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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기술의 역사
산업혁명 이후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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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배라는 교통수단과 자신 간의 연결고리를 쉽게 찾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에 가까운데도 말이다. 또 무역의 90%가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조선 강국이기도 하다.

word 이동훈(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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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돛 없이 증기기관만으로 항해한 영국의 데바스테이션함
인간은 육상동물이다. 하지만 수상 교통수단인 ‘배’의 발명은 육상 교통수단인 ‘바퀴’보다 먼저였다. 배ship와 노paddle는 기원전 5000년경에 발명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바퀴와 수레의 발명, 말의 축화 시점이 기원전 3000년경이니 그보다 2000년이나 빨랐던 것. 바퀴를 제대로 만들려면 소재를 정원형으로 말끔하게 가공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그보다는 물의 부력과 항력을 이용하는 편이 만들기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기원전 3000년경에 돛도 발명되어, 바람의 힘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전의 배는 모두 소재와 동력원에 한계가 있었다.

당대의 배들은 모두 나무 등 천연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나무는 강성이 모자라 큰 배를 만들기 어렵다. 기껏해야 선체 길이 100m 정도에 불과하다. 그 이상 크게 만들었다가는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선체가 부러진다. 배가 크지 않으면 실어 나를 수 있는 인원과 물자의 양, 항속 능력에도 제한이 생긴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할 때 타고 갔던 산타마리아호도 배수량은 150톤에 불과했다. 우리 해군의 참수리 고속정(130톤)보다 좀 큰 정도다. 동력원 역시 자연력이 전부였는데, 배의 경우 인력(노)과 풍력(돛)뿐이었다. 이 역시 배의 이동 능력을 심각하게 떨어뜨렸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기계력을 동력으로 사용한 산업혁명이야말로, 배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계의 힘을 빌려 더욱 단단한 소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기계로 움직이는 새로운 동력원을 마련할 수 있었다.
  • ❶ 강성: 어떤 물체가 외부로부터 압력을 받아도 모양이나 부피가 변하지 않는 단단한 성질.
산업혁명이 가져온 조선의 혁명
산업혁명 후 조선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1760~1820년, 산업혁명기 대서양 해운에 운용되는 선박의 조난 위험은 1/3, 침몰 위험은 2/3가량 줄었고, 바람이 셀 때 영국 선박의 속도는 30% 가량 빨라졌다. 1780년대 영국의 철강 기술자 헨리 코트가 증기기관을 이용해 물성과 가격 면에서 기존보다 더욱 뛰어난 선박용 철을 대량 보급하게 된 것이 그 도화선이었다. 이로써 기존 계단식 갑판 구조를 철제 보강재가 들어간 평갑판 형태로 바꾸어, 배의 감항성과 속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다양한 철제 부품이 선박에 사용된다. 그리하여 1818년에는 최초의 철제 부선인 ‘벌컨Vulcan호’, 1822년에는 최초의 철제 기선인 ‘아론 맨비Aaron Manby호’가 등장한다. 하지만 설계나 제작 기법에는 여전히 파스너fastener❺를 통해 골조와 외피를 조립하는 기존의 목선 방식을 답습하고 있었다.

1843년에 나온 영국의 ‘SS 그레이트브리튼SS Great Britain호’는 신소재인 철이 갖는 특징을 최대한 활용한 혁신적 설계를 자랑했다. 철판을 겹치게 배열한 후, 이를 리벳rivet❻으로 고정시켜 물이 새지 않도록 했다. 현대 선박에서 볼 수 있는 수밀구획도 이때 도입됐다. 강성이 높은 소재인 철을 사용하므로 배의 크기도 당대 최고 수준인 3600톤(배수량)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내부 용적 역시 목선보다 더욱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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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철선의 설계를 제시한 영국의 SS 그레이트 브리튼호
SS 그레이트브리튼호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나선형의 추진장치 ‘스크루’를 추진기로 채택한 점이다. 스크루는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르키메데스가 처음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배의 추진기관으로 사용된 것은 서기 18세기에 들어서다. 그리고 1838년 등장한 영국의 ‘아르키메데스호’가 스크루를 장착한 최초의 증기선이다. 1807년 미국의 발명가 로버트 풀턴이 처음으로 증기선을 발명, 즉 배의 추진기관으로 증기기관을 이식한 지 3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 ❷ 감항성: 선박이 자체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 필요한 인적·물적 준비를 갖춘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 ❸ 부선: 동력 설비가 없어서 다른 배에 끌려다니는 배.
  • ❹ 기선: 증기기관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배의 총칭.
  • ❺ 파스너: 분리되어 있는 것을 잠그는 데 쓰는 기구.
  • ❻ 리벳: 금속재료를 영구적으로 결합하는 데 사용하는 막대 모양의 기계.
  • ❼ 수밀구획: 배가 충돌하거나 좌초로 인해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더해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구획이다.
선박 기술을 견인한 추진기관의 혁신
선박은 인간이 만든 이동체 중 가장 크다. 또 항행 기간 동안 탑승자가 장기간 거주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이동체보다 다채로운 기술이 적용되는데, 가장 핵심은 ‘추진 기술’이다. 배는 증기기관을 통해 자연력이 아닌 기계력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대표적인 외연기관인 증기기관 자체의 한계는 여전했다. 외연기관은 소형화와 효율 증대가 어렵다.

따라서 19세기 후반,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선박의 동력원 역시 그것으로 대체되고 만다. 디젤엔진, 즉 최초의 내연기관을 동력원으로 탑재한 선박은 1903년에 진수된 러시아의 ‘반달Vandal호’였다. 이 배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동시에 사용하는 디젤-전기 구동렬 방식을 최초로 채택한 배라는 특징이 있다. 내연기관이 생산한 전기를 이용해 전기모터를 돌리고, 그 힘으로 스크루를 돌려 앞으로 나간다. 이 방식은 기계식 변속장치에 비해 속도를 훨씬 쉽고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모터가 선박의 동력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한참 전이다. 1839년 독일 출신의 발명가 모리츠 폰 야코비Moritz von Jacobi가 최초의 전동 선박을 만들어, 러시아 황제 앞에서 운항 시범을 보였다. 이후 기술적 성숙을 거쳐 1880년대에 이르러 전동 선박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전기모터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내연기관이나 외연기관과 달리 작동에 공기가 일절 필요 없다는 점이었다. 이는 수중에서 항행하는 배, 현대적인 잠수함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이전에도 잠수함은 있었지만 모두 인력으로 추진기를 작동시키는 방식이었고, 그 이동 능력은 너무도 뻔했다. 잠항 상태에서 추진기를 돌리다가 승조원 전원이 질식사한 경우가 있을 정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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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내연기관 선박이자 디젤-전기 구동렬 사용 선박인 반달호
세계 최초의 전기 동력 잠수함은 폴란드의 공학자 스테판 드제비에츠키Stefan Drzewiecki가 1881년에 건조했다. 그리고 1897년, 아일랜드 발명가 존 필립 홀랜드John Philip Holland가 세계 최초로 내연기관-전기 구동렬을 탑재한 잠수함을 선보였다. 전기모터만을 사용하던 드제비에츠키의 잠수함과는 달리 홀랜드의 잠수함은 수상 항해 시에는 내연기관을 작동시켜 항주하다가, 잠항 시에는 내연기관이 충전해놓은 배터리로 전기모터를 돌려 항주한다. 이는 21세기 현재까지도 모든 재래식 잠수함의 기본적인 작동 방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전기모터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배터리는 석유에 비해 에너지밀도가 낮다. 그 때문에 재래식 잠수함의 잠항 시 속도와 항속력은 부상 시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그 해결책은 인류가 발견한 세 번째 불, 원자력이다. 원자력의 에너지밀도는 화학 배터리는 물론 화석연료조차 능가한다. 한 번만 연료봉을 주입하면 10년 넘게 연료 재공급 없이 항해할 수 있다. 또한 작동에 공기가 필요 없다. 인류 최초의 원자력 선박이 다름 아닌 잠수함 ‘USS 노틸러스함’(1954년 진수)으로 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원자력에도 단점은 있다. 농축 우라늄이 제공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안전하게 통제하고,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큰 비용이 투입된다. 다 사용한 폐연료봉의 처리도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민간용 선박으로 쓰기에는 채산이 맞지 않았다. 1945년 이후, 1959년에 최초의 원자력 민간 선박인 소련 쇄빙선 ‘레닌호’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 이후 지금까지 등장한 원자력 민간 선박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건조된 원자력 선박은 운항 과정에서 채산을 따질 필요가 적은 해군 군함, 그것도 주력함인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주류다. 단, 현재 중국에서 2만4000TEU급 원자력 상선을 개발하고 있다.
  • ❽TEUTwenty-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박스의 개수로 컨테이너선의 탑재 능력을 재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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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원자력 선박인 미국의 USS 노틸러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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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배인 시와이즈 자이언트호
조선, 세상을 연결하는 산업
항공기의 발전 이후 배를 통해 다른 나라를 오가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조선산업을 통해 만들어진 수많은 배는 여전히 세계 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세상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지표면의 70%는 바다고, 많은 나라가 바다와 인접해 있다. 배는 바다를 다니는 가장 경제성 높은 이동체다. 오늘날의 국제 무역과 세계화에는 조선산업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20세기 후반, 21세기 초에 걸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 3국(한·중·일)은 세계 조선 시장에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산업 역량과 국가 브랜드는 더욱 높아졌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21세기, 조선 기술과 산업은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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