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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Tomorrow>Tech Q&A
과학은 즐겁게, 세상은 새롭게
똑소리 나는 일상 속 과학 이야기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즐러’ 백정엽 박사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경험하는 현상들 뒤에는 신기한 과학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똑소리단 여러분이 보내주신 질문 속 흥미로운 과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Q. 아이스크림은 녹으면 왜 더 달게 느껴질까?
아이스크림을 먹다 보면 마지막 남은 녹은 부분이 유난히 달게 느껴집니다. 보통 액체가 된 아이스크림이 혀에 닿는 면적이 넓어지기 때문에 더 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 혀의 미각세포에 있는 ‘TRPM5’라는 특별한 채널 때문입니다. 이 채널은 온도에 매우 민감한 ‘단맛 온도계’ 역할을 합니다. 2005년 <네이처> 연구에 따르면, 차가운 상태(4°C)와 녹은 상태(20°C)의 아이스크림을 비교했을 때, 같은 당도임에도 녹은 아이스크림이 40% 정도 더 달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반대로 30°C의 설탕물을 5°C로 냉각하면 설탕의 단맛이 63% 정도 감소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하게 경험합니다. 차가운 콜라보다 미지근한 콜라가 더 달게 느껴지고, 달콤한 화이트와인을 차갑게 마시면 단맛이 줄어드는 것도 모두 ‘TRPM5’의 온도 민감성 때문입니다
Q. 잠을 잘 자면 기억력이 더 좋아지는 이유는?
‘잠자는 동안 뇌도 쉬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오해입니다. 오히려 우리 뇌는 잠자는 동안 하루 동안의 기억을 정리하는 중요한 작업을 수행합니다. 깊은 잠(서파수면) 단계에서는 ‘기억 고착화’라는 과정이 일어납니다.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그날의 경험을 재생하며, 중요한 정보를 장기 기억 저장소인 대뇌피질로 전송합니다. 실제 연구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면 중 음향으로 깊은 잠을 방해한 그룹은 다음 날 학습 능력이 감소했으며, 반대로 깊은 잠을 유도한 그룹은 기억력이 향상되었습니다. 시험 전날 밤샘 공부가 비효율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시험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지 못해 누적 학습 효과를 얻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제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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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이가 들면 왜 기억력이 떨어질까?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하니 갑자기 소설 <마지막 잎새>가 떠오르네요. 뇌의 노화는 나무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을 거치는 것과 유사합니다. 나무가 가을, 겨울을 지나면서 잎이 떨어지고 가지는 짧아지는 것처럼 인간도 나이가 들면서 기억을 저장하는 뇌 영역의 물리적인 크기가 서서히 ‘수축’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이마엽과 해마 같은 영역에서 변화가 두드러집니다. 건강한 상태에서도 60세 이후 해마는 연간 0.3~2% 내외로 위축되며, 신경세포 간 연결점인 시냅스는 연령에 따라 20~30% 정도 감소합니다. 이러한 변화가 뇌의 정보처리 속도가 느려지고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거나 저장된 기억을 꺼내는 능력을 저하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그러나 앞서 <마지막 잎새>를 언급했듯이 현 과학계에서는 뇌의 노화 속도를 줄이고 더 나아가 노화를 멈출 수 있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주 3회, 총 150분 이상 중강도 이상의 유산소 운동,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독서·악기 연주를 통한 복합적인 인지훈련, 뇌혈관 및 신경염증을 줄이는 식단 조절, 규칙적이고 충분한 수면을 위해 노력한다면 떨어지지 않는 잎새처럼 오랫동안 기억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Q. 왜 스스로 간지럼 태우기는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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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럼의 핵심은 ‘예측 불가능’입니다. 우리 뇌는 움직임을 명령할 때 그 결과를 미리 예측하는 신호를 함께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예측 신호는 소뇌에서 생성됩니다. 내가 나를 만질 때 소뇌가 ‘이건 내 행동으로 인한 감각’이라는 신호를 보내 간지럼 반응을 억제합니다. 실제로 fMRI 촬영 결과, 스스로 자극할 때 감각을 처리하는 뇌 영역의 활동이 다른 사람이 자극할 때보다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조현병 환자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스스로 간지럼 태우기가 가능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버튼을 눌러 간지럼 태우게 하는 로봇 장치를 이용하면 스스로 약간의 간지럼을 느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단, 간지럼을 예측하지 못하도록 로봇이 명령을 수행하는 데 0.2초 이상의 시간차가 있어야 합니다.
Q. 술이 깨면 왜 머리가 아플까?
숙취 두통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합니다. 알코올은 간에서 두 단계로 분해됩니다.
1단계 : 에탄올 → 아세트알데하이드
(유해 물질)
2단계 : 아세트알데하이드 → 아세테이트
(무해 물질)
과음하면 2단계가 따라가지 못해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축적되어 뇌혈관을 확장하고 뇌압을 상승시킵니다. 술 마시고 머리가 ‘욱욱’ 하는 느낌이 바로 아세트알데하이드 때문이죠. 하지만 진짜 숙취 두통은 알코올 섭취 후에 시작됩니다. 알코올 섭취를 중단하면 뇌의 시상하부가 부신에 신호를 보냅니다. 그러면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합니다. 코르티솔 호르몬은 명령을 내린 뇌로 이동해서 세포를 자극해 염증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인 사이토카인 분비를 촉진합니다.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면 뇌에 염증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술 마시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건 아세트알데하이드에 의해 증가한 뇌압뿐만 아니라 코르티솔에 의한 뇌 신경염증으로 인한 영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술 깨고 머리가 아픈 원리를 알기보단 그런 걸 알 필요 없이 적당하게 술 마시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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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커뮤니케이터 ‘과즐러’ 백정엽 박사
경희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독성과학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뇌과학을 기반으로 한 강연과 칼럼을 통해 과학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현재 ‘과학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의 ‘과즐러’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방송 등 다양한 채널에서 뇌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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