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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로
역사에 새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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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언젠가는 망가지고 부서져 사라지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는 인류가 만든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첨단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현존하는 문화유산을 보전해 영생을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을 우리는 디지털 문화유산 전문가라고 부른다.

word 이동훈 photo 김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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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이 왜 필요한가?
지난 5월, 영국 기업 마젤란사는 수심 3800m 해저에 있는 타이타닉호 잔해의 1:1 크기 디지털 트윈을 제작했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타이타닉호는 1912년 완공되어 같은 해 첫 항해에서 빙산에 충돌해 침몰한 비운의 영국 여객선이다. 당대 세계 최강국이던 영국의 최첨단 조선 기술이 총집약된 배였음에도, 너무나 드라마틱한 운명을 맞았다. 그 때문에 침몰 이후 1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그 침몰 경위를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연구 자료인 타이타닉호 잔해는 각종 심해 생물에 의해 무서운 속도로 부식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2060년이 되기 전에 타이타닉호 잔해는 부식에 의해 완전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그 깊은 바닷속에 있는 잔해에 매일 사람이 들어가서 관찰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노릇이다. 때문에 마젤란사는 연구자들의 편의를 위해 3D 스캔과 사진 촬영을 통해 타이타닉호 잔해를 정밀 재현한 디지털 트윈을 만들어냈다. 이 사례는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의 필요성과 사용 기술, 그리고 그 성과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앞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어떤 물체건 간에 자연환경에 노출되면 풍화작용을 피할 수 없다. 이는 인류의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일부러 부수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 부서지고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인공물의 숙명이다.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이러한 숙명에서 건져내는 작업이다. 디지털 트윈이라는 형식을 통해 사라지거나 손상된 문화유산은 원상복구하고, 건재한 문화유산은 복제해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물론 그 외의 다른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로 재현된 문화유산은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전시될 수 있다. 해저에 남아 있는 타이타닉호도 디지털로 재현하면, 세계 수십 개국 도시에 동시에 전시할 수 있다. 또한 현존하는 문화유산이 파괴되어도, 사전에 디지털로 재현한 것이 있다면 복원작업의 수고를 덜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화재로 타버린 숭례문의 복원에는 2002년 제작되었던 디지털 트윈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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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이란?
현실세계의 기계나 장비, 사물 등을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구현한 것을 말한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하면 가상세계에서 장비, 시스템 등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유지·보수 시점을 파악해 개선할 수 있다. 가동 중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예측해 안전을 검증하거나 돌발 사고를 예방해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으며 시제품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과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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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 교수는 디지털로 구현된 과거를 단순히 보는 데서만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대인과 소통하게끔 하고자 한다. 디지털 휴먼과 XR 버스 등의 기술을 통해서다. 이러한 결심을 한 계기는 그가 지난 2012년 수행한 ‘백제인 얼굴 복원 연구’였다. 부여 능안골 고분군에서 지난 1996년 발굴된 백제 여인의 두개골을 가지고, 미술해부학을 전공한 조용진 박사와 함께 디지털 기술을 이용, 생전의 얼굴을 복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디지털 휴먼의 가능성을 엿보았다. 여기에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AI 기술을 적용한다면, 현대인과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터랙티브형 백제인 디지털 휴먼을 만들 수 있다.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AI를 적용해 당대인의 지식과 눈높이의 범위 내에서 현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또한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언어로도 듣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내년부터 그는 몽골의 ‘칭기즈칸 국립박물관’에 이러한 기능을 갖춘 칭기즈칸의 디지털 휴먼을 만들 생각이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역사와의 대화’는 역사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도시 전체를 살아 숨 쉬는 과거로 구현할 생각이다. 다름 아닌 XR 버스bus를 통해서다.

XR 버스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XReXtended Reality(확장현실) 기술이 적용된 자동차다. 이미 수원에서는 1795년 정조대왕의 능행차 ‘을묘원행’을 체험할 수 있는 ‘XR 버스 1795행’을 운행 중이다. 이 버스의 차창은 XR 기술을 적용해 오늘날의 풍경에 1795년의 가상현실을 입혀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은 모든 유적지에 적용될 수 있다. 차량이 몽촌토성터를 주행할 때면 차창을 통해 디지털로 재현된 과거의 몽촌토성을 보여줄 수 있다. 심지어 문무대왕 수중릉 등 접근하기 힘든 곳도 아주 실감나게 보여줄 수 있다. 버스가 달리면 XR 차창 밖에는 디지털로 재현된 바다가 나오면서, 마치 버스가 바닷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것 같은 모습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물속에 잠겨 있던 수중릉(역시 디지털로 재현된)이 탑승객들 앞에 나타난다. 이런 식으로 도시를 돌면서 지금은 사라진 문화유산을 XR로 탑승객들에게 보여준다.

이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와도 잘 어울린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인간을 운전의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면 인간은 차 안에서 엔터테인먼트도 즐길 수 있다. XR 버스는 차내에서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박진호 교수는 그 엔터테인먼트를 역사와 결합시키고자 한다.
21세기 한류의 첨병이 되고자 한다면!
여기서 더욱 발전하면 박물관에서 본격적인 ‘역사 시뮬레이터’를 체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XR 기술로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안창남의 비행기 조종석을 재현한 시뮬레이터를 타고,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풍경을 조감한다든가, 조선 시대 한양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당대 사람들(의 디지털 휴먼)과 대화하는 등의 전시 체험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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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박물관이라는 말에서 두터운 유리 진열장으로 중무장한 유물들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전시만되어 있는 곳을 흔히 떠올린다. 그러나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 기술을 통해 박물관은 드디어 우리가 오감으로 체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를 전시하는 곳으로 바뀔 수 있다. 이것이 비단 박물관뿐이랴. 우리 삶의 모든 장소가 그런 잠재력을 갖게 될 수 있다.

한편 박진호 교수는 내년부터 속초 시립박물관의 발해역사관에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도 디지털로 재현하고 싶어 한다. 동원대학교 이병건 실내건축학 교수(발해 건축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서다. 발해는 중국과 남북한 모두의 역사에서 외면당한 나라다. 그러나 발해는 거란과 중국(당나라), 고구려의 문화가 만나는 길목에 있어, 당대 가장 융합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자랑했다. 그러한 발해를 디지털로 재건해보고 싶은 것이 박진호 교수의 소망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은 지극히 통섭적인 작업이다. 이공학, 인문학, 예술학을 공부한 인재가 모두 필요하다. 또한 우리나라는 뛰어난 IT 기술 덕분에 외국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과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지만 현재는 그 문화를 유지하거나 재현할 능력이 없는 빈국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21세기 첨단기술 시대에 어울리는 K-컬처이자 한류인 것이다. 책갈피 속의 활자로만 잠들어 있던 역사를 살아 숨 쉬는 역사로 재생시키고, 전 세계에 한국 문화의 힘을 떨치고자 한다면, 디지털 문화유산 전문가의 길로 뛰어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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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잡 인사이드에 참여해주신
김경은, 김정은, 김정현, 김형우, 류승연, 박병철, 백지연,
오선옥, 유강열, 이유정, 정다현, 전유정, 전준규, 조재현 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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