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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홈의 역사
‘알잘딱깔센’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의 줄임말이다.
인간의 사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집. 그중에서도 인간을 위해 ‘알잘딱깔센’스럽게
기능을 발휘하는 집이 바로 스마트홈이다. 이 스마트홈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진화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숙제가 남아 있을까?
word 이동훈(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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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개발된 최초의 현대적 보급형 스마트홈용 통신 프로토콜인 X10은 스마트폰 시대인 21세기에도 여전히 스마트홈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의식주衣食住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3가지 필수 요소다. 스마트홈은 바로 이 중 집에 해당하는 주住에 (인공)지능과 그것이 통제하는 물리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술 시스템, 자동화 프로세스, 원격제어 기기 등을 주택에 통합시켜 가정생활의 질과 편의성을 높이고, 보안을 향상시키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기존의 주택에서는 이 모든 것이 사람의 몫이었다. 외출할 때마다 문단속을 하고, 부족한 물품의 재고를 파악해 구입하고, 냉난방이 필요 없을 때 끄는 등의 행위를 입주자가 다 해야 했다. 그러나 스마트홈은 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똑똑한smart 집home이다. 기술적으로 표현한다면, 조명, 공기 조절, 오락 시설, 가전제품, 방범 체계 등의 여러 하부 체계가 자동화된 주택이다.
이 스마트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행한 기술개발의 산물이다. 197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어져온 스마트홈 기술개발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다.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현대적 스마트홈
홈오토메이션home automation, 스마트하우스smart house 또는 도모틱스domotics라고도 불리는 스마트홈에 대한 구상과 개념 정립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여담이지만, 스마트홈이라는 용어는 1984년 미국주택건설협회AAHB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들어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가정의 전기와 가스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이들을 동력원으로 삼아 인간의 가사 노동을 대신해주는 기계들(세탁기, 냉장고, 온수기, 재봉틀, 식기세척기, 의류 건조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엄청난 기술혁신이었다. 이를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스마트홈 기기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계도 결국 인간이 일일이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현대적인 기준의 스마트홈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후 1966년, 미국 웨스팅하우스 발전소 엔지니어 출신인 짐 서덜랜드가 여가 시간에 ECHO(Electronic Computing Home Operator, 전자 계산식 주택 관리자)-IV라는 기기를 설계했다. 이 기기는 서덜랜드 가족의 가계부, 달력, 에어컨, TV 안테나 등을 관리해주었다. 현대적인 스마트홈 기술을 처음으로 구현한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가용 창작품이었을 뿐, 기업에서 일반에 시판해 이윤을 얻기 위해 연구개발한 물건은 아니었다.
기업에서 본격 개발한 스마트홈 기술의 시초는 1975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피코 전자에서 개발한 X10이 자주 거론된다. X10은 통신 프로토콜로, 가정의 교류전류 배선을 사용해 가정에 설치된 각종 가전 기기와 그것을 통제하는 제어 모듈 간의 통신을 가능하게 해준다. 1970년대 기준으로는 엄청난 첨단기술이었다. 설치하면 수백 개의 전자 기기를 원격조종할 수 있었다. 물론 문제점도 많았다. 첨단인 만큼 비싸고 설치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느린 데다가 보안은 사실상 되지 않았다. 신호손실과 간섭 때문에 신뢰성도 낮았다. 즉, 옆집에도 X10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집의 기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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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미국 웨스팅하우스 발전소 엔지니어 출신인 짐 서덜랜드가 여가 시간에 ECHO(Electronic Computing Home Operator, 전자 계산식 주택 관리자)-IV라는 기기를 설계했다.
사진은 ECHO-IV 시스템의 다이어그램.
자료: Computer History Museum
1990년대 들어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스마트홈의 발전도 가속화된다. 인터넷을 이용해 원격조작할 수 있는 기기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가격은 여전히 비쌌다. 그리고 X10의 속성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즉 제어방식이 중앙 통제식이고, 인터넷에 유선 연결된 기기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기능도 제한적이었다. 그 기능도 지금 보면 좀 우스꽝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원격으로 전자레인지를 조작한다거나, 은행 업무를 보는 등의 것 말이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Z-웨이브나 지그비 같은 무선인터넷 기술이 나오면서 예전에 불가능하던 스마트홈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벽을 뚫고 라우팅용 케이블을 설치할 필요가 없게 되자, DIY를 즐기는 사람들도 여건만 허락되면 스마트홈 구축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0년대는 다양한 스마트홈 관련 기술 표준이 나와 첨예하게 경쟁을 벌이던 시기다. 기술 표준 간 호환성은 언감생심이었고, 시스템의 가격도 여전히 비쌌다. 그러나 스마트홈 보안성 확보를 위한 첫걸음을 뗀 시기로는 높이 평가된다. Z-웨이브나 지그비 모두 처음부터 암호화 통신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Z-웨이브 얼라이언스는 상호운용성 강화를 위한 업체 간 협업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 출시된 수천 가지의 Z-웨이브 기기는 설계 단계부터 상호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새로운 기술 표준 ‘매터’를 통해
호환성과 상호운용성 증대
2020년대 스마트홈 시스템은 최종 사용자에게 그 어느 때보다 개방적이다. 과거의 비싸고 경직된 시스템에 비하면 비용이 저렴해지고 최종 사용자의 재량에 따른 확장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스마트홈을 만들기 좋아하는 DIY 팬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오픈HAB1나 홈 어시스턴트 등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사용하면 자신의 스마트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알아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공통적인 기술 표준이 없고, 신뢰성과 보안성이 모자란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관련 제품이 출시되어도 후속 기술 지원 없이 방치되는 일도 다른 분야에 비해 흔하다. 산업적인 관점에서 볼 때, 기술지원에 드는 비용이 너무 높아 이윤이 별로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높은 운영체제를 사용해 유지비를 줄이고, 기술자들을 정비 유지와 기술지원 대신 연구개발에 전념하게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술 표준 경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은 스마트홈의 보급을 저해하는 요소다. 즉 스마트홈 업계에는 과거 비디오테이프 분야의 VHS 기술 표준 같은 지배적인 기술 표준이 없다. 총 14가지의 기술 표준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이들 간에는 호환성 및 상호운용성이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스마트홈 업계는 거대한 기술 표준 정착 실험을 끝내지 못한 셈이다.
그 와중에 지난 2022년 10월 출현한 새로운 기술 표준인 매터Matter는 막대한 지원을 받으며 이 분야의 지배적인 기술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징후를 보이고 있다. 매터를 발표한 곳은 400여 개 이상의 관련 기업이 결성한 조직인 글로벌표준연합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 CSA이다. 매터는 기존의 다른 표준들과 경쟁할 새로운 표준을 도입하는 대신 기존의 스마트홈 기술인 스레드Thread와 와이파이(이더넷 유선 프로토콜 포함), 블루투스 LE를 보완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기존 기술에 통합 애플리케이션 계층을 추가한 방식이기 때문에 제조사들은 기존 제품에도 호환성과 상호운용성을 쉽게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매터는 제조사와 사용자의 편의도 높인다. 제조사는 모든 제품에 단일 표준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제품 개발이 더 쉬워진다. 사용자도 상호운용성을 보장하는 매터 인증만 확인한다면 이제 개별 기기 간 호환성을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기존에 출시된 스마트홈 기기 중에는 매터에 맞게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것도 있다. 이러한 기기들까지 끌고 갈 수 없는 점은 맹점이다.
  • 1 자바로 작성된 오픈소스 홈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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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성숙과 보안 강화의 필요성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스마트홈의 미래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다만 몇 가지 질문은 던질 수 있을 것이다. 느리게나마 매터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하면서 업계의 지배적인 기술 표준으로 정착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매터가 제공하는 우산 밑에서 어떤 기술이 스마트홈 업계의 허브로 정착할 것인가? 기존의 기술 표준은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와이파이는 전력 소모량이 많다. 블루투스는 전력 사용량이 적은 대신 통달 거리가 너무 짧다. 기존 무선 표준인 Z-웨이브, 스레드는 전력 사용량도 적고 통달 거리도 길지만 전용 허브가 필요하다. 이 전용 허브가 스마트홈의 백엔드 서비스에 접속하려면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다. 그러면 와이파이 라우터를 사용할 때보다 비용과 클러터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하다. LTE Cat-M, NB-IoT 등 사물인터넷 기기를 휴대전화 네트워크에 연결하기 위한 기술 표준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술 표준의 구성품은 기존 기술보다 훨씬 더 비싸다는 게 문제다.
또한 주택은 사생활의 최후 보루인 만큼 보안 문제도 크게 신경 써야 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동안 관련 업계는 보안 문제를 등한시해왔다. 박리다매로 팔다 보니 기기에 탑재된 보안 대책은 몇 년만 지나도 구식화되어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스마트홈 구성품 간의 네트워크 연결 정도가 높아질수록 전자레인지나 냉장고, 토스트기 같은 일견 상관없어 보이는 기기를 통해서도 사용자의 금융 정보 등 주요 정보를 빼낼 수 있다. 사이버공격을 통해 주택의 보안을 뚫거나, 거주자가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잔뜩 주문하는 등의 괴롭힘을 가한다거나, 심지어 화재나 가스 폭발 등을 일으켜 거주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형태의 새로운 범죄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스마트홈의 보안성 강화는 미국, 영국, 유럽 등지에서 법제화가 이루어질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원래 주택은 ‘집을 지킨다’, ‘집을 본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의 돌봄이 크게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주택을 위한 인간의 돌봄 노동이 극소화하고, 인간의 편의를 위한 주택의 돌봄은 극대화한 주택. 그리하여 그 속에서 사는 인간이 더욱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주택. 그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스마트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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