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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Tomorrow>R&D Diary
선박 수중방사소음 줄이는 기술로
친환경‧고부가가치 조선 기술 격차 더 벌렸다
IMO 해양 환경보호 규제 대응을 위한 선박 수중방사소음 모니터링 및 소음 저감 기술개발
김아름 사진 김기남

UN 산하의 국제해사기구IMO, 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가 2050년 국제 해운업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든다는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채택한 데 이어,
선박의 수중방사소음에 대한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해양생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은 옳지만, 이것이 세계무역의 또 다른 장벽이 될 것이란 우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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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G KRISO Vortex Generator
Energy Saving & Propeller Cavitation Control Device
선박추진기 소음, 해양생물에겐 잔혹한 층간소음
수중방사소음은 해양생물의 일상을 방해하는 층간소음과도 같다. 바닷속 그들은 소리에 의존해 살아간다. 해양 생명체 대부분이 짝짓기, 이동, 먹이 찾기, 무리 찾기 등에 소리를 활용한다. 이 생태계에 큰 혼란을 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음, 그중에서도 선박이 발산하는 소음이다. 선박이 수중에 방사하는 소음은 크게 ‘선체 진동 소음’과 ‘추진기(프로펠러) 소음’으로 나뉘는데, 이 둘에 모두 영향을 주는 것이 추진기 캐비테이션Cavitation이다.

캐비테이션은 선박 뒤쪽에 설치된 추진기가 돌아가면서 기포를 발생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프로펠러가 돌아갈 때 앞면과 뒷면에 압력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프로펠러 앞면의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여기에서 추진기 날개의 압력이 증기압(일정한 온도에서 액체 또는 고체와 평형 상태에 있는 증기가 가지는 압력) 이하로 낮아지면 액체가 기화돼 공기 방울이 만들어진다. 배가 클수록, 빠르게 움직일수록 프로펠러는 큰 힘을 내야 하고, 추진기 캐비테이션 현상도 심해진다. 그리고 캐비테이션 현상이 심해질수록 선체에 가해지는 진동과 수중으로 방사되는 소음도 커진다. 결론적으로 선박의 대형화, 고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바닷속 소음 문제도 커졌고, 그에 따라 해양생물, 특히 해양 포유류의 고통도 증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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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캐비테이션 터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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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체 주변 물의 흐름을 선박 추진에 유리하게 바꾸고,
추진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낮추는 와류발생기 ‘K-VG’.
K-VG, 작은 장치에 담긴 놀라운 기능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설한신 박사는 함정공학연구센터, 미래 잠수함 저소음추진기 특화연구실의 수장으로 해군 함정과 잠수함의 소음을 줄이는 연구를 이어왔다. 그러던 차에 대형 상선이 방사하는 소음이 조선산업과 해운업계의 이슈로 부상하며 국내 조선업계와 산업부에서 선박 수중방사소음 기술개발 연구를 제안해왔다.

IMO가 현재 논의 중인 것이 선박의 수중방사소음 규제다. 과거 온실가스 감축 전략을 이끌었던 캐나다, 미국, EU가 이번에는 수중방사소음 규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해양생태계 보존에 적극적이다. 또 밴쿠버항을 중심으로 항만을 지나는 선박에 대해 수중방사소음을 측정하고, 저소음 친환경 선박을 대상으로 항만 이용료를 할인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조선산업의 다음 단계가 명확해졌고, 조선 기술력 1위 자리를 위해서 업계와 정부가 나섰다.

소음 저감 기술개발의 대전제는 ‘높은 효율’이다. 효율을 높이거나 최소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소음만을 줄여야 한다. 설 박사팀은 비행기와 자동차 등에서 쓰는 ‘와류발생기Vortex Generator’를 선박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와류란 유체(액체나 기체)가 회전하는 흐름이다. 쉽게 말해 물이나 공기 등이 특정한 방향으로 강하게 소용돌이치는 현상이다. 와류가 발생하면 주변 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선박에서도 와류를 잘 활용하면 선체 주변 물의 흐름을 선박 추진에 유리하게 바꾸고, 동시에 추진기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낮출 수 있다. 설 박사팀은 이 와류발생기를 ‘K-VGKRISO Vortex Generator’라고 이름 붙였다.

K-VG는 추진기 앞쪽 선미에 적용된다. 마치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생긴 두세 쌍의 막대 장치가 와류를 발생시켜 선체를 따라 흐르는 바닷물의 흐름을 바꾼다. 이는 자연스럽게 프로펠러로 이어지며, 캐비테이션 현상을 개선하고 소음도 낮춘다. K-VG를 적용한 선박은 기존 대비 50%가량 소음이 줄고, 추진 효율 또한 3~5% 향상되는 효과를 얻는다. IMO에서는 향후 10년간 3데시벨의 수중방사소음 저감을 목표로 기술개발을 권고하고 있다. 설 박사팀의 연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하는 수치다. 이 작은 장치 하나가 10년을 벌어준 셈이다. 제작 및 설치 비용 또한 유사한 연료 절감 기술 장치의 10분의 1 수준이며, 신조선뿐만 아니라 기존 운항 중인 선박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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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선내에서 수중방사소음을 계측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검증하고 관련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선박 수중방사소음 기술개발 선도국으로
안타깝지만 K-VG는 효과만큼 한계도 명확했다. 소음을 3데시벨 줄이는 것이 전부다. 추가적인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선내에서 수중방사소음을 계측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검증하고 관련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이는 실선 시험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우선 이번 연구가 국내 각 조선소의 최신 주력 선종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해당 선박이 건조돼 시운전 일정이 잡힐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대한해협 근처에서 시험을 진행하던 중에는 일본 해경의 경계도 받았다. 태풍 등 자연재해가 닥치면 처음부터 모든 일정을 다시 조율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한두 달에 한 번은 시험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모든 요소를 고려하니 1년에 두어 번이 전부였다.

“귀한 실선 시험 기회를 알차게 써야 했기 때문에 한 번 나갈 때마다 200% 이상 준비를 마쳤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시험은 잘 마무리됐고, 그 결과 덕분에 세계 최초, 대형 상선 최초로 노르웨이 DNV선급의 저소음 선박 인증SILENT-E을 받기도 했습니다. 추후 연구를 이어갈 만큼은 데이터를 얻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현재 K-VG는 캐나다 인센티브 프로그램 ‘EcoAction’에 브론즈Bronze 등급으로 등록돼 이를 장착한 선박은 밴쿠버항 입항료 23%를 할인받고 있다. 과제 마지막 연도였던 올해 초에는 K-VG 기술을 국내 기자재업체에 기술이전했으며, 설 박사팀은 IMO의 GloNoise 프로젝트에 기술 선도국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 미국, EU 등과 함께 선박 수중방사소음 기술에 대한 개도국들의 인식 향상과 관련 규제 방향 및 기술개발이 주된 목적이다. 또 정부 측과 협의해 IMO 정책 개발과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후속 연구도 계획 중이다.

“선박 수중방사소음을 IMO의 규제로 강제화할 것인가, 선박 설계와 운항 중 기술적 권고에 그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치열하지만 결국은 어떤 기준으로 완성될 텐데요. 이때 우리 조선업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환경 고부가가치 선박을 위한 연구개발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는?
조선 해양 분야의 국내 유일 정부 출연 연구소로, 선박해양플랜트 분야의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 및 실용화 연구를 종합적으로 수행한다. 국가의 현안을 해결하고 산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선도적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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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음 저감 기술, 해외 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다
우리 선박해양연구소KRISO 연구팀은 2023년 9월 18일과 19일 양일간 진행된 IMO의 ‘에너지 효율성과 선박의 수중방사소음 간의 관계에 대한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총 25곳의 전문 연구팀이 각자의 연구 결과와 미래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발표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은 팀이 바로 우리 KRISO였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K-VG는 수중방사소음을 3데시벨 줄일 뿐만 아니라 선박의 추진 효율도 적게는 3%, 많게는 6%까지 향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조선뿐만 아니라 현재 운행 중인 선박도 보수를 통해 바로 적용할 수 있으며, 비용 또한 타 연료 절감 장치와 소음 저감 장치와 비교해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운사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틀간 진행된 워크숍 곳곳에서 우리의 이름과 기술이 언급됐고, 캐나다와 EU 등의 기술 선도국 또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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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수중방사소음 모니터링 및 소음 저감 기술개발을 함께한 연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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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 선도국으로 IMO GloNoise 프로젝트에 참여
  • 국제사회에 우리의 원천 기술이 경제성과 실용성을 확보한 해양 환경보호 친환경 선박 기술로 인정
  • 그리스의 최대 해운사 마란가스MARAN GAS Maritime, 싱가포르 IMC 해운 등과 국내외 해운사의 다수 선박에 기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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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년부터 2026년까지 IMO와 함께 수중방사소음 문제를 살피고, 기술 필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에 힘쓰며 동시에 관련 규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계획
  • 정부 및 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수중방사소음 규제에 대한 대응책 및 관련 기술개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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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요 증가에 따라 선박 수중방사소음 기술 또한 우리의 강점으로 작용할 것
  • 선박 수중방사소음 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 및 추가적인 선박 수중방사소음 저감 기술을 개발해 IMO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해양생태계 보호
수중방사소음 분야의 전문가들만 모인 권위 있는 워크숍에서 인정받은 그 순간이 잊히지 않고, 그간의 수고에 대한 위로를 받은 기분입니다. 무엇보다 IMO가 선박 수중방사소음 저감을 위해 권고하는 기술적 개발 절차와 우리의 연구개발 과정이 거의 유사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연구가 올바르게 진행됐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어가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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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신 책임연구원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함정공학연구센터장, 미래 잠수함 저소음추진기 특화연구실장.
해군 함정과 잠수함, 선박의 소음을 줄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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