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창 열기
Focus Story>History
의약품 모달리티의 진화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나 약의 치료 효율 향상 역시 과학기술의 발전에 달려 있다.
인류에게 더욱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발전해온 의약품 모달리티 이야기를 다뤄보았다.

인류는 세상에 등장한 이래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자연에서 얻은 각종 유효성분을 그대로 의약품으로 사용했다. 흔히 말하는 생약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생약은 균일한 품질을 확보할 수 없고, 인간이 원하는 만큼 성능값을 높일 수도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 인간이 이용할 수 있었던 유일한 에너지인 자연력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러다가 19세기 들어 인간은 드디어 자연의 유효성분을 정제하고, 자연에는 없는 유효성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면서 의약품의 성능과 효율을 증진하기 시작한다.
19세기 : 정제와 합성의 시대
인류가 최초로 자연 속의 유효성분을 추출 및 정제해 만든 의약품은 다름 아닌 모르핀이었다. 양귀비를 이용해 만든 생약인 아편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진통제로 사용돼왔으나 생약의 한계상 약효가 균일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진통 효과를 못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환자를 죽일 정도까지 가기도 했다.

이에 독일의 보조 약사 프리드리히 제르튀르너는 아편에서 진통 효과를 내는 유효성분만 추출해 투여하면 더욱 균일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고, 투여량에 따라 치료 효과의 크기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아편 고형물을 산성 용액에 녹인 후, 암모니아를 가해 침전물(유효성분)을 얻는 화학적 분리 과정을 반복했다. 그 결과 1804년 그는 아편에서 통증을 멎게 하는 백색 결정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 물질의 이름을 그리스신화 속 잠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서 ‘모르피움Morphium(이후 모르핀으로 정착)’이라고 명명했다. 제르튀르너는 동물 실험 및 자가 실험을 통해 이 물질의 약효를 증명했다.

제르튀르너의 모르핀 발견은 자연물 속에서 의약품의 유효성분만 골라내 활용한 인류 최초의 사례였다. 이 발견을 계기로 퀴닌(말라리아 치료제), 코카인, 카페인, 니코틴 등 자연물에서 의약품의 유효성분을 추출하는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기존에는 100% 천연 물질 채집에만 의존했던 의약품 생산방식이, 화학 기술을 이용해 공장에서 인간이 원하는 만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또한 19세기에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기존에 없던 유효성분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 선두 주자는 다름 아닌 아스피린이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흰 버드나무 껍질을 해열 진통제로 사용해왔다. 이 껍질에는 해열 진통 효과를 내는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리실산은 산도가 높아 일부 환자들에게 위통과 위염을 일으켰다. 그 때문에 당시 과학자들은 산도를 낮추기 위해 살리실산을 아세틸화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1853년 프랑스 화학자 샤를 제라르가 아세틸화 살리실산을 처음으로 합성했다. 이후 1897년 바이엘 제약회사의 아르투어 아이헨그륀, 펠릭스 호프만이 합성해낸 아세틸화 살리실산은 제라르가 만든 유사 제품보다 순도와 안정성 등의 성능이 훨씬 좋았다. 바이엘사는 이 물질에 ‘아스피린Aspirin(아세틸의 첫 글자인 A와 살리실산의 공급원인 조팝나무Spirea를 합성한 이름)’이라는 상품명을 붙여 1899년부터 판매, 전 세계적으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인류는 이외에도 다양한 신물질을 만들어 의약품에 활용해오고 있다.
모르핀과 아스피린. 오늘날에는 정말 흔하디흔한 의약품이지만 현대적 의약품의 효시와도 같은 제품이다.
20세기 의약품도 똑똑하게 : 표적 치료의 시대
하지만 이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신물질은 원래 ‘눈’이 없다. 환부와 건강한 부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작용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것들은 자연에 전혀 없던 신물질이라 인체가 여기에 충분히 적응된 상태도 아니었다. 이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한 투여량 증가와 그에 따른 부작용 증대라는 위험을 불러왔다.

이에 필요한 만큼만 정밀 작용하게끔 의약품의 ‘지능’을 높여 치료 효율을 높이고 부작용은 줄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이러한 노력은 의약품의 작용 시간과 작용 부위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작용 시간의 조절은 20세기 중반 서방형 제제가 등장하면서 이루어졌다. 의약품 중에는 늘 체내의 의약품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줘야 하는 것이 있다. 서방형 제제가 나오기 전에는 투약 횟수를 늘려서, 그러니까 소량을 여러 차례 투약하는 방식으로 구현했지만, 이는 환자의 투약 거부도를 높일 수 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투약하면 귀찮지 않은가.

하루에 한 번 정도만 대량으로 투약하되 이 의약품이 체내에서 천천히 방출되도록 해, 체내의 의약품 농도를 유지하고 부작용도 최소화하는 것이 서방형 제제 기술의 핵심이다. 최초의 서방형 기술은 1952년 미국 제약사 스미스클라인앤드프렌치Smith, Kline & French(현 GSK)가 개발한 스팬설Spansule 기술이다. 이 회사는 하나의 캡슐 안에 녹는 속도가 제각각인 코팅된 알갱이들을 섞어서 넣었다. 어떤 알갱이는 즉시 녹고, 어떤 것은 4시간 뒤, 어떤 것은 8시간 뒤에야 녹는다.

1968년에는 미국의 알자사에서 삼투압 펌프 기술(Oral Osmotic System의 약자인 OROS 기술이라고도 불린다)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알약 안에 삼투압 펌프를 설치한 것이다. 알약이 인체의 수분을 흡수하면 이 수분이 삼투압 펌프를 작동, 유효성분을 균일한 속도로 방출해준다. 다만 삼투압 펌프 기술이 특허를 얻고 알약 형태로 처음 상업화되어 시장에 나온 것은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이다.
미국 알자사가 개발한 OROS 시스템의 원리. 알약이 체내에 투입되면 인체의 수분이 알약 아래쪽 삼투압층을 천천히 팽창시키고,
이에 알약 위쪽의 유효 물질이 알약 위쪽 구멍을 통해 일정한 속도로 방출되어 체내 약물 농도를 장시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의약품의 작용 부위를 조절하려는 시도는 20세기 후반 바이오 의약품 및 나노 의약품 연구 성과가 나오면서 암 치료를 위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바이오 의약품이란 화학물질이 아닌 생명체의 단백질을 유효성분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이다. 나노 의약품이란 의약품의 유효성분 또는 그 전달체를 나노미터nm(10억분의 1m) 단위로 정밀가공해 그 물성을 크게 높인 의약품이다. 이러한 의약품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물질만 골라서 공격하듯이, 표적인 암세포만 식별하고 공격해 격파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21세기 : 세포·유전자 치료제 및 뉴 모달리티
과거의 의약품은 질환이나 병원체를 공격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고도로 발전한 생명공학은 질병의 근본 원인이 되는 유전자 수준의 결함을 직접 교정하거나 생체 시스템 자체를 재설계함으로써 질병을 원천 봉쇄하고자 한다.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인간 생명의 설계도가 확보되었고, 2000년대 후반 초기적인 유전자 가위인 탈렌·징크핑거가, 2012년 천연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가 확보되면서 유전자 정밀 편집을 통해 이러한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리스퍼는 박테리아가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기억했다가 잘라버리는 데 쓰는 천연 면역 시스템이다.

이 기술을 사용해 세포·유전자 치료제CGT, Cell & Gene Therapy의 제작이 가능해졌다. CGT는 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그리고 둘의 융합형인 유전자 변형세포 치료제 등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세포 치료제는 살아 있는 세포를 분리·배양·가공해 환자에게 주입, 조직 재생 또는 면역세포 강화를 돕는다.

유전자 치료제는 환자의 몸 안 결함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대체하거나,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유전물질DNA, RNA을 직접 주입하는 기술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척수성 근위축증SMA을 치료하는 졸겐스마 등이 있다. 다만 유전물질은 인체 내의 여러 효소에 취약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알맹이에 치료용 정상 유전자를 이식해 세포 내에 침투시키는 트로이 목마법(바이러스 벡터), 치료용 유전자를 기름 성분의 나노미터급 주머니로 감싸서 보호하는 동시에 세포막 내로 침투시키는 LNP(지질 나노입자) 방식 등을 사용한다. 특히 코로나19 시국 때 전 세계에 공급된 mRNA 백신 역시 LNP 방식을 사용했다. 세포·유전자 치료제를 사용한 첨단 의료는 의외로 우리 가까운 곳에 있었던 셈이다.
s1_2_4.png
코로나19 백신에도 세포·유전자 치료제 기술의 일종인 LNP 방식이 사용되었다.
유전자 변형세포 치료제는 환자의 몸에서 얻은 세포를 유전자 변형 기술로 강화해 환자에게 투입하는 방식이다. CAR-T(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 기술이 대표적인 사례다. 환자의 혈액에서 면역세포인 T세포를 추출한 뒤, 여기에 암세포를 찾아내는 CAR(키메릭 항원 수용체)을 장착한 후 이를 다시 환자 몸에 넣어주면 체내에서 암세포를 찾아내 격파하는 것이다. 이는 백혈병 등 혈액암에서 높은 완치율을 보이고 있다.

2020년대 현재는 기존의 여러 세대 모달리티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방식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표적(암세포 등) 정밀 타격이 가능한 항체 의약품에 재래식 화학 항암제를 연결해 암세포를 강력하게 정밀 공격하는 ADC(항체-약물 접합체), 질병 원인 단백질을 세포 내 청소 시스템에 연결해 통째로 분해, 기존 화합물 약물로는 공격할 수 없었던 85%의 단백질 영역도 공격 가능한 TPD(표적 단백질 분해) 방식 등이 각광받고 있다. 프로탁 등의 TPD 의약품은 화학적으로 합성된 19세기식 대량생산형 의약품이면서도 세포 내 재활용 시스템을 해킹하는 지능형 의약품이기 때문에 첨단 의약품 모달리티의 주요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첨단기술은 암이나 유전병 등 난치병을 퇴치할 수 있는 기술로 각광받고 있지만 아직 넘어야 할 난제도 많다.

유전자 치료는 사용되는 기술 수준이 너무 높은 데다 환자 개인 맞춤형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술 비용이 억대에 달하는 등 너무 비싸다. 또한 정상 유전자와 세포를 잘못 공격할 위험성도 있다. 최첨단 의약품 모달리티가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s1_2_5.png
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