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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가죽,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선택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새로운 비건 가죽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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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래전부터 가죽을 사용해왔다. 구석기인이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맨몸을 보호하고자 만든 가죽옷과 신발 등의 생존 수단은 오늘날 명품으로 거듭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사실도 존재한다. 미국 비영리단체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 전 세계적으로 1340만 톤의 동물 가죽 제품이 생산되었다. 여기에는 동물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일각에서는 축산업 부산물로 얻는 가죽조차도 가공 과정에서 다량의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므로, 생가죽 사용 자체를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건 가죽의 종류와 장점 그리고 한계
비건 가죽이란 동물 가죽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조가죽으로, 주로 식물성 재료로 만든다. 비건vegan은 채식주의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 vegetarian의 앞 세 글자와 뒤 두 글자를 합친 말인데, 1944년 영국에서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래 동물 유래 식품을 비롯해 동물성 제품 일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지만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어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까지 지양하는 포괄적인 개념을 뜻한다.

비건 가죽의 선두 주자 가운데 하나는 ‘피나텍스Piňatex’이다.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이 가죽은 가볍고 유연하며, 동물 가죽과 유사한 질감을 제공해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활용되고 있다. 파인애플이 하는데 애플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듯, 사과 가죽도 등장했다. 사과 주스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과육 찌꺼기와 껍질이 주원료다. 또 다른 혁신적인 소재는 선인장 가죽이다. 멕시코 기업 ‘데세르토Desserto’에서 만드는 이 가죽은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라는 선인장을 사용한다. 선인장 재배 자체에 물이 많이 들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부드럽고 유연한 질감으로 현재 가방과 신발, 의류 등 다양한 제품에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식물 유래 물질로 만드는 비건 가죽은 동물 학대에서 자유롭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과 탄소 배출량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식물성 폐기물을 원료로 사용할 경우에는 장점이 배가된다. 실제로 몇몇 명품 브랜드와 자동차기업 등이 비건 가죽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비추어 비건 가죽 시장은 크게 성장할 전망이지만, 여기에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바로 취약한 가격 경쟁력이다. 이런 딜레마를 탈출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에서 뜻밖의 지원군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곰팡이’다.
실처럼 자라나는 곰팡이, 가죽의 재료로
그늘지고 축축하면 벽이나 옷, 음식물 등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곰팡이. 이 불청객이 이렇게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먹성 탓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 덕분에 세균과 더불어 생태계에서 분해자 임무를 수행하고 지구의 물질순환을 돕는다.

곰팡이 하면 보통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모양이 떠오른다. 이런 곰팡이를 모양 그대로 ‘사상균絲狀菌’이라고 부른다. 빵이나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효모(이스트)’는 또 다른 곰팡이다. 그리고 버섯도 곰팡이다. 버섯이 토핑으로 올라간 ‘풍기funghi 피자’에서 풍기는 이탈리아어로 버섯을 뜻한다. 영어로는 펀지fungi라고 한다. 정리하면, 곰팡이에는 크게 세 종류, ‘사상균’과 ‘효모’, ‘버섯’이 있다. 참고로 곰팡이를 ‘진균眞菌’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작은 균’ 곧 ‘세균細菌’과 비교하여 ‘진짜 균’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진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곰팡이는 대체 가죽 소재로도 당당히 등장해,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2018년 미국에서 창업한 ‘볼트 스레즈Bolt Threads’는 톱밥에서 키운 버섯 ‘균사체’로 가방과 요가 매트를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판매 중이다. 균사체는 실타래 같은 모양으로 생겼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촘촘하게 얽힌 상태로 자라는 ‘균사’ 덩어리다. 균사는 곰팡이를 이루는 세포가 연결되어 실처럼 길어진 것인데, ‘팡이실’이라고도 부른다.

균사는 자라면서 가지를 치는데 이 때문에 균사체는 보통 둥그런 모양을 이루고 있다. 또한 여러 균사체가 위아래로 얽히며 성장한다. 실제로 실험실에서 곰팡이를 배양하면 솜뭉치처럼 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종류에 따라서는 균사가 겹치고 두꺼워지며 자라기도 하는데, 버섯이 그런 경우다.

버섯에 이어 2022년에는 콩을 발효시킨 템페tempeh에서 분리한 사상균, ‘리조푸스 데레마Rhizopus delemar’ 균사체로 가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당시 스웨덴 과학자가 주도한 유럽 연구진의 실험 개요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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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빵 40kg을 분쇄하여 물 1000ℓ에 넣고 80℃에서 1시간 동안 살균한 다음 리조푸스 데레마를 투여한다.
이 곰팡이는 비교적 배양이 쉽고 성장도 빨라서 이틀 만에 빵가루 1g당 0.15g에 달하는 균사체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균사체를 모아서 남아 있는 빵가루를 씻어낸 후, 두드리면 균사체는 가죽과 같은 재질을 띠게 된다.
이후 글리세롤을 처리하여 신축성을 더함으로써, 버려진 빵 조각을 유용한 인조가죽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왜 곰팡이 가죽인가?
곰팡이 가죽의 가장 큰 장점은 환경 친화성이다. 보통 버려지는 농업 또는 산업 폐기물에 곰팡이를 키워 원재료를 얻는다. 재활용Recycling을 넘어선 새활용Upcycling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쓰고 버리면 완전히 생분해되어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 비건 인증을 받을 수 있고, 동물복지 실현에도 힘을 보탠다. 제조 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 충분히 자란 균사체를 수확해서 압축하고 건조한 후, 가죽과 유사한 질감을 만든다. 그런 다음 천연염료나 친환경 화학 처리를 통해 원하는 색상과 특성을 부여하고, 절단 및 재봉 과정을 거쳐 다양한 패션 아이템으로 완성시키면 끝이다.

현재 여러 기업에서 곰팡이 가죽을 활용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볼트 스레즈사는 곰팡이 가죽으로, 아디다스Adidas와 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를 비롯한 유명 브랜드와 협력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다른 미국 기업 ‘마이코웍스MycoWorks’ 역시 균사체를 활용해 고급 곰팡이 가죽을 개발했다. 이 가죽은 캐딜락Cadillac과 같은 자동차기업에서 차량 인테리어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2021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ès는 마이코웍스와 협력하여 곰팡이 가죽으로 만든 빅토리아 가방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엔환경계획NEP이 발간한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 2021FOOD WASTE INDEX REPORT 2021>에 따르면, 애써 생산한 농·축·수산물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온전히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그리고 그 절반은 유효기간을 넘긴 식료품 폐기를 포함해서 유통과정에서 발생한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버려지는 식품의 상당량이 빵류라고 하는데,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빵은 가축 사료 또는 에탄올과 젖산 같은 발효 제품 생산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버려지는 빵을 곰팡이를 통해서 가죽으로 만들 수 있다면 훨씬 더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활용법이 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 소재 생산용 곰팡이 선정과 생산 조건, 올바른 사용 지침 마련과 함께 곰팡이 소재와 관련된 위해성 평가도 심도 있게 병행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가죽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는 곰팡이
곰팡이 균사체는 가죽 외에도 포장재와 생분해성 플라스틱, 건축 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활용되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 뉴욕주에 본사를 둔 ‘에코베이티브Ecovative’는 균사체를 원료로 스티로폼을 대체할 수 있는 소재, ‘마이코폼Mycofoam’ 개발에 성공해 현재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마이코Myco-는 곰팡이를 뜻하는 영어 접두사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 스티로폼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데 500년 정도 걸리지만, 마이코폼은 30일이면 분해되고 퇴비로도 활용 가능하다. 화장품 회사 러쉬LUSH, 전자제품 회사 델DELL, 가구 회사 이케아IKEA 등이 이 곰팡이 포장재를 사용하고 있다.

한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달과 화성 같은 건설 현장에서 사용할 미래형 신소재 개발 연구를 곰팡이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름하여 ‘마이코-아키텍처Myco-Architecture’, 우리말로 하면 ‘곰팡이 건축’ 프로젝트다. 핵심 아이디어는 이렇다. 유연성 있는 플라스틱 얼개에 균사체와 말린 유기물을 지구에서 채워서 우주, 예컨대 화성으로 간다. 현지에서 물과 함께 적절한 열을 가한다. 그러면 곰팡이가 자라면서 건축물 외관이 만들어진다. 먹이가 다하거나 열 공급을 중단하면 곰팡이 건축 공사 완료이다. 추가 구조물이나 보수에는 곰팡이 포자를 이용한다. 균사체는 견고하고 단열 효과가 좋아서 우주 건축 자재로 손색이 없다. 심지어 우주 생활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곰팡이 먹이로 재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건설 자재 운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균사체를 이용한 신소재는 우리 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은 이러한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학계와 협력하여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 곰팡이 가죽과 제반 소재의 품질과 친환경성을 보장하기 위해 명확한 산업 표준과 인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으며, 기업들은 친환경 소재 사용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곰팡이 가죽과 소재 생산은 순환 경제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과 재사용을 고려하고,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촉진해야 한다. 이는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 기업, 학계, 소비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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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균사체로 만든 비건 가죽을 이용해 만든 핸드백.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의 내구성 분석 결과, 의류용 가죽류보다 내구성이 2배가량 높았으며 마찰에 견디는 정도 역시 1.5배 이상 높았다.
자료: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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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빈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
미생물을 공부하며 인문예술학자와 융합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생물학의 쓸모>를 비롯해서 여러 책을 썼고,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을 통해 흥미진진한 생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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