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Focus Story> History
질병을 넘어선 인류
근대 이후 혁신 의학 기술
s_double.jpg

산업혁명 이전 전 세계 인구는 10억 명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2024년, 인간은 81억 명이 되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내 빠른 속도로 인류가 증가한 데는 의학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병장수를 원하는 인류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주요 의학 기술을 살펴보자.

흔히 근대 이후의 시기를 ‘과학 시대’ 라고 부른다. 이는 과학이 현대인의 전유물이어서가 아니다. 전근대 시대에도 과학은 있었고, 연구되고 활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가 중요한 이유는 이 시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대중이 세상은 과학적 원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나 악마 등 검증 불가능한 초월적 존재가 세상을 좌우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고의 전환은 의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에만 해도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이 미생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그 이전에 미생물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다.
흑사병이 냄새로 퍼진다고 생각해 좋은 냄새가 나는 향료를 몸에 지니면 흑사병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광견병이 걸린 개에게 물리면 치료를 한답시고 상처를 뜨거운 쇠로 지졌다. 이런 비과학적인 예방 및 치료 방법이 효과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근대 이후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자리 잡으면서 인류는 질병의 원인을 제대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인류의 건강 상태와 평균수명은 비약적으로 증진됐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전근대 시대의 신생아 중 50~70%는 생물학적 결혼 가능 연령이 되기 전에 죽었다. 때문에 백일, 돌, 환갑 등의 통과의례성 잔치를 성대하게 치렀다. 하지만 요즘 현대인의 생애주기는 달라졌다. 이제 환갑은 장수 축에도 들지 못한다.
s1_2_icon.png 1796년, 현대적 백신의 등장
약화된 병원균을 환자에게 주입해 면역력을 확보하는 백신은 현대적 예방의학의 상징이다.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백신의 존재를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현대적인 백신이 등장하기 전 전근대에도 천연두 환자의 물건을 사용한다거나,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접종받는 등 약화된 천연두 바이러스를 노출시켜 예방하는 민간요법인 ‘종두법’이 존재했다. 물론 당대인은 천연두 바이러스의 존재는 몰랐지만 말이다. 이 방법은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면역 효과를 전혀 얻지 못하거나, 아직 팔팔한 천연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목숨이 위험해지는 등의 부작용도 있었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을 짜는 일꾼들이 소에게서 우두를 옮았다가 나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그는 우두 환자의 고름으로 천연두 백신을 만들어 이를 정원사의 아들에게 접종했고, 이후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그 아이에게 접종함으로써 예방 효능을 입증했다(요즘 같으면 연구 윤리에 심각하게 위배되는 행동이다). 이를 필두로 급속히 퍼져나간 백신은 천연두를 자연 상태에서 사실상 멸종시켰고, 국민에게 백신을 보급하여 주요 전염병을 퇴치하는 능력은 근대국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지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데도 백신이 큰 역할을 했다.

백신 분야의 신기술 중에는 mRNA(메신저 RNA) 백신이 있다. mRNA는 인체에 단백질을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유전 물질로 인체 세포에 병원체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이후 mRNA 백신을 접종받은 인체가 진짜 병원체에 노출되면, 그것을 인식하고 퇴치 방법을 구사할 수 있다.
s1_2_1.jpg
천연두 예방 백신으로 우두를 접종하는 제너
s1_2_icon.png 1846년, 마취제의 탄생
오늘날엔 당연하게 행해지는 마취. 마취 방법 역시 기원전 4000년부터 다양하게 연구되었으나 근대적인 기준에서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근대 이전까지 수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분류됐다. 일부 환자의 경우, 수술을 거부하고 차라리 죽겠다고 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1846년, 미국의 치과의사 윌리엄 T. G. 모튼이 에테르Ether❶를 사용해 환자의 전신마취에 성공, 근대적인 마취 방법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후 오래 지나지 않아 더욱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마취제인 클로로포름Chloroform이 등장해 널리 보급된다. 두 마취제로 수술이 늘어나는 한편, 환자가 영원히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즉, 사망하는) 부작용 사례도 많아졌다. 이에 더욱 안전한 마취제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환자가 수술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것도 안전한 마취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 ❶ 에테르: 에틸에테르. 화학식은 C2H5OC2H5이다. 무색이며 휘발성이 높고 특유의 강한 냄새가 있으며 불이 잘 붙는다. 19세기 중반에는 수술 마취제로 쓰이며 의학 수술에서 환자의 고통을 줄이는 혁신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마취제가 개발되며 마취제로서의 사용은 줄게 됐다.
s1_2_2.jpg
에테르를 사용해 환자를 마취한 모튼(오른쪽에서 두 번째)
s1_2_icon.png 1861년, 질병의 원인이 밝혀지다
매균설Germ Theory이란 질병의 원인이 세균, 즉 미생물 때문이라는 이론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소리라고 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 전근대인은 이를 몰랐다. 전근대인은 질병의 자연발생설을 추종했다. 질병이 접촉이나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무로부터 출현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자연발생설은 1861년에 등장한 매균설과 함께 사라졌다. 프랑스의 미생물학자인 루이 파스퇴르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 미생물임을 입증한다. 그는 설탕과 효모의 배양액을 가열살균한 다음, 이를 플라스크 내에 밀봉했다. 외부와 접촉이 없게끔 밀봉된 이 배양액 내에서는 어떤 부패나 발효 등도 관찰되지 않았다. 공기 중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실험은 매균설을 입증함과 동시에 의학계에 큰 전환점을 제공했다. 이로써 질병의 치료와 통제 및 예방법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당시 엄청난 수의 사람을 죽이던 흑사병, 이질, 티푸스 등의 전염병을 다스리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s1_2_icon.png 1895년, 의료영상기술로 몸속을 살펴보다
의료영상기술Medical Imaging Technology은 인체를 절개하지 않고 그 내부를 보여주는 기술이다. X선, 초음파, CT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제일 먼저 개발된 X선은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이 우연히 발견했다. 그는 검은 종이로 밀봉한 유리 음극선관에 전류를 흘리는 실험을 하다가, 음극선에서 기존에 알지 못하던 광선이 종이를 뚫고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물질에 따라 광선의 투과력이 다르다는 것, 투과 상태를 사진으로 기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신비의 광선이 바로 X선이다. X선은 인체 내부의 상태를 보여주는 마법의 광선으로, 순식간에 의료계의 각광을 받았다. 그 좋은 사례로, 1896년 영국 글래스고의 병원 내 세계 최초의 방사선과가 생겼다.

고주파 음파를 쏘아 디지털 영상을 만들어내는 초음파 영상기술은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55년부터 의료용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태아의 상태 검진이나 환자의 골반 및 복강 상태 검진 등의 효과를 혁신적으로 높였다. 1967년에는 X선과 컴퓨터를 결합한 컴퓨터단층촬영CT,Computed Tomography 스캐너가 발명되었다. 현대 의료의 필수품이라 할 수 있는 CT 스캐너로 인류는 여러 가지 질병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1973년에는 미국의 화학자 폴 라우터버가 MRIMagnetic Resonance Imaging(자기공명영상)를 개발해낸다. MRI의 원리는 자석으로 구성된 장치에서 인체에 고주파를 쏘아 신체 부위에 있는 수소원자핵을 공명시켜 각 조직에서 나오는 신호의 차이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해 영상화하는 것이다. 암, 뇌 및 척수 손상, 심장 및 신장 질환 등 방치하면 매우 치명적인 질환을 조기에 정확히 잡아낼 수 있는 기술이다.
  • ❷ 유리 음극선관: 크룩스 튜브 또는 크룩스 음극선관으로 불린다. 19세기 말, 영국 물리학자 윌리엄 크룩스가 발명한 실험 장비다. 높은 전압을 사용해 진공상태에서 전자를 발생시키고, 이 전자(음극선)가 유리 튜브 안에서 여러 물리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s1_2_3.jpg
뢴트겐이 촬영한 첫 X선 사진 중 하나인 사람의 손 사진. X선은 최초의 의료영상 기술이었다.
s1_2_icon.png 1928년, 역사를 바꾼 항생제의 출현
1928년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세균의 세포벽을 파괴해 죽이는 항생제 페니실린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이후, 세균성 질병과의 전쟁 방식은 일변했다. 이후 미국이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에 성공한 것도, 추축국을 상대로 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페니실린을 필두로 한 항생제에는 부작용도 있었다. 항생제에 견딜 수 있게끔 진화한 슈퍼박테리아가 등장한 것이다. 현재 의학계는 이 슈퍼박테리아의 퇴치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s1_2_4.jpg
항생제를 최초로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
s1_2_icon.png 1960년부터 1970년대까지의 의학적 발견들
천연두, 인플루엔자, 간염, AIDS, 에볼라, 광견병 등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중대 질병이 많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구조가 달라 기존 항생제로 잡을 수 없다.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은 보호단백질로 싸여 있으며, 그 상태에서 인간 세포 속에 숨어 번식한다. 때문에 인간 세포를 파괴하지 않고 바이러스를 잡기는 매우 어렵다. 항바이러스 의약품은 항생제보다 훨씬 늦은 1960년대에 나왔다. 항바이러스 의약품은 바이러스의 번식을 막거나, 인간의 면역체계를 자극해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다양한 세포가 가지각색의 빵이라면, 줄기세포는 그 모든 것의 원료인 밀가루 반죽과도 같다. 1970년대 의학계는 줄기세포가 지닌 이 엄청난 가능성에 주목했다. 줄기세포로는 어떠한 인간 세포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후 줄기세포 연구는 크게 발전했고, 현재는 골수 이식을 하지 않고도 줄기세포 요법으로 백혈병 등 혈액 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줄기세포로 척수 부상,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뇌졸중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면역 치료는 환자의 면역계를 자극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다. 면역 치료의 원조는 미국의 의사 윌리엄 B. 콜리다. 그는 1890년대 암 환자의 종양에 비활성화된 박테리아를 투여해 암을 치료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면역 치료가 크게 발전한 것은 항체 요법이 등장한 1970년대부터다. 1991년에는 면역 치료법을 적용한 암 백신이 나왔고, 이 제품은 2010년 FDA 승인을 받았다. 최근 면역 치료는 암 치료 방법 중 가장 큰 잠재력이 있는 요법으로 각광받고 있다.
s1_2_icon.png 21세기, 의료 기술에 찾아온 4차산업혁명
4차산업혁명은 의학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원격 진료와 맞춤형 처방, 환자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대응하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로봇으로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하고 돌보고 이동시키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서비스를 할 수도 있다. 특히 로봇은 24시간 작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시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보살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의료 기술의 발전이 어디까지 이어질까? 영화 <엘리시움>에도 나오듯 암을 순식간에 고치는 요법도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신기술 개발에 도전해 막연한 미래를 현실로 실현시켜왔다. 21세기에 펼쳐질 첨단 의학 기술을 기대해보자.
s1_2_5.jpg
4차산업혁명은 의학계에도 침투하고 있다. 일본의 간병 로봇 ‘로베어’
s1_2_6.jpg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 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미래의 전쟁>, <위대한 파리>, <오퍼 레이션 페이퍼클립>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