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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Story>Film&Tech
비만과 그 치료를 소재로 한 영화들
이경원 과학 칼럼니스트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도 오래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필사적으로 비만을 치료하려 하고, 비만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왔다.
그런 현대인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 어떻게 풍자되고 있을까?

<너티 프로페서>
DNA로 체중을 감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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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티 프로페서> 포스터.
무려 180kg의 거구를 자랑하는 셔먼 클럼프 교수(에디 머피 분). 클럼프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존경하는 화학과 졸업생 칼라 퍼티(제이다 핑킷 스미스 분)와 클럽에서 데이트를 한다. 그런데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모욕 코미디언 레지 워링턴(데이브 셔펠)에게 체중 때문에 무자비하게 놀림을 당한다. 그는 결국 중대한 결심을 한다. 연구 중이던 DNA 재구성 체중감량 혈청을 자가 실험한 것이다. 이 혈청은 불과 몇 초 만에 113kg을 줄인다. 처음에는 체중감량을 기뻐하지만, 클럼프 교수는 두 가지 쓰디쓴 진실을 알게 된다. 첫 번째는 혈청의 효과가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살이 빠졌을 때의 자신에게 불쾌하고 변태적이며 거만하고 잔인한 또 다른 인격이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살이 빠진 클럼프 교수의 인격은 스스로를 ‘버디 러브’로 명명하고, 클럼프 교수의 업적을 가로채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데….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20세기판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다. 하나의 인체 안에 존재하는 두 인격 간의 갈등을 보여주면서 그 둘을 과연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을지, 혹은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할지 고민하게 한다. 또한 이러한 클럼프 교수의 모습은 수없이 많은 탈바가지를 상황에 따라 돌려쓰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단초가 다름 아닌 클럼프 교수의 비만한 몸이었다는 데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인체라는 감옥 안에 갇혀서, 그 감옥에 대한 누군가의 자랑과 불평을 듣고 살아야 하는 슬픈 신세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미녀는 괴로워>
전신 성형으로 팔자도 성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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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포스터.
주인공 강한나(김아중 분)는 립싱크 가수 아미(지서윤 분)를 위해 대신 노래를 불러주는 섀도 싱어다. 한나가 노래를 잘 부르는데도 무대에 직접 못 나서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엄청난 비만인이기 때문이다. 비대한 몸 때문에 일상생활에서조차 갖은 수모를 당하던 한나. 그녀는 결국 목숨을 건 전신 성형 끝에 절세 미녀로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변한 그녀에게 온 세상은 러브콜을 보낸다. 하지만 누군가가 한나의 과거를 폭로하겠다며, “넌 가짜다”라고 협박을 가해오는데….

<너티 프로페서>와 달리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인격은 변신(?) 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대신 이 영화는 주인공을 향한 세상의 시선 변화를 주로 다룬다. 그저 살 좀 뺐을 뿐인데 세상은 그녀를 칙사 대우한다. 영화에서 비웃는 것은 비만인이 아니라, 외형만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세상이다. 똑같은 미녀라도 타고난 미녀가 더 아름답다는 편견으로 무장한 세상이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자연환경까지 개조하는 위대한 동물이 인간이다. 그런 인간에게 왜 자신의 몸을 개조할 권리는 없단 말인가?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한나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라고. 그렇다. 외모야 어떻든 우리는 모두 이 별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인 호모 사피엔스다. 누군가의 귀한 자식이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긍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월-E>
왜 현대인은 살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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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E> 포스터.
환경오염으로 파괴되고 사람들도 모두 우주로 떠나버린 지구에 700년간 홀로 남아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 로봇 월-E(벤 버트 분)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문명을 풍자하는 애니메이션.

이 애니메이션에서 인간의 모습은 극 중반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700년간 유랑하던 인간들은 모두 비만해졌다. 우주선 내에서 육체노동은 로봇이, 정신노동은 컴퓨터가 다 해주니, 인간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 결국 모두 드러누워 군것질이나 하면서 화면만 보다가 뚱뚱해졌다.

이 설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비만도 결국 문명병이며, 문명이 발전할수록 비만도 심해짐을 알려준다. 그리고 인간의 욕구를 극한까지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의문도 던진다. 편해지고 싶다, 배부르고 싶다, 놀고 싶다는 인간의 욕구를 극한으로 추구하다 보면 누구나 저런 모습이 되지 않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점점 월-E 우주선 속과 같이 변해가는 것 같지만.

그런 세상에 맞서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소중한 존재지만 동시에 유한한 존재라는 점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한 데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도 않지 않은가. 그 점을 자각하고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더 가볍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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