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포커스

K-뷰티의 글로벌 성공을 이끈 혁신적인 제품 중 하나는 2008년 국내에서 처음 출시된 ‘에어쿠션’이다. 뛰어난 휴대성과 편리함으로 호평받은 에어쿠션의 또 다른 장점은 리필 가능성.
전체 케이스를 재구매할 필요 없이, 내용물만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한 덕분에 비용은 물론 플라스틱 사용량까지 줄였다. 이 ‘리필’ 카테고리를 처음 도입한 기업이 바로 ㈜삼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관용구처럼 아주 사소한 차이가 전체를 정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명품 시장이 그렇죠. 우리 삼화도 그 사소함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글로벌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들이 우리와 일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패키징 혁신이 필요한 이유

화장품 패키징에서 자원순환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EU를 중심으로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친환경 패키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화장품 용기에는 다양한 플라스틱 소재가 혼합되어 있어 재활용이 쉽지 않다. 김준배 대표는 “자원순환을 고려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소재는 PET^❶”라고 강조했다. PET는 생수병 및 음료수병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재활용 플라스틱. 만약 화장품 용기를 100% PET로 제작할 수 있다면 자원순환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부 자극으로부터 제품 본연의 상태를 보호하고 사용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며, 브랜드 고유의 ‘추구미’를 충족해야 한다. 결국 이 모두를 만족하기 위해 여러 소재를 섞게 된다. 이에 삼화는 차선책으로 ‘단일 소재 PP^❷’와 ‘단일 소재 ABS^❸’ 패키징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분리배출이 쉬운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❶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생수병, 음료수병, 식품 포장 용기로 사용되며 재활용이 용이해 친환경적인 소재로 꼽히지만 높은 온도에서 변형이 쉽다는 단점이 있다.
❷ PP(폴리프로필렌):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할 만큼 내열성이 높지만, 산소 및 수분 차단성이 낮아 장기 보관 용도로는 아쉬움이 있다.
❸ 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부품 등에 활용되는 소재로 가공이 용이하고 다양한 색상이나 마감을 할 수 있다.
*PP나 ABS를 단일 소재로 만들 경우, 혼합 소재와 비교해 재활용성이 높아진다.

스테인리스 스프링 대신 플라스틱 스프링

삼화에서 개발한 에코 펌프는 2023년 상용화에 성공했고 환경부로부터 재활용 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삼화는 2021년 4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총 2년 9개월간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과제를 수행하며, ‘친환경 리필형 에어리스 화장품 패키징’을 개발했다. 이 패키지의 핵심 기술 중 하나가 ‘에코 펌프’. 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플라스틱 스프링에 가깝다.

보통 손가락에 힘을 실어 누르는 ‘펌핑 제품’에는 스테인리스 스프링이 사용된다. 높은 강도와 우수한 탄성 덕분에 반복적인 펌핑 동작에도 변형이나 손상이 적기 때문인데, 문제는 용기를 버릴 때 이 스테인리스 스프링을 꺼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일반 쓰레기로 분리해 소각한다. 삼화는 이를 플라스틱 소재로 대체해,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R&D본부 이경창 상무는 “펌핑 용기는 평균적으로 1000~2000번 사용되지만 우리는 1만 번까지 견딜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고자 했다”라며 이를 위해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형태’ 개발에 힘을 쏟았다고 설명했다. 적당한 탄성을 지닌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하는 일은 소재 전문 기업과의 협업으로 실마리를 얻었지만, 최적화된 형태를 디자인하는 일은 순전히 삼화 연구진의 몫이었다. 동글동글 스프링 모양부터 지그재그 아코디언 등 수많은 스케치가 시제품으로, 실험과 그 결과로 사라지며 1년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나라 전통 활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이 탄생했고 꼭 타악기 장구를 닮은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된 에코 펌프는 2023년 상용화에 성공했고, 환경부로부터 재활용 우수 등급을 획득하며 다양한 제품에 도입되는 중이다.

초기 시장 반응은 예상보다 미온적이었다. 당장 규제로 압박을 받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업계 도입 상황을 지켜보자는 평이 대다수였던 것. 다행히 이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패키징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제는 많은 브랜드가 삼화의 패키징을 활용해 친환경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럭셔리한 삶을 만드는 가치

“Cre-Art.” 삼화 R&D본부의 가치를 상징하는 단어다. 창의적이라는 뜻의 영단어 Creative와 예술이라는 의미의 Art를 합친 말이다. 우리 삶의 종합 예술을 만드는 기술이 그들의 연구 분야라고. 글로벌 최고의 패키징 기술이 삼화에서 탄생하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환경이라는 트렌드와 럭셔리 브랜드의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충족하는 데 어려움은 있을 터. 기자의 질문에 김준배 대표가 현답^賢答을 이었다. “럭셔리의 본질은 따라올 수 없는 가치에 있습니다. 어렵지만 기어이 해내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친환경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이제 럭셔리 브랜드가 갖춰야 할 기본 아니겠습니까.”

현명한 소비자는 제품의 성분을 살핀다. 그리고 좋은 원료를 선택한다. 다음 스텝은 포장재다. 좋은 성분의 제품이 더 건강하고 안전한 용기에 담기길 원한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소비자는 변화한다. 삼화의 도전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Mini Interview

㈜삼화 김준배 대표

글로벌 브랜드들이 삼화를 선택하는 이유는?
K-뷰티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품질과 혁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받고 있다. 비비크림, 에어쿠션 등 K-뷰티가 선도한 제품들은 텍스처뿐만 아니라 독창적인 패키징 디자인으로도 주목받았다. 이러한 트렌드 속에서 삼화는 최고의 패키징 기술을 제공하며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친환경 패키징의 측면에서 플라스틱이 가지는 이점이 있다면?
대표적인 비교 소재가 있다면 유리일 것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유리 재활용이 훨씬 쉽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을 고려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종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플라스틱은 100~300℃ 범위에서 녹는다. 반면 유리는 1400℃ 이상이 되어야 한다. 높은 열을 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단순히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삼화의 모태는 삼화플라스틱이다. 오랜 기간 쌓아온 소재 노하우를 바탕으로 플라스틱의 단점을 보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물론 향후 더 좋은 소재가 발견된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적극 활용하겠지만 말이다.

지난 1월, 친환경 용기로 세계포장기구^WPO의 월드 스타 어워즈 본상을 수상했다. 이 수상의 의미는?
월드 스타 어워즈는 국제 패키징 관련 행사 가운데 가장 공신력이 높은 시상식이다. 카테고리별로 1~2개 제품만 수상할 수 있어, 매년 수많은 대기업이 눈독을 들이기도 한다. 삼화는 2년 연속 본상을 수상하며 친환경 패키징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진의 노력이 이러한 성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삼화를 패키징 업계의 ‘엔비디아’로 만들 계획이다.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산업의 핵심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한다. 지속 가능한 소재의 연구를 강화하고, 고기능 친환경 패키징 기술개발을 지속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겠다.

㈜삼화는?

글로벌 화장품 용기 시장에서 지속적인 연구개발과 품질 혁신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패키징을 개발하고 있다.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고려한 혁신적인 용기를 제작하면서, 대량 생산 시스템도 최적화해서 다양한 고객사의 니즈에 맞춘 솔루션을 제공한다. 국내외 200여 개 이상의 고객사와 협력하고 있으며, 신규 인디 브랜드의 성장을 지원한다.