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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영화 속 AI 에이전트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지금 우리는 생성형 AI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스크린 속 AI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인간과 대결하고, 협력하고, 때로는 인간 그 자체가 되기를 꿈꿨다.
영화 속 AI 에이전트들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 그 자체였다. 이번엔 그중에서도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낸 세 편의 SF 영화 속 AI 에이전트를 들여다본다.

<매트릭스>
인간을 적대한 소프트웨어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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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포스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데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이다. 극 중에서 인류는 기계와의 싸움에서 패배해 기계를 위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전락하고, 기계가 제공하는 가상현실 속에 빠져서 그 비참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저항 조직들이 생겨나 기계로부터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싸우고,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 역시 우연한 기회에 그 저항 조직에 합류한다.

물론 기계들이 멍청히 당하고 있지는 않는다. 가상현실 속에서는 요원(Agent. 공교롭게도 본지 이번 호에서 다루는 AI 에이전트의 그 에이전트다!)들이, 그리고 현실 속에서는 스퀴드 로봇들이 저항 조직을 공격하고 있다.

요원들이 인간을 적대한다는 점만 빼면 매우 훌륭한 AI다. 가상현실 속 어디라도 순간 이동하고 강력한 힘으로 싸운다. 심지어 필요하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나 자기 복제도 가능하다. 이러한 요원들의 모습은 실제 AI 에이전트 중 하나인 소프트웨어 에이전트의 역할을 영화 속에서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에이전트는 사용자 또는 다른 프로그램을 대신해 움직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구체적 사례로는 ‘시리’·‘알렉사’ 등의 개인용 도우미, 자동으로 웹을 검색해 정보를 수집하는 웹 크롤러, 금융시장에서 자동으로 거래를 수행하는 트레이딩 에이전트 등이 있다. <매트릭스>에서의 요원 역할과 가장 비슷한 것은 소프트웨어 메인터넌스 에이전트가 아닐까. 이들은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율적으로 실행되고, 버그 발견 및 코드 최적화 등의 소프트웨어 유지관리를 실행한다. 이로써 인간은 더욱 복잡한 문제의 해결에 전념할 수 있다.

물론 물리적 공간 내에서 주인공들을 공격하는 스퀴드 로봇도 그 자체로 이미 AI 에이전트다. 모든 로봇 역시 AI 에이전트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매트릭스>에 나오는 다른 캐릭터들의 이름, 예를 들면 스위치, 마우스, 사이퍼 등도 모두 IT 용어다. 제작자의 IT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인간을 이해하고자 인간이 된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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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 포스터.
일본 애니메이션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는 가까운 미래에 ‘안개 함대’라는 미지의 함대에 의해 생존이 위협당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다. 안개 함대의 군함들은 모두 구 일본 해군 군함의 외형을 하고 있으며, AI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주인공 치하야 군조(오키쓰 카즈유키 분)의 아버지이자 잠수함 함장인 치하야 쇼조(나타카 조지 분)는 뛰어난 전술을 구사해 전투에서 안개 함대를 이긴다. 이에 놀란 안개 함대는 치하야 쇼조를 만나 대화하고, 그에게서 전술을 배우고자 한다. 하지만 안개 함대가 지닌 물리적 몸은 모두 군함뿐이다. 군함과 인간은 대화하기 어렵다.

결국 안개 함대가 쇼조와 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해 인간 형태의 아바타 ‘멘탈 모델’을 만들어, 쇼조와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AI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관에 따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조치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AI도 자연어, 즉 인간의 언어를 알아야 인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몸을 가져야 인간이 물리적 세계 속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제대로 알 수 있다.
<공각기동대>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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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포스터.
모든 인간의 몸이 기계로 개조된 사이보그가 되어 영생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 삶을 사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인형사(가유미 이에마사 분)라는 AI가 나온다. 이 AI는 엄밀히 말하면 ‘인공’이 아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다. 그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를 할 뿐 아니라,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다나카 아쓰코 분)와 융합까지 시도한다. 인형사의 말에 따르면, 그것이 자신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개체와 짝짓기를 해서 유전적 강점을 이어받고 약점을 버린 후손을 만든다. 이로써 개체가 죽더라도 유전자는 영원히 남을 뿐 아니라 다양성을 부여받아 더욱 강해진다. 인형사가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유에 관한 이론 중 ‘원시 수프’ 가설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유기화합물이 어떤 이유로 인해 고도로 발전해 원시 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모든 생명의 설계도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는 생명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정보다. 그렇다면 정보의 바다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 네트워크에서도 정보의 원시 수프가 만들어져, 정보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명체 역시 기존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유전자를 더욱 다양화하고 강화하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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