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Tech & Story> Job Inside
기술에 감성을
가르쳐라
감성인식기술 전문가 박성준 교수
s_double.jpg

혹자는 첨단기술을 가리켜 비인간화의 첨병이라고 한다. 이제까지의 첨단기술이 인간의 감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도 그런 비난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기술이 인간의 비합리적인 요소인 감성까지도 철저히 인식하고 반응해 더욱 인간 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미래 직업, 감성인식기술 전문가의 세계를 만나 보자.

word 이동훈 photo 서범세

s6_2_1.jpg
인간의 감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안드로이드 캐릭터와 그들이 인간과 벌이는 해프닝이야말로 SF 작품의 주된 클리셰 중 하나다. 흔해 빠진 설정이지만 뼈가 있다. 이제까지의 기술 역시 정확히 그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술은 인간의 감성을 인식도 이해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으로만 살아가는 생물이 아니다. 감성도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때문에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은 인간의 이성뿐 아니라 감성에도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적과 개선은 의외로 오래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런저런 산업 제품의 디자인을 더욱 인체공학적이고, 친근해 보이며 측정값을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무려 고대부터 있었다. 게다가 21세기 들어 기계들도 똑똑해졌다. 드디어 다양한 센서를 통해 인간의 감성 표현(표정 등의 시각적 표현, 목소리 등의 청각적 표현, 주변 사물에 가하는 물리적이고 촉각적 표현)을 감지하고, 이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해 처리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것이다. 때문에 기계가 인간의 감성을 정확히 읽고 인간에게 더욱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생겼다. 이를 목적으로 개발되는 기술을 감성인식기술이라고 부른다.
이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주로 하는 일이 궁금하다.
|
2016년에 나온 인공지능 스피커 ‘아리아’의 개발에 참여했다. 출시 후 얻은 실사용 데이터들을 보고 놀랐다. 사용자들이 이 기기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빈도가 높은 것들이 “나 슬퍼”, “나 우울해” 등 어떤 기능도 요구하지 않고 본인의 감성을 표현하는 말들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 공통이었다. 인간은 이런 기계조차도 의인화하고,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고, 거기에 대해 답을 듣고 공감을 얻기를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본능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싶었던 박 교수는 일본 도쿄 공업대의 감성랩에서 본격적으로 감성인식기술을 연구했다. 현재는 감성인식기술을 통해 사용자와 공감할 수 있는 가상 인간을 만들어 연구하고 있다. 센서를 통해 사용자의 동공 크기 변화, 심박 변화 등을 측정하고, 이를 통해 사용자의 감성을 파악, 적절한 표정과 말로 반응하는 것이다.
감성인식기술에서 말하는 감성이란 무엇이고, 감정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
감성sensibility, 感性이란 외계의 대상을 오관으로 감각하고 지각해 표상을 형성하는 인간의 인식 능력이다. 흔히 감정, 느낌, 무드 등과 헛갈릴 수 있다. 그러나 감성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이다. 감정emotion, 感情은 사건에 의해 발생하는 뇌화학적 작용이고, 느낌feeling은 격발된 감정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들어간 언어 발화다. 무드mood는 느낌보다는 훨씬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현되는 정서적 분위기를 말한다. 감성은 이 모든 하위 개념을 감지하고 인식해 표현하는 상위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의 변화를 제대로 읽으려면 감성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그 표현도 정황, 개인의 기억과 타인과의 상호작용 이력 등 맥락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성인식 기술은 실생활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
사용처는 이론상 무궁무진하다. 관객들의 표정에 나타난 감성을 보고 줄거리를 여러 개 중 하나로 정할 수 있는 영화, NPC의 대사를 게이머의 감성에 맞춰 그때마다 다르게 할 수 있는 게임, 소비자들이 지겨워하지 않고 몰입해 제품 구매로까지 연결될 확률이 더욱 높은 CF 개발, 사용자의 감성에 맞춰 반응하는 소셜 로봇, 인공지능 스피커, 챗봇 등의 개발 등 다양하다. 예를 들면 위급 상황에 처한 사용자가 긴급한 목소리로 “살려줘!” 하면 인공지능 스피커가 그 목소리에 담긴 감성을 알아채고 바로 112나 119에 전화를 거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개발자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만 적용하다 보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은 감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다. 인종과 문화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이러한 차이점이 있는데 어떻게 센서에 잡히는 것만 가지고 올바른 감성 인식이 가능하겠는가?
|
물론 질문의 요지대로 감성 표현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인간이라면 공통적인 표현을 하는 부분도 있다. 후자는 폴 에크만이 알아낸 ‘6대 감정’이 대표적이다. 인간이라면 인종과 문화, 개체차를 불문하고 특정한 공통 감정(행복감 등)을 같은 표정근을 사용해 나타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문화권별로 차이가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심지어는 화장실 들어갈 때 기분과 나올 때 기분이 다르다고, 같은 사람이 사용할 때도 시간대별로 감성은 차이가 난다. 책상머리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유일한 대안은 기술이 사용될 현장에 나와서 부단히 현실의 데이터와 변수, 맥락을 수집하는 수밖에 없다. 감성인식기술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미국이나 일본보다 인구수(즉, 감성의 샘플 수)가 적은 우리나라가 핸디캡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❶ 감성인식기술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공헌한 미국의 심리학자.
감성인식기술 개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T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 감성인식기술은 지극히 통섭적인 연구 분야다. 즉, 인간과 기계, 그리고 그 둘을 잇는 인터페이스에 대해서까지 통달해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이 중 한 가지조차 평생 가도 마스터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라는 감성인식기술의 3대 주요 분야 중 한 곳을 본인의 주된 연구 분야로 하되 나머지 분야에 대해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들과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이 있어야 한다.
특히 감성인식기술 분야는 타인의 전문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감성인식기술은 이제 더 이상 연구실에서만 존재하는 기술이 아니다. 갈수록 그 보급이 확산되어,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제품에 적용될 것이다. 학교와 연구소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제품의 기획과 개발, 생산 등 전 분야에 감성인식기술 전문가가 설 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수행한 주요 프로젝트와 기억에 남는 일, 성취감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
‘아리아’ 개발에 참여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감성인식기술에 대한 귀중한 시각을 심어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또한 2년 전에 서울시, 네이버와 협력해 1인 가구 돌봄용 인공지능 전화 서비스(케어콜) 개발에 참여한 적도 있었다. 실제 사람처럼 완벽하게 기억하고 감성적으로 응대할 수는 없지만, 1인 가구원 분들이 “뭔가 이상해도 좋았고, 외로움을 떨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s6_2_2.jpg
박 교수는 감성인식기술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감성인식기술의 3대 주요 분야인 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 중 하나를 주요 연구 분야로 정하되 나머지 분야도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구 중 맞닥뜨리는 주된 애로사항이 있다면?
|
첫 번째로는 연구한 내용의 평가와 검증이다. 사용자가 제품을 쓰는 환경은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통제된 실험실이 아니다. 사용자의 실사용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일례로 사용자가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줘” 하면 해당 수치만 알려주게 하면 될 것 같지만, 실제 사용자는 그다음에 바로 “초미세먼지 수치도 알려줘”라고 반드시 또 묻는다. 때문에 초미세먼지 수치도 함께 알려줘야 한다. 이렇게 사용자가 기술에 원하는 바를 알아내고 그에 맞는 기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고, 그 과정은 현장에서 진행해야 하는 만큼 매우 어렵다. 또한 사용자의 수요도,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의 발전 수준도 계속 변한다. 거기에 적응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앞으로 인간은 어떤 자세로 기술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기술은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을 활용하기도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의 배양보다도,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용도, 인간과 협업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욱 중요해진다. 기술은 결코 인간 대신 일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의 사례만 보더라도, 그것이 주는 답을 무비판적으로 가져다 써서는 안 된다. 환각 현상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인공지능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얻지 못했던 새로운 단서와 관점을 얻는다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인간 두뇌는 다른 인간과의 협업을 통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도록 진화했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도 협업의 상대방이 되었다. 그들과는 협업하되 의존해서는 안 된다. 도구일 뿐이니까 말이다. 결국 최종적인 결정은 인간이 해야 한다.
  • ❷ 환각 현상 Hallucination : 사실 아닌 문자나 이미지를 마치 답처럼 내놓는 현상.
*
3월 잡 인사이드에는 똑소리단 김동민, 김동찬, 김륜한, 김신,
김정현, 김종섭, 김형우, 남대현, 류승연, 류창흔, 박기혁, 박복남,
서동성, 손상완, 송시온, 신진주, 윤진기, 윤혜인, 전유정, 전준규,
최정락, 홍종관 님이 참여해주셨습니다.
 이번 호 PDF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