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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슬기로운 기술 생활
‘걷고 달리고 들고’
휴머노이드 움직임을 책임지는 모터와 감속기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휴머노이드 로봇이 움직이는 걸 보며 설렜던 경험,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겁니다. 사람처럼 걷고, 달리고, 물건을 들고, 악수하고, 대화까지 하는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죠.
공상과학SF 영화에서만 보던 사람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과연 어떤 장치와 원리로 구동되는지 알아볼까요?

노동자 대신한 작업 효율성 극대화가 목표
올해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을 빼고 이야기하긴 어렵습니다. 세계적인 로봇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은 이제 휴머노이드 로봇이 세상 변화의 중심에 서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휴머노이드Humanoid는 인간을 뜻하는 영어 ‘휴먼Human’에 닮았다는 의미의 접미사 ‘-oid’를 붙인 말로, 사람 형태의 로봇을 뜻합니다.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가 있고, 얼굴을 통해 시각과 청각 등 여러 데이터를 수집하는 로봇입니다. 실제 인간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으면서 사고도 할 수 있다면 최고의 휴머노이드일 것입니다.

사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사람 닮은 휴머노이드를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 걸음을 흉내 내는 로봇을 만든다고 합시다. 이때 로봇의 뼈대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다리를 차례차례 이동하고, 이에 맞춰 무게중심을 옮겨 두 발로 걷는 동작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제어해 넘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프로그램 작업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어려운 작업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굳이 인간 모습으로 만들지 않아도 대안이 많습니다. 이미 우리 곁에는 공장에서 부속 조립 같은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로봇팔, 눈 역할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해 집 안을 알아서 깨끗하게 청소해주는 로봇청소기, 주변 사람이나 물체를 감지해 충돌하지 않고 손님 테이블까지 음식을 안전하게 가져다주는 식당의 서빙 로봇 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휴머노이드 로봇이어야 하는 이유는 작업 과정에서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로봇이 어떤 작업을 할 때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끝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식당 서빙 로봇의 경우 음식을 나를 수는 있지만 접시를 올리고 내리는 일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합니다. 로봇청소기는 바닥을 청소할 수는 있지만 종이 뭉치 같은 쓰레기는 치우지 못하고, 쿠션 등을 정리하려면 사람 손을 거쳐야 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노동력 부족 때문입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습니다. 특히 북미 지역은 60%가 넘는 세계 최대 시장입니다. 미국의 경우 트럭 운전사, 교사, 간호사, 비행기 조종사 등 특정 직업군의 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합니다. 14억 인구의 중국도 농촌과 공장, 요양 시설에서 일할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식량자급률과 공장가동률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더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을 주도하는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적합한 작업환경에 쉽게 적응
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로봇은 한 가지 일만 잘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제조공정을 맡은 산업용 로봇은 용접, 조립, 도색 등 반복적인 작업을 잘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반면 우리가 사는 집과 일하는 공간, 사무실 책상 같은 도구의 외형이나 크기, 물리적 배열, 교통수단 등은 모두 인간을 위한 규격으로 만들어져서, 일반 로봇에게는 결국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거나 동작에 제한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로봇이 사람처럼 걸으면서 물건을 들어 올리는 등의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려면 크기도 사람과 비슷해야 합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그 자체로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므로, 자율주행 로봇처럼 길 턱을 없애는 등 별도의 인프라 조성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맞게 조성된 작업환경에 그대로 투입하면 됩니다. 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 사회의 환경에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을 위해 만든 공간에서 로봇이 인간과 함께 인간의 도구를 사용하여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휴머노이드의 가장 큰 덕목이자 절대적 가치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세계에서 처음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은 일본 와세다대 가토 이치로 교수팀이었으며, 이후 최초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한 것은 일본 기업 혼다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2족 로봇을 연구한 혼다는 2000년 어린아이 몸집의 2족 직립보행 로봇 ‘아시모’를 발표했습니다. 2011년엔 사람처럼 걷고 달리고 대화하는 4세대 버전까지 발표하며 10여 년간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력의 총아임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최대 운용 시간이 1시간밖에 되지 않는 배터리 문제 등으로 매끄럽게 상용화로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8년경 아시모 사업은 종료되었습니다. 현재는 여러 기업이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속속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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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의 선구자였던 혼다의 ‘아시모’.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달리는 모습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간처럼 움직이는 기술의 핵심, 모터와 감속기
휴머노이드 로봇의 몸체는 상체, 하체, 팔, 손가락, 발가락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들 구성 요소는 인간의 신체 구조를 모방하여 설계합니다. 근육과 관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팔과 다리 등을 움직이려면 근육과 관절이 중요한데, 로봇에서는 관절 역할을 하는 구동장치 ‘액추에이터’의 성능이 곧 동작범위를 결정합니다.
액추에이터는 모터와 감속기로 구성됩니다. 사람마다 힘의 차이가 있듯, 로봇에서의 힘의 차이는 감속기와 모터의 회전량에 달려 있습니다. 모터는 빠르게 회전해 로봇의 움직임을 직접 담당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하지만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강한 힘을 내기 어렵거나 세밀한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그 모터의 회전을 힘으로 바꿔주는 게 바로 감속기입니다.

감속기는 모터의 고속 회전 속도를 낮추고, 회전력(토크)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감속기가 모터의 회전을 줄이면, 감속된 회전에너지가 회전력으로 전환됩니다. 감속 비율을 높여 회전에너지를 더 많이 줄이면 줄일수록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더 강한 회전력으로 변하게 돼, 작은 크기의 모터로도 충분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무릎・팔꿈치・손목과 같은 강한 힘이 필요한 로봇의 관절에 감속기가 필수적으로 활용되는 이유입니다.
또 감속기는 로봇이 유연하면서도 안정적인 동작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감속기가 없는 로봇은 관절이 흔들리거나 갑작스러운 동작에서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감속기가 적용되면 회전 속도가 줄어들어 로봇의 무게중심이 조절되고 불필요한 진동이 억제돼, 관절의 움직임이 좀 더 안정적이고 부드러워집니다.

이러한 안정적인 성능은 로봇이 힘을 발휘해야 하는 작업, 예를 들어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거나 매우 정밀한 위치로 이동해야 하는 작업에서 꼭 필요합니다. 감속기의 정밀도가 높을수록 로봇의 동작이 더욱 정확하고 일관되게 이뤄지며, 이는 결국 작업의 품질과 생산성에 직결됩니다. 감속기는 로봇 원가 비중에서 3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중요도가 높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에 사용되는 감속기는 하모닉, 유성 기어, 사이클로이드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감속기는 사이클로이드입니다. 사이클로이드는 내구성이 뛰어나고, 외부 충격에도 강하며, 높은 부하를 잘 견뎌, 로봇이 더욱 강한 힘을 내게 하는 데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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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관절을 움직이는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모터가 회전에너지를 만들고,
사이클로이드 감속기가 회전 속도를 줄이는 대신 힘(토크)을 높여
로봇의 움직임을 정밀하고 부드럽게 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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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팔을 섬세하게 쥐고 놓을 수 있는 로봇의 손. 제조업,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AI와 로봇의 결합, 로봇산업의 판도를 바꾸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부쩍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제 로봇 기술은 AI와 함께 세상의 변화를 이끌 양대 축입니다. 그동안 로봇은 기술적인 한계 때문에 응용 분야에 제약이 있었지만, AI가 접목되면서 드디어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 기술 덕에 로봇은 단순히 프로그래밍된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동작을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습니다.

젠슨 황은 ‘물리적Physical AI’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사람 닮은 로봇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리적 AI는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주행차 같은 물리적 기기에 탑재되는 AI입니다. 물리적 형태를 갖춘 디바이스(기기)에 AI가 탑재돼, 외부와 소통하면서 데이터를 생성·축적해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하는 최종 진화형 AI인 셈입니다.

1세대 휴머노이드 로봇은 걷고 제한적인 작업만 가능했습니다. 이에 비해 2세대는 ‘대형 언어 모델LLM’과 인간이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동일하게 학습하는 ‘대형 멀티모달LMM’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따라 배우고 소통하며, 좀 더 다양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생성형 AI, 에이전트 AI 등 다양한 AI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결국 그 궁극적인 목표는 물리적 AI이며,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이 바로 로봇입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하지만 AI와 결합하면서 많은 발전과 이정표가 세워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는 로봇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 AI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지조차 모호해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개발 중인 세계의 휴머노이드 로봇
지금 지구촌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한창입니다. 그 종류는 50가지가 넘고, 기능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아시모 이후 지금까지는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물체를 들어 올리는 건 아틀라스의 기본입니다. AI 머신러닝 모델을 활용해 부품의 위치와 종류를 인식한 후 움켜쥘 지점을 판단해 집어 들고, 이동식 보관함의 부품별 수납공간에 꽂아 넣기도 합니다. 보행하다 넘어져도 직접 일어나고, 앞구르기에 공중제비까지 할 수 있습니다. 전신 동작에서는 최고의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22개의 ‘자유도(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데 필요한 최소 단위)’를 구현한 손 관절을 갖춰 사람 손처럼 섬세한 수준의 복잡한 동작을 합니다. 예를 들어 달걀을 집어 들 뿐 아니라 바늘에 실을 꿸 정도로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섬세한 조작 능력은 제조업에서 의료 분야까지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집 청소와 정리는 물론 식사 준비까지 돕는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도 공개됐습니다. 노르웨이의 로봇기업 ‘1X로보틱스’가 개발한 ‘네오 감마’가 그것입니다. 네오 감마는 청소기를 돌리고, 세탁 바구니를 들어 빨래를 돌립니다. 전기포트의 물이 끓자 주인 부부에게 뜨거운 물과 티백이 담긴 컵을 가져다줍니다. 또 현관으로 나가 집주인이 들고 온 식재료를 받아 들고 주방으로 옮긴 후 식사 준비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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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휴머노이드 로봇,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지속적인 기술 업데이트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아직은 로봇이 인간과 같은 수준의 자유도(수백 개 관절)와 자연스러운 행동을 구현하려면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미래의 핵심 성장 동력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수년 전만 해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자율 보행 로봇, 사람과 유사한 형태의 협동 로봇이 실제로 우리 곁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사람 대신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람과 협업하는 광경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함께 어우러질 휴머노이드 로봇, 기대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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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로보틱스의 ‘알렉스’. 정교하고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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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Newton>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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