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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이 이렇게 생기로울 수 있다니!
우아영 과학 칼럼니스트, <평행세계의 그대에게> 저자

모든 게 화학이다. 숨 쉬고 먹고 읽고 쓰고 만지고 교감하는 삶의 모든 순간이 화학반응이다. 화학을 알고 나면 평범했던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화학은 외운다는 감각보다 ‘보인다’는 감각으로 다가온다. 상상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 작은 세상을 향한 문을 열어줄 책들을 소개한다.

세상은 온통 화학이야

마이 티 응우옌 킴 지음 / 배명자 옮김 / 김민경 감수 / 한국경제신문 펴냄

화학에 대한 첫 기억은 금속원소의 불꽃색을 관찰하는 실험이다. 불장난이 으레 그렇듯 초등학생 아이들은 들떴고, 실험실은 몹시 소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금속원소들만이 각자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듯 조용히 고유한 빛깔을 내뿜으며 타오를 뿐이었다.
그 풍경이 나를 매료시켰다면 화학자로 자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금속의 불꽃색이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마지못해 주기율표를 외우기 위해 “수헬리베 붕탄질산…”을 중얼거리면서, 시험을 봐야 하니 억지로 산화환원 전자를 하나둘 세면서 화학과 멀어져갔다.

고슴도치 화학 엄마의 미션

개인적으로 이 책의 서문이 정말 재밌었다. “화학자로서 나는 때때로, 나와 화학의 관계가 엄마와 못생긴 아기의 관계랑 똑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기를 예쁘게 소개하는 일은 엄청난 미션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학문이라 할 만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가 미션에 성공했다고 본다. 더 나아가 15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유튜버답게, 학문에 비견할 만큼 깊이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를 이 책에 집약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독일의 화학자이자 유튜브 스타인 저자의 하루를 따라가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씻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보낸 뒤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하는, 그저 평범한 하루.

그런데 그 모든 순간에 화학이 결부돼 있다. 빛과 호르몬의 화학반응이 잠을 깨우고(1장), 치약의 불화물이 치아의 하이드록사이드 이온을 내쫓아 플루오라파타이트라는 방어막을 형성해 충치를 막고(2장), 인듐 주석 산화물 필라멘트로 만들어진 아주 얇은 표면이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터치’하는 손가락의 전도성을 포착하고(6장), 흡습성인 설탕을 멋대로 줄이지 않고 레시피 그대로 첨가해 푸석하지 않고 촉촉한 케이크를 맛본다(11장).

이런 기획만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미션에 한껏 가까워진 셈인데, 위트 있고 솔직하고 유쾌한 말솜씨가 미션을 성공으로 이끈다.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닌,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말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생기와 설득력이 가득하다. 지식 전달서라기보다 화학에 중독된 사람의 전염성 강한 고백에 가깝다. 그 열정이 진심이기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는 희열

저자도 말하듯, 하루를 완전히 다른 화학으로 구성할 수도 있다. 책의 목차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관점’이기 때문. 이러한 신념에 충실하게도 이 책은 화학을 ‘가르치는’ 대신 ‘퍼뜨린다’. 화학을 즐기는 기쁨을 세상에 전파하는 것, 저자는 이를 ‘화학 스피릿’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과연 화학을 아는 기쁨이란 뭘까? 우리는 남들이 모르는 걸 알 때 은밀한 기쁨을 느낀다. 화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감동도 어쩌면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전자, 결합 에너지를 머릿속에서만 재현해내는 상상력의 힘. 화학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이 분자이며 모든 것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먹고 마시는 모든 것,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 나와 당신의 케미까지. 보이지 않지만 다 같은 ‘화학’이라는 언어로 얽혀 있다.

더 나아가 화학을 잘 알면, 나와 주변 존재를 더욱 강건하게 지키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든다. 그걸 바라는 듯 저자도 책 속에서 ‘천연은 안전하고 화학은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에 대해 자주 설명하고, 과학자들이 소통하기 위해 쓴 논문에서 일부 내용만 발췌하고 과장해 미디어를 통해 잘못된 선입견이 전파된 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책 한 권을 읽었다고 갑자기 화학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 하나를 발견한 것만은 확실하다. 커피 마실 때 책에서 읽었던 뇌 속 화학작용이 떠오르면서 반쯤 남은 커피를 슬며시 내려놓고, 저자의 아버지가 그랬듯 마트 통로에서 꼼꼼하게 성분표를 훑으며 세상을 해상도 높게 읽어내려고 노력하게 되었으니까. 당장은, 어쩌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화학이 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앗, 어느새 나도 화학 스피릿에 전염된 걸까?

#화학입문#일상속화학#화학스피릿

걱정 많은 어른들을 위한 화학 이야기

윤정인 지음 / 푸른숲 펴냄

엄마 과학자 윤정인의 생활 밀착 화학 탐구서

‘화학을 이해하면 나와 주변 존재를 더욱 강건하게 지키면서 살 수 있다’는 목적에 매우 충실한 화학 입문서다.

화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평소 주변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일상에서 자주 쓰는 제품들에 대한 화학 지식을 정리했다. 해열제나 손소독제를 구매할 때 확인해야 하는 사항부터, 안전하게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위한 규칙, 환경부 인증마크와 안전기준 적합 제품 찾는 법 등을 소개한다. 저자는 “화학이 무섭고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보단 어렵지 않고 약간의 화학 원리를 알면 걱정 없이 화학제품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결국 중요한 건 공포도 맹신도 아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식과 관점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것을 너무 어렵지 않게 건넨다.

#생활화학상식#화학제품#합성#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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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울의 살인법

닐 브래드버리 지음 / 김은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펴냄

여름밤이 너무 덥다면, 무시무시한 독약 이야기

‘미스터리 마니아’라는 말이 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이나 추리소설을 포함해 미스터리 관련 콘텐츠를 광범위하게 즐기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미스터리 마니아가 생리학자이기까지 하다면, 바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책이 탄생한다.

미국 로잘린드 프랭클린 의대에서 생리학과 생물물리학을 가르치는 닐 브래드버리 교수가 과학자의 시선으로 역사 속 독살 사건을 파헤친 책이다. 비소나 청산가리처럼 익숙한 독약뿐 아니라 아트로핀, 스트리크닌, 폴로늄처럼 처음 들어보는 독약도 등장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독이 되는 과정을 복잡한 화학식 없이, 화학적 원리에 근거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아주 작은 스포일러를 조금 곁들이자면, 수백 년 전 사람을 죽이던 독약이 이제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신약이 된 경우도 많다. 추악한 범죄의 완벽한 결말이랄까.

#화학과범죄#미스터리#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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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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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온갖 잡다한 화학 이야기

광운대학교 화학과 교수이자 다수의 저서를 낸 작가이기도 한 장홍제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본격적인 원소 이야기 시리즈를 비롯해 화학 뉴스, 화학 실험, 화학 강의, 화학 게임 등 온갖 잡다한 화학 이야기가 가득하다. 국내 독보적인 화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다른 유튜브 채널이나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이 채널에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이론과 최신 기술 동향까지 다루며 차별화된 매력을 보여준다.

#장홍제#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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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교과서 - 과학 5강 원자, 가장 작은 것을 향한 여정

화학을 논하면서 원소와 주기율표를 빼놓을 수 없다. ‘화학’이라는 말의 뜻부터 시작해,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를 찾아온 인류의 오랜 여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영상이다. 과학자들의 고뇌와 통찰로 완성한 위대한 작품, 주기율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음 강의로 <화학 결합, 소금은 부서지고 금은 빛나는 이유>, <화학 반응, 배터리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이 vol22돼 있으니, 연달아 시청하면 화학의 기초를 흥미롭게 맛볼 수 있다.

#원소#주기율표#궤도#사라진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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