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는 상태로 사는 삶은 가능할까. 생명공학 및 바이오 분야에서 세포 노화를 늦추는 ‘항노화’를 넘어 노화를 되돌리는 ‘역노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역노화 기술은 지난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KIRBB이 발표한 ‘10대 바이오 유망 기술’ 중 하나로 선정돼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역노화 연구가 노화로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word 김광균 photo 김기남
조광현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Q. 교수님께서는 세계 최초로 인체 세포의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주목받으셨는데요. 연구 결과의 성과와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인간의 진피 섬유아세포가 노화되는 과정에서 세포 내 단백질의 변화를 측정하고 측정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포가 노화되는 과정에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분자를 추출한 뒤 분자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수학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약 8개월간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노화 과정을 모사해내고 노화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는 분자 타깃이 무엇인지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PDK1’이라는
분자를
발견했는데 이 분자를 억제하면 노화된 진피 섬유아세포를 젊고 건강한 세포로 되돌려 활발하게 세포 분열을 하면서 피부 조직상에서도 진피층이 두터워집니다. 그리고 콜라겐 합성이 늘어나면서
늙고 주름진
피부 조직 세포층을 젊고 건강하게 되돌린다는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됐죠.
Q. 항노화(안티에이징)를 넘어 역노화(리버스에이징)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역노화의 개념은 무엇이며, 항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 배경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항노화는 노화를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을 연구하는 것이고요. 역노화는 노화된 상태를 보다 적극적으로 젊고 건강한 세포 상태로 되돌리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으로 개념적으로 분명히 다릅니다.
항노화는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 장수와 관련지어 비과학적인 영역으로 인식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대 생명과학이 발전하면서 항노화 연구를
포함해 노화 연구 전체가 생명과학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많은 노화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모든
생명체가 노화되고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노화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과학적으로 확실히 규명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희 연구팀이 인간의 진피 섬유아세포를 역노화한 연구
결과를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고요. 최근 들어 단일 세포 수준에서 세포 내 여러 분자의 변화를 측정하는, 소위 단일 세포 오믹스❶ 측정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다 진보한 역노화
연구 성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❶ 오믹스Omics: 생명과학 분야에서 대용량 분석 결과로 나오는 분자나 세포등의 집합체 전부를 의미
Q. 세계적으로 역노화 기술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요. 역노화를 가능케 하는 여러 기술이 있을 텐데 주로 어떤 기술이 각광받고 있나요?
최근 들어 역노화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추세로, 이제 기초연구 수준을 넘어 산업화 문턱에 와 있다고 봅니다. 항노화 및 역노화 연구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몸의 노화된 세포를 제거하는 기술 연구, ‘세놀리틱스Senolytics’ 방식입니다. 세놀리틱스는 노화된 세포를 제거해 노화를 지연시키는 약물인데 상처 회복이나 조직 재생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노화 현상과 관련된 세포까지 공격할 수 있어 큰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두 번째는 ‘세노몰픽스Senomorphics’ 방식인데요. 이는 노화 세포를 직접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노화 세포가
내뿜는 염증성 사이토카인❷을 분비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자 개발된 약물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마찬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부작용의 우려가 적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역노화 기술입니다. 최근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 연구팀은 쥐의 망막 시신경세포에 ‘야마나카 인자’라는 유전자 조절인자를 일시적으로 주입하면 역노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으나 암발생
가능성이 있어서 사람에게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운 방식입니다. 이를 비롯해 현재 역노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글로벌 IT기업들도 역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투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 ❷ 염증성 사이토카인: 염증반응을 촉진하는 신호전달분자로, 면역세포뿐만 아니라 노화세포에서도 분비된다.
Q. 역노화 원천기술은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과 공동 연구한 성과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산업계와의 연구 협력을 통해 실질적으로 어떤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큰 시너지가 있었죠. 이미 알려진 대로 연구팀은 인간의 진피 섬유아세포를 젊은 세포로 되돌리는 원천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아모레퍼시픽에 기술이전했습니다. 저희는 역노화 연구 자체에만 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아모레퍼시픽 측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천연물 라이브러리를 바탕으로 PDK1을 억제할 수 있는 후보 물질, 즉 실제 화장품에 넣을 수 있는 성분을 빠르게 찾아냈습니다. 이후 임상시험을 거쳐
기능성 화장품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부터 기술 이전, 관련 상품 출시까지 불과 3년 만에 이뤄낸 굉장히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역노화 연구는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둡니다.
인생의 후반부를 더 젊고 활력 있는 상태로 지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후반부를 더 젊고 활력 있는 상태로 지내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역노화 기술 연구와 관련하여 기업들과 진행 중인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아모레퍼시픽과 공동 연구한 산업화 사례에서는 피부 진피 섬유아세포를 활용했는데요. 현재 진피 섬유아세포뿐 아니라 다른 조직의 섬유아세포를 활용해 노화 과정에 대한 실험을 수행 중이며, 단일 세포
오믹스 데이터 측정을 통해 보다 정밀한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안전하게 역노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타깃을 발굴하기 위해 노력 중인 셈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위해 영양제를
복용하듯이 안전한 역노화 약물을 개발해 일정 연령 이상이 되면 이를 섭취해 암을 비롯한 여러 노인성 질환의 발병을 최대한 늦추고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Q. 항노화와 더불어 역노화 기술 산업의 성장은 인류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요?
역노화 연구는 절대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목표를 둡니다. 일반적으로 노후라 하면 삶을 정리하며 인생의 후반부를 맞이하는 시간으로 인식되지만 앞으로 우리가 좀 더 젊고
활력 있는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개념도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 인구 감소와 더불어 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Q. 앞으로 역노화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시나요?
아모레퍼시픽과의 성공적인 산업화 사례처럼 기초연구의 벽을 넘어 빠르게 산업화의 길로 나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도전과
연구가 이뤄질 거라고 봅니다. 역노화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가 크고 현재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이기 때문에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역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Q. 정부는 첨단바이오 강국 도약을 위한 ‘첨단바이오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며 역노화 기술개발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역노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어떤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기초과학 등의 큰 범주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후발주자에 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조차 이뤄내지 못한 역노화 기술을 우리가 먼저 개발해낼 수 있었던 요인은 시스템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융합 학문과 기술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생물학 실험을 넘어 수학 모델링, 컴퓨터 시뮬레이션, 제어공학 등의 기술이 융합된 시스템생물학 연구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죠.
역노화 기술을 순수 생명과학 분야로만 접근한다면 투자 대비 빠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처럼 앞으로 역노화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 지원이 융합연구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하게 기초연구 투자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좀 더 과감하게 융합기술에 투자함으로써 산업계와 윈윈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