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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의 히든 챔피언
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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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은 소재와 부품, 장비를 줄여 부르는 말로 지금 세계는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인 소부장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렇다면 글로벌 소부장 강자에는 어떤 기업들이 있고, 또 국내 소부장 기업의 현실은 어떤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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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각 공정마다 쓰이는 소부장
불과 50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교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했던 컴퓨터는 이제 노트북 크기로 줄었습니다. 휴대전화에서 음악과 영화를 재생하기도 하고, ‘입는 컴퓨터’ 연구도 활발합니다. 모두 반도체 칩(메모리 소자)의 크기를 줄인 기술 덕분입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전공정’과 ‘후공정’으로 나뉩니다. 전공정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칩을 완성하는 공정 일체를 말하고, 후공정은 칩을 분리해 패키징하고 최종 검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정 과정마다 소부장이 쓰입니다. 소부장은 반도체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되는 필수 요소로, 반도체의 성능・품질・제조 효율성 등을 좌우합니다. 한국이 명실상부한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려면 반도체 생산뿐 아니라 소부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소부장의 해외 의존도가 높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한국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율은 30%대입니다. 여기서 소재만 떼어놓고 보면 국산화율이 50% 수준으로 높지만, 장비의 경우엔 20%에 불과합니다.

네덜란드의 ‘ASML’이라는 기업은 대표적인 전공정 장비 회사입니다. ASML과 같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글로벌 소부장 기업이 탄생하려면 ‘소부장 히든카드’가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통령실은 국내 반도체 특화단지에 입주할 소부장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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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네덜란드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벨트호벤 소재 ASML 본사에서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을 둘러봤다.
당시 삼성전자와 ASML은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 R&D센터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 늘어나 핵심 소재 속속 국산화
소재의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실리를 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희토류 부자인 중국이 진작부터 저가 공세로 소재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한 것에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소재는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수십 년이 걸립니다. 공급처에 문제가 생기거나 임의로 가격을 변동해도 완벽한 대체재를 찾기 힘듭니다. 모든 소재는 광물·원유와 같은 천연자원이나 고무와 같은 생물자원을 가공해서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소재 중 60%가 전공정에 사용됩니다. 웨이퍼Wafer, 가스Gas, 포토 레지스트Photo Resist, 블랭크 마스크Blank Mask 등이 전공정에 쓰이는 재료입니다. 이 소재들은 반도체의 집적률을 높이고, 소비 전력을 줄이는 데 핵심 역할을 합니다. 10여 단계를 거치는 후공정에는 리드 프레임Lead Frame과 패키지 기판Package Substrate, 본딩 와이어Bonding Wire 같은 재료가 사용됩니다.
반도체의 틀, 웨이퍼의 국산화
전공정 재료인 웨이퍼는 일본의 신에츠화학Shin-Etsu Chemical과 섬코SUMCO, 대만의 글로벌웨이퍼스GlobalWafers, 독일의 실트로닉Siltronic AG이 세계 시장의 88%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SK실트론이 유일하게 실리콘 웨이퍼를 제조하고 있습니다. SK실트론은 2021년 미국 듀폰의 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하여 입지를 다진 웨이퍼 전문기업입니다. 현재 300mm(12인치)와 200mm(8인치) 웨이퍼를 생산 중입니다. 300mm 웨이퍼 시장점유율은 세계 3위입니다.
노광, 식각 공정 재료도 국내 생산!
‘노광’과 ‘식각’ 공정의 재료에도 국산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노광 공정은 반도체 웨이퍼에 빛을 이용해 패턴을 그려 넣는 작업입니다. 식각 공정은 회로 패턴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식각 공정용 소재로는 가스가 대표적으로, 다양한 종류가 사용됩니다. 일본의 주력 가스는 불화수소로, 쇼와덴코Showa Denko의 불화수소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입니다. 국내에서는 2020년 6월 SK스페셜티가 고순도 기체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솔브레인은 액체 불화수소를 양산 중이며, 지난해 기체 불화수소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삼성전자는 ‘제논Xe 가스’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논은 공기 중에 약 0.000009%의 극미량이 포함된 희귀 가스로, 식각 공정에 주로 쓰입니다. 제논 1㎥를 생산하려면 성인 50만 명의 하루 호흡량에 달하는 약 1000만㎥의 공기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대형 공기분리장치를 보유한 제철소 등에서 주로 생산합니다. 삼성전자는 2022년 10월 포스코와 ‘반도체용 제논 가스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포스코의 기존 설비를 활용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제논을 올해부터 공급받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 10월 국내 업계 최초로 ‘네온Ne 가스’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네온은 노광 공정에 사용되는 엑시머레이저 가스의 주재료입니다. 반도체용 가스 제조기업 TEMC와 포스코의 설비를 활용해 네온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올해 네온 전량을 국산품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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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숨겨진 성장은 부품에도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부품 또한 많습니다. 복잡한 기계 장치도 단순한 부품을 조합해서 만듭니다. 특히 반도체 부품은 높은 부하 공정을 견뎌야 하기에 텅스텐, 알루마이트, 몰리브덴 등의 특수 재료를 씁니다.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 용접이 아닌 직접 가공을 선택하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일본 기업은 부품 분야에서도 시장점유율이 높습니다. 특히 반도체 제조 장치에 사용하는 전자밸브, 드라이 펌프, 매스플로우 컨트롤러(질량 유량 제어기) 등 가스 계열 부품이 강점입니다. 호리바제작소HORIBA, 에바라제작소EBARA의 제품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칼 자이스Carl Zeiss는 렌즈 제작으로 유명합니다.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에 쓰이는 부품 ‘반사거울’을 세계 노광 장비 1위 기업인 ASML에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밸브・펌프 제조업체인 독일의 KSB도 반도체 부품 기업으로 꼽힙니다.

국내에서는 반도체 공정 부품 전문업체 ‘아스플로’가 고청정 강관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해 공급 중입니다. 강관은 초고순도 공정 가스를 반도체 장비에 이동하는 데 사용하는 부품입니다. 아스플로는 배관과 특수 가스 라인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밸브, 필터 등도 국산화했습니다.
  • ❶ ㈜아스플로: 반도체 공정 가스 공급에 필요한 정밀 부품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기업. 2023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우수 성과를 기록한 바 있다.
    <테크 포커스> 3월호에 아스플로의 반도체 부품 생산 기술이 소개된 바 있다.
핵심 공정용 장비는 외산 비중 커
그렇다면 반도체 장비의 상황은 어떨까요.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은 ASML, 미국의 램리서치Lam Research,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 도쿄일렉트론Tokyo Electron이 79.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 장비 기업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로, 반도체 공정의 증착 분야에서 업계 1위입니다. 증착 장비는 웨이퍼 위에 분자나 원자 단위 물질을 입혀 전기적인 특성을 갖게 하는 기계입니다. 램리서치는 식각 장비 분야 점유율이 압도적이며, 증착・세정 장비 부문에서도 두각을 보입니다. 두 기업이 세계 증착 시장을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의 반도체 장비 역시 외산 비중이 크지만, 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기업이 있습니다. 대형 장비 기업 ‘원익IPS’로, 화학증착장비PECVD 기술력이 뛰어납니다. PECVD는 플라스마를 이용해 특정 소재를 웨이퍼에 입히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 층을 겹쳐 쌓아도 균일한 박막을 구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다른 장비 기업 ‘테스’ 역시 플라스마 화학기상증착장비CVD와 건식 식각 장비인 가스페이즈에칭GPE, 세정 설비 분야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소부장은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따라서 모든 소부장을 짧은 시간에 국산화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확대해 나갈 때 한국의 소부장 위상은 높아질 것입니다. 향후 우리만의 뛰어난 소부장이 탄생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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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 <조선일보>, <주간조선>, <시사저널> 등의 매체에 과학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지구의 마지막 1분> 등이 있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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