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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의약품의 시대가 온다
왜 바이오의약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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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또는 의약품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 대부분은 알약이다. 혹자는 주사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평소 의약품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피부에 바르는 연고나 붙이는 패치를 생각할 수도 있다. 알약, 연고, 그리고 대부분의 주사제는 합성의약품이다. 공장에서 화학 ‘합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바이오의약품이란 무엇일까? 이 역시 ‘의약품’으로 합성의약품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약이라는 뜻일 터. 바이오의약품은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추출했거나 생명체를 활용해 생산한 의약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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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이오의약품인가?
2022년에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이미 4777억 달러, 즉 660조 원을 넘어섰다. 실제로 2023년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팔렸던 의약품 10개 중 7개가 바이오의약품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생명공학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앞으로 새로운 작용기전을 갖는 혁신적인 바이오의약품이 더 많이 개발될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합성의약품 분야에서는 한국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오의약품 분야는 이제 막 발아했기 때문에 후발국인 한국도 충분히 겨루어볼 만하다. 비록 정통 바이오의약품은 아니더라도 바이오시밀러에서 한국의 바이오 제약기업이 전 세계 시장을 주도한다는 사실도 이런 기대를 뒷받침한다.

그뿐만 아니라 바이오의약품은 근간이 되는 생물학과 질병의 병태생리를 잘 이해할수록 더 쉽게 개발이 가능하다. 한국의 의과학계는 최근 몇 년 동안 전 세계가 부러워할 만큼 빠르게 발전했다.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과학 역량과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섬유,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을 이을 미래산업이 바로 바이오의약품이라고 기대하는 게 이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오의약품이 한국에 중요하다. 우리 모두가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응원해야 할 이유다.
바이오의약품과 합성의약품의 차이
합성의약품은 크기가 작다. 구조도 비교적 간단하다. 화학합성을 통해 만들기 때문에 원료가 같다면 항상 동일한 약이 만들어진다. 온도와 습도가 아주 높지만 않다면 보관도 큰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합성의약품은 먹는 방식으로 투여한다.
이에 반해 바이오의약품은 매우 크다. 구조도 복잡하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이용해 생산하기 때문에 만든다기보다 ‘키운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같은 원료를 쓰더라도 생산 공정이 달라지면 최종 결과물이 같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열과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관 조건도 매우 까다로워 냉장 또는 냉동이 필수다. 먹는 방식으로는 우리 몸 안에 보낼 수 없다. 그래서 99%의 바이오의약품은 정맥이나 근육 또는 피하로 주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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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익숙해진 mRNA 백신
바이오의약품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바이오의약품은 의료 현장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됐다. 피를 많이 흘린 환자에게 주는 농축적혈구, 피가 잘 멎지 않는 환자에게 주는 신선냉동혈장, 그리고 예방접종에 사용하는 백신이 다 바이오의약품이다. 이처럼 우리 곁에 오랜 기간 존재했던 바이오의약품이 갑자기 각광받는 이유는 뭘까? 생명공학 기술이 급격히 발전해 한 해가 멀다 하고 새로운 종류의 바이오의약품이 속속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팬데믹 중에 유명해진 mRNA 백신이다. 물론 백신은 오래된 바이오의약품 중 하나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에 걸린 사람의 체액을 접종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약하게 앓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제너의 발견 이후 독성을 약화한 바이러스나 병원균을 접종해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시도가 다양한 백신 개발로 이어졌다.

이처럼 백신은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을 약화하거나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일부분을 분리한 것이다. 이들을 주입하면 우리 몸에서는 미생물에 저항하거나 미생물의 기능을 약화하는 항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개발된 구시대의 백신은 일종의 ‘블랙박스’였다. 백신에 정확히 어떤 물질이 포함되어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백신을 접종했을 때 어떤 종류의 항체가 만들어져 감염을 예방하는지도 몰랐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표면에 돌기처럼 솟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이용해 우리 몸 안에 들어온다. 따라서 스파이크 단백질에 붙어 작동을 억제하는 항체를 우리 몸이 만들어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감염을 예방하거나 적어도 질병의 경과를 단축할 수 있다.

만일 옛날 방식으로 백신을 만든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죽이거나 거의 죽인 상태로 몸 안에 집어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mRNA 백신은 구시대의 백신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요컨대 mRNA 백신은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물질이다. 주입된 mRNA는 우리 몸 안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고 여기에 결합하는 항체가 순차적으로 생성된다. 즉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주입하지 않아도 감염을 막는 데 필요한 항체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mRNA 백신을 성공적으로 개발할 수 있던 이유는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감염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냈기 때문이다. 정보 공유도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분리한 지 며칠이 안 돼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과학자에게 공유됐다. 빙고! 이제 남은 것은 알려진 유전자 코드에 따라 mRNA를 만드는 일이다.

mRNA 백신이 이전 백신보다 좋은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mRNA 백신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조작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 과정에서나 이후에 감염될 위험이 전혀 없다. mRNA를 구성하는 유전자 염기서열은 비록 생명 정보이지만 그 자체는 비교적 간단한 화학합성으로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제조 기간도 짧아 단기간에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가능하다.물론 문제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mRNA가 불안정한 물질이기 때문에 보관은 물론 운송 과정이 까다롭다. 즉 mRNA 백신은 냉장 또는 냉동 기능을 갖춘 물류체계가 필요하고 이를 콜드체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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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연구가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충북 제천시 바이오밸리의 엔지캠생명과학 중앙연구소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 바 있다.
바이오의약품 시대를 앞당긴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들
mRNA 백신 기술 이외에도 바이오의약품 시대를 연 중요한 생명공학 기술이 더 있다. 우선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살펴보자.

1) 세포의 기능을 바꾸는 유전자재조합 기술
특정한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 정보를 유전자gene라고 부른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은 바로 이 유전자를 세포 안에 존재하는 유전체genome에 끼워 넣는 기술을 말한다.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활용하면 세포가 새로운 기능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인슐린 유전자를 박테리아나 돼지, 소의 유전체 속에 삽입하면 유전자가 새롭게 자리 잡은 세포에서 사람의 인슐린을 만들기 시작한다. 만들어진 인슐린을 세포에서 추출하면 되기에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일종의 인슐린 공장 역할을 하는 새로운 세포가 얻어진 셈이다. 현재 가장 흔한 바이오의약품은 인슐린과 같은 단백질이 중심 성분이다. 따라서 유전자재조합 기술이야말로 바이오의약품 시대를 연 핵심 기술이라 할 만하다.

2) 세포증식을 통해 항체를 만드는, 하이브리도마 기술
하이브리도마Hybridoma 기술도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이브리도마 기술은 특정 항체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포 집합을 만드는 기술이다. 특정 항원에 반응해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와 종양세포를 융합해 하이브리도마를 생성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바이오의약품 대부분은 항체의약품이다. 그러나 유전자재조합 기술로 항체를 생산하기란 쉽지 않다.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세포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에 사용하는 대장균이나 효모처럼 활발히 증식하는 세포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전자재조합 기술만으로는 충분한 양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어렵다.

낮은 생산수율의 문제는 하이브리도마 기술로 해결했다. 하이브리도마 기술을 사용하면 두 종류의 세포를 융합해 잡종세포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체 공장’ 세포를 얻기 위해 항체를 생산하는 비만세포와 암세포를 융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잡종세포는 비만세포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능력을 물려받고 암세포에서는 무한히 증식하는 특성을 얻는다. 결국 하이브리도마 기술을 통해 항체 생산에 적절한 세포주를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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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나 유전자 분석 맞춤의료가 아니라 왜 바이오의약품인가 하고 묻는다면,
바이오의약품은 지금 담당 실제 환자 치료에 빈번히 사용되는 중요한 치료법이기 때문이다.”
- <바이오의약품 시대가 온다> 中
바이오의약품 미래 선도하는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는 단백질이 주성분인 대다수 바이오의약품과는 생산이나 개발 과정이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는 생물학적 원천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바이오의약품에 속한다. 특히 최근에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의 임상 효과가 입증되면서 차세대, 즉 바이오의약품의 미래를 선도할 혁신 의약품으로 큰 기대를 받고 있다. 또한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 희귀난치병이나 치명도가 높은 질환에서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인 졸겐스마는 병을 일으키는 망가진 유전자를 대신해 기능할 수 있는 대체 유전자를 넣어줌으로써 치료 효과를 발휘하는 정통 유전자치료제인데 단 1회 투여로 완치가 가능하다.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 같은 혁신 바이오의약품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잘 보여주는 예다.

다만 이러한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는 매우 비싸다. 졸겐스마의 경우 한국에서는 약가가 20억 원에 달한다. 다행히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이 돼 환자 부담은 600만 원으로 대폭 줄었지만 여전히 바이오의약품의 높은 가격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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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3공장에서 연구를 진행 중인 연구원들.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포함해 셀트리온, SK바이오팜, 한미약품, 녹십자, 유한양행 등의
기업들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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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 서울대학교 분자의학및바이오제약학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를 겸직하며 신약개발, 임상약리학, 맞춤약물요법, 규제과학, 인공지능, 빅데이터가 주요 연구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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