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읽어내는 기술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수술로봇.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에 이르렀고, ‘백세시대’라는 표현은 이미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고령화의 진전과 함께
노화로 인한 뇌질환의 유병률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알츠하이머치매는 가장 큰 도전 과제로 꼽힌다. 알츠하이머치매가
발병하면 뇌에서는 아밀로이드베타단백질이 축적되고, 뇌가 점차 위축되는 변화가 관찰된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뇌 영상에서 명확히 드러날 정도라면 이미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뇌공학자들은 최신 영상 분석 기술과 인공지능을 활용해 초기 치매 환자의 뇌 영상에서 미세한 변화를
찾아내거나, 뇌파 및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신호로부터 치매의 단서를 탐지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 국내 뇌공학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치매치료제 시장의 확대로 글로벌 무대에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치매 진단이 뇌공학의 주요 연구 분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최근 뇌공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제는 단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다. 2017년 3월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다섯 번째 회사인 ‘뉴럴링크Neuralink’의 설립을
발표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뉴럴링크는 뇌(뉴런)와 무언가를 연결하는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다. 머스크는 뉴럴링크의 초기 목표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BCI
기술개발을 제시했으며, 이를 인공지능과의 연결로 확장한 뒤 궁극적으로 인간의 뇌와 뇌를 연결하는 기술을 구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실제로 2024년 공개한
뉴럴링크의 첫 제품은 뇌 사이의 통신을 뜻하는 ‘텔레파시Telepathy’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뇌공학 기술을 보유하지 않은 머스크가 막대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BCI 분야에 진출한 것을 두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우려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뇌와 인공지능의
연결 혹은 뇌와 뇌의 연결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가까워 대중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뉴럴링크는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2019년부터 매년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기술과 성과를 발표하며 BCI 분야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수술로봇.
기존의 딱딱한 바늘 형태 전극을 사용해 뇌 신호를 측정하던 방식은 뇌척수액 속에서 떠 있는 뇌에 반복적으로 상처를 내는 문제가 있었다. 뉴럴링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늘 대신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는 실에 전극을 코팅한 ‘신경실neural thread’을 뇌 표면에 삽입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과정은 흔히 ‘바느질’ 또는 ‘모내기’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뉴럴링크는 이 수술을 위한 로봇도 개발했다. 뇌 표면에 삽입된 신경실은 신호 측정을 위한 ‘브레인 칩’인 ‘더-링크The Link’와 연결된다. 더-링크 시스템은 두개골에
삽입되는데, 수술이 끝나고 머리카락이 자라면 밖에서 볼 때는 내부에 이 칩이 삽입됐는지 여부를 전혀 알아챌 수 없다. 이 브레인 칩에는 신호 측정용 칩뿐만 아니라 몸 밖으로 측정
신호를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는 통신 칩 그리고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충전식 배터리가 내장돼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이 모든 수술 과정이 부분마취 상태에서 진행되며, 수술 시간은
1시간 이내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심지어 이 수술을 라식수술에 비유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에는 원숭이의 뇌에 더-링크를 삽입하고 원숭이가 생각만으로 간단한
게임을 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2023년에는 미국 FDA로부터 인체 임상시험 허가를 받았고, 2024년 1월에는 사지마비 환자인 29세 놀런 아르보의 뇌에 더-링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삽입했다. 두 달 뒤, 아르보가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체스 게임을 즐기는 동영상이 공개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 뉴럴링크는 두 번째 환자의 뇌에 더-링크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식한 데 이어, 시각장애인의 대뇌 시각피질에 뉴럴링크를 삽입해 시각을 회복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뇌공학 기술이 실질적인 의료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뉴럴링크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는 싱크론Synchron, 프리시전 뉴로사이언스Precision Neuroscience, 클리나텍Clinatec,
네오-BCINEO-BCI 등의 경쟁사가 다수 설립됐다. 이미 인체 대상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회사도 여럿이다. 국내에서는 해외보다 다소 출발이 늦기는 했지만, 현재 관련
회사가 론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BCI 분야는 뇌에 브레인 칩을 삽입하는 ‘침습형invasive BCI’ 방식보다는 머리 밖에서 뇌파를 측정하는
‘비침습형non-invasive BCI’ 연구가 주로 이뤄져 왔는데, 많지 않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