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p.6
양자 얽힘과 양자컴퓨터
양자역학을 활용한 전자통신 기술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 중 대표적인 것이 양자 얽힘이다. 2개 이상의 양자 입자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한 입자의 상태가 결정되면 다른
입자의 상태도 즉시 결정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연결은 입자 간의 물리적 거리에 관계없이 유지된다. 이를 활용하면 한쪽의 입자 정보를 확인하면 동시에 다른 입자에 정보가 전송되는
양자통신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는 ‘빛보다 빠른 정보는 없다’는 상대성이론과 모순된다. 그 때문에 물리학자들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는 ‘숨은 변수’라는 개념을 추가해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1964년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1928~1990)은 양자역학 기본 원리만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벨 부등식을 고안했다. 이 부등식은 숨은
변수가 있으면 만족되지만, 위배될 경우 양자 얽힘을 기존 양자역학만으로도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벨 부등식 위배는 알랭 아스페, 존 F.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에 의해
증명되었다.
클라우저는 벨의 이론을 발전시켜 실제 실험을 고안함으로써 처음으로 벨 부등식을 위배하는 현상이 현실에서 가능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클라우저의 실험에도 몇 가지 허점이 존재했는데,
아스페는 얽힌 상태의 광자를 실험해 이 허점을 채움으로써 벨 부등식 위배를 완전히 밝혀냈다. 차일링거는 여기에 더해 이론과 실험으로 증명된 양자 얽힘 현상을 실제 보여주는 양자
순간 이동 현상을 시연해 처음으로 양자통신 실험에 성공했다. 양자 정보를 조작하고 전송하는 방법까지 완성한 것이다. 이 세 사람은 이 공로로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요즘 유명해진 양자컴퓨터는 다름 아니라, 이러한 양자역학적 원리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계산 장치다. 가장 작은 에너지 단위인 양자를 통해 그야말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므로 기존 컴퓨터에 비해 훨씬 밀도 높고 신속한 정보 처리가 가능하다. 반도체 대신 원자를 기억소자로 사용하고, 0과 1만 존재했던 비트 대신, 0과 1의 중첩 상태를
인정하는 큐비트(양자 비트)를 기본 정보 단위로 사용하는 양자컴퓨터는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무려 30조 배의 계산 속도를 자랑한다. 양자컴퓨터는 특히 의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보안, 물류, 금융 분야에서 혁신을 몰고 올 것으로 예견된다.
양자역학은 어렵다. 그러나 이 세상은 모두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양자를 완전히 이해한다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자원도 국토도 인구도 모두 작은 한국이,
강대국과 대등하게 겨루려면 양자역학 연구 분야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