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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
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가스터빈은 항공기의 심장이자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리며, 고온의 연소가스로 터빈을 회전시켜 동력을 생산하는 회전 동력기관이다. 작동 원리는 크게 압축, 연소, 팽창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흡입한 공기를 압축하고, 압축된 고압 공기에 연료를 분사해 연소를 일으키며, 고온 고압의 연소가스가 팽창하면서 터빈을 회전시켜 동력을 생성한다. 가스터빈은 에너지 변환 효율을 극대화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현대 산업과 에너지 시스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항공기 엔진, 전력 발전, 선박 엔진, 유전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국내 가스터빈 연구의 기초를 닦다
나는 약 40년 전, 국내에서는 불모지였던 가스터빈 연구를 미국 유학을 통해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국내에는 정보와 기술, 실험 환경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선진 기술을 배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꾸준히 연구를 이어온 결과, 지금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가스터빈 기술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작은 기여를 했다고 믿는다.

국내에서 가스터빈 연구를 시작했을 때 가장 큰 도전은 연구 결과를 실제 제품 개발 기술에 적용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가스터빈은 1600℃가 넘는 극한 온도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했기 때문에, 고온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블레이드 소재와 냉각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초기 연구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국내에는 가스터빈 관련 전문 생산 기술이나 연구 인프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개발된 기술과 제품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했다. 외국산 가스터빈 부품을 자르고, 엑스레이로 내부 구조를 분석하며 도면을 작성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하나씩 문제를 해결하며 국내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가스터빈 국산화를 위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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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터빈을 모사해서 연구하는 상온 환형 회전 터빈실험장치
기술개발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국내 주조 기술을 고려한 설계를 통해 세라믹 코어 두께 문제를 해결했던 일이다. 초기 설계는 외국 기준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세라믹 코어의 두께가 너무 얇아 주조 과정에서 실패를 반복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어 두께를 0.7mm에서 0.8mm로 늘리는 설계 변경을 시도했고, 마침내 안정적인 주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작은 개선들이 가스터빈 블레이드 설계와 냉각 기술의 개발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지식은 발전용 가스터빈 블레이드 국산화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연구를 하면서 실패는 항상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열어줬다. 발전용 가스터빈 블레이드와 베인 같은 고온 부품의 국산화는 큰 성취감을 줬지만,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다. 기술적 한계, 예산 부족, 연구 환경의 제약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반드시 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연구를 이어갔다. 이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성과는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우리나라가 첨단 기계공학 기술 자립을 이룬 중요한 전환점이다.
가스터빈 국산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단순한 기술개발뿐 아니라 여러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가스터빈은 단순한 회전 동력기관이 아니라 복잡한 메커니즘을 요구한다. 효율적인 에너지 전환, 연료 소모량 감소, 안정적인 내구성을 유지하기 위해 블레이드 내부의 열 분포를 세밀히 분석하고, 냉각 유로를 설계하며, 공기 흐름을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실 대학원생들은 끊임없이 실험과 해석을 반복하며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를 개선했다. 이런 과정을 거듭한 끝에 국내 운전 특성에 맞는 가스터빈의 고온 부품 냉각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내 역량의 10%는 새로운 분야에 투자
내 연구 철학은 ‘항상 내가 가진 역량의 10~20%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데 투자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이런 도전이 나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 철학은 냉각 기술의 개발을 넘어 새로운 열전달 분야인 스텔스 기술로 확장되었다. 현재 메타물질을 활용한 적외선 스텔스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 연구는 세계 유수 저널의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었고, 미국 특허를 획득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메타물질 기반 스텔스 기술은 적외선 파장을 흡수하거나 반사해 탐지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첨단 기술이다. 이 기술을 연구하며 항공기 적외선 스텔스 분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메타물질 연구는 가스터빈과는 다른 도전이었다. 메타물질은 미세한 구조와 배열을 통해 특정 파장의 적외선을 흡수하거나 반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적외선 탐지기로부터 은폐할 수 있는 스텔스 효과를 구현했다. 연구 과정에서는 시뮬레이션과 실험을 반복하며 메타물질의 구조와 특성을 최적화했다. 연구 결과, 메타물질을 적용한 항공기 표면이 적외선 탐지기에서 감지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응용 분야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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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터빈 블레이드를 모사해서 열전달을 측정하는 풍동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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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의 연구는 냉각 기술의 개발을 넘어 적외선 스텔스 기술로 확장되었다.
지속적 학습과 협력 연구에 달린 기술 혁신의 속도
가스터빈 연구와 메타물질 개발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기술 혁신의 속도가 지속적인 학습과 협력 연구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180명이 넘는 석·박사 제자들이 연구실에서 연구하며 성장했고, 졸업 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국내 기계공학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자발적인 연구, 협력, 도전 정신의 중요성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으며, 연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 제자들이 각자의 길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큰 기쁨과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제자들과 함께했던 시간은 연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난 40년 동안 나는 가스터빈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왔다. 발전용 가스터빈을 처음 국산화했을 때 느꼈던 뿌듯함은 단순한 기술개발을 넘어 우리나라가 최첨단 기계공학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추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국내 전투기 엔진의 국산화다. KF-21 전투기를 국산화했지만, 가스터빈 엔진은 아직도 외국산을 사용하고 있다. 진정한 전투기 국산화를 위해서는 첨단 항공 엔진을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 지금까지 발전용 가스터빈 국산화 경험과 전투기 엔진 면허 생산을 통해 얻은 생산 기술과 체계 통합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 개발을 시작하면, 항공용 가스터빈 엔진도 국산화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마지막 바람이다.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부족한 실험 장비 속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해석하며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이 과정은 연구실 모든 대학원생과 함께한 노력의 결실이다. 우리가 개발한 가스터빈 기술은 전력 생산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활용도를 극대화하며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했고, 이를 통해 연구자로서의 사명을 되새기고 보람을 느낀다. 가스터빈 기술의 개발뿐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든 열정과 능력을 쏟아 열전달 분야의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 목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도전과 실패 속에서 얻는 배움이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우리나라 기계공학 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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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임 중이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가스터빈 기술 강국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으며 2020년 올해의 기계인, 2011년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23년 과학기술훈장 웅비장, 2024년 한국공학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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