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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생태계로 운영되는 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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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은 해운업, 수산업, 군수산업 등에 사용되는 각종 선박 및 해양구조물을 건조하는 종합 산업으로 철강, 기계, 전기, 전자, 화학 등 관련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또 여타 제조업과 비교해 단위 제품의 생산 단가가 높아 수출 기여도 및 외화가득률에도 그 역할이 크다. 무엇보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특성상, 조선업은 제조산업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의 관점에서도 경시할 수 없는 주요 산업이다. 최근 LNG운반선을 중심으로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인력 이탈과 중국의 시장점유율 확대에 따른 고심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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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한국조선해양의 울산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배들 위로 골리앗 크레인이 선박 부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한국 조선산업이 세계 1위가 되기까지
세계 조선산업은 2차세계대전 이후 호황기를 맞았다. 선진국 간의 무역량이 크게 증가하고 공업의 발전에 따라 석유와 원자재 수송량이 급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 후반부터 경제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중화학공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과 육성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국내 조선산업은 노동집약적인 대규모 조립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제철, 기계, 전자 등 유관 산업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러한 동력을 바탕으로 1970년대에 한국 조선산업은 세계 무대로 도약한다.

1972년 현대건설은 최대 건조 능력 50만 톤급의 시설을 갖추어 26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5척을 건조, 전량 수출하는 것을 목표로 조선소 건설을 착공했다. 이는 최종적으로 900m, 560m 길이의 독Dock❶을 포함해 450톤 골리앗 크레인 4기를 갖춘 세계 최대의 조선소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1975년 선박수리 전문기업인 현대미포조선이 설립되었고, 1979년 삼성조선(현 삼성중공업), 1981년 대우조선(한화오션)이 완공되었다. 한편 1973년 석유파동을 기점으로 조선 불황의 시기가 닥쳐오자 선진국에서는 시설을 감축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1970년대 후반부터 건조량 기준 세계 2위의 조선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90년대는 우리 조선업계가 또 한 번 큰 성장점을 맞은 시기다. 1992년 조선산업 합리화 시효가 끝나며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한라중공업, 대동조선 등 중대형 조선소들이 앞다투어 시설 확장에 돌입했고, 그 결과 연간 건조 능력이 500만 톤에서 800만 톤으로 크게 늘었다. 거의 모든 조선소에서 채산성과 경쟁력이 개선·회복되었고 흑자경영으로 돌아섰다.

1993년, 마침내 951만 톤의 물량을 수주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기술 수준도 높아져 업계는 과거 벌크화물선이나 유조선 등 기존에 대량으로 수주하던 선박 외에도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그리고 부유식 생산저장하역설비FPSO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량을 늘려갔다. 동시에 정부 지원과 대기업 중심의 강력한 리더십이 더해지며, 2006년에는 전 세계 선박 수주량, 수주잔량, 건조량 등 세계 시장 점유율 40% 수준으로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전성기를 거치며 조선업은 대한민국 대표 수출품목으로 전체 수출의 7~12%를 차지했고, 세계 10대 조선소에 꾸준히 7~8개의 국내 조선소가 이름을 올렸다.
  • ❶ 선박을 만들 때나 수리할 때, 또는 짐을 실을 때 진입하는 수역이나 그에 관련된 시설을 말한다.
크고 크게, 더욱 크게
조선소에 가본다면 무엇보다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우리나라 대형 조선소들이 1년에 수십 척씩 건조하는 선박들은 1척의 크기가 여의도 63빌딩보다 크며, 가장 거대한 선박은 잠실 롯데타워에 버금간다. 일반적으로 조선소 독Dock에 건조 일정이 꽉 차 있으면 추가로 건조하기가 어려워 다른 선박의 수주를 포기하게 된다. 이에 현대중공업은 기존의 건조 독을 사용하지 않고 육상에서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새로운 공법을 개발했다. 육상건조공법 이전에 대형 해상구조물(시추장비 등)을 육상에서 건조한 적이 있었으나, 10만 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 건조에는 처음으로 시도된 공법이었다. 해당 선박은 성공적으로 건조되었으며 이후에는 건조 독의 작업 물량과 관계없이 추가 수주를 할 수 있게 되어 조선소의 연간 건조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육상건조공법은 선박의 각 부분을 블록화해 만든 다음 이를 하나로 조립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선체 블록이 클수록 조립 및 탑재 기간이 줄어, 조선소의 연간 건조량이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블록이 커지면 이를 운반하고 탑재하는 데 물리적 제약 요건도 증가한다. 따라서 보통 탑재 독이나 선대의 오버헤드 크레인 용량이 블록의 최대 크기를 결정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조선소들은 대형 부유식 크레인을 이용해 대형 블록을 탑재하는 신공법을 개발했다. 메가블록 공법이라고 불리는 이 공법은 2500~3000톤의 블록을 만들어 조립하는 방식이다. 세계 최초의 시도였다. 육상에서 6~8개의 거대한 블록을 만들고, 각 블록을 3000톤급 해상 크레인으로 부유식 독에 옮긴 후 조립했다. 배가 완성되면 독으로 이용하던 부유식 독을 침수시켜 진수했다. 메가블록 공법은 현재 우리나라 대형 조선사의 핵심 건조 기술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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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의 메가블록 리프팅 공법.
선박건조공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수주 능력 또한 향상되고 있다.
지능형 로봇 기술로 안전성 높여
조선업은 제조업 중 자동화가 가장 까다롭다. 자동차나 전자 분야와 달리 초대형 구조물에 인력과 장비가 투입되기 때문에 특히 생산직 작업자들에게 난이도와 위험성이 크다. 이에 국내 조선업계는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작업환경에 적합한 로봇과 자동화 설비 등을 마련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작업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협소 공간의 용접 작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해 상용화한 바 있다. 이는 작업자와 로봇의 협업이 가능한 협동 로봇의 개념에 가깝다. 선박 조립은 완전 자동화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줄 수 있는 협동 로봇이 중요하다. 한 명의 작업자가 동시에 여러 대의 협동 로봇을 제어함으로써 조립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삼성중공업 또한 용접 자동화를 위한 로봇을 개발했다. 높이 60cm 내외의 블록 내부 보강재를 넘어 다닐 수 있는 이동 로봇으로, 폭 1m 정도의 협소한 공간에서 용접을 수행할 수 있다. 6축 다관절 로봇 팔, 용접선 실시간 추적, 간격 측정 등을 수행하는 레이저 비전 시스템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박의 주판 위에 크고 작은 부재를 부착, 용접한 소조립에도 로봇이 투입된다. 소조립 용접 로봇 시스템은 카메라 비전 시스템을 이용해 자동으로 부재를 인식, 용접선을 추출하는 등의 작업을 수행한다.

HD현대는 FPSO 등 해양 설비에 사용되는 특수 파이프의 핫 와이어 티그 용접Hot wire tig welding❷ 자동화 기술을 개발했다. 기존에는 용접봉을 수동으로 공급해야 하는 데다 교체가 잦아, 작업 시간이 길었다. 여기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금속선 형태의 용접을 고온으로 가열해 연속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동일한 시간 내 더 많은 금속을 녹이며 용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존에 비해 작업 속도가 6배 이상 개선되었다.

이 외에도 선체의 곡선을 가공하는 자동화 기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곡면 가공 자동화 기술은 삼성중공업이 국내 최초로 실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한화오션 또한 곡면 가공 작업자의 지식은 활용하면서 육체노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곡면 가공 로봇을 개발해 이용하고 있고, HD현대 역시 오랜 연구를 통해 실작업이 가능한 로봇을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 ❶ 카메라 비전 시스템: 컴퓨터와 카메라를 결합해 이미지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기술. 자동화된 제조 환경에서 물체를 감지하고 분류, 위치를 파악하는 등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❷ 핫 와이어 티그 용접: 금속의 두께가 크거나 높은 품질, 고도의 생산성이 요구되는 산업 분야에서 유용한 용접 방법이다. 용접 봉이 용접 토치를 통과하기 전에 예열되어 봉에서 녹아내리는 금속의 양이 늘고 용접 속도도 향상된다.
스마트 조선소의 지향점
앞서 소개한 기술이 지금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만들었다면, 앞으로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견인할 기술은 무엇일까?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글로벌 제조업계의 혁신 모멘텀을 야기하고 있는 스마트 제조 기술은 조선 분야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스마트 야드Smart Yard 인프라 기술은 조선소의 모든 유무형 생산 자원의 연결을 목표로 한다.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 기술이나 인공지능AI 기술 활용에 의한 지능화는 기본적으로 생산 자원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조선소는 공간이 방대하고 대부분의 구조물과 제품이 전파의 확산에 취약한 철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유선이든 무선이든 원활한 통신을 기반으로 한 생산관제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IoT 기술이 도입되면서 생산 자원 간의 연결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

공정 자동화 기술은 기존의 조선 생산 시스템에서 적용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의 자동화 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새로운 개념의 조선 생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산 장비의 기계화, 자동화를 넘어 생산 장비가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율화를 지향하며, 인프라와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최적의 생산 프로세스를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조선소는 일반 기계 제조업과 달리 다루는 제품의 물성이 초대형·고하중이며, 동일한 작업을 반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기계적인 관점과 제어적인 관점에서 차별화된 로봇 기술 개발이 요구된다. 이로 인해 100% 자동화보다는 숙련도가 부족한 작업자도 동시에 여러 공정을 관리할 수 있는 협동 로봇이 당분간 유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능화 기술은 기존의 생산관리 영역인 생산계획, 품질관리, 운영관리 분야의 시스템 기술을 딥러닝, 디지털 트윈, IoT 등 4차산업혁명 기술과 융합해 유연하고 낭비 없는 생산관리체계 실현을 목표로 한다. 이에 조선소 진단, 생산 환경 설비 및 최적화 조선소 운영을 지원할 수 있는 가상 생산 플랫폼을 실현해 제품, 공정, 설비, 공간, 작업자 및 운영관리 정보에 대한 선행 검증 등 최적화가 가능한 디지털 트윈 기술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능화 기술의 핵심은 결국 인간 관리자의 지식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신경망 개발의 성공 여부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알파고와 챗GPT에서 유효성이 확인된 인공신경망 기술은 조선소의 생산관리 일부 영역에서 실용화 가능성이 검증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인간 관리자의 의사결정 활동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최소의 인원만으로 조선소라는 거대 시스템 관리가 가능한 초거대 AI의 등장도 기대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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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필자 제공
조선산업의 미래는
대형 선박을 연 수십 척씩 건조할 수 있는 인프라와 역량을 가진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외에는 당분간 나타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현재 지니고 있는 인력 문제의 경우, 일본은 이미 해당 문제를 경험했으며 중국 역시 우리의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 조선업의 위험 요소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보고 산업구조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다행히 전 세계 조선해양산업은 긴 불황을 이겨내고 점차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탱커, 벌크선, 컨테이너선을 대표 선종으로 하는 시장의 경우 아직까지는 다소 위축된 상황이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LNG운반선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친환경 선박 발주가 증가하며 2030년까지 꾸준히 수요가 증가할 것이다. 제품 기술 분야 역시 자율운항 기술과 친환경 기술이 활발한 연구개발을 통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미래는 건조 기술의 고도화, 스마트 야드의 실현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서는 단기적인 성과보다 중장기 로드맵을 기반으로 보다 정교한 R&D를 지원해야 한다. 제도에 얽매여 형평성에 매몰되기보다 제도 완화를 통해 초격차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수월성에 높은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 현장 역시 기술을 수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모든 이해당사자 그룹이 만족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 수립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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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화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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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훈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조선생산공학 및 제조 지능화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서울공대 정보화위원장, 대한조선학회와 한국CDE학회의 이사, 그리고 IJNAOE, JCDE의 AE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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