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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평평하고 휘고 접고…
끝없는 디스플레이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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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디스플레이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 모양도 기술도 거침없이 진화한 디스플레이가 사방 천지에 넘쳐난다.
추억 속의 브라운관에서부터 자체 발광하는 OLED까지 긴 변천 과정을 거쳐온 다양한 디스플레이, 과연 어떤 기술로 어떻게 변해왔을까?

디스플레이Display의 어원인 라틴어 Displico는 ‘보이다’, ‘진열하다’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자공학에서의 디스플레이는 수신・저장・전달을 위해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시하는 출력장치를 뜻한다. 컴퓨터의 전자신호 출력을 도형으로 그리고 픽셀로 만든 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입력 정보가 전기적 신호로 공급될 때, 디스플레이를 ‘전자 디스플레이’라고 한다.

이제 디스플레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아마 하루도 디스플레이 장치를 안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든 디스플레이는 언제 어떤 종류가 만들어졌을까. 그 역사적 흐름을 알아보자.
20세기는 두꺼운 음극선관 시대
최초로 보편화된 전자 디스플레이는 음극선관CRT이다. 1897년 독일의 물리학자 카를 브라운Karl Braun이 처음 개발했다. 이 때문에 음극선관은 브라운관으로도 불린다. 음극선관은 진공관 안의 전자총에서 발사된 전자가 화면에 발라진 형광물질에 부딪혀 빛을 내는 원리다. 음극선관의 발명은 텔레비전이라는 미디어를 등장시켰다. 1927년 미국의 발명가 필로 판스워스Philo Farnsworth가 볼록한 전자식 음극선관 TV를 발명했고, 1931년 미국에서 처음 흑백TV 시험 방송을 했다. 최초의 TV 방송은 1936년 독일에서 시작되었으며 베를린올림픽을 생중계하며 세상에 TV가 알려졌다. 이후 음극선관은 텔레비전의 대명사처럼 쓰였다.

음극선관의 확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컬러 방송이다. 1950년 4월 미국 CBS에서 처음 송출된 컬러TV 방송을 시작으로 음극선관은 1960년대까지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했다. 컴퓨터가 발명되면서부터는 데이터 정보를 표시하는 모니터로 영역을 확대해 연간 2억 대 이상 팔리는 거대 산업군을 형성하게 된다.

음극선관의 장점은 색상 표현력이 좋고, 응답 속도가 빠르며, 화질이 전체적으로 고르다는 점이다. 응답 속도란 정보가 들어왔을 때 디스플레이가 반응하는 속도를 말한다. 한편 단점도 있었다. 화면이 커질수록 가장자리가 일그러지는 현상이 발생했고, 화면 크기에 비해 유리의 두께가 두꺼워 크고 무겁다는 게 흠이었다.

우리나라는 1956년 5월 12일 대한방송에서 처음으로 TV 방송을 시작했다. 네모 상자 안에서 건물, 자동차, 사람이 나와서 웃고 떠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저녁 시간마다 마을 사람들이 TV가 있는 집으로 모여들어 TV를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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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 디스플레이인 LCD로 진화
음극선관의 단점을 보완한 디스플레이가 바로 LCDLiquid Crystal Display이다. LCD는 ‘액정’을 핵심 소재로 한 평판 디스플레이다. 외부 광원(일명 백라이트)에서 발산된 빛이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있는 액정과 편광판을 통과하면서 화면을 만들어내는 원리다. 액정을 통과한 빛이 컬러필터에 의해 색을 구현한다.

사실 LCD 기술이 최초로 개발된 것은 음극선관보다 더 오래전으로, 1888년 오스트리아의 생물학자 프리드리히 라이니처Friedrich Reinitzer가 액정을 발견했다. 액정은 액체와 고체의 중간적 성질을 가진 물질이다. 과학자들은 1900년대 초반까지 이 액정으로 TV 모니터를 만들기 위한 연구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만만찮았다.

LCD가 음극선관의 도전자로 부상한 것은 1963년 미국 RCA사의 연구원 윌리암스R. Williams가 액정이 광학적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하면서부터다. RCA사는 1968년 액정을 디스플레이에 응용해 제품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제품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때는 1990년대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액정 상용화에는 일본 전자기업 샤프의 공헌이 크다. 샤프는 전자계산기에 사용하기 위해 액정 개발에 전념했고, 1973년 LCD를 탑재한 전자계산기를 출시했다. 이후 데스크톱과 노트북에 탑재되었고, 1986년 3인치급이 컬러TV에 사용되면서 LCD TV의 가능성이 제시됐다.
LCD는 음극선관에 비해 엄청나게 얇고 가벼웠다. 하지만 당시에는 LCD TV에 대한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LCD는 자체적으로 빛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백라이트가 필수적인데 이 때문에 TV에 쓸 만큼 응답 속도나 시야각 등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게 LED(발광 다이오드) 기술이다. LEDLight Emitting Diode는 갈륨Ga, 인P, 비소As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반도체다. 핵심 기술은 LCD와 같고, LCD 액정 화면 뒤쪽에서 빛을 비춰주는 백라이트라는 부품을 형광등에서 LED로 바꾼 것이다.

LED TV라는 타이틀을 건 디스플레이가 발매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무렵이다. 처음엔 백라이트만 교체해 당장 조금 더 얇게 만드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판단했다. 하지만 ‘얇고 가볍다’는 무기로 ‘벽걸이 TV’로 불리는 디스플레이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또 극단적으로 얇아진 백라이트는 손에 들고 다니는, 책 한 권 크기의 디스플레이 장치를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
  • ❶ 광학적 효과: 디스플레이 화면에 나타나는 빛의 특성과 시각적 현상을 뜻한다. 빛의 반사, 굴절, 투과, 산란, 편광, 색 재현력, 시야각 등이 주요 광학적 효과로 디스플레이의 성능과 사용 환경, 시청 경험을 결정한다.
플라스마 소자로 빛을 내는 PDP 등장
1990년대 후반 대형 평판 TV가 급부상하면서 LCD와 동시대에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Plasma Display Panel이 등장했다. PDP는 플라스마 소자를 이용해 빛을 내는 발광형 방식이다. 상·하 2장의 유리기판 사이에 네온Neon과 제논Xenon을 혼합한 불활성 가스를 밀봉하고 고전압을 걸면 플라스마가 생성되면서 빛을 내는데, 이 빛을 이용해 문자와 그래픽을 표시하는 평판 디스플레이다.

PDP도 기술 자체는 일찍이 개발되었다. 1927년 벨연구소가 플라스마 표시장치인 단색 PDP TV를 처음 개발했다. 하지만 1930년대 초반 음극선관의 급속한 발전으로 가스 발광장치를 TV 디스플레이로 이용하는 데 대한 관심이 줄었다. 그러던 중 1964년 미국 일리노이대의 슬로토Slottow와 비츠Bitz 두 교수가 지금과 같은 교류AC형 PDP를 개발하면서 상용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후 1997년 미국 기업 파이오니어가 상업용 PDP TV를 만들어 최초로 시판했다. 본격적인 시장 형성은 대화면 가정용 PDP TV가 공급되던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PDP는 평판 디스플레이임에도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형이어서 밝기와 응답 속도가 뛰어났다. 대형화면 제작에도 유리해 평판 TV의 대중화를 이끄는 데 공이 컸다. 하지만 열이 많이 나고 전력 소비가 높은 단점 때문에 LCD와의 경쟁에 밀려 빠르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 ❷ 플라스마Plasma: 물질의 3가지 형태인 고체, 액체, 기체와 더불어 제4의 물질 상태. 자유롭게 운동하는 전자와 중성 기체가 섞여 있다.
백라이트로부터 해방된 OLED, 전기 흐르면 자체 발광
디스플레이 기술 발전은 LCD에서 멈추지 않고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로 이어져 새로운 디스플레이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 OLED는 발광 다이오드LED 중에서도 유기화합물을 이용한 종류를 뜻한다. 발광소자로 탄소와 수소 같은 유기화합물을 사용한다.

OLED는 음극(-) 성질을 가진 ‘전자’와 양극(+) 성질을 가진 ‘정공’이 OLED 구조 양극단에 각각 투입된 후 만나 빛을 낸다. 전기가 흐르면 스스로 빛을 내기 때문에 LCD TV처럼 백라이트, 액정, 컬러필터 등 복잡한 구조가 필요 없다. 따라서 디스플레이의 두께를 백지장처럼 얇게 만들 수 있다. 이를 통해 돌돌 말거나 휘는 스크린 제작이 가능하다. 색 표현력과 응답 속도도 뛰어나다. 스포츠 경기, 액션 영화, 게임 플레이 등 화면의 움직임이 빠른 콘텐츠를 즐길 때에는 응답 속도가 빠른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것이 잔상을 제거하여 더 깔끔하고 선명한 영상을 볼 수 있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도 OLED TV가 인기를 끌 것으로 보인다.

OLED의 발광 현상은 1963년 뉴욕대의 마틴 포프Martin Pope 교수 등이 발견했다. 전기를 이용해 고체 상태의 유기재료인 안트라센Anthracene❸ 단결정에서 빛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OLED 탄생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1987년 미국 코닥Kodak사의 당칭완Ching W. Tang 박사가 빛이 나오는 ‘발광층’과 전하를 운반하는 ‘전하 수송층’을 도입해 저전압으로 빛을 내는 녹색 발광소자를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글로벌 OLED 연구가 본격 시작되었고, 2007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을 시작하면서 휴대폰을 비롯해 태블릿,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IT기기의 디스플레이로 선택돼 대중화가 이뤄지고 있다.
  • ❸ 안트라센: 석탄, 경유, 휘발유 등을 사용할 때 나오는 화학물질로,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불포화 고리가 연속으로 이어져 있다.
차세대 발광소자 퀀텀닷, 미래 디스플레이 기술 재편
OLED TV가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차세대 핵심 기술 ‘퀀텀닷QD, Quantum Dot’을 향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OLED는 유기화합물을, QD 디스플레이는 나노미터 크기의 초미세 반도체 입자를 활용하는 데 차이를 보인다. 수백에서 수천 개의 원자가 뭉친 덩어리지만 지름이 10㎚ 이하로 매우 작아 다양한 양자역학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퀀텀닷은 같은 입자로 모든 색 구현이 가능하다. 따라서 재료 조성을 바꾸지 않고 결정 크기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 무기물 소재인 퀀텀닷의 지름이 짧을수록 푸른빛이 나오고 길수록 붉은빛이 나온다. 하지만 기술 완성도와 단가 경쟁력 문제로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다소 시간이 걸릴지언정 확실한 건, LCD와 LED가 만들어낸 디스플레이 세상보단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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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청소년 과학 잡지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과학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구멍에서 발견한 과학>, <먹는 과학책>, <지구의 마지막 1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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