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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기술
진화의 진화를 넘어서다
CRT(브라운관)가 무겁고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얇고 가벼운 평판 디스플레이FPD 장치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에 매우 다양한 전자 디스플레이 장치들이 연구개발되고, 제품으로 완성되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1970년대부터 액정 디스플레이LCD를 이용한 전자계산기나 숫자 표시용 시계 등이 출현하였고, 여기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 가세하면서 자동차용, TV, 노트북 등으로 응용 범위를 확장했다. 이후 전자 디스플레이 응용 분야의 완성체라 할 수 있는 벽걸이 TV 시장에 PDP가 본격적으로 진입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순차적으로 TV 시장에 진입한 LCD와 유기발광 다이오드OLED가 새로운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TV 시장에서 살아남은 디스플레이 기술들
전자 디스플레이의 경연장은 ‘TV 시장’이다. 프리미엄급 TV를 대상으로 사이즈와 화질, 가격 등을 두고 메이커들 간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TV 시장을 석권했다는 건 예를 들어 씨름에서는 천하장사를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다. 즉 기술과 시장에서 최고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전자 디스플레이의 역사가 100년에 달하고, 수십여 종의 다양한 기술이 전자 디스플레이 분야에 명함을 내밀었어도 지금껏 TV 시장에 제대로 들어선 기술은 브라운관CRT과 플라스마 디스플레이PDP, 액정 디스플레이LCD 그리고 유기발광 다이오드OLED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LCD와 OLED가 건곤일척의 경합을 벌이고 있다.

LCD가 액체에 가까운 액정 커튼을 전기장으로 움직여 빛의 투과를 조절하는 ‘액체’ 기반의 디스플레이라면, OLED는 유기물이 주재료이고 전극만 무기물인 순수한 ‘고체’ 디스플레이에 해당한다. 고체가 액체에 도전장을 내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OLED는 전자와 정공의 만남을 통해 빛이 만들어지는, 디스플레이 분야의 가장 이상적인 발광 방식으로 작동함으로써 동작 속도가 빠르고, 시야각 문제가 없으며 명암비를 좌우하는 ‘진정한 블랙’을 만들어낸다. LCD가 낮에 암막 커튼을 쳐서 어둠을 만든다면 OLED는 진짜 밤의 어둠을 구현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유기물의 합성을 통한 자연색 구현에도 훨씬 잠재력이 크다. PDP TV가 브라운관 TV에 그랬듯, LCD TV가 PDP TV에 그랬듯, OLED TV가 LCD TV 판을 뒤집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OLED가 도전장을 내민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LCD는 버티고 있다. 제자리를 지키는 LCD의 맷집이 참으로 대단하다. 명암비의 불리함을 발광 다이오드LED 백라이트를 활용해 버티더니, 자연색 구현은 양자점QD, Quantum Dot을 접목한 양자점 LCD 기술로 대등하게 견주고 있다. 결국 언젠가는 OLED가 TV 챔피언에 오르겠지만, KO승이 아닌 고전의 판정승이 될 전망이다. 물론, LCD TV는 브라운관이나 PDP와 달리 소멸까지는 가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지킬 수도 있다.
  • ❶ 정공: 반도체 물리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전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의미한다. 전자가 이동하면 그 자리가 ‘정공’ 상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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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 최첨단 기술만이 능사가 아니다?
전자 디스플레이의 미래는 반도체보다 예측이 어렵다. 반도체의 경우 집적도가 높아지고, 기억용량이 커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만, 전자 디스플레이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활용성, 즉 모양의 변형이나 크기, 가격 경쟁력 등 여러 면에서 이점이 커야 한다. 이에 이전 기술의 약점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전쟁에 가까운 경쟁을 거쳐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이 변천되었다. 지금은 OLED의 시대이다. 밝고 어두움의 높은 비율(대조비)과 색깔의 표현 그리고 얇은 두께에, 휘거나 접을 수 있는 변형 능력으로 모바일이나 태블릿부터 TV까지 영토를 점해가고 있다. 왕년의 챔피언인 LCD는 박리다매의 지존인 경쟁국의 힘을 토대로 맷집이 굳건하다. OLED 우세는 확실시되지만 그렇다고 LCD의 존재가 영영 사라지지는 않을 듯하다. LCD 기술의 성숙도는 완성되었고, 더 이상 히든카드는 없을지라도 지금껏 갈고닦은 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OLED는 어떨까? 특히 TV용 대형 OLED의 영역은 100인치급에 육박하지만, 작금의 OLED TV는 주로 ‘백색 OLED + RGB(빨강·초록·파랑) 컬러필터’ 기술을 채택했는데, 이는 ‘철조망 우회 통과’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즉, 완전한 3원색RGB을 위해서는 반도체에서 쓰이는 사진식각기술Photolithography❷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러한 공정에서는 유기물이 물과 습기를 견딜 수 없다. 따라서 물을 사용하는 기존의 사진식각 공정 대신 궁여지책으로 얇은 금속판에 작은 구멍을 무수히 뚫어, 이를 통해 RGB 발광물질을 순차적으로 쌓아가는 ‘섀도마스크 기법’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는 부화소들의 모양과 패턴 간의 정렬 오차 발생으로 불량 우려가 크다. 특히 OLED의 크기가 커질수록 불량에 대한 손실은 생산성에서 혹독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이유로 TV등 대형 OLED 패널을 만들 때는 백색 OLED 위에 RGB 컬러필터를 덧대는 방식을 채택하는데, 이 또한 한계가 있다. 아무리 밝은 OLED 빛이라도 RGB 컬러필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소실된다는 것. 결국 화면 밖으로 전달되는 빛의 양은 처음의 1/3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 ❷ 사진식각기술: 반도체 제조 공정 중, 빛을 이용해 미세한 패턴을 웨이퍼에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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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OLED·QD-LED·마이크로 LED, 한계를 극복하는 초격차 기술의 탄생
최근에 등장한 ‘블루 OLED + RGB 색 변환층’ 방식은 ‘백색 OLED + RGB 컬러필터’ 방식보다 진화된 기술로 블루 OLED를 넓게 깔고 이 위에 필터가 아닌 색 변환 물질을 적용한다. 여기에 에너지 효율과 색 변환 특성이 우수한 양자점QD, Quantum Dot을 도입하여 파랑을 빨강과 초록으로 변환함으로써 색 순도와 함께 밝기와 수명, 내구성을 한층 개선했다. 이는 진일보된 OLED 기술이며 이후 단계로 OLED 부분을 온전히 제거하고 양자점에 전기를 흘려 양자점 발광 소재만으로 RGB를 직접 만들어내는 양자점 LED가 준비되고 있다. 즉, OLED 기술의 발전 방향에 있어서 기존의 OLED 기술에 양자점을 도입한 개선으로 이어지는 ‘OLED의 진화’, 그리고 양자점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OLED 광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양자점 기반 디스플레이’인 QD-LEDQuantum Dot Light Emitting Diode를 다음 세대의 중추적인 기술로 예측할 수 있다.

또 다른 경쟁자는 ‘마이크로 LED’ 기술이다. LEDLight Emitting Diode(발광 다이오드)의 역사는 반세기를 넘는데, 지금까지는 유리 기판이 아닌 반도체 웨이퍼에 만들어져 칩 형태로 자른 뒤 개별 패키징을 하여 사용되었다. 3원색인 레드·그린·블루RGB LED 각각을 디스플레이의 화소로 보기에는 사이즈가 큰 편이다. 따라서 빌딩 옥상 등에 설치하여 멀리서 보는 대형 평면 디스플레이로만 사용되어 왔다. 월드컵 경기의 야외 중계, 퇴근길에 보이는 뉴스 전광판으로 익숙하다.

마이크로 LED는 기존 LED 칩을 100분의 1 크기로 작게 만들어서(micro-) 이들 각각을 디스플레이의 부화소들로 사용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작게 제조된 LED 칩들을 유리 기판 위에 배열한다면 진일보한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다. 꼭 유리 기판이어야 할 이유도 없으며, 휨을 위한 플라스틱과 웨어러블용 옷감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기판 소재로부터 자유로운 디스플레이, 레고처럼 모양을 변형하거나 임의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디스플레이가 초대형 무정형 TV를 향해 도전의 발걸음을 딛고 있는 ‘마이크로 LED’ 기술의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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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백라이트가 필요하지 않은 OLED의 강점을 활용해 투과율을 극대화한 투명 OLED 디스플레이도 전 세계에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분야 역시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선도하고 있다. 사진에 등장한 제품은 LG디스플레이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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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5일 미국에서 열린 SID 2024에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다양한 차세대 OLED 신기술을 선보였다.
왼쪽은 삼성디스플레이의 QD-LED, 오른쪽은 LG디스플레이의 마이크로 LED 기술이다.
디스플레이 기술 1위 강국의 위엄은 여전하다
가장 최근에 열린 디스플레이 국제 전시(디스플레이 위크 2024)를 살펴보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뜨겁게 달굴 디스플레이 신기술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디스플레이 기술과 산업의 선도 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는 기존 폴더블(접을 수 있는) OLED 패널을 물속이나 더욱 가혹한 환경에서도 활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내구성 입증 테스트를 시연했다. 물속에서 원활한 작동은 물론 철 수세미로 문지르고 쇠구슬을 떨어뜨려도 견딜 수 있는 강함은 그간 유기물이어서 연약하다는 OLED에 관한 편견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내구성을 바탕으로 화면을 ‘S’자 형태로 2번 접을 수 있는 ‘Flex S’, 접힌 패널을 편 뒤(언폴딩) 당겨서 늘리는(슬라이딩) ‘Flex Note Extendable’, 그리고 네모가 아닌 동그라미 모양의 ‘Round Display’ 등으로 진화하는 OLED 폼팩터(모양새) 구조를 선보였다. 더 강하고 더 얇고 더 크게 확장되는 다양한 모양의 OLED를 통해 응용도는 무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성능 면에서도 더욱 밝고 (3000nit급) 섬세한(3500ppi급)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최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확장현실XR 시장을 정확히 겨냥했다. 이에 더하여 OLED를 없애고 완전한 무기물로만 이루어진 18인치급 QD-LED를 오픈하여 OLED 이후의 기술post-OLED을 제시하였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가상현실VR과 스마트 워치용 고휘도·고해상도 1.3인치 OLEDoSOLED on Silicon 기술과 제품을 선보였으며, 이와 함께 3000nit급 83인치 OLED TV를 발표하여 초소형과 대형 OLED의 응용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선두업체인 BOE는 100인치-16K 디스플레이 및 단안 해상도를 망막 수준으로 향상시킨 32인치급 OLED TV 패널, 인공지능을 이용한 소비전력 감소 기술, 10인치급 투명 OLED 패널, 롤러블(말 수 있는) OLED를 발표하였고 AUO와 TCL은 각각 60인치급 투명 마이크로 LED, 양자점 디스플레이를 전시해 한국 디스플레이 쌍두마차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를 치열하게 추격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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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을 방문한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 수출 및 투자 현황과 OLED 초격차 유지 방안을 논의했다.
산업부는 2024년 디스플레이 R&D에 903억 원을 지원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OLED 및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확보에 집중한다.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위한 초격차 프로젝트
경쟁국들 특히 중국의 추격 위협에서 벗어나 더욱 격차를 벌리고자 하는 한국 디스플레이 기술과 산업 전략은 ‘초격차 프로젝트’로 구체화되고 있는데 ▲기존 OLED 기술의 진화와 확장인 ‘EX-OLED’ ▲OLED 이후 세대의 무기물 기반 ‘post-OLED’, 두 개의 축으로 견인되고 있다.

EXExpandable, Extendable-OLED는 앞서 말한 모양 개선(폼팩터), 나아가서는 무한 개선(폼프리) 기반의 고휘도, 고내구성·긴 수명을 갖는 OLED 기술개발을 의미한다. 따라서 OLED를 통해 향후 사물인터넷, 스마트 모빌리티, 메타버스 등 디스플레이 중심 신개념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전략이다. post-OLED의 경우, 유기물 기반인 OLED에서 탈피해 양자점 기반 디스플레이(QD-EL, QD-LED 등)와 마이크로, 나노 LED 분야로 가시화되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전기가 빛을 만들고 빛이 또 다른 빛(3원색)을 만들어내는 ‘EL(전기발광) + PL(빛발광)’로 두 단계를 거치는 디스플레이를 지향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화질과 성능 개선은 물론 내구성과 수명도 한층 발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에서는 현재 더월 TV 등에 적용되는 40미크론급 LED 화소의 국산화 개발을 위한 ‘첨단전략산업 초격차기술개발’(2024~2026년, 903억 원)을 시행하고, 화소부터 패널, 모듈까지 공정 전 주기에 걸친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핵심 기술 선점을 위한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기술개발 및 생태계 구축사업’(2025~2032년, 4840억 원)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CRT는 ‘진공’, LCD는 ‘액체’, PDP는 ‘기체’, 그리고 OLED는 ‘고체’를 기반으로 하는 디스플레이로 신이 우리에게 준 네 가지 상태를 각각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가 가장 접하기 어려운 진공 기반의 디스플레이가 가장 먼저, 그리고 다루기 편한 고체 기반의 디스플레이가 마지막으로 출현했다는 점이 흥미로우며, 향후에는 고체 기반의 전자 디스플레이 장치 기술의 경연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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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권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작가
디스플레이와 센서에 관심이 높으며, 공학과 문학을 엮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든다. 양평 강하면에서 출판사 항금리문학을 운영 중이다. 네이버 블로그 ‘우정 주병권‒인간에 대한 예의’에서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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