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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방위산업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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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우리 군의 무기는 외국제 일색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K-방산’이라는 이름으로 각국에 물자를 수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방위산업, 어떤 길을 통해 얼마나 발전해온 것일까?

방위산업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군수산업이라고도 부르는 방위산업(이하 방산)은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물자를 만들어 납품하는 산업이다. 여기에는 무기는 물론이고 비무기도 포함된다. 방산의 효용은 보는 관점에 따라 극과 극일 수 있다.

방산의 대표적인 특징은 기업이나 개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제품이 아닌, 군대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방산 제품은 대부분 국가에 관납되기 때문에 민간에게 팔거나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매우 어렵다. 더욱이 전쟁은 해마다 돌아오는 태풍이나 폭염, 폭설 등의 자연재해와 달리 그 주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간헐성 재난이다. 그 때문에 방산 제품은 고객이 제한적이고 그 고객 또한 생각보다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민간인의 입장에서는 ‘방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방산은 의외로 민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무엇보다 특유의 ‘높은 기술 집약도’가 타 산업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 전쟁은 인간끼리 벌이는 가장 강도 높은 생존경쟁이다. 따라서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보다 더욱 발전된 기술을 투입한다. 방산 제품의 고도화를 위해 발전된 과학 기술은 민간의 생활 수준 향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로켓과 위성 기술, GPS, 제트엔진 및 항공기 기술 등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자통신기술(컴퓨터와 인터넷), 터치식 신용카드 기술, 고어텍스, 심지어는 보존식품(건조식,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 등) 같은 기술 등도 군대나 전쟁 때문에 발명된 것이다. 그로 인해 세계적인 방산 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곧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 기술력을 보유한 국가로 인정받는다.

무엇보다 국방은 국가 단위로 가입하는 보험이다. 필요한 군수물자를 모두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와 자급하는 나라. 어느 나라가 전시에 유리할까? 답은 자명하다. 선진국, 강대국들이 자국의 국격에 걸맞은 방산 시스템을 갖추려 하고, 더 나아가 국제 방산 시장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시작
우리나라의 방산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발전되었다. 6·25전쟁의 아픔과 정전 이후에도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이 발전의 주된 동기가 되었다. 분단 당시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력이 부족한 나라였고 군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1950년 6월 25일 국군은 북한군에게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고, 인천상륙작전까지 낙동강 방어선 이남을 제외한 남한 전토를 북한군에 내주어야 했다. 이후 1960년대 베트남전쟁 등 여러 국제적인 요인으로 미국이 주한미군 전력을 감축시키자, 남한은 자주국방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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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에 첫 비행한 한국 공군의 독자 개발 항공기 부활호. 못 먹고 못 입던 그 시절에도 방산의 꿈은 찬란했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방산의 근간이 되는 중화학 산업 개발에 역점을 두게 된다. 그 가운데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1973년에는「군수조달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 이듬해 국군의 전력 증강 사업인 율곡사업을 시작하면서 관련된 학문적·법적 기반을 다진다.

또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국산 방산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첫 품목은 미국제 화포 및 탄약류의 면허 생산이었다. 베트남전쟁에서 성능을 입증한 미국제 M-16 소총, M-60 기관총, 박격포, 견인포 등의 국내 면허 생산이 197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북한은 6·25전쟁 전부터 화포류의 국산화에 성공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20여 년을 뒤처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빠른 기간 내 격차를 만회했고, 독자개발된 방산 제품까지 만들어나가게 된다.
  • ❶ 면허 생산: 특정 무기 및 장비를 다른 국가나 회사에게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라이센스 생산이라고도 하며, 생산에 따른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K-방산의 시작, K-육상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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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독자 개발 한국산 총기인
K1 기관단총(1981년 실전 배치)
인간은 땅 위에서 살아간다. 그 때문에 전쟁의 근본이자 중심군은 지상군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땅은 공기(공중)나 물(수상)과 달리 매우 견고한 플랫폼으로 비교적 기술의 난도가 높지 않다. 기술 도전국이 가장 먼저 국산화를 실현하는 것도 육상 장비다.

기본 중의 기본으로 꼽히는 방산 장비는 보병의 ‘개인화기’와 ‘공용화기’이다. 해당 제품의 국산화는 1970년대에 첫발을 떼었다. 1980년대 초반에는 K1 기관단총과 K2 소총 등의 K시리즈 화기가 실천 배치되었고, 현재에는 권총부터 자동유탄발사기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모든 종류의 보병 화기가 나와 있다.

‘지상전의 왕자’로 불리는 전차의 개발사 또한 주목할 만하다. 1970년대 미국제 전차를 주력으로 보유했던 우리 군은 당시 최신예 전차이던 M-60 전차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이 M-60 전차의 수출을 거부했고, 당시 보유하고 있던 M-48 전차를 M-60 전차 수준으로 강화, 개조하게 되었다. 이것이 M-48A5K, 흔히 한국형 전차의 시작이다. 이후 미국과의 공동 개발을 통해 한국 최초의 국산 전차 ‘K1 전차’를 완성했다.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2008년이 되어서야 후속 모델인 K2 전차를 독자적으로 개발·생산해냈다. K2 전차에는 불곰사업(러시아에 빌려주었던 차관의 현물 상환 사업)으로 도입한 러시아 T-80 전차의 기술이 다수 적용되었다.

장갑차와 자주포 등도 국산화에 성공했다. 장갑차의 경우 1976년 이탈리아 피아트 CM6614의 국내 면허 생산판인 KM-900을 시작으로 생산했고, 1985년 미국의 AIFV의 한국판 K200 장갑차를 실전 배치했다. 화포 역시 1980년대 K55 자주포, KH-178 견인곡사포, KH-179 견인곡사포 등을 생산하고, 1999년부터 K9 자주포를 실전 배치했다. 그리고 2020년대 중반인 지금 K1 전차와 K9 자주포의 무인화를 진행하고 있다.
  • ❷ 장갑차: 전투 상황에서 병사들을 보호하고 이동시키기 위해 설계된 군용 차량
  • ❸ 자주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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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에는 전차 한 대 없었지만 이제는 전차를 수출한다. 한국 최초의 국산 전차인 K1 전차
보급에 필수적인 해상 장비
세계 무역의 90%가 바다를 통한다. 전쟁 시 자국의 해상 보급로를 지키고, 적국의 해상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바다와 하천에서의 승리도 매우 중요하다. 물 위를 오가는 배는 인간의 이동 수단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가격이 비싸다. 맞춤형 특수선인 군함은 그 경향이 더욱 심하다. 그렇기 때문에 해군력이 곧 그 나라의 경제력, 기술력과 정비례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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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X-3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율곡 이이함
한국 해군이 근대적인 국산 함정을 보유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시제품 격인 KIST 보트와 학생호 고속정이다. 이 중 학생호가 제비급 고속정으로 양산된다. 이후 미국제 애쉬빌급 고속정의 국내 생산형인 백구급 고속정, 백구급의 축소형인 참수리급 고속정이 양산되어 대북 억제 전력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 한국 해군은 연안 해군에 불과했고, 주력함인 충북급(기어링급) 구축함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된 노후함이었다.

우리 해군 전력이 현대적으로 강화된 것은 한국형 구축함 ‘KDXKorean Destroyer eXperimental 사업’과 한국형 잠수함 ‘KSSKorean Submarine 사업’을 통해서다. KDX 사업으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과 충무공 이순신급 이지스 구축함, 세종대왕급·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이 구현되었고, KSS 사업에 따라 장보고급(독일 209급 잠수함의 면허 생산), 손원일급(독일 214급 잠수함의 면허 생산), 도산 안창호급(독자 개발) 등이 탄생했다.

이 외에도 차기 호위함 ‘FFXFuture Frigate eXperimental 사업’으로 인천급·대구급·충남급 호위함을, 참수리급 고속정의 대체 전력으로 윤영하급 고속함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또한 천왕봉급 LST(전차 상륙함), 독도급 대형 수송함(상륙작전 지원은 물론 함대의 기함으로도 쓰일 수 있다)을 실전 배치함으로써 대양 해군으로 가는 길의 초석을 다졌다.
  • ❹ 고속정: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한 작은 군용 함정
  • ❺ 구축함: 다양한 목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중형급 전투함
  • ❻ 잠수함: 물속으로 잠수할 수 있는 군용 함정으로 해상이나 해저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❼ 호위함: 다른 함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군용 함정. 주로 항공모함이나 상선 등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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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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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발사관을 갖춘 도산 안창호함
방산 기술의 집약체, 항공우주 장비
해상 장비가 가장 크고 비싸다면 항공우주 장비는 가장 기술집약적이다. 놀라운 점은 한국은 1950년대에 이미 항공우주 장비를 자체 개발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 1951년 해군 항공대가 미국의 T-6 택산Texan 항공기를 수상기로 개조했었고, 1953년에는 공군 독자 항공기 ‘부활호’가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1958년, 최초의 국산 로켓을 만들어 발사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70년대 미국제 MD500 헬리콥터의 면허 생산, 1980년대 미국제 F-5 전투기 면허 생산, 1990년대 미국제 F-16 전투기 면허 생산을 진행했다. 이렇게 확보된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토대로 1990년대 KT-1 국산 기본훈련기, 2000년대 T-50 고등훈련기와 수리온 헬리콥터를 독자 개발해냈다. 1992년에는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를 발사했고 그 뒤로 민군 겸용 위성인 아리랑 위성 시리즈(1999년 첫 발사), 군사통신위성 ANASIS-I·II(각각 2006, 2020년 발사), 정찰위성(2023년 첫 발사) 등 군사용 위성 개발과 운용을 이어나가고 있다.
수출 실적과 앞으로의 과제
한국은 이렇게 개발한 방산 제품을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 세계 굴지의 방산 제품 수출국(2019년에 들어 세계 10위에 입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약진은 근래에 두드러진다. 비무기를 제외한 무기 수출만 보더라도 2010~2014년 7개국에 수출하던 것이 2015~2019년 17개국으로 늘었다. 2019년의 수출액은 전년도의 143%를 달성했다. 주된 수출품은 T-50 고등훈련기, 수리온 헬리콥터, KT-1 고등훈련기, 장보고급 잠수함, 인천급 호위함, K2 전차, K9 자주포, AS-21 레드백 장갑차 등이다. 현재 개발 중인 LAH, KF-21도 수출 시장에서 선전할 것이 기대된다.

이렇게만 보면 한없이 장밋빛 전망 같지만, 우리나라 방산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요 핵심 기술의 대외 의존도다.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수많은 시간과 막대한 자본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다. 꾸준한 투자와 연구개발, 인력 충원 등으로 우리 방산이 더욱 빛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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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21 레드백 장갑차는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육군 장비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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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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