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은 오랫동안 인간의 상상 속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일상과 산업 현장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로봇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탐구하는 교양서부터 로봇 기술사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풀어낸 백과사전,
로봇과
인간성의 철학적 의미를 사유하는 고전 희곡 등을 소개한다. 현대의 우리가 짊어져야 할 선택과 책임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니엘라 루스, 그레고리 몬 지음 / 김성훈 옮김 / 김영사 펴냄
챗GPT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미국의 SF 작가 요안나 마치예프스카Joanna Maciejewska가 X에 이렇게 논평했다. “AI를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의 문제가 뭔지 알아? 방향이 틀렸다는 거야. AI가 내 빨래와 설거지를 대신 해줘서 내가 예술과 글쓰기에 집중하길 바라는 것이지, AI가 내 예술과
글쓰기를 대신 해줘서 내가 빨래와 설거지를 하게 되길 바라는 게 아니거든.”
이 책을 쓴 다니엘라 루스가 이 논평을 봤다면 과연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만 기다려요! 로봇공학계에는 인간이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을
로봇에게 맡길 수 있는 성공 사례가 많이 나와 있어요. 빨래 개기를 포함해서 말이죠! (물론 시제품이 실제 상품으로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AI? 이제 로봇이 필요해!
최근 몇 년간 눈부신 발전을 이룬 AI가 실제로 우리 집에서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려면, AI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아직은 네트워크상에만 머물러 있으니까. AI가 우리가
사는 물리적인 세계로 내려오려면, 우리와 함께 보고 듣고 움직이는 로봇공학이 필수로 접목돼야 한다.
로봇 기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이 책의 저자는, 제목을 인용해 설명하자면 ‘천재 로봇공학자’ 다니엘라 루스 MIT 전기공학 및 컴퓨터공학 교수다.
그는 특히 모듈식 로봇과 다중로봇 시스템, 제어 알고리즘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컴퓨터과학 및 인공지능연구소CSAIL 소장도 맡고 있다. CSAIL 연구소는 7명의
맥아더상 수상자와 8명의 튜링상 수상자를 포함해 수백 명의 연구원이 800개 이상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컴퓨터과학 연구센터이자 MIT에서 가장 큰
연구실이다. 루스 교수는 역대 최초의 여성 소장이자, 역대 최장기 소장. 그러니 그만큼 AI와 로봇공학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마 그래서
한국어판 제목이 이렇게 지어졌을 것이다. 원제는 <마음과 칩 : 로봇과 함께하는 밝은 미래The Heart and the Chip: Our Bright Future
with Robots>로, 한국어판 제목과는 전혀 다르다.)
책은 로봇공학과 AI에 대한 이해를 돕는 훌륭한 입문서 역할을 한다. ‘1부 꿈’에서는 힘을 증강시켜주는 로봇,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는 로봇, 시간을
아껴주고 중력을 거슬러 위로 오르는 로봇 등 흥미로운 연구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2부 현실’에서는 로봇을 만드는 연구자답게 이런 로봇들을 만드는 데 어떤 난제가
있고, 로봇공학계가 이를 어떻게 돌파하려 하는지 쉽게 설명한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
1, 2부도 흥미롭지만, 대다수 비(非)로봇공학자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볼 부분은 아마도 ‘3부 책임’일 것이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할 것인가’라는 부제가 붙은 3부에서
저자는 ‘위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실로 놀라운 발전 속도를 유지했을 때 따라 나올 수 있는 위험한 상황들을 다양하게 상상한 것이다.
그러고는 기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사회과학 분야와 정책 및 소통 전문가들도 기술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또 로봇과 AI 시스템은 보안성,
보조적, 인과성, 설명 가능성 등 11가지 속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루스 교수는 “로봇은 도구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본질적으로 로봇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로봇의 미래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그는 책을 읽는 독자에게 기술을 제대로 알고, 깊이 생각하고, 적극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이런 기술을 이용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방법을 상상하고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면서.
#로봇윤리#인공지능#미래로봇#로봇공학
베르타 파라모 지음 / 성소희 옮김 / 그림씨 펴냄
당신이 알고 있는 로봇은 어디까지인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나는 로봇 백과사전이다. 로봇 기술사를 ‘세상 모든 로봇들이 사는 땅, 로봇랜드 방문하기’라는 콘셉트로 소개하는 것이 아주 흥미로운데,
책을 펼치는 순간 아름다운 일러스트에 한 번 더 반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는 여러 국제도서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는 어린이책 작가로, 대학에서 건축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고 한다.
로봇 역사를 개괄하고 있지만, 시간순이 아닌 성격에 따라 로봇들이 분류돼 있다. 인간과 닮은 로봇들이 사는 1호선, 로봇 동물들이 사는 2호선, 하늘을
관측하는 로봇들이 사는 3호선 등 12개 노선이 있으며, 길을 잃지 말라는 친절한 안내 문구도 적혀 있다. 기획이 아주 흥미로운 데다 백과사전답게 정보도
풍부해서, 구비해두고 자주 들춰보면 좋을 책이다.
#로봇역사#백과사전#로봇랜드

카렐 차페크 지음 / 유선비 옮김 / 이음 펴냄
과학기술의 방향성을 질문하는 고전
체코 문학의 거장 카렐 차페크가 1920년에 펴낸 희곡. ‘로봇’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처음 등장한 작품이다. 강제 노역을 뜻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군중과
집단주의를 상징하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인데, 그의 형 요세프 차페크의 아이디어였다고.
이 작품 이후 인간을 공격하는 로봇 이야기가 무수히 변주되면서 인류는 미래 로봇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갖게 됐다. 당장 현대 전쟁터만 봐도 이미 킬러 로봇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어째서 로봇에게 살육을 허가하는가?’가 돼야 할 것이다. 로봇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 예술 작품이 집단주의와 전쟁,
인간성의 파괴 등을 탐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카렐차페크#희곡#로보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