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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ism>공학자의 시선
신소재를 통해 꿈꾸는 의료의 미래
최연식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만약 약처럼 몸속에서 녹아 없어지는 전자기기가 있다면 어떨까? 치료는 더 정밀해지고, 고통은 줄어들며, 새로운 희망이 생긴다.
이제 신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한 ‘생분해성 전자약’이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한다.

1. 현재의 치료법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으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치료’를 기대한다. 의학적으로 복잡한 절차가 따르지만, 공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병원에서 제공하는 치료는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언이다. 비약물적 치료라고 하며 대부분의 경우 의사가 해주는 의학적 조언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급격한 체중 증가로 인한 무릎 통증은 단순히 체중 감량만으로도 호전될 수 있다. 이처럼 병원에서 아무런 시술 없이 조언만 받고 돌아오는 경우, 일부는 불만을 토로하지만 실제로는 큰 병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데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약물 치료다. 약이나 주사처럼 간편하고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다. 열이 내려가지 않을 때 항생제 하나로 회복되는 경험처럼 약물은 분명 편리하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비표적성이다. 즉 원하는 부위 외에 우리 몸의 다른 곳에서 작용해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열을 내리려 먹은 해열제가 위염을 유발하거나, 우울증 치료제가 체중 증가를 일으키는 식이다.

세 번째는 수술이다. 약물과 반대로 수술은 표적성이 뛰어나 정확히 원하는 부위만 치료할 수 있고, 전신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마취를 통한 피부의 절개가 필요한 침습적 방법인 만큼, 신체적 부담이 크고 반복 치료가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네 번째는 전자기기 삽입이다. 대표적으로 인공 심장박동기Pacemaker처럼 전자장치를 삽입해 지속적으로 기능을 보완해주는 방식이다. 수술과 유사하지만, 장치가 삽입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디바이스가 몸 안에 장기적으로 남아 있어 생기는 문제, 즉 이식 관련 만성 합병증의 위험이 있다. 이물질로 인식된 기기가 세포에 둘러싸여 단선, 만성 염증, 제거 과정 중 연결된 장기의 손상 등 다양한 단장기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또 장치가 피부 아래 만져지거나 상체 운동 시 뻐근함 등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도 존재한다.

정리하자면, 의학적 소견에 의해 행해지는 조언, 약, 수술, 전자기기 삽입이라는 네 가지 치료 방법은 각각의 확실한 장점과 함께 뚜렷한 한계 또한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의학적 조언을 제외한 3가지 치료법에 따른 장·단점을 정리해 아래 표로 나타냈다.)
의학적 조언을 제외한 3가지 치료법의 장·단점
치료법
수술
전자기기 삽입
장점
편리성(비침습성) 반복 투여 용이
표적성 병변의 근본적 제거 가능
표적성 반복적 치료 가능 정밀 제어 가능
단점
비표적성(낮은 국소 특이성)
침습성 반복 시 위험 증가 회복 시간 필요
침습성 이식 관련 만성 합병증
이제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일반적인 치료 방법이 모두 완전하지 않다면, 기존 치료 방법의 장·단점을 보완할 경우 지금까지 치료할 수 없었던 질병도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가 제안한 것이 바로 ‘생분해성 전자약’이다.
2. 생분해성 전자약
생분해성 전자약은 몸속에 삽입할 수 있는 전자기기가 마치 약처럼 녹아서 없어질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앞에서 언급한 치료법에 따른 장·단점을 살펴볼 때, 생분해성 전자약은 표에 나온 삽입형 전자기기의 모든 장점(표적성, 반복적 치료 가능성, 정밀 제어 가능성)을 지니면서 약과 같이 몸속에서 녹아 없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삽입형 전자기기의 가장 큰 단점인 이식 관련 만성 합병증을 해결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생분해성 전자약이 실제로 적용되면 치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기존에 해결하지 못했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하나의 예가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Temporary Cardiac Pacemaker다.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는 심장 수술을 받은 환자의 회복 기간 동안 심장의 기능을 도와주기 위해 사용하는 대표적인 삽입형 전자기기다. 약 2주에서 한 달의 기간이 지나 심장이 완전히 회복되면 몸에서 제거하기 때문에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라 불리며,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있는 신생아에게도 적용되는 범용적인 전자기기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이미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2가지 위험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몸을 관통하는 기기의 구조에 의한 위험성이다. 현재 상용화된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는 외부에 컨트롤러가 있고, 컨트롤러에 연결된 전선이 피부를 관통해 심장에 꽂혀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전선이 피부를 관통하다 보니, 환자의 움직임이 제한을 받거나 관통 부위에서 감염의 위험성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위험성은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약 2주의 치료 기간이 끝나면, 외부에서 물리적으로 당겨서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를 제거한다. 문제는 2주간의 이물 반응으로 인해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가 꽂혀 있는 부위 주변에 자란 섬유화 조직Fibrotic Tissue이 전선을 붙들어 심장의 연결부위가 뜯겨나가거나 단선이 되는 상황이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분해성 전자약의 한 종류로 생분해성 임시 심장박동 조율기를 개발한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전자약이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약’이기 때문에 외부에 연결되는 전선 없이 몸속에 삽입이 가능하다. 그 결과 감염 위험을 줄임과 동시에 환자도 움직임에서 훨씬 큰 자유도를 얻을 수 있다. 두 번째로 ‘생분해성’ 성질을 가지고 있다면 제거 수술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 치료를 마치고 약처럼 몸속에서 스스로 녹아 무해하게 없어질 수 있다면, 그동안 제기되었던 제거 수술과 관련된 대부분의 위험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 임상 기기

경피적 하드웨어를 통한 작동

위험한 제거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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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기(생분해성 전자약)

피부 관통 없이 무선으로 작동

제거 수술 없이 생체 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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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생분해성 전자약은 기존의 치료 효능을 한 단계 향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를 당해 신경 손상을 입은 환자가 있다고 해보자. 이런 환자는 일반적으로 수술을 통해 끊어진 신경을 이어 붙인 후, 수술 과정 중 잠깐 동안 신경에 전기자극을 가한다. 그 잠깐의 전기자극이 신경의 회복 속도를 더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짧은 전기자극도 신경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지속적인 전기자극은 신경 회복에 더 큰 효능을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것은, 지금까지 의사와 과학자들이 이러한 가설을 검증해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전기자극을 위해 몸속에 전자기기를 삽입해둘 경우, 이식 관련 만성 합병증을 막기 위해서라도 신경 회복 이후 다시 살을 째고 몸속에 있는 전자기기를 제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분해성 전자약이 상용화된다면 전혀 다른 치료가 가능해진다. 수술 과정 중 전자기기를 손상된 신경에 연결해두면, 상처를 봉합하고 나서도 무선으로 여러 번 전기자극을 줄 수 있고, 신경이 회복된 후 생분해성 전자약은 체내에서 녹아 없어지게 된다. 최근 다양한 연구들을 통해, 수술 중 한 번 자극을 줄 때보다 생분해성 전자약 삽입을 통해 여러 번 전기자극을 주었을 때 신경의 회복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추가적인 제거 수술 없이 신경의 회복 속도만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린 셈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생분해성 전자약을 구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기술이 무엇일까? 바로 ‘신소재’에 대한 연구다.
3. 신소재 연구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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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분해성 전자약은 말 그대로 ‘전자기기’가 몸속에서 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자기기가 물에 녹지 않을뿐더러 방수 기능까지 갖추며 수분에 더 강하도록 개발되어왔음을 생각할 때, 생분해성 전자약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뿐 아니라 소재의 가공을 위한 공정까지 새롭게 개발되어야 함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실제로 생분해성 전자약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재는 기존 전자기기에 사용되던 소재들과는 다르다. ‘생분해성’이라는 특성을 갖기 위해 어느 정도 ‘불안정성’을 갖는 소재들로 전자기기를 구성해야 하는데, 이러한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는 우리가 매일 먹는 비타민에서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비타민통 뒷면의 구성성분표를 보면, 마그네슘Magnesium, Mg이나 몰리브데넘Molybdenum, Mo 같은 다양한 금속 물질뿐 아니라 실리콘Silicon, Si같은 반도체 물질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 번째는 이와 같은 도체 혹은 반도체 물질이 몸속에 들어가 분해되어 흡수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분해되어 흡수되는 부산물들이 실제로 우리 몸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타민에 들어 있는 소재라면 ‘전자약’ 소재로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이것이 여전히 전기자극을 통해 치료하는 ‘전자기기’이기에, 치료 기간 동안 그 성능을 보장해줄 수 있는 전기적·기계적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분해성을 갖기 위해 불안정해야 하면서도 전자기기로 사용되기 위해선 안정성을 갖춰야 하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를 해결하기 위해, 필자의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생분해성을 나타낼 수 있는 결합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 분자들을 포함하고 있어 수분의 침투를 막고 전자기기의 전기적 안정성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고분자에서부터, 우레탄과 같이 생체액에 의해 녹을 수 있으면서도 잘 늘어날 수 있는 고분자를 통해 전자기기가 기계적 안정성을 나타내도록 하는 등, 의료용 전자기기로서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다양한 신소재들을 개발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반도체용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와 같이 물에 녹지 않는 물질들에 최적화되어 있던 제조공정 대신, 생분해성 소재의 손상 없이 높은 수득률로 생분해성 전자약의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레이저 기반의 새로운 공정 또한 개발 중에 있다.
4. 생분해성 전자약이 바꿀 의료의 미래
약물 치료만이 유일한 수단이었던 시기에 수술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했고, 이후 수술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난제를 전자기기 삽입을 통해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치료법의 도입은 단순히 치료 옵션 하나가 추가된 것에 그치지 않고, 기존에는 해결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의학적 과제를 풀어냄으로써 인류의 삶 전반에 혁신을 가져오는 출발점이 되었다.이와 마찬가지로 생분해성 전자약이라는 새로운 치료 방법 역시 ‘난치병’이라 불리던 다양한 질환들을 정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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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식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LG화학 석유화학사업본부 신소재개발팀에서 근무했다.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재료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수행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소재공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신소재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생분해성 전자약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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