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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끊어진 유전자 사슬을 회복하다 :
DNA 손상 복구
이자일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
방사선, 자외선, 활성산소 등의 공격으로 발생하는 가장 치명적인 DNA 손상인 ‘이중가닥 절단DSB’.
이를 제때 복구하지 못하면 유전 정보가 소실되거나 세포 사멸로 이어진다.
세포 안의 위기 대응 시스템
사람의 몸을 이루는 세포 각각에는 2m에 달하는 DNA가 핵 속에 촘촘히 접혀 들어 있다. 이 DNA는 생명의 설계도이자, 세포가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는 정보의 원천이다. 그런데 이 정밀한 설계도는 놀랍도록 자주 손상된다. 자외선, 방사선, 환경오염, 독성 화합물, 활성산소, 심지어 DNA를 복제하는 과정에서의 실수까지, 하나의 세포는 하루에 수만 건 이상의 DNA 손상을 경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손상은 DNA 염기Base 하나가 변형되거나 DNA 이중나선의 한쪽 가닥만 끊어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히 심각한 손상이 있는데, 이는 이중나선의 양쪽 가닥이 동시에 절단되는 ‘이중가닥 절단DSB, Double-Strand Break’이다. 다른 손상은 DNA 반대편 가닥의 상보성Complementarity을 이용해서 복구가 가능하나, DSB는 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치명적이다. 즉 사다리로 비유하면 기둥 양쪽이 동시에 부러진 셈이다. DSB가 정상적으로 복구되지 않으면 염색체가 분리되고, 유전정보가 소실되거나 뒤섞이며, 결국 세포는 암세포로 변하거나 사멸한다.

그렇다면 세포는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놀랍게도 세포 안에는 이를 전담하는 정교한 단백질 군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손상을 감지하고, 신호를 증폭하며, 복구 방식을 결정하고, 실제 수리를 수행한다. 최근 생물물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분자 하나하나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복구 경로의 갈림길 : 세포의 분자적 의사결정
세포는 DSB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달하는 것은 손상 감지 단백질이다. 이들은 끊어진 DNA 말단을 인식하고 신호 단백질을 불러들이며, 이 신호는 연쇄적으로 증폭돼 수백 나노미터 범위의 염색체 영역을 복구 모드로 전환시킨다. 손상 부위 주변에 단백질들이 집결해 밝게 빛나는 점Focus을 형성하는 것을 현미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세포가 위기를 선포한 것이다.

이러한 손상 인식 이후 실질적인 복구가 진행된다. 세포는 두 가지 주요 DSB 복구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한다. 세포주기의 어느 단계에 있는지, 손상 말단이 어떤 구조를 가지는지, 주변 단백질 환경이 어떠한지에 따라 이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결정된다. 첫 번째는 ‘비상동 말단 연결NHEJ, Non-Homologous End Joining’로, 끊어진 두 말단을 빠르게 맞붙이는 방식이다.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말단을 맞붙이는 과정에서 염기 몇 개가 삭제되거나 삽입되는 오류(돌연변이)가 생길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상동 재조합HR, Homologous Recombination’으로, 손상된 DNA와 동일한 서열을 가진 자매 염색분체Sister Chromatid를 주형으로 삼아 정밀하게 복구하는 방식이다. 비상동 말단 연결에 비해 느리지만 정확하며 돌연변이가 없다. 자매 염색분체가 존재하는 S기S-phase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이 ‘MRN 복합체MRE11-RAD50-NBS1’와 ‘BRCA1’, ‘53BP1’ 같은 단백질이다. 이들은 서로 경쟁하듯 손상 말단에 결합하며, 복구 경로의 방향을 결정한다. 53BP1이 우세하면 NHEJ 쪽으로, MRN과 BRCA1이 우세하면 HR 쪽으로 균형이 기울어진다.
빠르지만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비상동 말단 연결NHEJ’과 느리지만 정교하게 원상 복구하는 ‘상동 재조합HR’.
세포는 주어진 환경에 맞춰 최적의 복구 경로를 선택해 끊어진 DNA를 다시 잇는다.
DNA 이중나선절단이 발생 시, 손상된 DNA 가닥이 단백질recombinase의 도움을 받아 온전한 상동 주형 DNA 사이로 침투하여 유전 정보를 복구하는 상동재조합 과정.
단분자 이미징 : 분자 군단의 실시간 관찰
이 복잡한 분자 군단의 활동을 이해하기 위해 생물물리학자들은 지난 20여 년간 혁신적인 관찰 도구를 개발해왔다. 그 중심에 단분자 형광 이미징Single-molecule Fluorescence Imaging이 있다. 원리는 단순하다. 특정 단백질에 하나의 형광 분자를 붙이고 극도로 민감한 현미경으로 하나의 형광체를 관찰함으로써, 개별 단백질이 DNA 혹은 DNA 손상과 어떻게 결합하고 떨어지고 수선하는지 그 순간을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여러 단분자 형광 이미징 기법 중에서도 특히 DNA 커튼DNA Curtain이 이러한 DNA 손상을 연구하기에 강력한 방법이다. 유리 표면에 수백 개의 DNA 분자를 나란히 고정하고 유체를 흘려 커튼처럼 펼친 뒤, 그 위에서 일어나는 단백질들의 움직임을 동시에 관찰한다. 한 번의 실험으로 수백 개의 단일 분자 활동을 포착할 수 있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를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 방법을 통해 연구자들은 HR과 NHEJ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그 두 과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분자 수준에서 직접 관찰했다.
생체공학적 관점 : 이미징에서 치료 전략으로
생물물리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이 연구들이 생산하는 것은 생물학적 발견을 넘어선 고차원 동역학 데이터다. 특정 단백질이 특정 DNA 말단 구조에 결합하는 속도, 체류시간, 경쟁 단백질과의 상대적 친화도, 농도 의존성 등 모든 수치가 쌓이면 복구 경로 선택의 정량적 모델을 구축할 수 있으며, 이러한 모델은 여러 방향의 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암 치료 전략의 설계다. 많은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는 의도적으로 암세포의 DNA에 DSB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일부 암세포는 특정 복구 경로를 과활성화해 이 공격을 버텨낸다. 복구 단백질들의 상호작용 동역학을 정밀하게 이해한다면, 어느 단계를 차단했을 때 암세포의 복구 능력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BRCA1/2 변이 암에서 PARP 억제제가 효과를 보이는 것도 HR 경로의 결함을 이용한 전략이다.

나아가 이 데이터는 AI 기반 신약 스크리닝의 훈련 데이터로도 활용된다. 단분자 수준의 동역학 데이터는 단백질-DNA, 단백질-단백질 상호작용의 물리적 실체를 담고 있어, 기존 구조 정보 중심의 데이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를 학습한 AI 모델은 복구 단백질의 특정 결합 부위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후보를 훨씬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한편 우주의학 관점에서도 이 연구는 중요하다. 우주 환경의 고에너지 방사선은 지상보다 훨씬 높은 빈도로 DSB를 유발한다. 장기 우주 체류 환경에서 인체 세포의 복구 역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복구 단백질들의 동역학이 미세 중력 아래에서 달라지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우주인 건강 보호의 핵심 과제다.
끊어진 사슬이 이어지는 순간
DSB 복구 연구는 분자생물학과 물리학, 그리고 공학이 만나는 접점에 있다. 단백질들이 끊어진 DNA 말단 앞에서 어떤 신호를 주고받고, 어떤 경로를 택하며, 어떤 속도로 수리를 완료하는지, 이 모든 과정을 분자 하나의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보는 것은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여러 연구실에서 형광으로 빛나는 단백질 분자들이 DNA 위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쌓여 언젠가 암을 정밀하게 공략하고, 방사선 손상을 예방하며, 노화를 늦추는 치료 전략의 토대가 될 것이다. 끊어진 사슬을 잇는 분자 군단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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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일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 박사, 컬럼비아대학교 연구원을 거쳐 현재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에서 연구를 이끌고 있다.
DNA 손상 복구 메커니즘과 세포 내 분자 동역학 등 생명 유지 시스템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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