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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역사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양자역학. 이름만 들어도 골치 아픈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고전물리학을 대체하는 현대물리학의 기초이자 동시에 21세기 현대문명의 기반을 닦은 학문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양자컴퓨터도 양자역학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양자역학이 걸어온 역사를 살펴보자.

양자역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지만 현대물리학의 필수 분야다. 그 이유는 양자역학의 이름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양자量子,Quantum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에너지의 최소 단위다. 열도, 시간도, 공간도 양자라는 단위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고전물리학에서 가장 작은 단위로 여겨지던 원자보다 더욱 작은 단위로, 원자 역시 이러한 양자들의 모임이다. 이러한 양자들 간의 관계와 원자의 구조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양자역학인 것이다. 아무리 큰 건물도 작은 벽돌 하나하나를 쌓아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 벽돌들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작은 물리적 독립체인 양자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고전물리학은 한계에 부딪쳤다. 양자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나서야 드디어 고전물리학을 뛰어넘는 현대물리학이 성립했다. 그리고 현대물리학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첨단 기술 문명의 근간을 이룬다. 그 때문에 양자역학 없이는 21세기 현대문명도 없다. 지금부터 양자역학 역사의 여러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살펴본다.
Step.1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
막스 플랑크(1858~1947)는 독일의 물리학자다. 그는 흑체복사를 연구했다. 흑체복사 문제는 19세기 물리학자들에게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흑체’란 외부에서 오는 빛을 모두 흡수하고 반사하지 않는 물질을 말한다. 이러한 흑체에서 빛이 나오는 현상이 흑체복사다. 흑체는 빛을 반사하지 않으므로 흑체에서 나오는 빛은 스스로 내는 빛뿐이다.

19세기 과학자들은 흑체가 내는 빛의 파장과 세기가 온도에 따라 변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고전물리학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빌헬름 빈은 실험을 통해 빈의 법칙을 제시했다. 이 법칙은 흑체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의 진동수가 높을 때는 잘 들어맞았지만 낮은 진동수에서는 잘 맞지 않았다. 반면 레일리와 진스가 전자기파의 이론을 이용해 분석한 레일리-진스 법칙은 진동수가 큰 전자기파에서는 전혀 맞지 않았다. 플랑크는 전자기파의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다는 가설인 양자 가설을 레일리-진스 법칙에 적용, 흑체복사 문제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즉, 에너지는 임의의 작은 양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크기의 덩어리 형태로만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식을 이용하여 나타내면 진동수가 ν인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hν라는 에너지 덩어리로만 방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h는 플랑크 상수로 6.6×10-34J·sec이다. 플랑크 상수는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가장 근본적인 자연의 상수이다. 플랑크는 이 이론으로 191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또한 그는 양자 물리학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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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가설을 제창한 막스 플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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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체복사의 사례인 빛을 내뿜는 용암
Step.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 1955).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어도 그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의 업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상대성이론이다. 하지만 1921년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안겨준 것은 광전 효과 연구였다. 광전 효과는 금속에 빛을 쪼이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이때 전자가 가지고 있는 최대 에너지는 금속에 쪼인 빛의 세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 파장과 반비례, 진동수와 비례 관계에 있다. 전자에 전달되는 에너지가 빛의 세기에 비례할 것으로 여기던 고전물리학에서는 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이를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막스 플랑크의 양자 가설을 빛에 적용한 광양자 가설을 주창했다. 빛이 어떤 최소한의 에너지 덩어리로 분절돼 있으며 그 최소한의 에너지는 빛의 진동수에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즉, 빛은 파동일 뿐 아니라 입자성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물질과 빛에 대한 고전물리학의 통념을 크게 바꾸어놓았다. 또한 광전 효과 분석을 통한 플랑크 상수 측정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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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 효과로 노벨상을 받은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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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이용하는 광섬유를 통해 전기 신호를 빛으로 변환해
정보를 전달하는 광통신은 광전 효과를 기반으로 발전한 기술 사례 중 하나다.
Step.3
닐스 보어의 원자 모형
과거에는 원자가 세상에서 제일 작은 입자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영국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더 작은 입자인 원자핵을 발견했다. 1911년 그는 음전하를 띠는 전자가 이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형태의 원자 모형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모형에는 문제가 있었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회전운동으로 에너지를 잃은 전자는 양전하를 띠는 원자핵에 끌려가 원자핵에 충돌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1913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닐스 보어 (1885~1962)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원자에는 전자가 회전하는 궤도가 양파처럼 여러 겹 있다는 것이다. 전자가 다른 궤도로 넘어가려면 일정한 에너지의 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자가 원자핵과 가까운 궤도에서 먼 궤도로 넘어가려면 일정한 에너지를 흡수해야 한다. 이로써 고전물리학과 러더퍼드 원자 모형에서 설명하지 못했던 전자의 에너지 상태를 알아내어 양자역학의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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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 모형을 발전시킨 닐스 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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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4
물질의 이중성 발견
앞서 빛은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1924년 루이 드 브로이(1892~1987)는 물질도 파동의 성질을 가진다는 물질파 가설을 제시하여 물질의 이중성 개념을 확립했다.

드 브로이는 물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속 전자에 입자성과 파동성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중 에너지=질량 공식 (E=mc²)과 광양자 가설,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가설에서 영감을 얻었다. 물질의 질량이 곧 에너지이고, 파동에도 에너지가 있으므로 에너지를 중심으로 이들의 관계식을 결합해 질량이 파동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새로운 결론을 도출했다. 즉, 입자라고만 생각되었던 전자의 움직임이 파동의 특성을 보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유도했고 이것을 물질파라고 부른다. 드 브로이는 물질파의 움직임은 다른 종류의 파동과 동일하다고 보았으며 전자의 궤도가 전자 파동의 정상파로부터 자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았다.

또한, 물질파는 전자의 궤도가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는 정상파의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통해 파동에서 보강간섭이 발생하며, 전자가 원자핵으로 추락하지 않고 계속 정상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파동이 정수배의 파장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상쇄간섭 때문에 소멸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궤도가 된다. 따라서 전자의 궤도가 띄엄띄엄 있는 이유가 물질파의 보강간섭을 일으키는 정상파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졌고, 보어의 양자 조건은 더 이상 모호한 가설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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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이중성을 알아낸 루이 드 브로이
  • ❶ 보강간섭: 서로 다른 파장이 만나 중첩의 원리로 더해지는 현상
  • ❷ 상쇄간섭: 파동이 서로 상쇄되면서 진폭이 줄어드는 것
Step.5
1920년대: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반 다져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901~1976)는 닐스 보어의 영향을 받아 원자 이하의 미시 세계에서 뉴턴 역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역학 체계를 구상해냈다. 그는 하나의 에너지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할 때 방출하는 빛의 세기를 구해냈으며, 그 과정에서 에너지도 보존됨을 확인했다. 이 역학 체계를 행렬역학으로 부른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193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1926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1887~1961)는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물질의 상태를 나타내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발표했다. 슈뢰딩거 방정식은 물리학자에게 대단히 익숙한 미분방정식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어떤 물리계의 총에너지를 기술한다. 이 방정식의 풀이에 해당하는 함수를 파동함수라고 부른다. 지금은 양자역학의 문제를 풀 때 대부분 슈뢰딩거 방정식을 이용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중심으로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방식을 파동역학이라 부른다. 슈뢰딩거는 이 공로로 영국 물리학자 폴 디랙(1902~1984)과 함께 1933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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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수학적 기반을 다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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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6
양자 얽힘과 양자컴퓨터
양자역학을 활용한 전자통신 기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 중 대표적인 것이 양자 얽힘이다. 2개 이상의 양자 입자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즉시 결정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연결은 입자 간의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유지된다. 이를 활용하면 한쪽의 입자 정보를 확인하면 동시에 다른 입자에 정보가 전송되는 양자통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빛보다 빠른 정보는 없다’는 상대성이론과 모순된다. 그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추가해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1928~1990)은 양자역학 기본 원리만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벨 부등식을 고안했다. 이 부등식은 숨은 변수가 있으면 만족되지만, 위배될 경우 양자 얽힘을 기존 양자역학만으로도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벨 부등식 위배는 알랭 아스페, 존 F.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에 의해 증명되었다.

클라우저는 벨의 이론을 발전시켜 실제 실험을 고안함으로써 처음으로 벨 부등식을 위배하는 현상이 현실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클라우저의 실험에도 몇 가지 허점이 존재했는데, 아스페는 얽힌 상태의 광자를 실험해 이 허점을 채움으로써 벨 부등식 위배를 완전히 밝혀냈다. 차일링거는 여기에 더해 이론과 실험으로 증명된 양자 얽힘 현상을 실제 보여주는 양자 순간 이동 현상을 시연해 처음으로 양자통신 실험에 성공했다. 양자 정보를 조작하고 전송하는 방법까지 완성한 것이다. 이 세 사람은 이 공로로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요즘 유명해진 양자컴퓨터는 다름 아니라, 이러한 양자역학적 원리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계산 장치다. 가장 작은 에너지 단위인 양자를 통해 그야말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므로 기존 컴퓨터에 비해 훨씬 밀도 높고 신속한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반도체 대신 원자를 기억소자로 사용하고, 0과 1만 존재했던 비트 대신, 0과 1의 중첩 상태를 인정하는 큐비트(양자 비트)를 기본 정보 단위로 사용하는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무려 30조 배의 계산 속도를 자랑한다. 양자컴퓨터는 특히 의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보안, 물류, 금융 분야에서 혁신을 몰고 올 것으로 예견된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두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양자를 완전히 이해한다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원도 국토도 인구도 모두 작은 한국이, 강대국과 대등하게 겨루려면 양자역학 연구 분야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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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얽힘 현상을 입증하여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아스페, 클라우저, 차일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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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과학 칼럼니스트
<월간 항공> 기자, <파퓰러사이언스> 외신 기자 역임. 현재 과학/인문/국방 관련 저술 및 번역가. <과학이 말하는 윤리>, <화성 탐사> 등의 과학 서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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