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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테크 창업의 쓰레기통 모델
정태현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왜 한국에는 테슬라나 구글 같은 기업이 없는 걸까? 기술은 있지만, 그 기술을 ‘과감한 사업 모델’로 연결할 환경이 부족하다.
지금 한국에는 쓰레기통처럼 아이디어와 사람이 섞이는 창업 생태계가 필요하다.

SCENE 1.
한국의 7대장, 미국의 7대장
2025년 6월 현재 한국 주식시장의 시총 상위 7개 기업의 평균 설립 연도는 대략 1980년으로, 사람으로 치면 45세다. 젊다면 젊은 나이지만 이들 대부분이 삼성, LG, 현대 등 대기업 집단으로부터 파생되어 설립된 것을 고려해 모기업의 설립 연도로 따지면 해방둥이인 1945년생 80세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2015년 318조 원에서 2025년 6월 824조 원으로 2.6배, 연평균 10% 성장했다.

한편 미국 주식시장의 7대장(즉 매그니피센트 세븐) 은 모두 나스닥에 상장된 기술 기업으로 평균 설립 연도는 1992년, 33세다. 가장 오래된 기업이 1975년과 1976년에 설립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이고, 엔비디아와 아마존, 구글이 모두 1990년대에, 테슬라와 메타가 2000년대 초반에 설립되었다. 이들의 시가총액은 최근 기술주와 테슬라 주가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약 15조 달러(대략 21경 원)다. 2015년 약 3000조 원에 비하면 10년간 7배, 연평균 21% 성장이다.

미국의 7대장은 개인용 컴퓨터, 그래픽 처리칩, 온라인 서점, 과금하지 않는 인터넷 서비스, 직판하고 소프트웨어로 업데이트하는 전기차 등 모두 정보통신 산업과 플랫폼, AI 혁명을 이끌고 있는 기업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 없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대에 맞게(또는 앞서서) 개발하는 데 성공한 기업일 뿐 아니라, 이들 제품에 맞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테스트하고 성공시킨 기업이기도 하다. 즉 신기술의 사업화에 엄청나게 성공한 기업들이다.
한국의 7대장은 KB금융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제조업이다. 시대를 앞서는 대규모 투자로 대규모 생산 시설을 구축하고, R&D와 철저한 생산관리, 규모의 경제를 통해 고객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적시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납기하는 능력을 최대한 갈고닦아 이를 무기로 성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과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도 이들의 성장을 거들었다.
  • ❶ 말석의 한두 기업이 종종 자리 바꿈을 하긴 하지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바이오로직스, LG에너지솔루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자동차, KB금융이다.
  • ❷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아마존, 구글, 메타, 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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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주식시장의 7대장은 설립 연도와 성장률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SCENE 2.
한국은 방으로, 미국은 스타디움으로
스크린 골프의 핵심 기술인 타구와 스윙 분석기의 글로벌 강자는 미국의 풀스윙Full Swing사와 한국의 골프존이다. 풀스윙은 북미 시장의 70%가량을 장악하고 있고, 골프존은 한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골프존은 스크린 골프라 통칭되는 실내 골프 코스 시뮬레이터 사업을 개척했다. 기존 실내 골프 시뮬레이터를 일반인이 방에서 필드 게임처럼 즐길 수 있게 프로그램과 사업 모델을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2006년 최초 스크린 골프장 개장 이후 2024년 한국의 스크린 골프장은 8000개를 넘어섰고, 이용자는 연간 100만 명 이상, 골프존의 매출은 6000억 원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한국의 골프방을 확장한 버전인 18홀 도심형 골프장을 1만6000㎡(약 5000평) 규모로 중국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풀스윙은 프로 골퍼나 일반 골퍼가 자신의 타구와 타격을 분석할 수 있는 타격 분석기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다. PGA와 협업하고 있으며, 많은 프로 골퍼가 사용할 정도로 성공했다. 비슷한 기술을 활용했지만 골프존은 골프의 접근성, 비용, 시간 등의 단점을 보완한 게임의 형태로 사업화했고, 풀스윙은 골프 연습을 도와주는 보조기구로 사업화한 것이다.

2025년 1월 이 기술을 활용한 좀 더 대담한 혁신이 생중계되었다. 프로 골퍼 타이거 우즈와 로리 매킬로이가 설립한 ‘투모로스포츠TMRW Sports’가 신개념 스크린 골프 리그 ‘TGLTomorrow’s Golf League’을 출범한 것이다. 프로 스포츠의 본고장인 미국답게 각 도시를 프랜차이즈로 한 프로 골프팀이 각자 리그전을 치르고 플레이오프를 거쳐 우승(우승 상금만 약 300억 원)을 가리는 방식은 미식축구, 농구, 야구 등과 비슷해서 새로울 것은 없었다. 단 기존 PGA투어와 다른 점은 골프장이 아닌 한 장소(스타디움)에서 모든 경기를 치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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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L은 골프를 재정의하고 골프를 즐기는 방식,
관람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다른 모든 구기 스포츠가 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데 반해 골프는 18개 홀을 이동하며 벌어지는 스포츠다. 또한 플레이어 간 경쟁보다는 플레이어와 골프 코스 지형의 관계가 경기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다. TGL은 풀스윙사와 협력해 티 샷과 드라이브 샷은 스크린 골프로, 퍼팅과 쇼트 게임은 실제 그린과 해저드에서 플레이하도록 스타디움을 설계했다. 단, 스크린은 5층 높이(가로 20m, 세로 15m)로 대형화해 현장감과 몰입감을 높였고, ‘그린 존’은 600개의 액추에이터와 360도 회전하는 무대로 다양한 지형을 순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혁신은 한 장소에서 15홀의 지형을 플레이할 수 있게 했고, 2000석이 넘는 관중석을 배치해 다른 프로페셔널 스펙테이터 스포츠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게 했다.

결과적으로 야구가 크리켓과 다른 스포츠가 되었듯이, 미식축구가 럭비와 다른 스포츠가 되었듯이, TGL은 골프를 재정의하고 골프를 즐기는 방식, 관람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낼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스크린 골프의 강자이자 세계적인 골프 선수를 보유한 한국은 또는 한국의 골프존은 왜 이런 과감한 혁신을 시도하지 못했을까?
TGL의 주요 기술과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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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샷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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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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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모습
실리콘밸리 방식과 쓰레기통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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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중에도 미국의 7대장에 비견될 만한 성과와 성장을 보이는 기업들이 있다. 사진은 게임 대장주로 불리는 크래프톤.
앞에서 예로 든 미국 기업들은 극단적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미래 미국의 7대장에 비견될 만한 네이버, 카카오, 레인보우로보틱스, 알테오젠, 크래프톤 등이 열심히 성장 중이다. 이와 같은 성장을 확대하고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흔히 실리콘밸리 방식이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7년 정도 기간에 투자 회수를 할 수 있는 규모와 업종, 단계별 투자를 통한 검증과 경영지도, 시장의 반응을 보며 빠른 사업전환과 최소 경쟁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s을 출시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이 방식의 핵심 성공 요인이다. 이러한 방식은 스타트업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방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7대장이나 TGL을 살펴보면 이러한 방식을 충실히 따랐다고 보기 어렵다. TGL이 MVP에 집중했다면 미국식 스크린 골프클럽을 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리콘밸리 모델의 다양한 형식과 수단적 측면을 차치하고, 이 모델의 핵심은 사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창업자든 투자자든 모험에 대한 대가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주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이 이 모델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그리고 더 큰 모험은 그 모험에 비례한 수준 이상의 더 큰 보상으로 연계된다.
메타가 수익 모델에 대한 압박으로 페이스북을 조기에 유료화했다면, 구글이 지메일Gmail을 조기에 유료화했다면, 그들은 싸이월드 또는 초창기에 숱하게 명멸했던 인터넷 이메일 서비스의 경로를 따라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단기 수익을 추종하기보다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고객 확보와 이들이 생성하는 데이터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집중했다. 애플, MS, 아마존 모두 앱스토어를 통한 개방형 혁신, 윈도 생태계, 데이터베이스 생태계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한 핵심 역량을 새로운 사업 모델과 결합해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다. 즉 시대를 읽는 새롭고 과감한 사업 모델이 기술과 결합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사업화, 기술이전, 산업기술 혁신, 벤처투자, 기업형 벤처투자 등의 제도, 법령, 지원책의 개선이 필요한 지점도 있지만 많이 미흡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좀 더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결국 혁신가들이 과감한 모험을 추구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 기술의 가치를 높이는 혁신적 사업 모델이 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는지다.

새로운 사업과 스타트업은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고객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 의사결정을 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이슈는 고객의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과 해법(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나 린 스타트업 모델은 기술을 보유한 창업자에게 시장과 고객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시키라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기술이 융합하고 더욱 복잡해지는 현황을 고려하면, 특히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에 오랜 시간과 깊은 지식이 요구되는 딥테크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골프존이나 풀스윙의 CEO에게 열심히 교육을 시킨다고 미래 골프에 대한 이상과 열정, 실행력을 가진 타이거 우즈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은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은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가 기술을 가진 혁신가와 공동으로 과감한 사업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와 ‘해법’, ‘참여자’가 쓰레기통에서 섞이듯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섞여 해법이 문제를 발견하든 문제가 해법을 발견하든 뒤죽박죽이지만, 무언가 생각지도 못했던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의 분업화에 대한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제조업에서 과거 혼자 모든 것을 하던 가내수공업은 분업화와 고용 노동자 사업 모델의 생산력과 효율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기술을 가진 창업가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대학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기술부터 사업까지 모든 것을 잘 경영해야만 보상받는 체계는 적합하지 않다. 직무 발명 보상이나 기술료 정도의 사무적 수준의 보상이 아니라, 성공한 창업에 대해 발명자와 아이디어 보유자도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확신과 분업화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기술과 아이디어, 사업에 대한 열정과 경영에 대한 스킬이 자유롭게 섞여, 해법은 문제를, 문제는 해법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것이다.
  • ❸ 적은 자원으로 빠르게 실험하고, 고객 반응을 통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해나가는 창업 방법론 중 하나다.
  • ❹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 Cohen, M. D., March, J. G., & Olsen, J. P. (1972). A garbage can model of organizational choice.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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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현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부원장
기술경영경제학회 기술사업화 특위 위원장으로 한국의 딥테크 기술사업화 관련 학술활동을 기획 운영 중이다. 혁신과 기술사업화, 기술창업 등이 주 연구 관심사다.
한양대에 오기 전에는 조지아공대에서 과학기술 혁신정책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스웨덴 룬드대학,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 등에서 혁신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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