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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지키는
K9과 K-기갑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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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탱크 1대도 없이 공산군의 침입을 맞았던 대한민국이 이젠 자국산 기갑장비로 무장했다. 휴전 상태인 북한의 도발을 막는 것을 넘어,
6·25전쟁 당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와준 인도, 호주, 튀르키예는 물론 폴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등의 나토NATO 국가에 수출되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데 이바지하게 되었다.

전장을 지배하는 ‘자주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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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움직이지 못해 다른 이동수단이 필요한 견인포
“포병은 전장의 신이다”라는 말은 현대전에서 진리로 통한다. 한때는 포병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포병 화력이 총력전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무기체계로 손꼽히는 게 바로 ‘자주포’이다.

재래식 포병은 크게 견인포와 자주포로 나뉜다. 견인포는 자력으로 이동하지 못해 다른 운송수단의 도움을 받아 포를 이동해야 한다. 반면 자주포는 그런 견인포의 단점을 보완한 것으로, 자체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명령과 전략에 따라 빠르게 포를 발사하고 사격 후에는 다른 장소로 이동이 가능하다.

자주포가 현대전에서 주목받은 이유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공격 성공률과 생존능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939년에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초기 자주포는 탱크 차체 위에 야전포를 올린 것이 대부분으로, 야전포가 이동이 가능하다는 정도의 의미였다. 이후 자주포 개량이 거듭되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전투원을 보호할 폐쇄형 전투실이 설치되었고 사격 통제 장비 및 각종 자동화 시스템 등이 도입되며 더욱더 발전된 무기체계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 ❶ 야전포Field gun: 산이나 들판 등 지상 전투에서 사용하는 화포를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말이나 인력으로 운반했고, 이후에는 차에 실어 운반했다.
K-방산 기갑장비 대표 ‘K9’ 자주포
우리나라의 자주포 개발은 1980년대 후반에 본격화되었다. 북한군 포병의 물량 공세로부터 질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신형 155mm 자주포 개발을 시작한 것. 처음에는 이미 전력화되어 있던 K55 자주포를 21세기 현대 전장 상황에 맞게끔 현대화하는 것이 계획이었지만, 육군은 아예 새로운 신형 자주포를 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K9이다.

K9은 기동력, 화력, 방어력 그리고 적절한 수준의 자동화가 잘 통합되어 있다. 톤당 20마력으로 기동성이 좋으며, 유기압 현수장치를 이용해 사격 후 바로 이탈이 가능해 적의 대포병 사격으로부터의 생존 가능성도 높다. 사거리 40km 달성을 위해 155mm 52구경장의 포신을 채택했으며, 사격통제장치를 자동화해 진지 점령 후 30초 내 초탄 발사가 가능하다. 또 자동장전 방식을 채택해 15초 내 3발을 발사할 수 있다. K9을 통해 초탄 발사 속도인 반응성이 재래식 견인포에 비해 10배, 구형 K55과 비교해도 3배 이상 빨라졌다. 운용 인력도 기존 견인포에 비해 약 1/3로 줄었다.

군 지휘관의 입장에서도 K9 자주포는 새로운 장을 열어준 무기체계다. 기존의 구형 K55 자주포의 경우, 자력 이동은 가능하지만 진지 점령 후 발사 준비를 마치고 포를 발사하는 방식에는 견인포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K9을 사용하게 되면서 방열이 자동화된 덕분에 K55에 비해 3배 높은 공격 효율을 가지게 된 것이다.

K9 도입 전, 포병 지휘관들의 주된 관심사는 ‘어디에 포를 배치하고 진지를 어떻게 전개할까?’ 하는 포 운영의 측면이 컸는데, K9 이후에는 ‘화력을 온전히 어떻게 운영할까?’ 등의 화력 운영 측면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K9은 단순 신형 장비가 아니라 포 운영의 큰 부분을 무기체계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즉, 지휘관이 화력 운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리 군 작전계획 자체를 바꾼 무기체계로 볼 수 있다.

K9이 완성되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국방과학연구소의 김동수 본부장이다. 2009년 8월 과로로 순직한 그는 우리나라 육상 무기체계 최고의 권위자로 ‘K9의 아버지’라 불릴 만한 인물이다. K9 개발 과정에서 왼손 손가락 2개를 잃었고 청력까지 거의 상실했던 그는 이후 튀르키예 수출사업단장을 맡아 2001년까지 10억 달러의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 ❷ 유기압 현수장치: 차의 바퀴와 차체 사이에 있는 장치로,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때 차체의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유기압’이란 압축된 공기나 가스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이 압축된 공기 덕분에 차체가 부드럽게 움직인다.
K9 자주포, 수출의 시작
독일과 튀르키예 지상군 사령부 사이에서 진행되던 PzH2000 자주포 공동생산 계획이 1999년 독일 내 이슈로 인해 무산되자 대한민국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정부는 튀르키예에 ‘K9 자주포 공동생산’을 제안하고, 한국 국방부의 공식적인 보증을 약속했다. 이후 튀르키예 지상군 사령부는 실사단을 파견했다. 실사단은 K9 사격 시범과 생산시설을 둘러보며 공동생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2000년 5월, 튀르키예와 자주포 협력에 대한 양해각서MOU가 체결되었다. 독일의 방해가 있었으나, 2001년 첫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후 총 280문 10억 달러의 수출이 진행됐다(2024년 8월 환율로 1조3000억 원에 달한다). 그리고 2014년 폴란드에 차체 120대, 2017년에는 핀란드와 인도, 노르웨이에 각각 중고 96문과 100문, 30문이 판매되었다. 2018년 에스토니아가 중고 18문을 구매했고 2020년 호주 30문, 2021년 이집트 213문이 수출되었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며 폴란드의 K9 수출이 화제로 떠올랐다. 폴란드는 2022년에 1차로 212문을 계약했고 이듬해 2차로 152문을 구매했다. 올해는 루마니아에 54문을 수출하며 총 9개국에 차체를 포함해 1305문을 수출했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03억 달러, 한화로 13조9000억 원에 달하는 규모이다(2024년 8월 환율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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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이집트와 지난 2022년 K9 자주포 수출 및 국방연구개발협력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이집트 K9에는 STX엔진에서 개발한 국산 엔진이 탑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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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육군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로 훈련을 하고 있다.
K-기갑장비의 이유 있는 질주
K9 자주포의 제작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따르면 2024년 4월, 미국 애리조나주 유마 육군 성능평가 시험장YPG에서 진행한 “K9 자주포의 레이시온 M982A1 엑스칼리버 정밀유도 사거리 연장 155mm 포탄 실사격 시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해당 시험의 목적은 다양한 신관의 기능을 사용해 약 50km 떨어진 표적을 타격, 엑스칼리버 정밀유도포탄과 K9 자주포 호환성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시험에 사용된 시제 차량은 노르웨이 수출형 K9 자주포 ‘비다르VIDAR’였으며 발사된 탄들은 1m 미만의 원형 오차 확률CEP로 목표물을 명중했다. 시험을 통해 미군으로의 K9 수출 가능성과 한국과 미국, NATO 장비 간에 호환성, 운영성을 성공적으로 입증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9 자주포와 K2 전차 등 한국 기갑장비가 서방 국가에서 호평받는 이유는 신뢰성, 균형성, 호환성, 운영성 그리고 가성비이다. 전쟁에 쓰이는 무기체계에서 가장 주요한 요소는 ‘신뢰성’이다. 아무리 화력이 우수한 무기라도 신뢰성이 없다면 전장에서 운용되지 못한다. 처음 등장했을 때 ‘무적의 전차’로 선전되었던 러시아의 최신예 전차 T14 아르마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그다음은 호환성과 운영성이다. 총력전에서 한 국가가 단독으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가 NATO의 지원을 받고 러시아가 북한의 지원을 받는 것을 생각해보자. 신뢰성, 호환성, 운영성이 보장되면 계약까지는 가성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이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K-기갑장비는 이들을 균형 있게 갖추고 있으며 가성비 또한 우수하다. 이 점이 K-기갑장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방산장비 수출은 장비 자체의 성능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업체 대 정부의 형식을 하고 있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정부와 정부의 관계’이다. 외교관계로 인해 거래하기 힘든 국가들도 있기 마련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정부에 대한 신뢰성이다. 최근 K-방산이 날개를 달 수 있는 데에는 그동안 국민이 쌓아 올린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치가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로벌 기갑장비의 트렌드와 향후 전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각국의 기갑장비들은 발전을 거듭하여 기갑장비의 3대 요소인 기동, 방어력, 화력적 측면에서는 이미 현대 장비가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요소를 거의 충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갑장비의 트렌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1_ 방어 능력
몇 차례 중동전을 통해 보병이 휴대한 대전차 미사일에 기갑장비가 쉽게 무력화되자 이에 대한 방어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로 인해 기갑장비에 소프트킬과 하드킬 방어 장비가 추가로 장착되기 시작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저가의 FPV 드론에 의해 전차들이 파괴되자, 세계 각국은 드론에 대한 물리적 그리고 전자전 방어체계를 전차에 달거나 연구하기 시작했다.

2_ 네트워킹
네트워크를 통해 전차와 전차 혹은 외부 무기체계나 외부 정보·정찰·감시IRS를 연결해 전장 상황을 공유한다. 아군과 적의 상황을 공유하고 표적을 분배해 더욱 효과적인 교전을 가능하게 한다. 적을 단시간에 무력화하고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3_ 화력과 기동에 있어서 자동화·지능화 능력
화력 분야에 자동장전 장치를 사용하면 인력 소요는 줄이고 더 빠른 장전과 사격이 가능해진다. 이를 통해 교전의 효율은 물론 승조원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지능화 측면에서 보면 외부에 카메라 등을 이용해 사각을 없앤다. 전차 주변을 감시할 수 있고 이렇게 얻은 정보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우선순위대로 무력화할 수 있다.
  • ❸ 소프트킬과 하드킬 방어 장비: 군사 방어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소프트킬은 적의 미사일이나 유도 무기를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고 혼란시키거나 오작동하게 만들어 공격을 피하는 방식이다. 하드킬은 적의 미사일이나 포탄 등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직접적인 방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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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경기도 포천에서 진행된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 건군 75주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역대 최대 규모로 실시됐다.
우리 측 F-35A, K9 자주포, K2 전차, 미국 측의 F-16, 그레이 이글 무인기 등 첨단 전력 610여 대와 71개 부대 2500여 명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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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KA2. 과거 서방의 전차가 우리 나라를 지켰다면,
이제는 우리의 전차가 서방의 평화를 수호하게 되었다.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K9 자주포
이미 전 세계 자주포 시장의 점유율 50% 이상을 달성한 K9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다. 자동사격 통제장치, 위치 확인장치, 조종수 야간 잠망경, 보조 동력장치, 후방카메라 등 다방면에 성능이 개량된 K9A1이 2018년부터 전력화되고 있으며 기존의 K9도 2030년까지 모두 K9A1 사양으로 개조될 예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2030년 전력화 예정인 K9A2도 2018년부터 연구에 착수했다. 이 차량은 K9의 차체나 기동체계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포탑 무인화를 통해 탄약 장전장치의 구조를 바꾸고 둔감장약을 적용해 현재의 3분간 최대 발사 속도 6~8발을 9~10발까지, 지속 발사 속도는 4~6발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향후 K9A3 버전에는 완전한 무인화를 통해 기존 유인 K9과 유·무인 복합 전투가 가능한 무기체계로 진화할 예정이다. 세계 최고의 자주포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평화의 첨병 역할을 하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 ❹ 둔감장약: 폭발물의 한 종류로, 일반적인 폭발물보다 감도가 낮아 쉽게 폭발하지 않도록 설계한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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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호 군사 전문 칼럼니스트
전쟁 지역과 군사 관련 취재를 전문으로 한다. 미국 전술교육기관 인증 전술교관으로 국내외 법과 사법기관에 전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 등에 군사 자문을 제공했고 YTN <전쟁과 사람>, KBS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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