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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망을 뒤바꾼
7가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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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국제 분업 체제를 통해 전례 없는 저비용 고효율을 가능케 한 글로벌 공급망.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쌓아온 기술의 성과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은 21세기 들어 각종 외부적 문제의 온상이자 연결 통로가 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공급망 변화를 되짚어본다.

word 이동훈(과학 칼럼니스트)

글로벌 공급망 Global Supply Chains이란 무엇인가? 간략하게 말하면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분업해 제품을 기획하고 원자재 및 부품을 조달, 가공, 생산해 최종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구조다. 정보, 자원, 완제품 등을 전 세계 어디든 신속 정확히 유통시킬 수 있어야 성립한다.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 글로벌 생산망Global Production Networks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결국 같은 것을 가리킨다.

글로벌 공급망의 사례를 들어보자. 독일에서만 나는 어떤 자원이 있는데, 한국 기업이 이 자원을 독일에서 수입해서 자사의 중국 공장에서 제품 생산에 투입하고, 이렇게 생산된 완제품을 한국 시장의 고객들에게 판매한다면 이 정도로도 이미 글로벌 공급망의 훌륭한 작동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유통되는 제품은 엄청나게 많다.

글로벌 공급망은 왜 필요한가?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지구상의 특정한 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자원과 제품을 최저가로 수입해서, 해당 제품이 없는 곳에 신속히 판매할 수 있다. 다양한 협력 업체들과 일하면서 사업적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세계 어디에서건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즉, 글로벌 공급망은 기업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게 해 효율과 이익을 극대화해준다. 지금부터 이러한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여러 기술과 사건을 알아보자.
글로벌 공급망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기술적 성숙
21세기 현대인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데 너무나 익숙하다. 글로벌 공급망이라는 용어를 꺼내는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20세기 이전에는 사실상 글로벌 공급망이 없었다. 물론 대륙 간 무역의 역사는 지중해와 중국을 잇는 실크로드가 생긴 3000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의 원시적인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은 요즘과 같은 인원과 물자, 데이터의 신속 정확한 대량 소통을 보장해줄 수준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6400km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인력과 동물의 힘에 의존해서 가야 했다. 하루에 25km씩 걸어간다고 쳐도 편도로만 256일이 걸린다. 그 때문에 전근대의 공급망은 도저히 글로벌이 될 수 없었고, 당대의 부족한 교통과 통신수단으로 감당 가능한 지역 공급망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공급망의 시초는 역시 18~19세기 산업혁명기다. 이 시기 인류가 기계력(증기기관)을 본격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력과 자연력보다 훨씬 빠른 교통수단(증기선과 증기기관차)도 등장했다. 그리고 유선전신과 전화가 발명되면서 통신선만 깔려 있다면 세계 어디든 이론상 실시간으로 통신도 가능해졌다.
1872년에 발표된 쥘 베른의 모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작품이 아니다. 당대의 급속한 교통 및 통신기술로 인해, 초보적이나마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인원과 물자를 지구 반대편까지 40일 내로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40일은 당대의 사업적 관점에서도 너무 긴 시간이었다. 세상에는 40일을 못 버티는 물건과 고객이 의외로 많다. 때문에 19세기까지도 글로벌 공급망의 도래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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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발표된 쥘 베른의 모험 소설 <80일간의 세계일주>는 당대의 급속한 교통 및 통신기술로 인해 초보적이나마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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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글로벌 공급망의 형성
20세기 직전인 19세기 말 인류는 또 다른 중대한 교통기술의 혁신을 경험하는데, 바로 내연기관의 발명, 그리고 그 내연기관으로 달리는 자동차의 발명이었다. 증기기관차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인프라인 철도가 있어야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자동차는 인프라가 없는 길이라도 어느 정도는 주파가 가능하다. 때문에 육상운송의 최말단을 담당할 수 있다. 이 자동차 중에서 화물의 대량 수송에 특화된 자동차, 즉 트럭(화물차)의 관련 기술도 크게 발전한다. 그중에서도 1898년 미국의 발명가 알렉산더 윈튼은 현대적인 세미 트럭semi truck(운전자와 엔진, 구동장치가 달린 트랙터와 짐을 싣는 세미 트레일러를 분리 운용 가능한 트럭)을 처음으로 발명, 육상운송에 혁신을 몰고 왔다. 가솔린엔진에 비해 더욱 효율이 우수한 디젤엔진도 1920년대 중반부터 트럭용 엔진으로 보급되기 시작, 육상운송의 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트럭에 짐을 나를 때 반드시 등장하는 감초인 지게차, 그리고 그 지게차가 물건을 내릴 때 사용하는 팔레트의 표준화도 1920년대부터 이루어졌다. 이는 대형 물류 창고의 건설과 운용을 가능하게 했다. 지게차가 팔레트를 통해 제품을 수직으로 쌓을 수 있게 되어, 제품 저장 및 취급 효율을 높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발명된 동력항공기의 발전도 글로벌 공급망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전 세계를 휩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전쟁, 즉 제2차 세계대전도 글로벌 공급망의 성장에는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워낙 엄청난 규모로 벌어진 전쟁이니만큼, 이 전쟁의 주요 참전국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른 대륙에 대량의 병력과 물자를 신속하게 보낼 수 있어야 했다. 이 때문에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의 교통 인프라, 그리고 그 인프라를 달리는 교통수단은 단시간 내에 양과 질 면에서 엄청난 성장과 국제표준화를 강요당했다.

또 이 전쟁을 전후해서 글로벌 공급망의 성장을 촉진시킨, 작지만 큰 한 가지 기술적 변화도 있었다. 바로 컨테이너 박스의 국제표준화다. 컨테이너 박스는 차량에도 선박에도 항공기에도 모두 탑재되는 물자 수송의 기본단위다. 따라서 이것을 국제표준화하면 그만큼 화물 운송의 규격화와 효율화 정도를 높일 수 있다. 컨테이너 박스 규격의 국제표준화는 1930년대부터 시도되어 1960년대에 완료된다. 흔히 1960년대부터 글로벌 공급망이 본격 가동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친 관련 기술과 인프라의 성숙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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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 트럭의 등장, 컨테이너 표준화 등의 기술적 성숙기를 거쳐 20세기부터 글로벌 공급망을 위한 환경이 갖춰졌다.
1960년대, 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의 본격화
한국인 대부분은 ‘세계화’라는 말에서 1990년대와 당시의 김영삼 대통령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세계화는 그 30년 전인 1960년대부터 무섭게 시작되고 있었다. 1960년대가 어떤 시대인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복구가 완료되고,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까지 국제 무대로 본격 복귀했으며, 유럽 국가의 식민지들이 대량으로 독립해 나가던 시대다. 당연히 세계 각국 간의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질 수밖에 없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기술적 인프라도 이미 충분했다. 우리나라 역시 근대화와 수출 주도형 경제정책이 시작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 공급망은 이 시대 이후로도 계속 기술적 발전을 거듭한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주된 기술적 화두는 다름 아닌 전산화였다. 이 시대부터 컴퓨터는 기업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성능이 향상되었고 가격도 감당할 수준이 되었다. 당연히 기업들은 재고관리와 예측, 유통에 컴퓨터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글로벌 공급망을 통한 물류 유통을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변모시켰다. 1967년에는 IBM이 최초의 전산 재고관리 및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다. 1975년에는 실시간 전산 재고관리 시스템이 나왔다. 1980년대에는 개인용 컴퓨터를 통한 공급망 전체 관리도 가능해진다. MIT가 개발한 사물인터넷의 효시, RFID(무선 주파수 인식) 태그는 제품의 위치추적을 매우 쉽게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공지능과 로봇 등 제4차 산업혁명 기술도 글로벌 공급망의 발전을 돕고 있다.

전후 국제관계의 변화도 글로벌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후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자본주의 진영의 주요 생산기지이자 수출 국가로 급부상했다. 이들 국가들이 대량으로 원재료를 수입하고, 완제품을 수출할 수 있던 것은 글로벌 공급망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리고 1970년대 말에는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소련이 붕괴하면서 구공산권 국가와 자본주의 국가 간의 교역도 매우 활발해졌다.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설립되었고, 2001년에는 중국이 여기에 가입함으로써 글로벌 공급망은 전성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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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상치 못했던 자연재해나 국가 간 갈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타격을 입고, 그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다.
21세기에 부각된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의 위기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계속 성장하던 글로벌 공급망에도 적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국제관계에서 생겨난 그 적신호들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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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처음 짚어볼 사건은 20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다. 2007년의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취약점이라는 그 메커니즘 면에서 1929년 세계경제 대공황과 비슷했다. 다만 2008년의 미국은 1929년에 비해 경제적 체급과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져 있었고, 그 영향은 강력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전파되었다. 따라서 미국 경제의 위기는 전 세계에 더욱 큰 악영향을 불러왔다. 돈이 덜 돌게 되자 글로벌 무역량도 급감하게 된다.

그리고 소련의 붕괴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되었던 미국 단일 패권 체제가 도전받고 있다는 점도 글로벌 공급망의 발전에는 악영향이다. 가장 큰 도전자는 다름 아닌 중국이다. 개혁·개방으로 세계의 신흥 생산기지로 급부상한 중국은 높아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과 과학력 발전에까지 투자, 미국과도 대결이 가능한 초강대국 자리를 노리게 되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계속 세계 패권국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한 중국과의 협력과 공생관계를 줄여나가야 한다. 미국이 설계한 첨단 제품의 중국 내 제조도 그만두어야 한다. 미국의 첨단기술이 유출될 수 있으니 말이다.

세계가 다극 체제로 바뀌고, 미국 등 특정 국가의 패권적 권력이 덜 미치면 각 지역별로 패권을 노리는 나라들이 고개를 들기 마련이다. 지난해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올해 발발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앞서도 말했듯이 세계경제가 과거에 비해 견고한 글로벌 공급망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이러한 외부 효과가 주는 후폭풍도 그만큼 커지고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이들 전쟁의 당사국들은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전 세계에 주요 자원(연료, 식량 등)을 공급하던 나라나, 그 이웃 나라들이었다. 이 나라들이 전쟁에 돌입하자 전 세계인이 해당 자원을 공급받기 어려워졌다.

외부 효과에는 전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자연재해(극한 기후, 지진, 해일 등), 전염병(코로나19, 조류독감 등), 의도치 않은 사건 사고(2021년 수에즈운하 에버기븐호 좌초 사고 등) 등도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없던 과거에는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세계적 파급력을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다르다.

글로벌 공급망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기존 지상 목표가 ‘저비용 고효율’이었다면, 이제는 ‘안정과 신뢰’로 바뀌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탈중국화다. 기존 글로벌 공급망은 ‘세계의 공장’ 중국 한 나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가 간 갈등 등 각종 외부 효과에 대비해 부품 조달, 제품 생산 등을 다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어떤 상황에도 융통성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장차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시될 것이다. 물론 그러기에는 각국 간의 분업이 너무 확실하게 이루어져온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국 답은 칼 세이건 박사의 말처럼 “국가가 아닌 인류 전체에 대한 충성”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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