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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융합의학의 만남
‘의사과학자’ 의료 혁신 이끈다
김남국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영상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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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은 4차산업혁명과 맞물려 의료 서비스 전반을 재편할 핵심 기술로 자리 잡으며 의료 현장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의학과 공학, 자연과학 등 학문 간 융합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의사과학자가 있다. 울산의대/서울아산병원 김남국 교수를 만나 AI와 학문의 융합이 어떤 혁신을 낳고 있는지 물었다.

word 김광균 photo 김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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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는 의학과 과학을 결합해 연구하는 전문가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의사와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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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진료를 하는 의사를 ‘임상 의사’ 라고 합니다. 그와 달리 ‘의사과학자’는 임상을 병행하기도 하지만 주로 임상 경험이나 교육을 기반으로 과학적 연구를 수행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약이나 의료기기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의사 면허를 가진 임상 의사가 아니라면 임상시험을 할 수 없기도 하지만, 환자를 보는 임상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 의사 자격을 갖추고 연구에 임하는 것이 의사과학자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산업공학을 전공하셨어요. 어떤 계기로 영상의학, 융합의학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의 길을 택하게 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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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의사과학자는 아닙니다. 공학을 전공한 공학자로서 의학에 필요한 의공학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것이죠. 의대 교수가 되면서 기초의학과 임상의학이 융합된 중개의학 연구를 주력으로 하고 있습니다. 석사 시절 제 논문 주제는 3차원 시각화로, 당시 자동차 설계 등의 분야에서는 캐드CAD로 디자인하고 있었는데 CT(컴퓨터단층촬영) 등 의료영상 장비가 발달하면서 복잡한 인체 구조를 3차원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기술에 매력을 느껴 공학에서 영상의학으로 넘어오게 됐고요. 초기에는 CT로 인체의 끊어진 단층을 찍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기술이 점차 발달하면서 3차원을 통으로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시각화하는 필요성도 늘었습니다. 의대 교수가 된 이후에 이러한 연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상 정량화 연구를 주로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한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AI 연구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보통 어떤 경로를 통해 의사과학자가 되는지, 별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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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의사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문의를 목표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실제로 의사의 90%가 전문의입니다. 전문의로 일하면서 대학병원에 남거나 연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런 경우 의대 교수를 목표로 하기 위해 의학박사를 취득하곤 합니다. 반면 공학이나 생물학 등 기초과학 분야에서 석·박사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의학과가 아닌 다른 분야의 석·박사 과정을 거치는 분들을 통칭해 의사과학자라 할 수 있어요. 즉 임상이 주가 아니라 다른 학문을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이죠. 의사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의사과학자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의료 AI 분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여러 연구 분야 가운데 의료 AI 분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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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예를 들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공기 중의 균이 체내에 유입되면 폐 안 기도Airway 벽에 염증 반응이 생기면서 기도 벽이 두꺼워집니다. 폐질환을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미세한 기관지까지 분석해야 하는데 고전 영상처리 방식으로는 어렵습니다. 깊고 정교한 구조로 돼 있는 장기의 경우 CT 촬영을 아무리 잘해도 의학적으로 원하는 수준의 해상도가 잘 나오기 힘듭니다. 하지만 딥러닝 기술을 활용하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어요. 딥러닝을 통해 CT로 촬영한 3D 이미지를 학습시키면 빠르고 정확한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것이 AI가 주는 매력이죠. 좋은 AI 모델을 만들면 의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워크플로우workflow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 AI 분야를 연구하면서 얻은 성과를 소개해주신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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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챗GPT가 등장하며 많은 사람들이 생성 모델에 대한 관심이 커졌는데, 저희 연구팀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생성 모델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빠르고 정확하게 질환을 판별할 수 있도록 생성 모델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진단 정확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질환에 따라 너무 희귀하거나 변이가 많아서 학습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특정 질환을 학습시키는 방법 대신 정상적인 CT 데이터를 학습해 질환을 찾아내는 방식의 딥러닝 생성 모델을 만들었죠.

또 하나는 디지털트윈 연구인데요. 간암의 경우 환자마다 특성이 다를 뿐더러, 치료법이 다양하고, 병원마다 특화된 치료법이 다릅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유명하다는 병원이나 의사를 찾는 것이 전부일 뿐, 어느 병원이 어떤 치료법을 잘 다루는지는 알기 어렵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환자가 병원별로 어떤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하고 치료 이후 생존율을 예측할 수 있는 임상 의사결정 지원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AI 기술과 의학의 융합을 시도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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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연구를 잘하려면 여러 전공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기본적으로 통계학, 수학, 컴퓨터 사이언스, 의학 등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의사와 소통하는 방법도 배워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교육과정이 거의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의료 AI 연구의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입니다. 전체의 연구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도 규제 경쟁력을 제고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AI가 산업 전반에 도입되어, 직업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의료 분야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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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분야에 AI가 도입되어, 전반적으로는 매우 놀라운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 수준에선 의학적 퀄리티를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반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의료 분야에는 매우 다양한 직종이 있습니다. 역할에 따라 그중 일부가 LLM(대형 언어 모델)으로 대체될 순 있겠죠. 하지만 의료 행위와 관련해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AI가 의료진을 대체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AI와 의사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커질 텐데, 여기에는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의사의 업무 가운데 40% 정도가 허드렛일이라고 하는데요. 만약 그런 업무에 AI가 도움을 준다면 그 40%의 에너지를 그동안 미흡했던 부분에 쓸 수 있겠죠. 그 밖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사과학자는 의학과 과학을 아우르는 전문가로서 중요한 직업이지만 불안정성, 낮은 처우, 부족한 예산 지원 등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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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의사의 경우 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위치에 있고, 항상 수요가 있습니다. 반면 의사과학자는 임상 의사 대비 처우가 좋지 않고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한계도 명확합니다. 따라서 연구를 좋아하고 계속 하고 싶다 하더라도 섣불리 도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의사과학자를 지원하는 정부 과제가 어느 정도 생겨서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사회는 과학자나 의과학자를 존중해주는 문화가 부족한 듯싶습니다. 연구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보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실패와 함께 실패자란 낙인을 찍곤 합니다. 환자를 잘 보는 것만큼 연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죠.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임상의사와 의사과학자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더해진다면 좋은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수한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과 자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특히 의료 AI 분야의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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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열린 사고, 소통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본인의 전공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보이지만 다른 분야를 넘나들진 못합니다. 하나의 학문을 깊게 팔수록 배타성과 편협성이 강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융합 학문 분야에선 절대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이와 더불어 책이나 자격증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있는데요. 학부 때에는 기초학문을 충실히 소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융합 학문은 대학원에서 하게 되는 만큼 학부 때 수학이나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 기초학문을 충실히 다지는 게 좋습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응용도 가능하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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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잡 인사이드에는
똑소리단 권희원, 김경은, 김경탁, 김대영, 김동민, 김동찬, 김정민, 김정상,
김재은, 김태권, 김형우, 류창흔, 문준아, 박기혁, 서동성, 손상완, 서정수, 심형훈, 유한결, 윤혜인,
이영철, 정연화, 전준규, 조상래, 한주석 님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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