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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재생의 숨은 일꾼, 미생물
지속가능성을 위한 폐수처리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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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불부流水不腐.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환경 변화에 게을리 대응하면 도태되기 쉬우니, 자기 계발에 부단히 힘쓰라고 독려할 때 인용하곤 한다.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미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이 경구의 주인공은 미생물이다.
우리가 볼 때 ‘썩지 않음’은 물에 있는 오염물질, 이른바 ‘용존유기물’을 미생물이 말끔히 먹어 치운, 곧 완전히 분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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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자정 능력과 BOD
오염된 자연환경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이른바 ‘자정 능력’의 실체가 바로 미생물이다. 흐르는 물은 미생물 청소부가 숨 쉴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한다. 청소량이 많을수록 이들 미생물은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한다. 미생물이 오염물 분해 과정에서 요구하는 산소량을 말 그대로 ‘생물학적/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 Biological/Biochemical Oxygen Demand’이라고 한다.

BOD는 오염물량에 비례에서 커진다. 자연수에 녹아 있는 산소량, ‘용존산소량’은 1ℓ당 10㎎ 정도인데, 보통 하수의 BOD는 이것의 20배에 달한다. 이런 물이 그대로 강이나 호수로 흘러 들어가면, 거기에 사는 미생물은 특식을 한껏 즐기게 된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용존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용존산소량이 급감한다는 사실. 용존산소 고갈은 종종 물고기 떼죽음으로 이어져 연쇄적으로 심각한 환경 피해를 일으킨다.

모여 사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에 인간이 배출하는 폐수 정도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고 거주 인구가 급증하면서 자연의 자정 능력은 한계를 넘어서 한때 붕괴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다행히 자연에 부담을 덜어주는 폐수처리기술이 속속 개발되고 활용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예컨대 화장실에서 용변 후 내린 물은 정화조에 머물렀다가 하수도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각종 도시 하수는 곳곳에 마련된 처리시설을 거쳐 자연수로 나간다. 과거에는 ‘하수 또는 폐수 처리장’이라고 불리며 혐오시설로 인식되었던 시설이 요즘에는 ‘물재생센터’로 불리며 환경 교육과 체험학습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 재생 기술의 기본 원리
보통 하수 처리는 수영장 같은 큰 수조에 물을 가둬 뜨는 부유물과 가라앉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바닥에 침전된 물질을 ‘슬러지Sludge’라고 부른다. 1차 처리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방법이지만, 오수가 머무르는 동안 미생물이 용존유기물과 슬러지 일부를 분해한다. 일반적으로 1차 처리로 하수의 BOD가 30%가량 줄어든다. 나머지는 2차 처리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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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의 분해 능력에 의존하는 2차 처리 과정은 기본적으로 미생물 배양과 다름없다. 말하자면 미생물이 더러운 물속 오염물을 먹어 치우며 무럭무럭 자란다는 얘기다. 실제로 2차 처리조에는 공기를 불어넣어 미생물의 성장을 촉진한다. 증식한 미생물 가운데 상당수는 뭉쳐서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를 ‘활성 슬러지’라고 한다. ‘활성Activated’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오염물을 먹고 왕성하게 성장하는, 곧 분해 능력이 뛰어난 미생물이 슬러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1·2차 처리 과정에서 나온 슬러지는 ‘무산소 슬러지 소화조’로 보내져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처리된다. 2차 처리가 유산소 호흡 미생물의 작품이라면, 슬러지 분해(소화)는 무산소 호흡 미생물이 담당한다. 쉽게 말해서, 산소 없이 숨 쉬는 미생물이 슬러지를 먹어 치운다는 얘기다. 특히 산소를 만나면 즉사하고 마는 ‘메탄 생성균’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메탄 생성균은 모두 ‘고세균’이다. 고세균은 단세포 미생물로, 보통 다른 생물이 살기 힘든 험한 환경에 산다. 가령 끓는 물에 가까운 온천수나 사해처럼 염분 농도가 높은 곳 따위가 여러 고세균의 보금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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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가 없는 상황에서 물질대사 과정으로
메탄을 생성하는 메탄 생성균
메탄 생성균 덕분에 슬러지를 이루는 유기물 대부분이 최종적으로 메탄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메탄은 보통 처리시설의 난방 또는 동력 연료로 사용된다. 슬러지 소화 과정이 끝나고 남은 찌꺼기마저도 수분을 제거해서 토양 개량제로 쓸 수 있다. 이 정도면 미생물이 주도하는 물 재생은 ‘재활용Recycling’을 넘어서는 ‘새활용Upcycling’ 수준이라 하겠다. 통상 2차 처리가 끝난 물은 염소 소독을 해서 방류할 수도 있고, 잔존 BOD와 질소나 인 따위를 비롯한 무기염류를 더 제거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3차 처리를 하기도 한다. 보통 3차 처리는 화합물을 이용한 침전과 필터를 이용한 여과로 이루어진다.
막생물반응기와 역삼투, 기본을 업그레이드하다
막생물반응기MBR, Membrane Bioreactor는 이름 그대로 생물학적 처리에 막으로 거르는 과정을 결합한 시스템이다. 생물 반응조에 유입된 폐수가 미생물의 분해 작용을 먼저 거친 다음, 막을 통과하면서 미생물을 비롯한 입자가 물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된다. MBR의 가장 큰 장점은 막을 통해 미세한 입자와 미생물까지 걸러내어 더욱 깨끗한 물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MBR에 장착된 막은 초미세 필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슬러지와 기타 부유 물질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걸러진 슬러지 상당 부분은 다시 반응조로 되돌아가 생물 반응조에서 미생물을 고농도로 유지함으로써 그만큼 분해 효율을 높이고 슬러지 배출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처리된 물은 전통적인 2차 처리수보다 훨씬 더 깨끗해서 보통 추가적인 3차 처리 없이도 물을 직접 재이용하거나 방류할 수 있다. 그러나 MBR은 막 오염을 막기 위해 정기적인 유지 관리가 필수적이고, 초기 설치 비용이 상대적으로 높다.

물 재생과 관련하여 ‘역삼투RO, Reverse Osmosis’ 기술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농도가 다른 두 용액을 반투과성 막으로 분리해 놓으면,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농도가 높은 쪽으로 물이 옮겨 가는데, 이를 ‘삼투’라고 한다. 그러나 농도가 높은 용액에 높은 압력을 가하면, 이 현상이 반대로 일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물이 농도가 높은 용액에서 반투막을 통해 농도가 낮은 용액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을 ‘역삼투’라고 부른다. 역삼투 기술은 물에서 불순물과 이온 따위를 제거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정수 기술로, 해수 담수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역삼투의 핵심은 매우 미세한 구멍 보통 0.1nm 정도를 가진 막으로 물 분자는 통과하지만, 염분을 비롯한 대부분 화합물은 배제된다. 매우 미세한 오염물질까지 제거할 수 있어, 거의 순수한 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역삼투 기술은 마시는 물이나 고순도 물이 필요한 산업 공정과 바닷물 담수화에도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운영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따른다.

우선 고압을 이용해 물을 처리하기 때문에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로 인해 운영 비용이 커지고, 에너지 소비가 많은 시설에서는 비용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또한, 역삼투 결과로 나오는 오염물질이 농축된 물을 추가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만약 이 과정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을 경우,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신중한 관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역삼투 시스템의 핵심인 반투과성 막의 오염 또는 손상 가능성이다. 이를 방지하고 시스템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인 점검과 적절한 유지 보수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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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의 울산CLX 종합폐수처리장에서는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방법을 통해 폐수를 정화한다.
지난 2022년에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AI 폐수처리시스템을 도입해서 폐수처리의 효율을 높이기도 했다.
인간과 미생물, 지구를 지키는 진정한 주인으로
물 재생 과정은 미생물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미생물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구 전체로 보면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뭍과 물 그리고 하늘을 아우르는 공간 ‘생물권’은 지구 표면의 얇은 층이다. 그런데 이런 생물권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며 사는 인간이 이곳의 주인 행세를 해왔다. 반면, 미생물은 생물권 전체의 물질순환을 관장하고 화학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존립에 필수적인 역할을 은밀하게 수행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미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의 삶도 끝이라는 것이다. ‘공감’의 자세로 미생물을 바라보자. 우리는 삶의 반려자이자 조력자인 미생물과 함께 조화 속에 살아가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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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미생물을 공부하며 인문예술학자와 융합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생물학의 쓸모>를 비롯해서 여러 책을 썼고,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을 통해 흥미진진한 생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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