴링크는 뇌(뉴런)와 무언가를 연결하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다. 머스크는 뉴럴링크의 초기 목표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기술개발을 제시했으며, 이를 인공지능과의 연결로 확장한 뒤 궁극적으로 인간의 뇌와 뇌를 연결하는 기술을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2024년 공개한 뉴럴링크의 첫 제품은 뇌 사이의 통신을 뜻하는 ‘텔레파시Telepathy’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뇌공학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머스크가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BCI 분야에 진출한 것을 두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 혹은 뇌와 뇌의 연결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워 대중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뉴럴링크는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2019년부터 매년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기술과 성과를 발표하며 BCI 분야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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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수술로봇.
기존의 딱딱한 바늘 형태 전극을 사용해 뇌 신호를 측정하던 방식은 뇌척수액 속에서 떠 있는 뇌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내는 문제가 있었다. 뉴럴링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늘 대신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실에 전극을 코팅한 ‘신경실neural thread’을 뇌 표면에 삽입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과정은 흔히 ‘바느질’ 또는 ‘모내기’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뉴럴링크는 이 수술을 위한 로봇도 개발했다. 뇌 표면에 삽입된 신경실은 신호 측정을 위한 ‘브레인 칩’인 ‘더-링크The Link’와 연결된다. 더-링크 시스템은 두개골에 삽입되는데, 수술이 끝나고 머리카락이 자라면 밖에서 볼 때는 내부에 이 칩이 삽입됐는지 여부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 이 브레인 칩에는 신호 측정용 칩뿐만 아니라 몸 밖으로 측정 신호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통신 칩 그리고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충전식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 모든 수술 과정이 부분마취 상태에서 진행되며, 수술 시간은 1시간 이내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심지어 이 수술을 라식수술에 비유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는 원숭이의 뇌에 더-링크를 삽입하고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간단한 게임을 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23년에는 미국 FDA로부터 인체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고, 2024년 1월에는 사지마비 환자인 29세 놀런 아르보의 뇌에 더-링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삽입했다. 두 달 뒤, 아르보가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체스 게임을 즐기는 동영상이 공개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뉴럴링크는 두 번째 환자의 뇌에 더-링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데 이어, 시각장애인의 대뇌 시각피질에 뉴럴링크를 삽입해 시각을 회복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뇌공학 기술이 실질적인 의료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뉴럴링크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는 싱크론Synchron,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Precision Neuroscience, 클리나텍Clinatec, 네오-BCINEO-BCI 등의 경쟁사가 다수 설립됐다. 이미 인체 대상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회사도 여럿이다. 국내에서는 해외보다 다소 출발이 늦기는 했지만, 현재 관련 회사가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BCI 분야는 뇌에 브레인 칩을 삽입하는 ‘침습형invasive BCI’ 방식보다는 머리 밖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비침습형non-invasive BCI’ 연구가 주로 이뤄져 왔는데, 많지 않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뇌를 조절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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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두개자기자극 시술 장면.
인간의 뇌는 다양한 외부 자극에 반응한다. 전통적으로는 약한 전류를 흘리거나 강한 자기장 펄스를 이용해 뇌를 조절하는 방식이 연구돼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빛과 소리(특히 초음파)를 활용한 뇌 자극 기술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뇌 조절 기술은 특정 뇌 영역의 활동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다양한 뇌질환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뇌 조절 기술로는 경두개자기자극TMS이 있다. 이 기술은 머리 바깥에서 자기장을 가해 특정 뇌 부위의 활동성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나 조울증 환자는 좌뇌와 우뇌의 활동성 불균형이 자주 나타나는데, 우뇌의 활동이 과도하게 증가된 경우 자기장 자극을 통해 우뇌의 활동성을 낮춤으로써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반면 뇌졸중 환자의 병변 부위에 자기장 자극을 가해 활동성을 높여주면 손상된 기능 회복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은 약물 복용이나 주사와 같은 신체적 투입 없이도 약물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전자약electroceuticals’이라는 용어로 불린다. 이는 약물 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으며 뇌질환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전자약 기술은 뇌의 특정 부위 활동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지 기능의 향상에도 활용될 수 있다. 20분가량의 전기 자극만으로 작업 기억력, 수학 계산 능력, 직관력, 판단력, 집중력 등 고차원 인지 기능이 일시적으로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전자약 기술은 운동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도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스키점프 선수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한 결과, 신체 균형 능력과 집중력이 향상돼 점프 비거리가 늘어났다는 결과를 얻었다. 엘리트 사이클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동일한 거리를 달렸을 때 전기 자극을 받은 선수들이 피로감을 덜 느꼈다는 보고가 있었다. 최근에는 비침습적 방식으로 뇌의 깊은 부위를 정밀하게 자극하는 기술이나 웨어러블 기기 형태로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뇌 자극 전자약이 개발되고 있다. 특히 우울증 등 정신질환 치료제의 경우 상대적으로 부작용 위험이 낮은 전자약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뇌 내에 삽입하는 전자약도 있다. 이미 4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뇌심부자극술DBS 장치가 대표적 사례다. 뇌심부자극술은 긴 바늘 형태의 전극을 뇌의 깊은 부위에 찔러 넣어 전기 자극을 가하는 방식으로 파킨슨병이나 중증 우울증 등의 치료에 효과적이다. 뉴럴링크의 시스템도 추후에는 전자약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뇌 신호를 읽어 뇌의 상태를 알아낸 뒤 적절한 뇌 자극을 가하는 스마트한 전자약도 개발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술을 폐루프closed-loop 전자약이라고 한다. 향후에는 먹는 약 대신 다양한 전자약을 처방받아 뇌질환을 치료하는 일이 일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 ❶ 펄스pulse: 매우 짧은 시간 동안에 큰 진폭을 내는 전압이나 전류 또는 파동
뇌를 모방하는 기술
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 뇌의 효율적인 정보처리 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간은 단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사물의 특징을 빠르고 정확하게 인식하는 이른바 ‘원샷 러닝one-shot learning’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첨단 인공지능조차 학습을 위해서는 여전히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이처럼 인간 뇌의 놀라운 능력을 모방한 인공지능이 개발된다면, 극도로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과 함께 뛰어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간단한 뇌의 작동 원리만을 모방해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수준임에도, 기존의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 구현한 인공지능보다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사례가 많다. 우리 뇌의 효율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작은 세상 네트워크small-world network’라는 특성이 있다. 이는 가까이 있는 신경세포들은 직접 연결되지만, 멀리 떨어져 자주 교류하지 않는 신경세포들은 허브 뉴런hub neuron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말한다. 이 네트워크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미국 UC 샌디에이고 연구팀은 인간 뇌의 작은 세상 네트워크를 모방해 ‘스몰월드넷SWNet’이라는 새로운 딥러닝 구조를 제안했다. 연구에 따르면, 이 구조를 활용하면 기존 딥러닝 방법보다 최대 2.1배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리 뇌는 사물을 인식할 때 두 가지 경로로 나눠 정보를 처리한다. 하나는 사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경로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경로다. 이 중 사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경로가 더 빠르게 작동한다. 이는 다가오는 물체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전에 먼저 피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뇌가 이러한 방식으로 진화한 덕분이다. 2021년 중국 상하이교통대 연구팀은 이 특성을 모방한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 ‘패스트슬로우넷FastSlowNet’을 개발했다. 이 알고리즘은 기존 알고리즘과 유사한 인식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에너지 소모를 10분의 1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뇌공학은 인간의 뇌를 읽고, 조절하고, 모방하는 첨단 공학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분야다. 뇌공학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다양한 뇌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장애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새로운 소통의 방식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뇌공학이 만들어갈 미래에 더 큰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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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환 한양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뇌공학연구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뇌공학자로 공학 문화 확산에도 관심이 많아 <뉴럴링크>,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등 다수의 공학 교양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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