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뇌과학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뇌인지과학 분야는 뇌의 생물학적 구조와 인지기능 연구를 넘어 인간과 세계의 상호작용을 다룰 뿐 아니라 다양한 기술 분야와 융합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뇌인지과학 분야의 최전선에서 뇌를 중심으로 인간의 인지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광범위하게 탐구하고 있는
백세범 카이스트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를 만나 뇌인지과학 분야에 대해 들어봤다.
word 김광균 photo 이승재
뇌인지과학은 어떤 학문이며, 평소 어떤 연구를 수행하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
|
뇌인지과학 분야는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신경과학 연구를 중심으로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탐구하는 인지과학 연구를 포괄하는 학문입니다. 뇌를 가진 생명체가 어떻게 지적인 행동을 하는지, 아주 작은 세포에서부터 시스템 레벨의 신경회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작용을 일으켜서 실제 행동을 결정하는지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보면 됩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이론신경과학, 계산신경과학적 방법론에 기반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이론적 모델을 만들어 다양한 현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연구라 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은 UC버클리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요.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뇌인지과학 분야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리학과 뇌인지과학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
UC버클리대 물리학과 교수님들이 많은 연구를 하는데 그중 생물물리학Biophysics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뇌를 연구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앞으로 뇌를 연구하는 데 있어 전체적인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물리학적 접근방식이 중요해지겠다 싶어 이론신경과학의 방법론으로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지도교수인 도널드 글레이저 교수님의 영향이 컸는데요. 이 분은 원래 입자물리 연구자로 1960년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신 물리학의 대가였지만, 분야에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 연구자의 사명이라는 신념으로 이후 분자생물학 연구와 뇌신경과학 연구로 두 번이나 연구 분야를 전환하셨죠. 그 영향으로 어떤 특정 연구 주제에 국한되지 않고 현재 가장 중요한 연구 질문이 무엇인지, 지식의 진보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하기 전에 UCLA 의과대학 신경생물학과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커리어가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
|
간혹 이론적인 방법으로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실제 상황이나 실험에 대한 감이 전혀 없어 실험 연구를 하는 분들과 깊이 있는 토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연구원 기간 동안 항상 실험 연구자분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데이터가 보여주는 실제 상황을 기반으로 모델을 구현하다 보니 다행히 이러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론 연구나 실험 연구 모두 궁극적으로는 뇌에서 일어나는 실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만큼 이러한 경험은 지금도 제가 여러 실험 연구자분들과 효율적인 공동연구를 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운영을 맡고 있는 인지지능연구실에서는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나요? 자랑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세요.
|
|
주로 뇌에서 인지기능이 최초로 발생하는 원리를 연구합니다. 최근 몇 년간 일반적인 상식과는 많이 다른 결과들을 보이고 있는데요, 간단히 요약하면 뇌신경망의 주요 인지기능이 별다른 학습 없이 자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선천적인 뇌 기능이 어떤 식으로 발생하고 진화해 왔는지 답을 줄 수 있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신경망에서도 이 원리가 똑같이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한 바 있는데요. 특별히 2021년 관련 논문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의 바이오 분야 톱 25에 선정돼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많은 연구자들이 뇌 기능을 모방해 AI를 개발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위 연구결과들은 기능의 발생 단계에서부터 두 시스템이 완전히 다른 출발점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기반 이론을 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뇌인지과학자들 사이에서 소위 핫한 이슈는 무엇인지 최신 연구 동향을 소개해주세요.
|
|
뇌과학 내에서도 계열, 분야가 나뉠 텐데 우선 실험적으로 뇌의 활동을 좀 더 정확히 관찰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들이 활발합니다. 뇌에서 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영향을 주는지 전체적인 구조를 관찰하기 위한 뇌 투명화 기술을 비롯하여 최근에는 AI를 활용한 다양한 뇌신경 데이터 분석 기법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물학적인 뇌와 인공신경망의 작동 원리를 비교하는 연구들이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러한 시도는 공학적인 AI 개발과 기초과학적인 뇌 연구에 양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 있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연구들에 기반하여 뉴로모픽 칩(뇌신경 구조를 모방해 만든 반도체) 개발과 같은 다양한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뇌인지과학은 향후 의료, 교육, 인공지능 기술 등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혁신적인 기술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뇌인지과학의 활용성과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
|
기대되는 면과 우려되는 면이 공존하는데요. 뇌인지과학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여 사회현상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과정을 너무 서두르거나 섣불리 시도하는 경우가 있어 우려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 개발 초기에 사람의 운전 행위를 AI가 쉽게 모방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아직도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뇌기능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없는 상태에서 AI가 뇌의 작동 방식을 모방하고 응용할 수 있다고 쉽게 낙관한 탓입니다. 뇌공학이라는 키워드는 어떤 경우에는 사용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데요, 공학이라고 부를 만큼 우리에게 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실제적인 응용을 서두르기보다는 기반 이론과 원리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다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나가는 연구자로서 느끼는 어려움도 많을 것 같습니다.
|
|
비유적으로 얘기하자면, 이미 잘 닦여진 길을 가느냐,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내서 가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뇌과학은 아직은 없는 길을 만들어가야 하는 쪽에 가까운 분야입니다. 길이 안 보인다고 생각해 불안감을 느끼는 학생들도 많지만 이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자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학문과 비교해 더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요소는 뇌가 곧 우리 자신을 정의하는 기관이라는 점이에요. 다른 학문들이 주로 자연이나 사회현상을 잘 이해하게 만들어준다면 뇌과학은 우리 자신,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뇌인지과학 분야를 선도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뇌 인지과학자로서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
제대로 된 방향으로 중장기적인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얼핏 보면 좋아 보이는 지원 정책도 잘 들여다보면 현재 유행하는 키워드를 답습하는 급조된 것인 경우도 많거든요. 본질적인 내용을 제대로 깊이 있게 연구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지금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하며 지원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떤 연구 분야나 주제가 유망하다고 하면 학생은 물론이고 연구자들도 우르르 따라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이 보지 못하고 있는 그다음을 내다보는 방향으로 연구 방향을 설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뇌인지과학자가 되려면 어떤 소양을 갖춰야 할까요? 뇌인지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
어떤 전공을 해야 하나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뇌인지과학 연구자가 되는 방법은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은 여러 학교들에 뇌 관련 학과들이 이미 개설되어 있으니 이런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겠지요. 한편으로는 저처럼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나 생물학이나 의학을 전공한 분들도 당연히 뇌인지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결하려 하는 뇌 기능의 문제는 매우 종합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생물학적 지식을 비롯해 수학적 사고방식, 컴퓨터 활용 능력 등도 갖춰야 합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문제를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제대로 질문을 던지는 사고능력,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찾아내는 능력,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2월호 잡 인사이드에는
똑소리단 고종석, 김동민, 김정현, 김형우,
남대현, 류승연, 박지나, 송상완, 인현정, 전진규,
전진수, 정다현, 정연화, 정장식, 조하민, 성대중 님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
2월호 잡 인사이드에는
똑소리단 고종석, 김동민, 김정현, 김형우,
남대현, 류승연, 박지나, 송상완, 인현정, 전진규,
전진수, 정다현, 정연화, 정장식, 조하민, 성대중 님께서
참여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