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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특허가 아닌 강한 특허가 필요하다
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 대학은 특허를 많이 낸다. 미국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그러나 기술료 수입은 왜 미국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할까?
한국과 미국 대학의 기술이전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특허 개수 중심의 평가지표가 불러온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많은 특허’가 반드시 ‘강한 특허’를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는 지금 특허의 ‘질’을 고민할 시점에 와 있다.

2015년 4월 22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개최되었던 재미 과학자 피터 강Peter Kang 교수의 작은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 보스턴의 베스 이스라엘 디코니스 메디컬센터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 심장내과에 근무하는 MD이자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서, 한국의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2008~2012)’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 사업을 통해 몇 년간 수개월씩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 학자들과 협동 연구를 진행했다. 세미나 후 이어진 점심 식사에서 강 교수는 당시의 협동 연구 경험을 토대로 한국 대학에서 받은 인상 몇 가지를 여담처럼 이야기했는데, 그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한국 대학은 특허는 많지만 강한 특허는 별로 없어요. 미국은 교수 업적 평가에 특허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교수들이 특허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정말 상업화 가치가 있는 발명만 특허로 출원합니다. 그렇지 않은 기술은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에서 특허를 내주지도 않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특허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 탓인지 특허를 많이 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특허는 많은데 강하고 좋은 특허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연구자들과 공동 연구를 할 때 강한 특허가 구성되기 전에 설익은 기술로 자꾸 특허를 내려고 해서 이를 말리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한국
실제로 양국 대학의 특허 및 기술이전 실적에 관한 통계를 비교해보면 강 교수의 평가와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 대학의 TLO 연합조직인 AUTM 자료와 한국연구재단의 <2024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보고서>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면 전체 대학 연구비 총액은 미국이 한국의 10배지만, 특허 등록 건수는 한국이 미국보다 조금 더 많다(1.4배). 그래서 특허 등록 건수를 연구비 규모로 나누면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보다 14배 많은 특허를 산출하고 있다. 미국은 한 건의 미국 특허를 등록하기 위해 122억 원의 연구비가 소요되지만, 한국은 8억4000만 원이면 하나의 특허가 나온다. 기술이전 건수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절대 수치는 미국 대학이 9350건으로 한국 대학의 5966건에 비해 1.6배 많지만, 연구비로 나누면 한국이 미국보다 6.5배 많다. 연구비 대비 교원 창업 건수도 마찬가지로 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4.5배 많다. 그러나 기술료 수입을 보면 미국은 29억4000만 달러로 총 연구비의 4.1%를 벌어들인 반면, 한국은 1078억 원으로 총 연구비의 1.2%에 불과했다. 연구비 규모를 고려해도 기술료 수입액은 미국이 한국보다 3.5배 많다. 요약하면 연구비 규모를 고려할 때 한국 대학은 미국 대학보다 14배 많은 특허를 산출하고 6.5배 많이 기술이전을 하고 있지만, 기술료 수입은 거꾸로 미국이 3.5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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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❶ AUTM이 데이터베이스를 유료화함에 따라 웹상에서 무료로 구할 수 있는 최신 데이터는 2018년 데이터였다. 이런 경우 한국 데이터도 2018년 데이터로 비교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은 대체로 변화가 가파르고 미국은 변화가 완만해서 한국의 최신 데이터와 미국의 5년 전 데이터를 비교해도 큰 무리는 없다고 판단했다.
한국과 미국 대학의 특허 및 기술이전 실적 비교
항목
미국 대학(2018)
한국 대학(2023)
비교(괄호 안이 더 큰 국가)
총 연구비
717억 달러(93조2100억 원)
9조1507억 원
(미) 10.2배
특허 등록 건수
7625건(미국 특허)
1만903건(한국 특허)
(한) 1.4배
기술이전 건수(라이선스/옵션)
9350건
5966건
(미) 1.6배
스타트업 창업 수
1080개사
475개사
(미) 2.3배
기술료 수입
29억4000만 달러(3조8220억 원)
1078억 원
(미) 35.5배
총 연구비/특허 등록 건수
940만3279달러/건(122억 원/건 )
8억3928만 원
(미) 14.6배
기술이전율(기술이전 건수/특허 등록 건수)
123%
55%
건당 기술료(기술료/기술이전 건수)
31만4439달러/건(4억877만 원/건)
1806만 원/건
(미) 22.6배
기술료/특허 등록 건수
38만5574달러/건(5억124만 원/건)
988만 원/건
(미) 50.7배
기술료/총 연구비
4.10%
1.18%
(미) 3.5배
총 연구비 1000억 원당 특허 등록 건수
8.2
119.1
(한) 14.6배
총 연구비 1000억 원당 기술이전 건수
10.0
65.2
(한) 6.5배
총 연구비 1000억 원당 창업 수
1.16
5.19
(한) 4.5배
주 : 환율 1달러당 1300원으로 계산
자료 : Nag et al.(2020), “The Evolution of University Technology Transfer: By the Numbers”, https://ipwatchdog.com/2020/04/07/evolution-university- technology-transfer/id=120451/; 한국연구재단(2024), <2024 대학 산학협력활동 조사보고서>
사업화 산업 생태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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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의 경우 교수가 발명 신고를 하면 해당 산업 분야의 경력자들이 많은 TLO에서 엄격한 질적 평가를 통해 상업적 가치가 있는 경우에만 특허를 출원한다.
이런 차이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데, 크게 대학에서 특허가 산출되는 구조와 그것을 이전받아 사업화하는 산업 생태계의 한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그중 대학 측 요인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 대학은 교수 업적 평가에서 특허출원이나 기술이전 실적이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교수에게는 업적 평가를 위해 특허출원을 많이 하려는 유인이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은 특허가 교수 업적 평가에 반영되고 정부 연구개발 사업의 중요한 성과지표다. 과제 수주를 위해 제안서 경쟁을 할 때도 과거의 특허 실적이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 이로 인해 대학 교수들의 특허출원 유인이 매우 강하다.

둘째, 미국 대학에서 교수가 발명 신고를 하면 특허출원 여부는 TLO에서 결정한다. TLO에는 특허출원을 거절할 권한이 있으며, 실제로 이 권한을 작동한다. TLO는 발명 신고를 접수한 후, 해당 기술의 잠재적 수요자licensor를 물색하거나 발명에 대한 엄격한 질적 평가를 통해 상업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특허출원을 한다. 그리고 TLO의 기술이전 담당자들은 해당 산업 분야의 경력자들이 많아서 기술과 기술이전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에서 교수가 발명 신고를 하면 산학협력단에서 특허출원 여부를 심사하기는 하지만, 특허가 각종 평가지표이기 때문에 웬만한 발명은 모두 특허출원이 된다. 사실상 교수의 의사에 따라 특허출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학의 특허를 사업화하는 대학 외부 산업 생태계의 취약성도 한국 대학의 기술이전 실적이 미흡한 주요 요인이겠지만, 그보다는 강한 특허를 산출하지 못하는 대학 측 요인이 더 중요하고 명백해 보인다.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특허를, 특히 특허 개수를 성과지표로 활용하는 대학과 정부 연구개발 사업의 제도가 있다. 성과지표는 연구자들의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대학의 특허를 내실화하고 더 강한 특허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정부 연구개발 사업의 평가지표를 구성할 때 특허 중심의 평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성과지표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니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해보면 좋겠다.
아이디어에서 시장까지 : 스탠퍼드대학의 IP 생성 및 관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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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Page, N. (2007). “The making of a licensing legend: Stanford University’s office of technology licensing”, Intellectual property management in health and agricultural innovation: a handbook of best practices, Ch.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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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물리학(학사), 과학철학(석사), 과학기술정책학(박사)을 공부했고,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26년째 기술혁신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주로 바이오 산업을 중심으로 섹터 기반의 혁신 연구를 해오다 점차 오픈 이노베이션, 스타트업 생태계, 벤처캐피털 등 전체 섹터를 관통하는 주제별 연구로 옮겨왔다.
최근에는 거시적인 이슈나 이론적 문제들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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