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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 슬기로운 기술 생활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경계를 허물다
이제는 확장현실XR의 시대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현실세계와 가상현실의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SF(공상과학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가상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영화 <스타워즈>나 <아이언맨>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확장현실XR이 현실로 만들어줄 테니까요. 확장현실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현실을 확장시키는 기술?
2024의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었습니다. 올해는 AI 기술과 몰입형 경험이 만나는 확장현실XR이 대세가 될 듯합니다. 몰입형 기술의 새로운 지평인 X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미국의 IT 기업 메타Meta를 비롯해 세계 빅테크 기업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XReXtended Reality은 실제 세계와 가상세계를 결합한 환경을 말합니다. 완전한 가상세계를 체험하는 VR(가상현실), 현실세계에 디지털 요소를 더하는 AR(증강현실), 현실과 가상세계가 융합되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는 MR(혼합현실)을 아우르는 기술이죠.

쉽게 말해 XR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경계를 허무는 기술로, VR·AR 같은 복잡한 구분이 필요 없음을 의미합니다. 컴퓨터그래픽CG과 디스플레이 기술을 바탕으로 한 모든 것들이 XR에 포함됩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향후 VR·AR・MR 등의 복잡한 용어들이 ‘XR’ 하나로 정리될 것으로 봅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로 중첩・보완하며 나타날 여러 모습에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 없이 모두 XR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을 특징으로 하는 5G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XR 시장은 말 그대로 현실에서 무한 확장할 전망입니다. 앞으로 기업들이 얼마나 주도적으로 XR의 플랫폼을 확산하고 안정적으로 생태계를 구축하느냐가 성패를 결정할 것입니다.
  • ❶ 초저지연ultra-lowlatency: 사물 통신에서 종단 간 전달 시간이 매우 짧은 것을 의미한다. 즉 신호를 보내고 응답을 받는 지연시간이 짧아지는 것이다.
VR, AR, MR의 차이
여기서 잠깐 VRVirtual Reality과 ARAugmented Reality, MRMixed Reality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세 기술 모두 컴퓨터그래픽과 디스플레이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서로 작동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VR은 현실과 격리된,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물건과 공간을 말합니다. 컴퓨터상에 인공적인 환경(디지털 세계)을 만들고, 마치 사용자가 실제 공간에 들어간 것처럼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새로운 현실을 경험하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VR 사용자는 보통 눈 전체를 가리는 헤드셋HMD을 머리에 착용해 가상세계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HMD를 착용한 게이머는 비디오게임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고, 건설업체는 건설 프로젝트를 검토하여 공사 전에 세부 사항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유통업체는 실제 매장에 적용하기 전에 가상 디스플레이를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AR은 실제의 현실세계를 바탕으로 디지털(가상) 세계를 반영하거나 확장시키는 기술입니다. VR에서는 가상공간이 주체가 되지만 AR에서는 현실세계가 주체가 됩니다. 실제 사물 위에 컴퓨터그래픽을 덧입혀 정보와 콘텐츠를 표시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포켓몬 GO’와 같이 현실세계의 위치 정보 등을 바탕으로 기기에서 보는 현실 풍경에 디지털 현실을 비추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 스마트폰 셀카 앱으로 사진을 찍을 때 토끼 귀를 달거나 피부를 보정하는 일도 사실 AR 기술입니다. AR은 구글 글라스처럼 특수 안경을 쓰거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사진 PC 촬영 모드를 이용해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MR은 VR과 AR의 장점을 혼합한 기술입니다. 현실세계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반투명 렌즈를 통해 현실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손을 뻗어 그 안의 가상 요소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기술입니다. 예컨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허공에 컴퓨터 화면을 띄워놓고, 특수 장갑을 낀 손으로 화면을 착착 옮기는 모습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MR입니다.
XR 시장의 강자는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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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가 선보인 VR 헤드셋 퀘스트
현재 메타, 애플,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은 XR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XR의 강자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입니다. 메타가 있었기에 지금의 VR 시장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타는 현재 XR 기기의 시장 점유율 75%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메타(당시 페이스북)가 VR 전용 기기를 출시한 오큘러스를 인수하고, 구글이 구글 글라스를 출시한 2014년은 XR 산업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기기의 완성도가 떨어지고, 기기가 있더라도 콘텐츠가 부실해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는 꾸준히 고도화된 XR 기기들을 개발해왔고, 여전히 업그레이드된 성능의 기기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메타는 지난 2016년 PC 기반의 VR 헤드셋 ‘오큘러스 리프트’를 시작으로 ‘메타 퀘스트 프로’와 ‘퀘스트3’ 등의 헤드셋을 상용화시켰습니다. 또 영상 촬영, 번역 등 AI 기능을 탑재한 ‘레이밴 메타’도 판매하며 XR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연례 개발자 행사 ‘커넥트 2024’에서는 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공개했습니다. 검은색의 두꺼운 뿔테 안경 형태의 오라이언을 쓰면 화상통화를 할 수 있고, 음악을 듣거나 AI와 질문과 대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마이크로 렌즈가 장착돼 프로젝터를 통해 3차원3D 이미지를 투사시켜 홀로그램의 AR 기능이 구현됩니다. 스마트폰 다음의 컴퓨팅 디바이스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오라이언은 오는 2027년 시장에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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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안경 오라이언을 직접 착용한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애플·삼성・비보, 스마트폰 제조사 도전으로 XR 시장 재점화
새해엔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스마트폰 전장이 XR 기기로 확장될 전망입니다. 애플과 삼성전자에 이어 중국의 비보까지 XR 경쟁으로 재편되는 양상입니다. 이들의 도전으로 주춤했던 XR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앞선 기업은 애플입니다.

애플은 VR과 AR을 모두 구현하는 헤드셋을 개발 중입니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고글 형태의 XR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며 XR 시장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11월엔 한국에서도 정식 출시되었습니다. 비전 프로는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다수의 카메라 센서를 통해 현실세계를 정확하게 인식하며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눈동자 추적, 손동작 인식, 음성 명령을 통한 조작이 가능합니다. 애플이 XR 개발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메타가 독점하고 있던 시장의 강력한 잠재적 경쟁자로 등장했습니다.

이에 자극받은 삼성전자는 구글, 퀄컴과 손잡고 2018년 이후 맥이 끊겼던 XR 사업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재 XR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Moohan’을 개발 중입니다. 무한이라는 이름 그대로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공간에서 몰입감 넘치는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한은 강력한 AI 기능을 결합한 게 장점입니다. 삼성전자는 1월 22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삼성 갤럭시 언팩 2025’ 행사에서 프로젝트 무한을 샘플 형태로 공개하고, 올해 3분기쯤 출시할 예정입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비보도 자체 개발한 XR 기기로 맞불을 놓고 있습니다. 비보는 최근 자신들의 XR 기기를 올해 9월께 시제품으로 공개하고, 연말에 출시한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중국에서 스마트폰 제조사가 XR 기기를 출시하는 사례는 비보가 최초가 될 전망입니다.

중국은 이미 바이트댄스의 자회사 피코Pico와 엑스리얼Xreal과 같은 XR 기기 업체들이 있습니다. 엑스리얼은 최근 ‘AR 글라스 에어2 프로’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은 정부의 XR 산업 육성 정책과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글로벌 확장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비보가 XR 기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사표를 던진 것입니다. 비보는 개발 전담인력 500여 명을 투입해 애플의 ‘비전 프로’ 같은 고글형 헤드셋 제품을 계획 중입니다. 성능 역시 비전 프로 수준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국은 XR 기기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며 기존 미국이 주도하던 흐름에 균열을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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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XR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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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XR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X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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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R은 우리의 일상을 크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XR 기기는 스마트폰 이후 인류의 일상을 함께 할 기기로 꼽힙니다. 손을 쓰지 않고도 스마트폰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제조·유통·의료·교육·건축·부동산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XR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분야는 교육입니다. XR을 통해 학생들은 역사적 사건이나 과학 현상, 심지어 미시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가상 인체를 탐색하거나 다른 행성의 가상 탐험을 통해 별의 탄생을 목격하는 등 인체 해부학과 우주의 복잡성을 탐구할 수 있습니다. 상상이 현실로, 그것도 학생들의 교실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의료 분야에서도 XR의 활용이 활발해질 것입니다. 이제 외과의사는 위험이 없는 가상공간에서 복잡한 수술을 연습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또 의사는 환자별 해부학적 구조를 3D로 시각화해 진단과 치료 계획 등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제조 산업에서도 XR의 활용은 효율성을 높여줍니다. 이미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인 공장의 경우 그 공장과 똑같이 생긴 디지털트윈을 가상세계에 만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XR용 안경을 쓰고 공장의 기계들을 바라보면 안경 위에 기계의 작동 현황, 목표치 달성 여부, 고장이 날 확률 등이 표시돼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 비숙련 노동자가 XR용 안경을 쓰면 안경에 기기 조작을 위한 지시 사항이 표시돼 이를 따라가기만 해도 금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장의 노동 인력을 교육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전망입니다.

이처럼 XR 기술은 교육에 혁명을 일으키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제조업과 건축업을 혁신하고,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를 강화하는 등 미래 세상을 밝게 해줄 것입니다. 물론 착용감, 사용성 확보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기술 과제도 많습니다. 하지만 계속 이어질 XR의 진화로 우리는 곧 현실세계와 맞먹는 풍요로운 XR 세상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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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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