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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팬데믹과 혁신 비만치료제의 산업혁명
김주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

전 세계 비만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비만이 인류 건강에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GLP-1 계열을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비만치료제가 강력한 체중감소 효과를 입증하며 치료 패러다임과 제약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비만 치료 기술의 진화와 글로벌 산업 동향을 살펴본다.

s1_4_icon1.png인류는 현재 비만과의 전쟁 중
세계 성인 비만인구 예상치s1_4_icon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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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세계보건기구, 세계비만연맹
현생인류가 탄생한 약 20만~30만 년 전 이후 수십만 년 동안 비만은 일상적인 풍경이 아니었다. 빈곤과 기아에 시달리던 산업화 이전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비만인구가 급증한 시기는 1970~1980년대 이후다. 1976~1980년 미국 젊은 성인의 비만 유병률은 6.2%였으나, 2021년에는 35.5%로 크게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비만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전염병Pandemic 수준의 보건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로 ‘비만 팬데믹Obesity Pandemic’이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된다. 현재 인류는 비만과의 전쟁 한가운데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2년 기준 전 세계 성인 비만인구가 8억9000만 명 에 달한다고 발표했고, 세계비만연맹은 2035년이 되면 이 숫자가 19억 명(세계 인구의 25%)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만은 심장병, 뇌졸중, 제2형 당뇨병, 지방간염, 일부 암 등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며, 치료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 세계비만연맹은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 증가와 생산성 손실이 2035년까지 전 세계 GDP의 3%에 해당하는 4조32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s1_4_icon1.png수술에서 약물로, 비만치료제의 새 물결
과거에는 위 우회술, 위 소매절제술 등 비만 대사 수술을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여겼다. 이 수술은 고도비만 환자에서 평균 체중의 25~30% 이상 감소를 유도하고, 당뇨 병행 시 당뇨 관해Remission 효과도 뛰어나다. 다만 수술의 침습성과 합병증 위험, 그리고 수술 자원의 한계로 인해 대상 환자 대비 시술 비율은 매우 낮다. 좀 더 덜 침습적인 대안으로 위 안에 풍선을 넣어 포만감을 주는 위풍선 시술, 위 전기자극기 또는 장내 삽입형 기기 등이 개발되었으나, 체중감소 효과와 지속성이 수술만큼 크지 않아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음식 섭취량 조절과 운동 등 생활 습관 개선이 건강한 체중감량 방식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많은 시간과 노력, 의지력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체중감소 효과도 크지 않다.

최근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 수용체 작용제 비만치료제의 등장으로 이런 상황에 변화 조짐이 일었다. 이 계열 최초 약물인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삭센다(리라글루티드)가 2015년 1월 미국에서 출시된 이후, GLP-1 비만치료제들은 혁명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효과가 확인되면서 기존의 식욕억제제나 지방흡수억제제 위주 비만치료제 시장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왔다. 삭센다 이후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세마글루티드),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마운자로(티르제파티드, 당뇨병용)와 젭바운드(티르제파티드의 비만치료용 상품명) 등 여러 GLP-1 계열 신약들이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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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가장 확실한 감량 효과를 보인 치료법은 비만 대사 수술이었다.
  • ❶ 완해라고도 하며, 질환의 경과 과정에서 증상이 일시적으로 호전되거나 거의 소멸된 상태를 말한다.
  • ❷ 세균, 바이러스, 암세포 등이 조직이나 장기 안으로 침투하여 퍼질 수 있는 성질.
  • ❸ 몸속 신호를 받아들이는 ‘안테나’ 같은 단백질.
  • ❹ 수용체를 자극해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s1_4_icon1.pngGLP-1 비만치료제의 화려한 등장
GLP-1은 원래 사람의 소장에서 식사 후 분비되어 포만감을 높이고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이다. GLP-1 수용체 작용제들은 이 호르몬을 모방하여 식욕억제와 칼로리 섭취 감소를 유도하는 작용을 한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두 자릿수에 달하는 체중감소율이다.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좀 더 안전하면서 기존 비만 대사 수술에 필적하는 수준의 체중감소를 보여준다. 요컨대 위고비 임상시험STEP에서는 1년간 평균 15% 이상의 체중감량 효과가 나타났고, 티르제파티드의 경우 일부 환자에서 20%에 가까운 감량도 보고되었다. GLP-1 비만치료제는 장기간 안전성도 비교적 잘 입증되었다. 흔한 부작용은 복용 초기의 메스꺼움, 구토 등의 위장관 부작용이지만 대부분 경미하고 시간이 지나며 호전된다.

GLP-1 계열 비만치료제의 인기는 시장 지표로도 잘 드러난다. 제약업계에서는 연 매출 10억 달러를 넘기면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불리는데, GLP-1 비만치료제는 2024년 한 해에만 200억 달러(약 26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세계 최초로 GLP-1 비만약을 출시한 덴마크의 노보 노디스크는 2024년 비만치료제 매출만 17조 원에 달하며 자국 GDP의 3.5%를 창출, 시가총액 기준 유럽 1위 기업으로 도약했다. 미국의 일라이 릴리도 당뇨·비만약의 성공으로 주가가 급등해 글로벌 제약사들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 인사들이 GLP-1 주사로 체중을 감량했다고 공개하면서, 대중의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최근 KFF 건강 추적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약 12%가 오젬픽, 위고비, 마운자로를 포함한 GLP-1 작용제를 복용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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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 계열의 대표 약물인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좌)와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s1_4_icon1.png글로벌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 경쟁
이처럼 시장 파급력이 큰 신약을 놓고 글로벌 제약사들의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선두 주자인 일라이 릴리는 레타트루티드Retatrutide라는 삼중 작용제를 임상 3상에서 테스트하고 있는데, 앞선 임상 2상 결과 24%에 달하는 체중감량을 보고하여 학계의 큰 관심을 모았다. 삼중 작용제는 GLP-1으로 식욕을 억제하고, GIP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며, 글루카곤으로 에너지 소모를 늘려 체중감소 극대화를 노린다. 일라이 릴리는 또 경구용 비펩타이드 소분자 GLP-1 소분자 작용체인 오르포글리프론LY-3502970에 대해 제2형 당뇨병 환자 559명을 대상으로 3상 임상시험을 수행 중이다.
2025년 4월 발표된 첫 번째 결과에서 이 약물의 1차 평가 변수Primary Endpoint는 당화혈색소 수치A1C 감소였으나, 2차 평가 변수인 체중도 7.9% 감량되었다. 또한 체중의 경우 안정기에 도달하지 못해 이후에 추가적인 감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보 노디스크는 세계 최초 경구용 GLP-1 제제(먹는 세마글루티드) 개발로 시장의 판도 변화를 노리는 한편, 세마글루티드와 아밀린 유사체 카그릴린티드의 복합 주사제인 카그리세마Cagrisema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했다. 다만 이 약물의 체중감량 효과는 평균 22.7%(비당뇨), 15.7%(제2형 당뇨 동반 환자) 등으로 투자자 기대치인 25%보다는 다소 부족한 결과였으며, 2026년 1분기 FDA 승인을 준비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GLP-1 비만치료제 수요가 폭발하면서 약물 공급을 위한 글로벌 제약기업의 M&A도 활발하다. 2024년 일라이 릴리의 모픽 홀딩Morphic Holding 및 넥서스 파마슈티컬Nexus Pharmaceuticals 약물 제조시설 인수, 로슈의 카르못 테라퓨틱스Carmot Therapeutics 인수, 노보 홀딩스의 카탈런트Catalent 인수 등이 이와 관련되어 있다.

전 세계적인 비만치료제 붐 속에서 한국 제약기업들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장 앞서 있는 한미약품은 자체 개발한 장기 지속형 GLP-1 주사제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의 국내 임상 3상을 2024년 1월 초 420명 규모로 시작했다. 이 임상은 2026년 상반기에 종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미약품은 GLP-1/GIP/글루카곤 삼중 작용제인 차세대 비만 신약 후보 HM15275를 개발해 2025년 9월까지 미국에서 임상 1상을 마칠 계획이다. 동아에스티Dong-A ST는 2024년 1월 자사의 GLP-1/글루카곤 이중 작용제 후보물질 DA-1726에 대해 미국 FDA의 글로벌 임상 1상을 승인받아 미국 자회사인 뉴로보 파마슈티컬스를 통해 진행 중이다. 대원제약과 대웅제약은 각각 마이크로니들 패치형 GLP-1 주사제를 개발 중이고, 일동제약은 신약 개발 자회사 유노비아를 통해 경구용 GLP-1 저분자 화합물의 임상 1상을 진행하여 먹는 비만약에 도전하고 있다.
제약사들의 비만 치료 신약 개발 현황
제약사 신약명 / 후보 물질 작용 기전 예상 완료 시점
일라이 릴리 레타트루티드Retatrutide GLP-1/GIP/글루카곤 삼중 작용제 임상 3상 진행 중
오르포글리프론LY-3502970 경구용 GLP-1 소분자 작용제 2025년 4월 첫 결과 발표
노보
노디스크
세마글루티드 경구제 GLP-1 수용체 작용제 FDA 승인 준비중
카그리세마Cagrisema 세마글루티드 + 카그릴린티드 복합 주사제 FDA 승인 준비중
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 장기 지속형 GLP-1 주사제 2026년 상반기 종료 예상
HM15275 GLP-1/GIP/글루카곤 삼중 작용제 2025년 9월 임상 1상 완료예정
동아에스티 DA-1726 GLP-1/글루카곤 이중 작용제 진행 중
일동제약 경구용 GLP-1 저분자 화합물 먹는 비만약 개발 진행 중
s1_4_icon1.png 의료 비용과 건강보험 재정을 둘러싼 논쟁 : 새로운 불평등의 등장
미국 FDA는 2024년 3월 위고비에 대해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 효능을 인정하여, 생활 습관 교정 외 별다른 치료제가 없던 비만 환자에게 심장마비·뇌졸중 위험을 20% 줄여주는 약물로 처음 승인했다. 영국은 체질량지수BMI 35 이상 등의 고위험 환자에 한해 위고비를 국민의료서비스NHS에서 최대 2년 처방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다만 비용 부담이 큰 약물인 만큼 보건당국과 건강보험사의 고민은 여전히 크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메디케어·메디케이드의 비만약 보장 확대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2024년 현재 일부 미국 사보험에서는 비만약 지출이 전체 약제비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급증했는데, 공공보험인 메디케이드(저소득층 대상)는 여전히 체중감량 목적의 약물은 지원하지 않아 소득계층 간 치료 접근성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비만이 더 이상 ‘문제’가 아닌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렇지 못한 이들과의 삶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비만치료제의 비용에 대한 사회적 부담과 경제력에 따른 건강권 차별에 대한 논란은 향후 더욱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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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이 큰 비만 치료 약물에 대해 보건당국과 건강보험사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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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SK바이오팜과 셀트리온을 거쳐 현재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일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정책에 대해 공부하고 있으며, 바이오 클러스터 등 지역혁신과 인재 육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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