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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금’을 만드는 사람들
허명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PS국가시간그룹 그룹장
김선녀 사진 한승훈

우리가 휴대전화 화면에서 확인하는 ‘지금 이 순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은행의 OTP 인증, 주식 거래 시각, 전력망의 위상 동기화, 위성항법 신호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표준시가 산업과 일상의 질서를 지탱하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PS국가시간그룹은 대한민국의 시각을 생성·유지하며, 이를 세계와 정밀하게 동기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정확한 눈금을 새기는 일은 과학의 몫이다.

KPS국가시간그룹은 어떤 조직이며, 현재 맡고 있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표준시를 생성·유지·보급하는 조직입니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의 지금’을 만드는 곳이죠. 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정확한 눈금을 새기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이 눈금은 자의적으로 정할 수 없습니다. 세계 각국과 동일한 간격, 동일한 기준으로 유지해야 항공·선박 운항, 금융 거래, 통신 시스템이 혼란 없이 작동합니다. 저는 그 업무 전반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전공은 물리학, 그중에서도 원자물리와 분광학 분야를 공부했습니다. 원자의 과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가장 대표적인 응용이 원자시계입니다. 박사 후 여러 진로를 고민하다, 원자물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국가 표준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3년 1월, 눈이 많이 오던 날 연구원에 입사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처음 생각했던 ‘시간’과 현재 다루고 있는 시간의 개념은 어떻게 다른가요?
입사 전에는 저 역시 시간의 ‘정확도’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 들어와 보니, 정확한 시간을 유지하려면 국내 연구뿐 아니라 국제 협력이 필수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세계협정시UTC는 전 세계 약 80개 기관, 수백 대의 원자시계 데이터를 모아 한 달에 한 번 계산합니다. 각 기관은 매일 데이터를 점검하며 나노초 단위로 시간을 관리합니다. 시간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만드는 개념입니다.
하루 일과는 보통 어떻게 진행되나요?
출근하면 전날 시간 데이터를 확인하고 해외 기관과 비교합니다. 시계가 튀는 데이터는 없는지 점검하고, 원자시계 운용실에서 실시간 상태를 확인합니다. 정오에는 시각 조정을 진행합니다. 조정값이 적절한지 충분히 검토한 뒤 ‘스티어링Steering’ 작업을 수행합니다.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긴장 속에서 진행합니다.
국가 시간을 다루는 업무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표준시가 잘못 운영되면 금융, 통신, 전력 등 국가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한 연구 성과가 아니라 국민의 삶과 직결된 일이라는 점에서 책임감이 큽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즐거움도 있지만, 여기에 더해 큰 사명감을 느낀다는 것이 저희 일의 특별한 점인 것 같습니다. 2020년부터 그룹장을 맡으면서 그 무게를 더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덕목은 무엇입니까?
측정 분야에서는 겸손함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일 ‘이 정도 틀렸구나’를 확인하며 일을 시작합니다. 시각에서 완벽함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차를 인정하고 원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끈질김이 필요합니다. 1나노초 차이라도 왜 발생했는지 밝혀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거나 무언가 틀렸다면 그 부분을 공유하고 소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제가 없어야 성과’라는 점에서 오는 보람은 무엇입니까?
매달 국제 보고서에 우리 기관 이름이 올라가고, 표준시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는 결과를 확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아무 일 없음’을 위해 매일 긴장 속에서 데이터를 점검하고 조정합니다. 시스템이 흔들림 없이 돌아갔다는 사실 자체가 곧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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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계속 흘러가지만, 그 흐름에 정확한 눈금을 새기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광시계를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2021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광시계가 세계협정시 보정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주어진 기준에 맞추는 입장이었다면, 그때부터는 우리가 국제기준을 만드는 데 직접 데이터를 제공하는 위치가 된 것입니다. 국내 연구 성과가 국제표준 계산에 반영되고, 그 결과가 다시 전 세계 시간 체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실감 났습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성과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시간이 세계 시간 체계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국가 표준시는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예를 들어 은행 OTP는 내부 시계와 서버 시각이 정확히 일치해야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시스템이 동일한 기준시각을 공유해야 합니다. 주식 거래 역시 체결 순서와 기록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밀리초, 때로는 그보다 더 정밀한 시간 동기화가 필요합니다. 통신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는 시간 순서에 따라 전송·처리되기 때문에, 기지국과 서버 간 시각이 어긋나면 품질 저하나 오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력망 운영에서도 발전소 간 위상을 맞추기 위해 정밀한 시각 동기화가 필수 요소가 됐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모바일 통신, 온라인 결제, 교통 시스템 뒤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공통의 기준시각’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산업 변화 속에서 국가 시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습니까?
전력망 동기화, 위성항법, 반도체 공정 등에서 초정밀 시간 동기화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력망에서 발전소 간 위상을 정확히 맞추려면 정밀한 시간 기준이 필요합니다. 위성항법 시스템 역시 정확한 시간 측정이 핵심입니다. 앞으로는 GPS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시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향후 가장 중요한 기술적 이슈는 무엇입니까?
현재 1초의 정의는 1967년 세슘 원자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보다 100배 이상 정확한 광시계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2030년경 초秒의 재정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 대한민국이 기여하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목표입니다. 초의 정의가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학술적 변화가 아니라, 전 세계 측정 체계의 기준이 한 단계 더 정밀해진다는 의미입니다. 새로운 정의에 참여한다는 것은 국제표준을 ‘따르는 나라’에서 ‘함께 만드는 나라’로 도약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간 표준 분야는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변화가 더딘 영역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제 협력, 첨단 원자물리, 초정밀 측정 기술이 결합된 매우 역동적인 분야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만든 데이터가 국가 인프라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큰 책임과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긴 시간을 견디며 정확도를 쌓아가는 연구에 매력을 느낀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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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KPS국가시간그룹 그룹장
허명선 그룹장은 누구?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KPS국가시간그룹을 이끌며 대한민국 표준시의 생성과 유지, 보급을 총괄하고 있다. 원자물리와 분광학을 전공하고 2013년 연구원에 입사해 , 2020년부터 그룹장직을 맡았다. 특히 2021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광시계를 통해 대한민국의 시간 데이터가 세계협정시UTC 보정에 직접 기여하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초정밀 시간 표준 분야에서 국제 협력과 기술 고도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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