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방식과 쓰레기통 모델

국내 기업 중에도 미국의 7대장에 비견될 만한 성과와 성장을 보이는 기업들이 있다.
사진은 게임 대장주로 불리는 크래프톤.
앞에서 예로 든 미국 기업들은 극단적으로 성공한 사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미래 미국의 7대장에 비견될 만한 네이버, 카카오, 레인보우로보틱스, 알테오젠, 크래프톤
등이 열심히 성장 중이다. 이와 같은 성장을 확대하고 가속화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벤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흔히 실리콘밸리 방식이나 린 스타트업Lean Startup❸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7년 정도 기간에 투자 회수를 할 수 있는
규모와 업종, 단계별 투자를 통한 검증과 경영지도, 시장의 반응을 보며 빠른 사업전환과 최소 경쟁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s을 출시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이 방식의 핵심 성공 요인이다. 이러한 방식은 스타트업이 평균 이상의 성과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방식일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7대장이나 TGL을 살펴보면 이러한 방식을 충실히 따랐다고 보기 어렵다. TGL이 MVP에 집중했다면 미국식 스크린 골프클럽을 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실리콘밸리 모델의 다양한 형식과 수단적 측면을 차치하고, 이 모델의 핵심은 사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창업자든 투자자든 모험에 대한 대가가 어마어마한 규모로
주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이 이 모델을 성공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그리고 더 큰 모험은 그 모험에 비례한 수준 이상의 더 큰 보상으로 연계된다.
메타가 수익 모델에 대한 압박으로 페이스북을 조기에 유료화했다면, 구글이 지메일Gmail을 조기에 유료화했다면, 그들은 싸이월드 또는 초창기에 숱하게 명멸했던
인터넷 이메일
서비스의 경로를 따라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단기 수익을 추종하기보다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의 핵심 경쟁력이 고객 확보와 이들이 생성하는 데이터에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 집중했다. 애플, MS, 아마존 모두 앱스토어를 통한 개방형 혁신, 윈도 생태계, 데이터베이스 생태계 등 기술을 중심으로 한 핵심 역량을 새로운 사업 모델과
결합해 확장하는 전략을 펼쳤다. 즉 시대를 읽는 새롭고 과감한 사업 모델이 기술과 결합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사업화, 기술이전, 산업기술 혁신, 벤처투자, 기업형 벤처투자 등의 제도, 법령, 지원책의 개선이 필요한 지점도 있지만 많이 미흡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좀 더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것은 결국 혁신가들이 과감한 모험을 추구할 수 있는 보상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지, 기술의 가치를 높이는 혁신적 사업 모델이 기술과 결합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추어져
있는지다.
새로운 사업과 스타트업은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고객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 의사결정을 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이슈는 고객의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과
해법(또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나 린 스타트업 모델은 기술을 보유한 창업자에게 시장과 고객에 대한 교육을 열심히 시키라고 한다. 그러나 다양한
기술이 융합하고 더욱 복잡해지는 현황을 고려하면, 특히 기술의 발전과 상용화에 오랜 시간과 깊은 지식이 요구되는 딥테크 분야에서는 이런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 골프존이나 풀스윙의
CEO에게 열심히 교육을 시킨다고 미래 골프에 대한 이상과 열정, 실행력을 가진 타이거 우즈가 될 수 있었을까?
결국은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은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가 기술을 가진 혁신가와 공동으로 과감한 사업 모델을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와 ‘해법’,
‘참여자’가 쓰레기통에서 섞이듯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섞여 해법이 문제를 발견하든 문제가 해법을 발견하든 뒤죽박죽이지만, 무언가 생각지도 못했던 결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❹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창업의 분업화에 대한 조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제조업에서 과거 혼자 모든 것을 하던 가내수공업은 분업화와 고용 노동자 사업 모델의 생산력과 효율성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기술을 가진 창업가가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대학 연구실을 박차고 나와, 기술부터 사업까지 모든 것을 잘 경영해야만 보상받는 체계는 적합하지 않다. 직무 발명 보상이나
기술료 정도의 사무적 수준의 보상이 아니라, 성공한 창업에 대해 발명자와 아이디어 보유자도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확신과 분업화 체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기술과 아이디어,
사업에 대한 열정과 경영에 대한 스킬이 자유롭게 섞여, 해법은 문제를, 문제는 해법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것이다.
- ❸ 적은 자원으로 빠르게 실험하고, 고객 반응을 통해 제품과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해나가는 창업 방법론 중 하나다.
- ❹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 Cohen, M. D., March, J. G., & Olsen, J. P. (1972). A garbage can model
of organizational choice.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