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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화학산업의 발전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우리는 실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플라스틱, 비닐, 페인트, 의약품, 연료… 이 모든 것이 석유화학 제품이다.
이러한 제품들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 우리의 현대 생활은 엉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석유화학 제품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오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원유는 땅에서 솟아난다.
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던가? 원유는 그 자체로는 큰 상품적 가치가 없다. 인간의 (석유화학) 기술을 통해 다양한 제품으로 만들어져야 상품적 가치와 효용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석유화학 기술을 이용한 석유화학산업. 그 발전사와 주요 제품들을 알아본다.

Keyword 1.
올레핀과 방향족
우선 석유화학 기술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석유화학 기술이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유를 정제해 우리 생활에 필요한 화학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이다. 정제 기술은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서도 다루듯이, 다른 말로 하면 원유를 분해해 다양한 제품(가솔린,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아스팔트 등)을 만드는 방법이다.

석유화학 기술로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하지만 연료를 제외한 형태의 석유화학 제품은 크게 올레핀olefins과 방향족aromatics(영어 발음을 그대로 읽은 ‘아로마틱스’로도 불린다) 두 가지 계열로 나눌 수 있다. 액화천연가스를 분해하면 올레핀이, 나프타Naphtha(‘납사’라고도 불린다)를 촉매 개질하면 방향족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올레핀과 방향족, 기타 제품들은 실로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의 기반이 된다.

올레핀과 방향족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제품들은 우리 생활에 필수적이다. 석유화학 기술을 통해 플라스틱, 합성섬유, 합성고무, 염료와 희석제, 합성세제, 폴리우레탄, 비료 등의 제품들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화학물질이 없다면 우리의 생활 수준은 순식간에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후퇴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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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를 정제해 다양한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석유화학 기술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Keyword 2.
개척자
다양한 화학물질을 생산하는 석유화학 기술은 의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석유화학 기술의 기반을 다진 유기화학 분야의 개척자는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 슈브뢸Michel Eugène Chevreul이다. 19세기 이전 대다수의 화학자들은 유기물은 생체 에너지를 통해 만들어진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물질로 정의했다. 즉 유기물은 생명체의 생명 활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고 여겼다. 처음에는 슈브뢸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지방과 알칼리 성분으로 만들어지는 비누의 특성을 연구하던 1811년, 지방의 화학적 구성과 성분을 알아낸다. 이로써 생명체의 몸속이 아닌 인공적 환경에서 유기물인 지방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Keyword 3.
뵐러 합성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Friedrich Wöhler는 슈브뢸의 발견을 기반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기물을 인공적으로 가공해 유기물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는 1828년 시안산암모늄으로부터 오줌의 주성분인 유기물 요소를 합성해냄으로써 이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뵐러 합성이다. 이로써 유기물의 정의는 탄소를 축으로 하는 분자들로 구성된 물질로 바뀌게 됐다.
Keyword 4.
최초의 합성염료
유기물에 대한 연구, 즉 탄소의 배열 상태에 따른 특성이 연구되면서 여러 발견이 이뤄진다. 1856년 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퍼킨William Henry Perkin 경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이용되는 키니네 분자를 연구하던 도중 우연히 보라색 염료, 즉 염색약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퍼킨은 제철 공업의 값싼 부산물인 콜타르에서 나오는 톨루이딘Toluidine을 원료로 가감법을 사용해 키니네를 합성하려고 했다. 가감법이란 출발 원료의 분자식을 목적 원료와 똑같이 변경함으로써 목적 원료를 얻는 방법이다. 퍼킨은 톨루이딘에 몇 개의 탄소 원자와 수소 원자를 덧붙이고, 그 후 산소 원자 몇 개를 더해 원소의 모양과 수를 키니네와 같게 하면 키니네를 합성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키니네가 아니라 보라색 염료가 나왔다. 이는 사실상 최초의 합성염료 생산이자,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합성염료산업의 시초가 됐다.
Keyword 5.
방향족의 발견
1858년 독일 겐트대학교의 교수이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케쿨레 폰 슈트라노니츠Friedrich August Kekulé von Stradonitz는 또 하나의 큰 발견을 해냈다. 다양한 탄소화합물을 연구하던 그는 특히 벤젠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우연히 꿈에서 본 자기 꼬리를 물고 있는 뱀 오우로보로스에 착안해, 탄소가 일명 ‘벤젠고리’라는 구조를 통해 산소와 1:1로 결합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벤젠고리에 탄소가 붙어 있는 형태에 따라 톨루엔, 자일렌 등의 다른 물질도 있음을 알아낸다. 앞서 언급한 방향족의 발견이었다. 방향족은 아스피린, TNT, 스티렌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됐다.
Keyword 6.
플라스틱의 발명
가장 대표적인 석유화학 제품인 플라스틱의 발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탄소고리를 이용해 만들어낸 획기적인 합성 소재 플라스틱. 그 기원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독일 출신의 화학자 크리스티안 쇤바인Christian Friedrich Schönbein이 있다. 그는 폭발물인 니트로셀룰로오스의 발명자로 유명하다. 이 역시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뤄진 것이었다. 그는 실험을 하다가 바닥에 질산과 황산 혼합물을 엎질렀다. 이를 앞치마로 닦아낸 후 난로 위에 널어 말리려는데 앞치마에서 갑자기 불이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타서 없어졌다. 질산 속 질산기가 앞치마 속 셀룰로오스를 산소 공급원으로 변화시키고, 이것이 가열되자 셀룰로오스가 완전하고 신속하게 산화되고 만 것이다.

영국의 화학자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가 이 물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에테르와 알코올을 니트로셀룰로오스에 배합해 원하는 모양의 틀에 넣고 가열해 건조시키면 단단하고 강한 소재를 성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상 최초의 플라스틱이었고, 파크스는 이 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따 파크신이라고 이름 붙여 1862년 만국박람회에 출품했다. 파크신은 당구공, 단추, 빗 등의 소재에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소재는 천연 고분자 물질인 셀룰로오스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완전한 합성 고분자물질로 이뤄진 최초의 플라스틱은 1907년 미국 과학자인 레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가 개발한 열경화성 플라스틱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다. 그는 독일의 과학자 아돌프 폰 바이어의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폰 바이어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섞었더니 녹지 않는 단단한 물질이 형성되는 바람에 실험 기구를 온통 못 쓰게 됐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를 본 베이클랜드는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나뭇조각과 섞은 뒤 고온처리해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데 성공, 베이클라이트라고 명명했다. 베이클라이트는 성형의 자유도, 강성, 제조 비용 면에서 파크신보다 우수했다. 베이클라이트는 당시 붐을 이루던 전기 제품의 외장재로 쓰이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Keyword 7.
폴리에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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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상에서 편하게 쓰는 비닐 팩도 알고 보면 석유화학 기술의 산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열가소성 플라스틱의 대명사라고 할 만한 폴리에틸렌이 발명됐다. 독일의 화학자 한스 폰 페히만Hans von Pechmann이 1899년 디아조메탄을 연구하다가 우연히 만들어낸 폴리에틸렌은 이중결합을 이루는 에틸렌이 마치 기차처럼 연속적으로 결합해 있는 형태인 고분자 중합체였다. 1933년 영국 임페리얼 화학공업사의 에릭 포셋과 레즈널드 깁슨이 고온 고기압에서 에틸렌과 벤즈알데히드를 결합시키려고 하다가 우연히 이 물질을 다시 합성해냈다. 1938년에는 같은 회사의 마이클 페린이 폴리에틸렌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절연성 필름과 포장재(통칭 비닐)의 주원료로 널리 이용됐다. 즉 우리가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비닐의 원료가 폴리에틸렌이다. 이후 독일의 화학자인 카를 치글러가 밀도를 높인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공정을 개발했고, 배관 및 자동차 부속품 등 높은 강성이 필요한 부품의 소재로 이용됐다.

이탈리아의 줄리오 나타 교수는 치글러의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 매우 규칙적인 구조를 가지는 폴리프로필렌을 만들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치글러와 나타는 1963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 외에도 폴리우레탄, 에폭시, PET 등 다양한 유기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만들어진 여러 중합체 소재가 탄생했고, 이들은 단열재, 수영복, 항공기의 소재, 기계 부품, 페트병 등 일상 속 무수히 많은 플라스틱 제품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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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의 중창 소재로 쓰이는 폴리우레탄.
석유화학 기술이 없다면 나무나 생고무를 중창으로 써야 했을 것이다.
Keyword 8.
환경
석유화학 제품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필수적이다. 일례로 코로나19 팬데믹 때 필수품이었던 손 소독제도 석유화학 기술이 없었다면 대량 생산과 보급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석유계 연료는 다양한 교통수단에도 활용돼 지구상 어디든 사람의 발길이 닿게 하고 있다.

그러나 석유화학산업은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 생산,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오명 역시 쓰고 있다.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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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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