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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어떻게 산업의 쌀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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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독일의 한 물리학자가 만든 최초의 반도체 다이오드를 시작으로, 반도체는 오늘날 산업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초기 연구와 발견, 트랜지스터의 발명, 집적회로의 발전 등으로 이어진 반도체의 역사와 원리를 알아보자.

반도체를 산업의 쌀로 표현한 것은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기기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것이 바로 반도체다. 그리고 반도체의 성능 자체가 그 전자기기의 성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전기가 흐르는 물질을 ‘도체’, 흐르지 않는 물질은 ‘부도체’라고 한다. 반도체는 도체나 부도체가 아니다. 조건에 따라 전도성이 변한다. 낮은 온도에서는 전기가 잘 통하지 않다가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전기가 잘 통하게 된다. 이를 이용해 전도성을 조절하는 것이 반도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반도체에 의해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0을, 흐르면 1을 표현할 수 있다. 이 역할을 담당하는 스위치를 트랜지스터라고 부른다. 트랜지스터 1개의 저장용량은 1비트bit이고, 8비트는 1바이트byte다. 바이트는 반도체에 정보를 저장하는 최소 단위. 컴퓨터 구성품의 메모리 용량이나 파일의 용량을 지칭할 때 쓰는 킬로바이트(1천), 메가바이트(100만), 기가바이트(10억), 테라바이트(1조) 등이 바이트 크기라고 보면 된다. 반도체로 전자의 흐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동시에 전자에 정보를 담아 전달하고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 ❶ 열이나 전기가 물체 속을 이동하는 성질을 말한다.
19세기부터 시작된 반도체 연구
반도체는 21세기 첨단 기술의 상징으로 꼽히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세기부터 진행되었다. 앞서 언급했듯 반도체는 외부 조건, 즉 온도에 따라 전도성이 바뀐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이는 독일의 물리학자 토마스 제벡Thomas Seebeck이다. 1821년 그는 두 가지 다른 금속 등을 이어 붙인 회로에서 온도 차이가 생길 때 전압이 발생하는 현상을 발견했고, 자신의 이름을 따 이것을 ‘제백 효과’라고 이름 붙였다. 즉 열전도율이 다른 두 가지 금속을 폐회로로 연결하고, 연결한 두 지점에 각각 다른 온도를 주면 에너지를 공급하는 힘이 발생하여 전류가 흐르는 것이었다. 외부 조건으로 전도성이 변하는 물질, 즉 반도체의 단서를 처음으로 알아낸 발견 중 하나였다.

1833년,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도 비슷한 발견을 해냈다. 황화은Ag2S 결정의 온도를 높이면 전도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대 반도체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1874년 독일의 전기공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이다. 그는 황화납에 금속 핀을 접촉시킴으로써 전류를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성질을 발견했다. 이를 이용해 제작한 점 접촉 다이오드가 세계 최초의 반도체 다이오드로 꼽힌다. 브라운의 역할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1897년, 음극에서 방출된 전자빔을 형광 화면에 투사해 이미지를 만드는 브라운관을 발명했다. 이 브라운관이 정보를 표시하는 전자 정보 디스플레이의 시초로, 20여 년 전까지 컴퓨터 모니터와 텔레비전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에 사용되었다. 요즘과 같은 평면형 디스플레이가 나오기 전, 부피가 큰 상자형 디스플레이에는 모두 브라운관이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1904년, 영국의 공학자 존 플레밍John Fleming이 다이오드의 일종인 진공관을 발명했다. 진공 유리관에 음극과 양극 두 전극을 설치하고, 그 전극 사이로 전기가 흐르도록 했다. 아주 미약한 신호로 큰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후 진공관은 장거리 전화선의 신호 증폭, ‘에니악ENIAC’ 등 초기 컴퓨터의 연산회로, 오디오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쓰이게 된다. 그러나 진공관에는 단점도 많았다. 유리로 되어 있으므로 깨지기 쉬웠고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냉각 장치로 식혀주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덩치와 사용 에너지에 비해 정보 처리 능력과 수명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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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원리인 제벡 효과를 발견한 독일의 토마스 제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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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반도체 다이오드를 만든 독일의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1904년, 영국의 공학자 존 플레밍John Fleming이 다이오드의 일종인 진공관을 발명했다. 진공 유리관에 음극과 양극 두 전극을 설치하고, 그 전극 사이로 전기가 흐르도록 했다. 아주 미약한 신호로 큰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후 진공관은 장거리 전화선의 신호 증폭, ‘에니악ENIAC’ 등 초기 컴퓨터의 연산회로, 오디오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쓰이게 된다. 그러나 진공관에는 단점도 많았다. 유리로 되어 있으므로 깨지기 쉬웠고 열이 많이 나기 때문에 냉각 장치로 식혀주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비효율적이었다. 덩치와 사용 에너지에 비해 정보 처리 능력과 수명은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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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중반을 풍미했던 원시적 다이오드인 진공관. 21세기인 요즘도 전자레인지나 클래식 오디오 앰프, X선 기기 등 많은 곳에 쓰이고 있다.
반도체의 스위치, 트랜지스터 발명
진공관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발명된 기기가 트랜지스터다. 진공상태에 열을 가해 전도성을 조절하는 대신, 반도체 성질을 갖춘 금속을 가열해 더욱 작은 에너지로 같은 효과를 얻는다는 개념이다.

트랜지스터는 일반적으로 이미터Emitter, 베이스Base, 컬렉터Collector라고 부르는 3개의 단자(발)를 가지고 있다. 각 단자는 다른 이름처럼 저마다의 역할이 다르다. 이미터는 전기를 주는 역할을 하고, 베이스는 이미터로 들어온 전기를 넘겨줄지 말지를 결정한다. 베이스가 전기를 넘겨주겠다고 결정하면 이미터의 전기가 다음 단자로 넘어가지만, 반대로 전기를 넘기지 않겠다고 결정할 경우, 더 이상 전기는 흐르지 않는다. 베이스의 결정에 따라 흐르게 된 전기가 이동하는 곳이 컬렉터다. 이미터와 베이스를 통과해온 전기는 컬렉터에서 모인다. 컬렉터는 전기를 가지고 있다가 다른 부품이나 기계로 해당 전기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베이스에 얼마만큼의 전기를 가하느냐에 따라 전기를 흐르게 하거나 멈추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트랜지스터의 스위치 작용이며, 전류의 흐름을 ‘0’과 ‘1’ 이진수로 표현한다.

트랜지스터는 증폭 작용도 지니고 있다. 베이스 전류를 변화시키면 입력된 작은 신호(전류)를 큰 신호로 바꾸어 출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마이크, 스피커 사용에 필요 불가결한 기능이다.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1947년 미국 벨 연구소 소속 연구자 월터 하우저 브래튼Walter Houser Brattain, 존 바딘John Bardeen,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세 사람이 발명했다. 이 트랜지스터는 게르마늄을 사용해 전도율을 변환했다.

이후 1941년 미국 과학자 러셀 올Russell Ohl이 당시 신소재였던 실리콘을 트랜지스터에 사용했다. 실리콘은 반도체의 재료로 쓰이기에 적합한 점이 많았다. 우선 실리콘은 지구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소이기 때문에 대량으로 사용하기에 경제적 이점이 크다. 또 반도체에서 전자가 이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또한 크지 않다. 높은 온도에서 안정적으로 작동하며, 특정 불순물을 추가함에 따라 전기적 특성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 반도체 부품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실리콘 트랜지스터 반도체는 1954년 벨 연구소에서 만들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같은 해 최초의 트랜지스터 컴퓨터 ‘트래딕’도 만든다. 이 컴퓨터의 처리 속도는 과거 에니악과 비슷했지만 크기는 1/300에 불과했다. 이는 트랜지스터의 높은 효율과 작은 크기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사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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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관의 뒤를 이은 새로운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 에너지 및 공간 효율성을 크게 끌어올렸다.
최신 반도체의 탄생과 발전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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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반도체 하면 사람들이 바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실리콘 반도체 집적회로.
세계 각국은 이것의 성능을 높이고 판로를 늘리기 위해 지금도 치열한 경쟁 중이다.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의 잭 킬비가 세계 최초로 반도체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를 개발했다. 하나의 기판 위에 트랜지스터, 콘덴서, 다이오드, 저항 등 2개 이상의 다양한 회로 소자를 서로 연결하여 일정한 기능을 갖게 만든 것이다. 집적회로는 오늘날 일반인에게 가장 익숙한 반도체의 모습이기도 하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ROM(판독전용기억장치), RAM(등속호출기억장치)은 물론, 메모리카드와 신용카드에 사용되는 FRAM(강유전성기억장치) 등이 모두 집적회로다. 트랜지스터가 진공관을 대체하며 전자제품의 크기를 줄였다면, 집적회로는 트랜지스터를 서로 연결하는 전선을 없애며 전자 장비의 크기를 더욱 획기적으로 줄이고 성능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후 1965년 당시 페어차일드의 연구원이던 고든 무어는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을 발표했다. 이후 반도체 기술은 그 말대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다. 21세기가 1/4 가까이 지난 지금은 ‘무어의 법칙’이 예전만큼 잘 통하지 않는 구석도 생겨났다. 100nm 이하의 미세 공정으로 진행하면서 비용이 크게 증가했고 여러 가지 물리적 장벽에 부딪혀 공정 미세화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반도체는 다른 방향으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기계학습용 시스템 반도체 등 ‘인공지능용 반도체’, 더욱 전도성이 우수하고 얇은 소재인 ‘그래핀 반도체’ 등이 연구되고 있다. 장차 다가올 4차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인 로봇, 네트워크, 인공지능, 3D프린터는 반도체 없이 작동이 불가능하기에 반도체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현재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그 자리를 노리고 있는 중국 역시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놓고 ‘반도체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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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반도체의 발전에서도 소재공학이 큰 몫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래에는 그래핀(사진) 반도체나 바이오 반도체 등 실리콘을 대체하는 신소재 반도체가 나올지도 모른다.
반도체는 우리나라의 산업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 1970년대 외국계 자본에 의한 조립생산에서 출발한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점차 개별 소자 생산, 일괄 공정 생산체제, 생산체제 고도화 시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적인 반도체 대국으로까지 성장했다. 중국, 대만에 이어 3번째로 큰 반도체 제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세계 반도체 전체 생산량의 약 17.9%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액 중 무려 20% 이상을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는 등 우리 경제와 산업에서도 반도체는 매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치열한 세계 반도체 전쟁에서도 우리나라가 계속 선전하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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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 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미래의 전쟁>, <위대한 파리>, <오퍼 레이션 페이퍼클립>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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